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 2024. 3. 4. 00:00

햄릿 명대사, 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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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회자되는 고전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다. 모르긴 모르되, 인생을 관통하는 격언, 삶을 꿰뚫는 통찰, 속 시원한 해학 등, 시대를 초월한 카타르시스, 혹은 교훈을 전하는 명언들이 많은 것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분명하리라. 고전 속의 명언들은 숱하게 인용되고 인용되어 닳고 닳았을 법 한데, 재밌는 건 이런 것은 쓰면 쓸수록 반들반들 윤이 나는 금석문 같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햄릿의 명대사, 명언을 모아 정리해 보려 한다. 모두 다 어디서 한번은 들어보았다 싶은 것들일 수 있다, 너무나 많이 인용되었으므로. 앞뒤 상황을 간략히 집어넣겠다. 맥락은, 그냥 덜렁 그 말 몇 마디만 던져 놓는 것보다는 훨씬 감칠맛을 느끼기에 좋을 양념이 되어줄 것이다. 

햄릿의 줄거리에 대해서는 다른 포스팅에 정리해 두었다.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면 확인하실 수 있으니 참조 바란다.

햄릿 줄거리
햄릿 줄거리는 이 이미지를 클릭하면 보실 수 있다

글 싣는 방식은 '명대사(소제목) + 썰 + 뇌피셜'로 구성했다. 썰은 명대사와 명대사 관련 상황 등을 전달하는 것이고 뇌피셜은 말 그대로 필자 나름의 해설, 지레짐작 따위를 나름대로 정리해 본 것이다. 참고 혹은 영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시하시기 바란다.

글 싣는 순서

 


햄릿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영문학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라고 한다. 우리말로 번역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통일되었는데 아직 의견이 분분한 번역이기도 하다고 한다. 영어를 조금만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알지 않는가? Be동사의 무시무시함을. 그래서 언제나 중요한 것이 맥락이다.

이 대사는 햄릿 3막 1장에 나온다. 햄릿이 어머니의 빠른 재혼에 충격을 받은 상태에서 부왕이 숙부이자 새아버지인 클로디어스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고 복수를 다짐하며 광인행세를 시작한 초기다. 왕과 왕비, 폴로니어스 재상은 햄릿이 왜 미쳤는가, 논의했다. 이들은 원인을 오필리아를 향한 햄릿의 연모 때문이라 추측하고 오필리아와 햄릿을 만나게 해 준다. 오필리아가 짐짓 기도서를 읽는 척하고 있을 때 햄릿이 나타나 방백처럼 내뱉는 대사가 바로 사느냐 죽느냐로 시작하는 대사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도 죽은 듯 참아야 하는가. 아니면 성난 파도처럼 밀려드는 재앙과 싸워 물리쳐야 하는가. 죽는 건 그저 잠자는 것일 뿐, 잠들면 마음의 고통과 육신에 따라붙는 무수한 고통은 사라지지. 죽음이야말로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결말이 아닌가. 그저 칼 한 자루면 이 모든 것을 깨끗하게 끝장낼 수 있는데.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 남아 현재의 고통을 참고 견디는 것이다. 결국 분별심은 우리를 겁쟁이로 만드는구나. 가만, 아름다운 오필리아! 기도하는 미녀여, 나의 죄를 위해서도 빌어주오."

그리고 햄릿은 오필리아를 사랑하지 않았다면서 수녀원에나 가버리라고 모욕을 준다. 물론 이는 거짓말이다. 햄릿은 그녀를 열열히 사랑한다. 

햄릿도 셰익스피어의 모든 희곡처럼 그의 생전에 '공식' 대본은 없었다. 그래서 판본별로 내용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시중에 나와있는 햄릿을 비롯한 모든 셰익스피어 희곡의 판본은 편집자들의 견해에 따라 가장 매끄럽고 내용에 맞다고 여겨지는 부분들을 조합한 텍스트라고 하니 조금씩 차이가 있더라도 양해 바란다. 

