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설 / / 2019. 11. 6. 21:21

소년이 온다 [한강 作] 줄거리와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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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같은 문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소년이 온다는 자칫, 작품을 쓰는 작가가 스스로 과몰입해 감정과잉되기 쉬운 문체이고, 만약 그렇게 되면 독자로서 내용에 공감하기 힘든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런 과잉을 섬세한 묘사로 이끌어, 현장감을 증폭시키는 데 현명하게 사용한다. 이  '소년이 온다'가 이처럼 지독하게 현실적으로 와닿을 수 있었던 데는, 상황과 풍경, 냄새, 빗방울 하나까지도 섬세하게 그려낸 작가의 치열한 노력이 있었던 덕분이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잠시 '소년이 온다'가 소설이란 것을 잊었다. 그날의 광주에 나는 육신도 없이 서서, 그래서 전혀 위험하지는 않으나, 또한 무력하게, 그래 마치 지금처럼, 그러나 생생하게, 그날을 목격한 느낌이었다. 어느 순간, 내가 무력하게 어른거리던 정대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정확히 보고도 길을 잃은 나는 당황했다. 그래 아무것도 못했어. 우리 모두는 어쩌면 그들의 주검 앞에서 여태 어른거리고만 있었던 건지도 몰라. 사설이 길었다. '소년이 온다'  줄거리 이야기로 넘어가자.

소년이 온다 표지

소년이 온다 줄거리

1장 어린 새

너는 처음 너의 집에 누나와 같이 자취하는 동갑내기 친구, 정대를 찾아 도청에 왔다. 너는 고교생 누나, 은숙과 미싱사 누나, 선주를 도와 상무관에 안치된 희생자들의 시신을 관리하는 일을 했다. 너는 대한민국 군인들이 쏜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 앞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그 관을 태극기로 감싸는 행위를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사실 동호, 너는 정대가 총에 맞는 걸 보았다. 그날 시위대에 함께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의 임종을 지킨 너는 할머니의 얼굴에서 어린 새가 떠나는 걸 보았다. 수많은 희생자들 앞에서 너는 그들의 어린 새, 정대의 어린 새를 생각했다.

계엄군이 도청에 쳐들어오기로 한 날, 너는, 네게 씻으러 갔다가 오지 말라는 은숙을 되레 집에 보내고, 이따 선주가 가져온 김밥까지 나눠 먹었다. 오후, 너는 너를 데리러 온 엄마에게 6시에 문 닫으니까, 그 때 나가겠노라 말한다.  

2장 검은 숨

우리의 몸은 포개져 있어. 군인들이 싣고 와서 쌓았지. 나는 죽은 거였어. 내 시체 옆에 나는 어른거리고 있을 뿐. 새벽녘, 너를 떠올릴 수 있었어. 동호, 넌 나와 함께였어, 내가 죽을 때. 그렇지만 지금 네가 여기 있는지 나는 알 수가 없어. 정오 즈음, 네가 살아있는 걸 알았지. 그리고 누나의 죽음을 느낄 수 있었어. 나를 죽인 그들에게 왜 나를 죽였는지 묻고 싶었어. 누나를 왜 죽였는지도. 

시체들이 또 들어왔어. 우리는 썩어갔어. 나는 누나와의 기억을 붙들고 버텼어. 시체들은 계속 들어왔어. 나는 내가 썩어가는 걸 묵묵히 지켜봤어. 그림자들끼리 무언가를 느낄 수 있게 되었을 때쯤, 그들은 우리 몸을 태워버렸어. 몸이 타들어가자, 나를 붙들고 있던 인력도 사라져갔어. 시체들은 검은 연기를 쉭쉭 뿜었지. 그러면 희끗한 뼈가 드러났어. 마침내 자유였어. 

그러나 누나에게, 나를 죽인 자들에게 가려해도 어디에 있는 지를 몰라. 그래서 널 생각했어. 너에게, 동호에게 가자. 내가 자취하던 너의 집으로. 거기에 혹시 누나가 먼저 와 어른거리고 있을지도 몰라. 그러던 때, 총소리가 들렸던 그 때, 넌 죽었어. 나는 그걸 느꼈어.

