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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자타공인 빨갱이일 수밖에 없는 구빨치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작품의 화자이다.

    구빨치는 한국전쟁 이전에 38선 이남에서 활약하며 입산한 사회주의 계열의 유격대를 의미한다. 화자의 아비는 여순사건 직후 패퇴하면서 지리산 일대로 들어가 활약한 구빨치였다. 상대적 의미로 신빨치는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전선이 고착화되면서 의도적, 혹은 강제적으로 이남에 잔류한 인민군 부류를 의미한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아버지의 해방일지
    아버지의 해방일지 표지 - 창비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 화자의 아버지는 험난한 산 생활에서도, 토벌의 쏟아지는 총탄 속에서도, 또 하산 이후 온갖 정치적 탄압 속에서도 불사조처럼 살아 돌아왔던 빨치산이었다. 그런 그가 어이없는 사고로 머리가 깨져 죽었으니, 참으로 허망한 일이었다. 

    그렇게 죽으면서 치르는 3일장.(며칠 장을 치렀는지는 조금 헷갈린다.) 그 속에서 만나는 다양한 아버지의 생전 인연들과의 마주침. 외려 가장 가까이에서 아비를 보고 자랐으되, 사회적 편견, 차별, 가난, 이해의 부재 속에 그런 아비의 단면만 바라본 - 그것이 의식적이었든, 아니었든 - 그녀가, 아비 또한 다양한 모습을 지닌 온기가 흐르는 한 인간임을 재발견하는 과정은, 마치 영화 속의 낡은 흑백 사진이 총천연색의 활동사진으로 변해가는 연출처럼 느껴졌다.

     

    아버지의 해방

    결국 나는 소설 속 아버지의 해방을 두 가지 뜻으로 읽었다.

    필자가 가슴속에 백운산을 바탕으로 사회주의자, 빨치산, 유물론자로만 부조시켰던 아버지를 자기 내면에서 한 인간으로, 아버지로 온전히 되살려냄으로써 화자의 고정관념이 붙들고 있던 아비를 해방시켜 낸 일이 그 첫 번째이다. 두 번째는 화자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진정한 자신의 아비를 발견하고 온전한 유년을 회복, 치유되면서 스스로 지난날의 상처와 죄의식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으로, 이는 아버지의 삶, 곧 투쟁으로 인해 자신이 다시금 해방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아버지의 해방을 두 가지 뜻으로 해석했다.

     

     

    우리의 해방을 위해

    어떤 거룩한 것도 사람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우리가 인간인 바에야. 가장 강력한, 그리고 전제되어야 할 조건은 인간애이다. 

    소설 속 화자는 빨치산 출신의 아비를, 비록 죽었지만, 빨치산이 아닌 한 인간으로 재회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 좌익이었다는 이유로 항일활동마저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 부정한 권력자에게 저항했다가 좌익으로 몰려 희생당한 수많은 이들. 아직도 빨갱이, 종북프레임은 소위 우익의 강력한 무기이다.

    분단과 그로인한 이념적 대립이 아직도 펄펄 날뛰는 나라에 살고 있는 게다.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는 사회적 담론들이 이념적 편향 속에서 거세되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을 빨갱이라 몰아세우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아직도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헌법이 보장한 사상의 자유를 짓밟고 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해방을 갈망하고 있겠는가.

    그렇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었고, 입고, 입을 것인가. 이제 산에 있는 사람은 없는데. 이쪽에서 겨눈 눈총만 거둔다면 사람이 보일 것이다. 사람이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라는 인간애의 입장에 서고 보면 이해 못 할 어떤 것도 없다. 그런 세상을 꿈꾼다. 나의 해방을 위하여.

    정지아 작가

    1965년 전남 구례 태생. 1990년 '빨치산의 딸'로 작품활동 시작. 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만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5·18문학상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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