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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동정세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아니 그런 날이 더 적을 정도로 늘상 들끓는 곳이긴 하지만 지금의 정세는 우리나라와 더욱 민감하게 맞닿아 있기에 10년이나 묵은 이 책을 다시 펼쳐 들었습니다. 미국이 지금 이란의 위협에 공동대응하자며 우리나라에 호르무즈해협에 파병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이란은 위험한 나라일까요? 정말 나쁜 나라일까요? 미국의 눈으로 보자면 정확히 나쁘고 위험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유용한 시각이고 객관적인 시각인가는 다른 문제입니다. 미국은 이란과 사이가 아주 나쁩니다. 그러나 이란은 우리나라와는 교역규모가 상당한 산유국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꼭 미국의 시각으로 이란을 봐야 할까요? 객관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왜 미국과 이란의 사이가 나쁜지 그 관계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이 책은 그런 우리의 요구에 알맞은 안내자입니다.

이 책은 이란의 테헤란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유달승 박사가 2009년에 출간한 책입니다. 출간한지 제법 오래되었지만 이 책의 내용들은 현재 중동의 정세와 이란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역사를 알면 현재가 보이는 법, 만약 필자의 의도 대로 이 글이 쓰여진다면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읽기 전과 후, 이란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나 편견에서 상당 부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어디선가 구해서 꼭 읽어보고 싶어질 것입니다. 모자란 필력이지만 최선을 다해 이 책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우선, 이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란에 대한 몇 가지 상식이 필요합니다. 몇 가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첫 째, 이란은 아랍이 아닙니다. 의아해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정말 아랍국가가 아닙니다. 이란인은 인도-유럽어족입니다. 그런데 아랍인은 셈족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란인들은 이슬람 이전에도 찬란한 고대문명을 꽃피운 페르시아인들입니다. 그 자부심은 남다르다고 합니다. 둘 째, 이란은 호르무즈해협이라는 페르시아만과 오만해를 잇는 지역에 위치한 한반도의 7.5배 크기의 나라입니다. 페르시아만은 세계원유 매장량의 2/3이상이 매장되어 있다는 석유자원의 보고입니다. 거기다 이란이 인접한 카스피해는 세계원유 매장량의 1/5 수준이 매장되어 있다합니다. 그래서 이란의 앞바다 호르무즈해협은 세계 에너지의 생명선이라 불린답니다. 세 째, 이란은 이슬람 중, 시아파의 국가입니다. 나중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셈족의 정통 아랍국가들은 대부분 수니파입니다. 이 문제는 생각보다 중동에서 많은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입니다.

"압제자에 대한 저항은 무슬림의 첫 번째 의무이다."

누구의 말일까요? 이 말은 마치 지난 세기 혁명의 슈퍼스타, 체 게바라가 했음직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이란의 종교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한 말입니다. 왜 이런 말을 이슬람의 종교지도자가 이슬람국가에서 해야 했을까요? 그것은 중동의 근현대사의 비극에서 기인합니다. 

1부. 현대 이란의 탄생.

시아파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네 째 딸 파티마와 그녀의 남편 알리(1대 이맘)의 직계를 모시는 파입니다. 시아파라는 이름은 알리의 무리, Shiat Ali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이란 최초의 시아파 왕조인 사파비 왕조(1501년~1722년)가 들어서면서 이란은 뿌리깊은 시아파 국가가 됩니다. 사피비조가 끝나고 카자르조 등으로 이어지지만 시아파국가임은 변질되지 않습니다. 1906년 입헌혁명이 일어나지만 영국과 러시아라는 외세의 개입으로 좌절하고 맙니다. 열강, 영국은 1917년 러시아가 10월 혁명으로 이란에서 철군하자, 레자 칸이라는 이란의 대령을 지원해 쿠데타를 일으키게 합니다. 이 레자 칸은 레자 샤(왕)가 되어 친외세, 팔레비조라는 전근대적인 왕조를 20세기 초, 이란에 세우는 기막힌 짓을 하게 됩니다. 영국을 비롯한 열강들의 이해에서 비롯된 해괴한 역사의 역행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사회주의 러시아를 견제한다는 것에 이해를 같이 했습니다. 팔레비왕조는 이란의 자원, 이권 등을 마구 팔아먹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석유채굴권입니다. 

2부. 민중의 저항과 호메이니의 등장.