  • 뇌피셜

솔직히 사느냐 죽느냐,라는 말이 거기서 왜 나왔는지, 맥락이 의아했다. 원수를 죽이는데 무슨 살고 죽는 문제까지 미리 고민해야 하는 것일까? 아무리 상대가 왕이고 또 제 어미의 지아비라 할지라도 당사자는 왕자다. 대상에 접근성도 좋고 신분도 확실하다. 삶을 도모하려면 굳이 못할 이유도 없을 터인데, 복수의 실행이 곧 죽음이란 공식은 어디서 도출되었을까? 살인의 문제? 양심? 필자는 차라리 그 복수심 자체를 없애느냐, 유지할 것이냐를 고민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복수를 포기하면 많은 번민이 사라진다. 그러나 다른 번뇌가 자란다. 햄릿 왕의 아들 햄릿 왕자는 죽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복수를 포기하는 것만으로 모든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선왕에 대한 미안함, 숙부를 향한 증오심으로 더한 번뇌가 찾아올지도 모르리라. 그 또한 죽음처럼 두려운 미지의 세계다. 

이 대사는 오필리아 앞에서 햄릿이 주저리는 말이었다. 이 말에서 존재, 비존재는 오필리아를 향한 사랑의 마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또한 해볼 수 있다. 오필리아는 원수 클로디어스 왕의 최측근, 폴로니어스의 딸이다. 복수를 실행하든, 하지 않든 사랑하기 어려운 상대인 게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마음을 지운다. 지우는 게 가능할 것인가? 죽음을 잠드는 것에 비유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잠은 꿈이라는 뇌 작용을 동반한다. 그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리움과 번민, 질투, 애증은 잠들지 않고 햄릿의 무의식 속에서 그를 끊임없이 괴롭힐 것이다. 이 또한 두려운 미지의 세계 아닌가.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가정 하에 한 말이라면, 역시 햄릿의 유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누군가를 죽이고 견딜 수 없는 신앙이나 양심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어머니가 사랑하는 상대를 죽인다는 점 또한 꺼림칙한 일이다. 게다가 삼촌이다. 

어쩌면 셰익스피어는 이 모든 인간적 갈등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이 대사를 썼는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것을 포괄하고 더 이상의 것도 물론 있을 수 있겠다만. 정서적으로 다른 시대와 공간의 이야기라, 맥락이 조금 의아하긴 했어도, 어떤 장엄함이 있는 대사임은 분명하다. 모든 존재의 양태를 포괄하는 문장이므로. 우리는 존재하고 있기에 이렇게라도 만나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무엇이든 어떻게든 not to be가 될 터이고. "건투를 빕니다!"

세상에 선과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생각이 그렇게 만들 뿐이다.

There is nothing either good or bad, but thinking makes it so.

숙부, 클로디어스 왕의 사주를 받고 햄릿을 찾아온 소싯적 친구 로즌크랜츠, 길든스턴과 만나 대화하면서 나오는 햄릿의 대사로 2막 2장에 나온다. 미친 척을 하는 햄릿의 속내를 알아내고자 찾아왔는데, 햄릿이 덴마크를 감옥이라며 비아냥거리자 두 친구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답했다. 그러자 햄릿이 답한 말이다. 

  • 뇌피셜

햄릿은 두 옛친구가 왕의 사주를 받고 접근한 것을 알았다. 그러니 기실 햄릿에게 덴마크라는 조국이 감옥이 아닐 수 없고, 그를 감시하는 입장에서는 감옥일 수가 없는 게다. 상대성이다. 

이를테면, 생각하기 나름이다,라는 말이다. 불교 용어로 바꿔보자면, 일체유심조와 같다 하겠다. 

우리는 현재의 자신을 안다. 그러나 자신의 가능성은 알 수 없다

햄릿 오필리아
햄릿 오필리아- 그녀는 비극적으로 죽는다

 

 

We know what we are, but not what we may be.

