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가자, 오래도록 묵혀 두었던 시집이 떠올랐다. 첫 권은 대학 동문, 누군가에게 줘버렸고 두 번째 권은 생일선물로 사서 줬고 세 번째 권도 또 누군가 주고도 그 어떤 미련이 남아 한 권을 더 산 시집. 이것도 어쩌면 진주에 사느라 가끔 들른 진주문고의 살뜰함 덕분이 아닌가, 한다. 보통 한 시집이 수 년간 한 서점을 지키기란 쉽잖은 일이다. 지역출신 문인에 대한 애틋함이 느껴졌던, 그리고 동문선배에게 자랑스러움도 함께 느껴졌던 십여 년 전 어느날의 기억. 나는 이 시집을 다시 우연하게 만났고 다시 집어듦으로써 오늘의 해우를 필연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작년, 허수경 시인이 가셨다. 스무살 남짓 어린 시절에 쓴 첫 시집을 네 권이나 사고 읽는 동안, 스무살이었던 나 또한 사십줄을 넘었으나 아직도 허수경..
문학/시
2019. 10. 20. 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