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 / 2024. 4. 3. 18:03

약(藥) - 루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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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약을 이야기한다. 1919년 5월 '신청년' 제6권 5호에 발표한 소설이다.

 

약 - 루쉰
약 - 루쉰

 

 

약(藥) 줄거리

 

1

 

화라오수안은 새벽 일찍 일어나 돈 꾸러미를 챙겼다. 그는 샤오수안의 기침 소리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길을 나섰다. 그는 묘한 설렘과 두려움을 느끼며 서둘렀다. 삼거리에 이르자 병정들과 사내 몇이 보인다. 한바탕 발걸음 소리가 나고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삼거리에서 반원형의 떼를 지었다.

쾅 소리에 모두가 물러났다. 시커먼 사람이 라오수안 앞에 시뻘건 만두를 들고 나타나 돈을 요구했다. 무춤거리는 그에게 시뻘건 만두를 건넨 그는 돈을 빼앗듯 집어 들고 사라져 버렸다. "그것으로 누구의 병을 고치려는 거요?"라고 누군가 물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고 발길을 돌렸다.

해가 떠오르자 그의 뒤편으로 삼거리 가두에 걸려 있는 낡은 편액에 '고 무슨 정구(古?亭口)라는 문구가 보였다.

 

2

 

라오수안이 찻집을 하는 자신의 집에 도착해 보니 비쩍 마른 샤오수안이 탁자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라오수안은 아내가 가져온 연잎에 시뻘건 만두를 옮겨 담았다. 잘 감싼 그것을 아궁이에 넣는다. 

단골인 꼽추 우사오예가 들어오며 으레 던지는 인사치레에도 답하지 않은 라오수안이 그의 찻잔에 차를 따를 때, 아내는 아들을 안방으로 불렀다. 아내는 아들, 샤오수안 앞에 새까맣고 둥근 것을 담아 내밀며, 먹으라 시켰다, 병이 나을 거라고. 샤오수안이 그것을 다 먹자, 부부는 아들을 재웠다. 

 

3

 

가게가 북적이는데 험상궂게 생긴 사람이 뛰어들어와 라오수안을 향해 소리쳤다.

"먹었어? 나았겠지? 당신은 운이 좋았어!"

캉 어른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라오수안이 싱글벙글이었다. 그들이 아들에게 먹인 것은 사람의 피를 묻힌 만두였다. 그것이 폐병에는 즉효라는 것이다. 

손님 하나가 캉 씨 앞으로 가 오늘 처형된 범인이 누군지 물었다. 캉은 그가 샤씨 댁 넷째 부인의 아들이라 일러주었다. 샤오수안이 두 손으로 감을 움켜쥐고 쿨럭거리며 나왔다. 그는 찬밥에 끓는 물을 붓고 말아먹기 시작한다.

캉 어른은 샤오수안을 흘끗 보고는 다시 떠들어댔다. 샤씨네 셋째 어른이 반란을 일으키려한 샤씨 댁 넷째 부인의 아들을 발고해 집안의 화를 면했음은 물론 은화까지 보상으로 받았다는 것이다. 덩달아 누군가가 거든다. 빨간 눈의 아이(阿義)가 조사하려고 갔더니, 그놈이 도리어 '이 청나라의 천하는 우리들 모두의 것이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이가 화가 나서 그놈의 볼을 두 대나 올려붙였는데도 외려 그가 아이더러 가엾다고 중얼거렸단다. 그러자 대화가 뚝 끊겼다가 사형당한 그가 미친 거라 입을 모았다. 그 사이 샤오수안이 기침을 해댔다. 캉이 그에게 다 나을 거라 격려했다.

 

4

 

서쪽 성문 밖 성벽 아래는 중간을 가로지른 꾸불꾸불 오솔길을 경계로 왼쪽은 사형이나 옥살이로 죽은 사람이 묻혀 있고 오른쪽은 빈민들의 공동묘지로 쓰였다. 

그해 청명절은 유난히 추웠다. 화 서방의 아내가 오른쪽의 새 무덤 앞에 망연자실 앉아 있었다. 한 여인이 오솔길로 걸어왔다. 반백의 머리에 남루한 차림의 그녀는 왼쪽의 무덤으로 가 이고 온 광주리를 내려놓았다. 그 무덤과 샤오수안의 무덤은 한 일 자로 나란히 줄지어 있고 그 사이에 오솔길이 가로질러 있었다.

비칠거리는 그녀를 보고 화 서방의 아내가 걱정이 되어 건너왔다. 화 서방의 아내는 그녀에게 같이 돌아가자, 권했다. 둘은 함께 무덤 위로 붉고 흰 꽃들이 에워싸고 있는 모습을 본다. 그녀가 외쳤다.

"위얼아! 그놈들이 널 무고하게 죽인 거지! 원통해서 알리려는 것이지?"

까마귀 한 마리를 본 그녀가 까마귀를 무덤 위로 날게 하여 자기 말을 알아들음을 보여달라 했으나, 까마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화 서방의 아내가 재차 돌아가자 권했다. 두 여인이 돌아서 가는데 까마귀가 까악 울며 곧바로 먼 하늘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가고 있었다.

1919년 4월

 

약(藥) 독서 후 감상

 

이 소설 속에 약은 사람의 피를 이르는데, 여러 가지 중의성을 가진 상징물이다. 필자 나름대로 분석, 정리해 본다.

첫째, 화라오수안(라오수안, 화 서방) 등의 중국인들에게 이 약은 폐병을 바로 낫게 하는 영약이었다. 이는 당시 중국 국민들의 전근대성과 무지를 상징한다. 결국 샤오수안은 죽고 마는데, 이런 무지한 상태가 초래할 비극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루쉰은 한때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 그의 눈에 당시 중국의 전근대적인 의술, 비과학적인 미신 행위들이 얼마나 한심해 보이고 안타까웠을지 능히 짐작할 만하다. 

둘째, 전근대적인 봉건왕조를 몰아내고자 투쟁하던 혁명가의 피가 상징하는 약이다. 시대를 변혁하기 위해, 아프고 낡은 시대를 바꾸기 위해 흩뿌려야 했던 혁명가의 피는 시대의 아픔을 치료하는 약이라 할 수 있다. 혁명가가 처형당하는 새벽의 이미지는 새 시대가 밝아옴을 암시하는 듯했다. 그 햇살에 드러나는 '고?(무슨)정구'라는 편액으로 루쉰은 어떤 상징을 내세우고 싶었을까? 오랠 고, 지워진 글씨 하나, 정자와 입 구. 특정한 마을 이름일 수도 있겠지만 여러 해석이 가능한 문구다. 혁명가가 처형당하는 삼거리 또한 묘한 느낌을 준다. 이는 독자가 상상하기 나름일 터인데, 필자는 그 시대를 관통하는 세 가지 사상적 조류를 대입해 본다. 청조의 복원을 원하는 수구파, 입헌군주제의 입헌파, 그리고 민주공화정을 열망하는 혁명파. 

셋째, 혁명가의 피, 혹은 죽음으로 샤오수안을 치료하려고 했지만, 실패하는 모습은 결국 혁명이 승리할 것이라는 암시이기도 하다. 전근대적이고 비과학적인 믿음으로 점철된 구시대는 결국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뜻인 것이다. 새벽, 삼거리에서 죽임을 당한 혁명가는 결국 당시 가장 중국적인 것을 죽이고 만 것이다. 누군가에겐 약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독약이었던 게다. 약은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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