햄릿에게 폴로니어스가 죽고 실성한 오필리아가 왕과 왕비 앞에서 이야기한 의미심장한 이야기다. 햄릿 4막 5장에 나온다. 극중에서는 미친 사람의 광증이면서 무언가를 암시하는 말일 테다. 곧 오필리아가 나가고 성난 군중들과 함께 왕성으로 들이닥친 오빠, 레어티스. 진실을 밝히고 함께 복수를 돕겠다는 왕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 뇌피셜

진인사대천명 같은 말이 아닐까 싶다. 할 만큼 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마음 같은 것이랄까? 실제 오필리아는 곧 물에 빠져 죽고 레어티스와 햄릿의 복수가 교차하면서 누구도 제대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한다. 이 대사는 그런 미래를 암시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천국과 지상에는 자네가 꿈꿔 온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있다네, 호레이쇼

There are more things in Heaven and Earth, Horatio, than are dreamt of in your philosophy.

부왕의 유령을 만나고 그 일을 함구하기 위해 칼에 두고 맹세할 때의 이야기다. 햄릿 1막 5장에 나오는 이야기로, 유령의 등장과 유령의 외침을 듣고 납득이 가지 않아 하는 호레이쇼에게 햄릿이 한 말이다. 

  • 뇌피셜

이 대사는 기실 관중에게 던지는 말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령을 논리적으로 납득시키는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치느니, 그냥 그렇다고 치자, 봐달라. 이런 말처럼 들렸다.

보편적인 삶의 경험에도 충분히 인용될 수 있을 만한 대사다. 우리의 인지 능력이 아무리 확장된다 한들, 세상의, 우주의 모든 것을 어찌 이해하랴! 기적은 늘 일어난다. 모르는 모든 것이 신비로운 털 없는 원숭이가 인간이 아니던가.

이것이 광기일지라도, 그 속에 질서가 있다

Though this be madness, yet there is method in't.

햄릿 2막 2장에 나오는 폴로니어스의 말이다. 광증을 보이는 햄릿과 처음 마주해 이야기를 나누다 폴로니어스가 홀로 중얼거린 말로, 햄릿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 뇌피셜

어쩌면 바로 위의 호레이쇼에게 한 말과 대꾸를 이루는 말이 아닌가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일일지라도 반드시 그 원인은 있다. 사후적으로 우리는 그것을 찾아낸다. 논리적 사고를 하는 인간의 특성이 아니겠는가. 

많은 사람의 말을 듣고, 적게 말하라

Give every man thine ear, but few thy voice.

햄릿 1막 3장에서 폴로니어스가 대관식에 참석 차 고국인 덴마크로 돌아왔다가 다시 프랑스로 떠나는 아들 레어티스에게 훈계하는 말 중에 들어 있는 말이다. 

  • 뇌피셜

따로 덧붙일 게 없는 깔끔한 격언이다. 많이 듣되 입이 무거우면 모든 것이 원만하게 흘러간다. 다만 반드시 나서서 이야기해야 할 때를 명확히 아는 지혜는 필요하겠지. 말 없으면 문제도 없다고 여기는 게 세태니까. 적게 말하는 것에는 그런 것들이 들어 있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폴로니어스의 충고 중에는 친구 사이에 금전거래 하지 말라는 말이 더 와닿았는데, 햄릿의 명언을 검색해 보니 이 말만 더러 보였다. 올리는 사람의 개인적 취향이겠지만, 필자는 그 말을 놓칠 수가 없다. 그래서 굳이 여기에 원문을 올려  본다. 뒤끝. 덧붙일 말이 필요 없는 정말 좋은 말이니까.

Neither a borrower nor a lender be; For loan oft loses both itself and friend. And borrowing dulls the edge of husbandry.

간결함은 지혜의 정수이다

Therefore, since brevity is the soul of wit.

햄릿 2막 2장에서 폴로니어스가 햄릿이 미쳤다는 것을 왕과 왕비 앞에서 설명하는 와중에 나오는 말이다. 장황한 그의 말 중에 나오는 점이 재미있다. 햄릿이 머리가 이상해진 것이 자신의 딸 때문이라 여기는 점도 그가 단도직입적으로 햄릿의 상태를 말하기 껄끄러웠던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 뇌피셜

당신 아들 미쳤소,라는 말을 아랫사람된 자가 말하기 껄끄러워 뭔가 횡설수설하는 가운데 나온 말이다. 요점을 이야기하기 위해 장광설 뒤에 붙인 말이니, 옹색하긴 한데, 떼어놓고 보자면 이만한 금고의 명언이 어디 있던가? 최고의 연설은 짧은 연설이라고 하지 않던가? 

