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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19세기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대표작이자 역사, 사회, 철학, 종교, 인간사의 모든 것을 축적한 세기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레 미제라블의 뜻
불쌍한 사람들, 가련한 사람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한 인간의 작품이라기보다 자연이 창조해 낸 작품. - 테오필 고티에
★가장 위대한 아름다움. 이 소설은 하나의 세계요, 하나의 혼돈이다. - 랑송
★20세기에 위고와 견줄 만한 작가는 없으며, 21세기에 그런 작가가 나올지 의심스럽다. - 헤럴드 블룸
빅토르 위고 Victor Hugo
1802년 2월 26일 프랑스 브장송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고전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1819년 열일곱에 평론지 <르 콩세르바퇴르 리테레르>를 창간하고 1822년 첫 시집 <송가와 다른 시들>을 발표한 이후 진정한 낭만주의 작가이자 자유주의자로서 대중의 주목을 받는다. 1831년 <파리의 노트르담>을 펴내며 소설가로서 명성을 굳혔고, 수많은 정치 시를 발표, 참여시인으로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1848년 2월 혁명을 계기로 왕당파에서 철두철미한 공화주의자로 변신하여 루이 나폴레옹과 날카롭게 대립했다. 1851년 나폴레옹 3세의 집권과 함께 시작된 망명과 추방 생활 동안 아내와 자식들을 차례로 잃는 고난 속에서도 대작 <레 미제라블>(1862)을 발표하여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1870년 파리에 귀환, 이듬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885년 83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그의 장례는 프랑스 국장으로 치러졌다.
법률과 풍습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문명의 한복판에 지옥을 만들고 인간적 숙명으로 신성한 운명을 복잡하게 만드는 영원한 사회적 형벌이 존재하는 한, 무산계급에 의한 남성의 추락, 기아에 의한 여성의 타락, 암흑에 의한 어린이의 위축, 이 시대의 이 세 가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어떤 계급에 사회적 질식이 가능한 한, 다시 말하자면, 그리고 더욱 넓은 견지에서 말하자면, 지상에 무지와 빈곤이 존재하는 한, 이 책 같은 종류의 책들도 무익하지는 않으리라.
1862년 1월 1일 오트빌 하우스에서
1부 팡틴
Ⅰ. 올바른 사람
1. 미리엘 씨
1815년, 샤를 프랑수아 비앤브뉘 미리엘 씨는 디뉴의 주교였다. 일흔다섯쯤 된 노인으로, 1806년 이래 디뉴의 주교 자리에 있었다. 법관집안이던 미리엘은 혁명 초 이탈리아로 망명했었다. 그는 돌아올 때 사제가 되어 있었다.
그는 노처녀이자 자신의 열 살 아래 누이동생인 바티스틴 양과 하녀 마글루아르 부인, 둘과 함께 디뉴에 왔다.
2. 미리엘 씨, 비앵브뉘 예하가 되다
미리엘은 주교관 옆 자선병원을 방문했다가 그곳의 열악한 환경을 보고 주교관과 자선병원 건물을 바꿔버렸다. 게다가 자신의 거의 모든 봉급을 지역 복지에 내놓기로 했다. 주교는 부자에게 사례금을 가능한 한 많이 받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나눠주었다. 연봇돈도 많아졌지만 그는 청빈한 생활을 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돈을 썼다.
그러자 이 지방의 가난한 사람들이 그를 ‘브앵브뉘(프랑스어. 환영한다, 라는 뜻.) 예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3. 착한 주교와 어려운 주교
브앵브뉘는 지역을 순회하며 지역의 인심, 상대의 처지에 맞게 실례를 들어 교훈을 주고 사람들을 감화시켰다. 실례가 없을 때면 우화를 지어내서 이야기했다. 그것은 확신을 갖고 설득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웅변 그대로였다.
4. 언행일치
그는 늘 유쾌하면서도 정곡을 찔렀다. 생색내기 자선을 꼬집었고 문세, 창문세를 힐난하며, 그것이 나라를 비웃는 게 아니라 주님의 은혜를 찬양한 거라 눙쳤다. 프로방스 출신으로 사투리도 능했고 소탈했다.
그는 인간은 죄를 짓게 태어났다고 하며, 성자가 되는 것은 예외요,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은 통칙이라 말했다. 방황하고 태만하고 죄를 지어라, 다만 올바른 사람이 되어라, 라고 말하는 것이다.
