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 / 2024. 3. 31. 04:50

쿵이지(孔乙己) - 루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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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공을기'로 알려진 이 소설은 루쉰이 광인일기 이후 거의 1년 만인 1919년 4월, '신청년' 제6권 4호에 발표한 작품이다. 1905년 청나라의 과거제도가 폐지되자 몰락한 관리 지망생을 그린 작품으로 중단편만 쓴 루쉰의 작품 중에서도 짧은 편에 속하며, 어린 소년이 화자로 나와 주인공인 '공을기', 즉 쿵이지를 관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쿵이지 루쉰
쿵이지-루쉰

 

쿵이지

 

화자는 십여 년 전 루진의 함형 주점에서 사환 노릇을 할 때 그 술집을 드나들던 쿵이지를 떠올린다. 그는 장삼을 걸치고 다니는 선비였으나 옷이 너덜너덜하고 더러웠으며 노동자들이 서서 마시는 곳에서 술을 마셨다. 쿵이지는 식자인양 문자 꽤나 쓰면서 주변을 웃게 만들었다. 그의 허영에 사람들이 비웃으며 조롱하는 것이었다.

 

들은 이야기로 쿵이지는 생계가 막막해 구걸할 지경으로 몰락한 자라 했다. 호구지책이 막막해 더러 도둑질을 하곤 하는 모양이었지만 가게에서 그의 품행은 훌륭했다. 늘 한 달 안으로 외상을 갚았던 것이다. 한 번은 화자에게 글을 가르쳐주려고 하기도 했지만, 화자도 궁색한 그를 무시했다. 

 

오랫동안 그의 외상이 지워지지 않아 사장이 그의 소식을 누군가에게 묻자 쿵이지가 어느 집에 도둑질을 하러 들어갔다가 얻어맞고 정강이가 부러졌다고 답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보이지 않던 쿵이지가 거적을 목줄에 달고 기어서 술집에 왔다. 외상은 갚지 못했지만 돈을 내고 술을 한잔하고는 사람들 속을 다시 기어서 사라졌다. 이후 쿵이지의 외상은 그대로 남았다.

 

화자는 그가 필시 죽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루쉰은 짧은 글로 몇 배나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생산해 내는 재주가 있는 작가다. 쿵이지도 그렇다. 시대가 시대니 만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데, 필자는 여기서 쿵이지를 중국이라는 나라, 그 자체로 읽었다.

 

가난해서 도둑질까지 해야 할 궁색한 처지에 이르렀으나, 지호자야(之乎者也: 옛날 문언문에서 상투적으로 사용하던 어조사. 내용도 없이 고리타분한 옛날 말투를 흉내 내서 하는 말을 가리킨다.) 선비 행세는 놓지 못하는 쿵이지. 열강이 호시탐탐 중국을 노리고, 인민들의 생활은 도탄에 빠졌지만, 도둑질(국민들의 고혈을 빠는 짓)은 여전하고, 술을 즐기며, 게으르다.

 

덩치값 못해 전 세계에 조롱받을 만한 처지가 아니었던가, 당시의 중국은. 결국 쿵이지는 정강이가 부러지고 장애인이 되어 영영 사라지고 마는데, 루쉰이 중국인들에게 각성하지 않으면 쿵이지 꼴이 나고 말 것이라 경고하는 것으로 보였다.

 

또 공교롭게도 쿵이지의 성은 공자와 같은 공가다. 이것도 유교적 폐습에 젖은 중국 국민들의 국민성을 질타하는 장치가 아닌가 싶었다. 

 

문예로 중국이란 거인을 깨우고 싶어 했던 선구자, 루쉰. 이러쿵저러쿵, 그러나 저러나 쿵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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