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설 / / 2020. 4. 5. 22:12

내 이름은 빨강 줄거리 - 오르한 파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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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빨강은 터키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의 1998년에 발표한 그의 대표작이다. 세계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여러 나라에 번역, 출간되었다. 우리나라에는 민음사에서 이난아의 옮김으로 2004년에 1, 2권으로 출판되었다.

내 이름은 빨강 1판 16쇄 표지

1591년 오스만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에서 한 세밀화가가 살해당하면서 며칠 간 펼쳐지는 추적을 통해 그 당시 세밀화가들의 고뇌와 갈등, 사랑 등이 입체감 있게 펼쳐진다. 동서양이 만나는 제국의 중심, 이스탄불에서 새로운 사조를 받아들이려는 혁신적인 인물들과 구 체계의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고집스런 장인들의 신념이 충돌하며 일어나는 비극적 사건을 다양한 인물, 사물을 통해 세밀화처럼 세밀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 소설은 구성이 독특하다. 각 장에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는 소제목을 붙이고 그 제목의 인물이 그 장의 1인칭 화자가 된다. 이를테면 내 이름은 카라’, ‘나는 여러분의 에니시테요라는 식이다. 때론 개, 나무, 동전이 화자가 되기도 한다. 이런 장치들은 주로 당시 이스탄불의 종교적 정치적 혼돈을 나타낸다. 높은 인플레(경제적 어려움)와 화풍의 변화(문화적 충돌), 새로운 종교운동(근본주의의 발동) . 그래서 각자의 입장에서 만남, 사건 등이 더욱 다채롭게 우리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지게 된다.


1591, 이스탄불에 12년 만에 돌아온 카라. 그의 앞엔 옛 연인과의 만남, 살인사건이란 두 가지 사건이 불연 듯 다가온다.

이슬람 전통의 세밀화가 절대적이던 이 도시에서 베네치아의 사실적인 화풍을 접목시키려던 카라의 이모부, 에니시테. 에니시테의 설명을 듣고 술탄은 비밀리에 새로운 화풍의 회화집을 만들기 위해 그에게 몰래 제작을 명했다. 그러던 중, 비밀리에 회화집을 만들던 화원 한 명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카라가 사건을 추적하며 옛 연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던 며칠 사이 에니시테마저 살인자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하고 만다. 사건이 여기까지 번지자 카라도 용의선상에 오르고, 술탄은 화원장인 오스만과 카라에게 사흘 안에 살인자를 찾아내라 명한다. 오스만 화원장은 살해당한 엘레강스의 품에 있던 말() 그림에서 화풍을 발견하고 그 화풍을 추적하기 위해 술탄의 보고(寶庫)에 들어가길 청한다. 그곳에서 대가의 그림을 보던 오스만은 새로운 화풍을 거부하고 신이 내린 최후의 절대미를 지키기 위해 바흐자드가 그랬듯, 바늘로 자기 눈을 스스로 찌른다. 그리고 결정적인 단서를 카라에게 말해준다.

보고를 나온 카라는 다시 용의자들이자, 친구인 나비, 올리브, 황새를 찾아 간다.

이 소설 속의 기본적인 대립구도는 에니시테와 같은 혁신계와 오스만 유의 보수계로 볼 수 있다. 에니시테는 베네치아의 화풍을 접목해 불멸하는 자신의, 술탄의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고, 오스만 등은 그것은 자신들의 종교에 위배되는 죄악이라고 여긴 것이다. 엘레강스가 살해당한 배경에는 이런 집단의 갈등이 있었던 것이다.


세밀화는 알라의 시각(視覺)을 그림으로 구현한 것으로 절대성을 가졌다. 이를 주도한 사람은 헤라트파로 불린 화가집단이다. 소설에서 여러 번 언급된 실존인물인 거장, 바흐자드에 이르러 정점을 이룬 화풍이다. 이슬람 세밀화의 전통은 우상숭배 금지와 관련이 있다. 그림을 그림 자체로 절대시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우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슬람문화는 그림을 반드시 이야기의 일부로만 삼았다. 원근감도 그림자도 없다. 인물들의 개성 또한 최소화 되어 있다. 그런데 베네치아의 새로운 사조는 달랐다. 일명 초상화는 그리는 대상에 온전히 집중한다. 에니시테는 베네치아에서 본 어떤 그림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러나 그림을 보다가 어느 순간, 그것이 이야기가 아니라 그림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이야기의 일부로서의 그림이 아니라 그림을 위한 그림이었지.”

이 소설의 배경이 된 오스만 제국은 15세기 말 그리스지역까지 장악해 이탈리아와 바로 대치하게 된다. 당시 오스만 제국 궁정화원에서는 앞서 말한 헤라트파()의 화풍이 정통으로 대우받았다. 그러나 건너편 이탈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한 서유럽은 바야흐로 르네상스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신 본위에서 인간본위의 시대로 일대 변혁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리적으로, 정치적으로 교류를 주고받았던 시기, 베네치아의 화풍은 오스만제국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제국은 쇠락해 가고, 새로운 사조는 거침없이 흘러들어왔다. 소설 속의 술탄처럼 오스만제국의 정치적 지배자는 이 베네치아 화풍을 좀 더 매력적으로 느꼈다. 이런 변화는 바로 궁중화원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헤라트파 후예들로부터 피비린내 나는 반발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그 문화적 충격 속에 정통과 신앙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치는 장인들의 모습, 스스로 눈에 바늘을 찔러 넣던 오스만 화원장의 모습은 과연 어떤 장엄한 비장미마저 느끼게 했다.


오르한 파묵은 1952년 생으로 터키의 소설가이자 수필가이다. 현재는 미국 컬림비아 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6년 터키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터키는 동서양이 만나는 길목에 위치한 나라이고 이스탄불은 그 꼭짓점에 있는 도시이다. 오르한 파묵이 부단히 동서양 문제를 모티브로 한 작품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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