요점을 짧고 간결하게 전달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 포스팅도 지혜의 정수는 많이 벗어나고 있지 않나. 슬프다.

분별심은 우리를 모두 겁쟁이로 만든다

햄릿
햄릿

 

 

conscience does make cowards of us all

햄릿 3막 1장에 To be not to be....대사 속에 있는 말이다. 보통 양심은 우리를 모두 겁쟁이로 만든다,라고 옮긴 글들이 많은데, 맥락상 분별심이 더 자연스럽다. 삶과 죽음이라는 경계를 구분하며 두려워하기 때문에 용기내기를 주저하는 사람에게 양심이라는 말은 어색하다.

  • 뇌피셜

미지의 영역을 두려워하는 것은 본능이다. 미지의 영역은 울타리 바깥의 그 무엇이다, 그 울타리가 인종이든 종교든 문화든 무엇이든 내가 속한 것 외의 모든 것이다. 

성숙하지 못했던 시기 우리의 분별심은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였다. 인간의 가장 비겁하고 비열한 역사를 보라. 피부색이 다르다고 노예로 삼고 또 죽였다. 종교가 다르다고 죽였다.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했다. 이것은 기실 가장 비겁한 짓이었다. 힘이 있으면서 베풀거나 관용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비겁함. 그 옹졸함의 근저에는 이런 분별심이 있다. 분별심을 버려야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던 어느 성자의 말씀이 떠오른다. 햄릿은 출가했어야......

사랑이 깊을수록 사소한 염려도 두려움이 된다. 사소한 두려움이 커지는 곳에 큰 사랑이 자란다

Where love is great, the littlest doubts are fear; Where little fears grow great, great love grows there.

햄릿 3막 2장에서 배우들이 연극을 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왕비의 대사이다. 왕비가 왕에게 사랑을 맹세하면서 재혼하지 않겠다 다짐하는 말들 중에 있는 말이다. 

  • 뇌피셜

이 연극으로 햄릿은 숙부가 선왕을 살해했음을 확신하게 된다. 이 부분은 왕비의 헛된 사랑의 맹세들의 나열이다. 햄릿이 연극을 고쳐 거트루드(왕비. 햄릿의 어머니)의 헛된 맹세, 정절을 꼬집었던 부분 중 하나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어떤 감정이 시작될 때 인간 심리의 변화를 정말 잘 표현한 명대사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아낀다는 마음은 걱정하는 마음이다. 갑자기 연인이 된 관계를 생각해 보라. 잠시 연락이 안 되는 순간에도 별의별 걱정을 다 하게 되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전혀 모르는, 관심없는 사람을 걱정하지는 않는다. 걱정이 자라는 것은 사랑이 자라는 것과 같으니, 인간의 심리를 정말 잘 묘사한 문장이 아니겠는가. 

별이 불인 것을 의심할지라도, 태양이 움직이는 것을 의심할지라도, 진리가 거짓인 것을 의심할지라도 그대를 향한 나의 사랑만은 의심하지 말라

Doubt thou the stars are fire; Doubt that the sun doth move; Doubt truth to be a liar; But never doubt I love.

햄릿 2막 2장에 폴로니어스가 햄릿이 자신의 딸 오필리아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딸이 받은 햄릿의 편지를 읽는 장면에서 나오는 대사다. 그러니까 햄릿이 오필리아에게 쓴 편지의 내용이다. 

  • 뇌피셜

절대로 자신의 사랑을 의심하지 말라고 하는 단순한 다짐보다 얼마나 낭만적인 표현인지. 이런 문장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낸다? 대체로 마음을 열지 않을까? 모태 솔로들이여, 햄릿을 배우라! 느끼함과 유치함을 견뎌 그 사랑을 쟁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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