3장 일곱개의 뺨

그녀는 일곱 대의 뺨을 맞았다. 때린 사내의 얼굴은 평범했다. 사내는 그를 찾았다, 보름 전 청계천변 제과점에서 만난 그 번역자. 그의 인상은 상상했던 수배자의 모습과는 달리 소심하고 약해 보였다. 교정지 뭉치를 던져놓는 사내의 눈을 피해 눈을 감았을 때, 물줄기를 뿜던 분수대가 떠올랐다. 벌써 도청 분수대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면 안 되는 게 아니냐고 항의하던 19살의 은숙.

그녀의 일상은 망가져 있다. 먹는 것을 치욕스럽게 느끼고, 꾸미는 것은 죄스럽고 생이 길지 않길 기도한다. 그 일이 있고 5년이 흘렀다. 엄마의 간절한 애원에 다시 공부해 대학을 들어갔지만 2년만에 그만뒀다. 

그날 옷을 갈아입고 상무관으로 갔다. 그날 선주 언니는 총을 받는 편을 택했다. 진수 오빠가 가두방송만 할 세 명만 남고 다 돌아가라고 이른다. 선주 등이 남고 나머진 새벽 한 시경, 밖으로 빠져나왔다. 영혼이 있었다면 은숙의 영혼은 그때 부서진 것이다, 도청을 나오기 전 동호, 너를 본 순간에.

4장 쇠와 피

우리는 고문당했습니다. 우리는 같은 방에 아흔 명이나 있었지만 서로 대화하지 못했습니다. 더럽고 더웠습니다. 식사는 열악했습니다. 식판 하나에 2인 1조로 먹었는데, 나는 김진수와 한조가 되었습니다. 한달 전 진수의 부고를 들었을 때, 나는 그의 공허한 눈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마지막날 처음 통성명을 하고 각자의 유서를 써서 셔츠 앞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진수가 여자들을 호위해 나갈 때 나는 너는 돌아오지 말아라,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 김진수가 돌아와 죽은 듯이 잠들었는데, 한 중학생이 나타나자, 놀라 벌떡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된 거냐고.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이던 그 소년에게 진수는 적당한 때 항복하라고 반복해서 말했어요.

스물세 살 교대복학생인 제가 조장을 했다는 건, 도청에 남은 사람들이 오합지졸이었단 뜻입니다. 우리 조 절반이 미성년자였어요. 미성년자들은 그들의 의지로 지도부의 지침을 거부하고 남은 겁니다. 

피 흘리며 고통스러워 하던 그때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껍데기 밖으로 걸어나와 연대하던 모습이 나를 그 자리로 이끌었습니다. 아마 남은 사람들 모두는 그랬을 겁니다. 그러나 우린 아무도 쏘지 않았습니다.

그날 군인들에겐 팔십만 발의 총알이 지급되었습니다. 광주 인구가 사십만이었어요. 도청의 죽음은 시민들을 대신한 죽음이었습니다.

재판을 받았습니다. 삶이 치욕이라면 죽음은 그것을 지우는 깨끗한 붓질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어린 영재가 재판장에서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고 모두 따라 불렀습니다. 그들은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형량은 제각각이었지만, 이듬해 성탄절까지 군부는 모두 특사로 석방했습니다. 석방되고 이태만에 우연히 김진수를 만났습니다. 우리 둘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십년. 하루하루 불면과 악몽이 계속되었습니다. 김진수는 꼭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작년 구월 갑자기 집앞에 나타난 김진수를 만났습니다. 진수는 김영재가 사람을 죽일 뻔하고, 지난 십년간 여섯 번의 자살시도로 결국 정신병원에 갇혔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진수가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그해 겨울 김진수의 부고를 들었습니다. 그가 가진 사진 속에 가지런히 누운 아이들은, 도청을 진압한 뒤, 흥분한 한 장교가 줄줄이 끌려나오던 다섯 아이들을 그 자리에서 쏘아 죽인 겁니다. 김진수가 자다가 깨서 실랑이를 벌이던 중학생도 거기 있었습니다. 