앞서 말했듯, 이란의 석유자원은 팔레비왕조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산파인 영국이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민중들은 가난에 허덕이는데, 영국기업과 그에 결탁한 왕실만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죠. 그러니 자연 민중들은 저항하기 시작합니다. 1951년 국민전선이라는 민족주의 연합체를 이끄는 무함마드 모사데크가 석유자원의 국유화를 주장며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 수상으로 취임합니다. 그러자 미국과 영국은 이란을 경제봉쇄합니다. 당시 미국과 영국이라면 세계, 그 자체라고 보아도 될 만큼 세계경제의 큰 축이었습니다. 당연히 그들의 경제봉쇄는 위력적이었습니다. 이란은 경제위기에 봉착합니다. 이에 맞장구치듯 팔레비왕조의 레자 샤는 모사데크 수상을 해임해버립니다. 

그러자 민중들의 저항이 격화됩니다.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고 위기감을 느낀 레자 샤는 로마로 도망가버립니다. 영국과 미국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습니다. 아작스 작전이라는, CIA와 MI6의 연합작전으로 모사데크 정권의 전복작전을 펼칩니다. 자헤디라는 군장성을 조직해 쿠데타를 일으키게 합니다. 그렇게 모사데크 민족주의 정부는 무너지고 도망갔던 팔레비왕조는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이 사건을 개기로 이란 국민들의 뇌리에 반미정서가 뿌리 깊게 내리게 됩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도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한 번 쫓겨나본 왕조는 이전과 다르게 공포정치로 시민들을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미국과 영국 정보당국의 지원을 받아 팔레비도 사바크라는 정보기관을 창설합니다. 이들은 과거 우리나라 유신정권시절 국정원과 꼭 같은 일을 합니다. 반대파를 제거하고 공산주의(소련)를 견제하는 것이죠. 수단은 뻔합니다. 불법으로 사찰하고, 체포, 구금, 고문, 조작 등등. 이러한 탄압이 지속되자 현실정치와는 일정 거리를 두고 있던 종교계까지 나서기 시작합니다. 당시 최고 종교지도자였던 보루제르디가 팔레비왕조를 비판하기 시작합니다. 

한편,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케네디 정권은 이란 주둔 미군의 치외법권을 요구하고 이란의 자본주의적인 세속화 조치를 앞당길 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군부독재시절 3S정책과 비슷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도덕적 일치단결, 신에 대한 헌신을 약화시켜 이란 국민들의 단결을 저해하려는 목적이 컸다고 보면 됩니다. 이런 미국의 요구에 부응해 팔레비왕조는 백색혁명을 일으킵니다. 백색혁명이란, 일반적인 혁명이 아래로부터 일어난다면 이는 반대를 의미합니다. 권력자 주동으로 일어난 혁명을 말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는 소수 기득권을 위한 부르주아적 혁명 조치였는 바, 반왕정세력, 특히 성직자들의 경제기반 또한 공격합니다. 

이런 와중에 중요한 문화적 저항운동이 일어납니다. 소설가 잘랄 알레 아흐마드는 서구중독증이란 책을 내, 서구문화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세태를 비판했습니다. 전통으로의 복귀, 도덕으로의 복귀 운동을 주장하며 성직자들을 서구문화에 대항하는 최후의 보루라 말합니다. 이 운동은 이란 내 민족주의 운동, 전통으로의 복귀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보루제르디가 사망한 후, 이전부터 일정 정치적 소신 발언을 해오던 호메이니가 대중속에서 급부상하기 시작합니다. 호메이니는 상인들과의 모임을 통해 '이슬람 사회의 연합'을 설립합니다. 이 조직은 테헤란과 콤을 시작으로 결성되어 대도시를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됩니다. 63년 6대 이맘, 자파르 알 사디크 추도일 집회 중, 반 정부적 발언이 나오자 유혈사태가 일어났고 이를 핑계로 군대가 출동합니다. 반 샤 운동이 확대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일련의 사태로 정세가 험해지며 호메이니는 1차 투옥됩니다. 물론 이 투옥으로 저항은 더 확대됩니다.

6개월 뒤, 64년 4월에 석방된 호메이니는 바로 반 샤 운동을 다시 전개합니다. 당시 레자 샤는 미군에 대한 외교면책특권 법안과 군비강화를 위한 2억 달러 차관신청 법안을 통과시킵니다. 이에 호메이니는 팔레비 왕정체제를 미국에 종속된 친미정권으로 규정, 강력하게 규탄합니다. 레자 샤 정권은 이에 호메이니를 해외로 추방합니다. 대중의 기억속에 지우기 위해, 순교자로도, 수감자로도 만들지 않고 추방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 때부터 호메이니는 15년간의 기나긴 망명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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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승이 쓴 [이슬람 혁명의 아버지 호메이니]-2

3부. 망명생활과 혁명의 토대. 호메이니의 첫 번째 망명생활은 터키에서 시작됩니다. 정치가이자 성직자인 호메이니에게 망명생활은 위기이자 기회였습니다. 호메이니는 자신의 철학을 더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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