나는 날마다 혼자 싸웁니다.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5장 밤의 눈동자

성희 언니에게 연락처를 얻은 윤이 처음 당신에게 연락해 온 것은 환경단체 사무국에 일하기 시작한 십년 전 봄이었다. 시민군을 초점으로 심리부검을 한다는 말을 듣고 거절했다. 그리고 다시 십년만에 윤에게서 연락이 왔다. 임선주 씨가 증언자가 되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거절했지만 윤은 휴대용 녹음기와 테이프들이 담긴 소포를 보내왔다. 

당신의 꿈은 다른 증언자들과 다르다. 당신은 밝은 빛의 동그라미안에 갇혀 있는 꿈을 꾼다. 만 사십삼 세.

성희언니는 아팠다. 당신이 서울 방직공장에서 일하던 때 만난 언니. 청계천피복노조에서 함께 활동했다. 어용노조를 이기고 뽑힌 노조간부가 연행될 때 싸우던 일이 떠올랐다. 옷을 벗고 고함치고 맞고 쓰러지고 끌려갔다. 장파열되었던 당신은 해고되어 광주 충장로의 양장점에 미싱사 시다로 취직했다.

시월 박 대통령이 죽었지만 그 박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는 젊은 소장이 장갑차를 이끌고 서울에 입성했다. 그리고 광주, 여공들이 노래부르며 타고 가던 그 버스를 당신은 따라 걸어갔다. 

윤의 메일이 떠올랐다. 폭력의 경험은 체르노빌 같다고 생각한다. 피폭은 지나간 것이 아니라 지속된다. 도와달라.

여공으로 함께 일하던 정미를 기억한다. 의사가 되고싶다며 노조활동을 하지 않았던. 당신이 끌려가던 날 조합원들이 흘리고 간 신발을 들고 노조사무실로 와서 그렇게나 울었다던 정미.

기억하고 증언해달라는 윤. 자궁을 후벼파던 삼십 센티 자, 소총 개머리판으로 짓이긴 자궁입구, 하혈하다 쇼크로 쓰러진 일을, 그 하혈로 혈전이 나팔관을 막아 영영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음을 어떻게 증언하란 말인가?

그날밤 가두방송을 나갔던 당신. 총기를 소지하고 있었던 당신은 보안부대로 이송되었다. 노동운동 경력 때문에 당신은 거기서 빨갱이 년으로 불렸다. 석방된 이듬해 성희언니를 만나 정미가 실종되었단 소식을 들었다. 

광주로 갔다가 네가 총에 맞고 쓰러져 있는 사진을 보았다. 내 몸이 끝없이 피를 쏟아낼 때, 네 몸은 땅 속에서 맹렬하게 썩어가고 있었어.

학살이전으로 돌아갈 길은 끊겼다. 

수많은 사람이 희미하게 번지고 서로 스며들어서, 가볍디 가벼운 한 몸이 돼서 오는 건 지도 몰라.

당신은 묻는다. 내가 집으로 가라고 했다면, 김밥을 나눠 먹고 일어서면서 그렇게 당부했다면 너는 남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 그래서 나에게 오곤 하는 거야? 

6장 꽃 핀 쪽으로

니 작은 형이 너의 원수를 갚을랍니다, 했을 때, 너까장 잘못되면 나도 따라 죽을 거이다, 라고 말렸다. 삼십 년이 흘렀다. 느이 아부지 상 치르고 돌아와 삼우제 준비할 적에 큰형이 작은 형한테 동호 니를 왜 안 데리고 왔냐고 그래서 싸움이 났었어. 그라고 둘이 서먹해져부렀어야.

그날 니 보고 와서, 여섯 시에 문 잠그고 집에 와서 다 같이 저녁 묵자고 약속했소, 라고 느이 아부지한테 그랬어야. 안 와서 느이 작은형하고 찾으러 갔지만 못보고 왔다. 그 때 들어가믄 못나온다고 그래서 느이 작은형까지 잃을까봐 그랬어야. 집으로 걸어오는 내내 40분동안 둘다 그렇게 울었어. 그렇게 영영 너를 잃어버렸다이.

그러고 매해 싸웠다. 살인마 전두환 찢어죽이자고.

니 애기적 기억이 선하다. 대여섯 살, 천변길로 걸어갈 때, 니가 말했제.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가. 꽃 핀 쪽으로.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

작가가 광주에 내려가 취재할 때의 이야기다. 그리고 어릴 적, 들었던 광주항쟁에 대한 어른들의 이야기, 사라진 중학생의 이야기를 더듬는다. 

소년이 온다

※참고: 1장은 너=동호, 2장은 박정대, 3장은 은숙, 4장은 진수의 시민군 동료, 5장은 선주, 6장은 동호의 엄마, 에필로그는 작자가 각각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소년이 온다 독후감상

이 책은 만지기조차 어려운 책이었다. 책장에 꽂혀 있은 지는 꽤 오래되었다. 아니, 오래된 건 내 기억인지도 모를 일이다. 매해 봄이면, 기어이 잠시라도 떠올리고야 마는, 이젠 외면하고 싶기도 한 꽤 오래된 아픈 기억. 

아마도 이러한 서사를 떠올리고 자판으로든, 펜으로든 써내려갔을 한강 작가도 마찬가지였으리라. 5.18은 그렇게 현대를 살아가는, 아직도 제대로된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책임자조차 처벌하지 못한 우리에게, 그렇게 어느 순간 뜨겁게 데인 화인 같은 그 무엇이 되었다.

올해 5월 18일은(2019년) 운 좋게도 토요일이었다. 나는 아내와 1박을 약속하고 아이들을 부모님께 맡겨 둔 채, 광주로 갔다. 구도청주변은 축제의 장이었다. 거대한 공원이 되어 있었는데, 나는 어째서 광주의 이런 변화를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오랜 시간, 광주를 찾지 않았는가, 스스로를 책망하며 그곳을 걸었다. 금남로를 따라 늘어선 건물들 뒤편은 서울 명동거리를 떠올릴 만큼 번잡했다. 5.18이라,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든 탓도 있었겠지만, 온갖 상점들에서 쏟아내는 소음들과 음식 냄새는 과히 유쾌한 것이 못되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모르고 이러는 거요? 하고 묻고 싶었다. 도청에 전화를 걸어 도청앞 분수를 틀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따져묻던 은숙이처럼.

금남로 기념행사에 참가하고 몇몇 문예공연을 보고, 도청앞 광장에서 희망새 공연까지 본 후, 우리는 1박을 포기하고 집에 가기로 한다. 다음날 갈 요량으로 망월동묘역도 가지 않았는데. 거기 있을 수가 없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내 기억으로는 아파야 하는 곳인데, 왜 그렇게 달뜨고 행복한 모습인가, 광주가. 아파서, 무력해서 외면하다가도 그 감정이 훼손되어선 안 된다는 이런 이중심리는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청산은 과거지향적이며 대결적인 부정의 언어가 되고, 화합은 미래 지향적이며 평화로운 선의 언어가 되는 대한민국의 문법 체계 속에서, 내 심정은 이미 뒤틀려버린 것일까?

언제나 슬프고 무거운 광주여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광주도 여타의 도시들처럼 역동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그러나 또한 슬픔이여야 한다. 아직은 분노여야 한다. 여전히 치떨리는 노여움이여야 한다. 

전두환이 천수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고, 학살자 군부와 그의 뒷배였던 미국까지, 그 누구도 사과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았다. 길거리, 차에 치어 죽은 개나 고양이처럼 쓰레기차에, 리어커에 실려 망월동으로 간 그들의 백골이 아직 신선한데, 학살자들의 안광이 당당한데,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 지도, 살았는 지도 모를 사람들이 젯밥을 얻어먹고 있는데.

쉽게 읽히면서도 쉽게 이야기 할 수는 없는 작품이다. 소년이 온다, 라는 작품은. 이 작품은 읽는 것이 아니라 껴안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앳된 동호와 같은 순수한 광주를. 

우리 곁에 소년이 왔다. 아니 계속해서 왔고 또 올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세대가 바뀌어도 소년은 계속 올 것이다. 곳곳에 배여, 자신을, 광주를, 그날을 우리 안에 추슬러 세울 것이다. 소년이 오는 것은 스러져가는 우리의 기억, 그리고 옅어져 가는 분노, 지루해 하는 권태에 스미는, 살아있는 선홍빛 오월의 광주다.

소년이 온다 작가 한강

소년이 온다 작가 한강

작가 한강은 2016년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소설가다. 93년 등단이래 꾸준한 작품활동으로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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