또 무상교육을 하지 않는 것은 사회의 죄라 생각했다. 사회는 스스로 만든 암흑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형수 교회사를 하고 온 뒤(그는 단두대에 처형하는 사형수를 따라 함께 갔다.) 그는 충격에서 쉬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인간이 무슨 권리로 주님의 권한인 죽음을 손대는가?
5. 같은 법의를 너무 오래 입는 브앵브뉘 예하
그는 일이 많았지만 남은 시간은 가장 먼저 빈자와 환자와 고생하는 사람을 위해 바쳤다. 그는 신앙에서 자비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6. 주교 집의 수호자
이층구조의 주교관은 브앵브뉘의 생활철칙에 맞게 살림도 단출했다. 그렇지만 주교에게도 옛날의 소유물 중에 은식기 여섯 벌과 커다란 스푼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대고모로부터 상속받은 두 개의 커다란 은촛대가 있었다. 하지만 집에는 자물쇠로 채운 문이라고는 없었다. 그는 의사의 집 문은 결코 닫혀 있으면 안 되고, 목자의 집 문은 늘 열려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생각했다.
어떤 메모에는 ‘숙소를 달라는 사람에게 그 이름을 묻지 마라. 이름을 밝히기 거북한 자야말로 특히 피난처가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썼다.
7. 크라바트
산적 대장 크라바트는 대담무쌍한 악당이었다. 산적이 출몰하는 지역으로 순회를 가려는 주교를 면장이 말렸지만, 그는 그 뜻을 무지르고 홀로 길을 나섰다. 그는 그곳에 가서 외려 크라바트의 선물을 받는 일이 생겼다.
그는 도둑이나 살인자보다 우리 자신의 편견, 악덕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8. 식후의 철학
유물론 백작과 식후에 주교는 백작의 철학을 오래 들어야했다. 그 말 요지는, 어느 정도 쾌락주의적이었다. 그러자 주교는 그렇게 모든 책임을 피할 수 있어서 행복하겠다고 답한다. 그리고 그런 철학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부자의 특권이라 꼬집었다.
9. 누이동생이 말하는 오빠
바티스틴이 친구에게 쓴 편지로 주교의 이야기를 한다.
그간 그녀의 오라버니가 했던 일을 이야기하며 이제 말릴 수도 없고 다만 받아들일 뿐이라고 그녀는 썼다. 바티스틴과 마글루아르 부인은 주교의 최후가 곧 자신들의 최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10. 미지의 빛을 접한 주교
디뉴의 가까운 시골에 사는 G는 국민회의(입법의회(1791~1792)의 후신인 혁명회의. 공화국을 선포하고 루이 16세를 처형했다.) 의원이었다. 자신들의 패거리와 같이 무신론자였다. 왕의 사형에 찬성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는 추방되지 않았다.
G가 곧 죽을 것같다는 말을 듣고 주교는 용기를 내어 그 악당(?)에게 갔다. 주교가 왕의 사형에 찬성하지 않았던 것은 잘했다고 말하자, 그는 폭군의 종말에는 찬성했다면서 여성에게는 매음의 종말, 남성에겐 노예 상태의 종말, 아동에게는 암흑의 종말을 찬성하기에 공화제에 찬성했다고 답한다. 프랑스 혁명은 그리스도 이후 인류의 가장 힘찬 걸음이었다 주장했다.
루이 17세의 죽음에 대해 주교가 따지자, 그는 루이 17세 이전에 우리의 눈물이 시작되어야 한다, 나는 당신과 함께 어린 왕자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겠으나, 다만 당신 또한 나와 함께 민중의 어린아이들을 위해 눈물을 흘려준다면, 이란 조건을 붙였다.
주교가 모든 것을 인정하나 1793년이 가혹했다고 되씹었다. 그러자 G는 신교도를 박해하는 용기병에게 찬송가를 부른 보쉬에를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되물었다. 그리고 왕정과 구교가 행한 만행들을 열거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프랑스혁명에는 이유가 있었소. 그 분노는 미래에 용서 받을 것이오. 그 결과는 더 나은 세계요. 그렇소, 진보의 난폭함을 혁명이라 부르오. 혁명이 끝나면 사람들은 인정하오. 인류는 곤욕을 치렀으나 진보했음을.”
11. 옥에 티
둘의 만남은 주교를 더 온화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는 왕당파(군주제의 유지나, 군주에 의한 통치(친정)를 주장하는 정치 당파이다. 근왕파 라고도 한다.)였다.
12. 비앵브뉘 예하의 고독
일반적으로 주교의 주위에는 많은 젊은 성직자들이 모여 있었다. 성직자들 세계도 세속의 세계와 같이 유력자, 권세가에게 사람들이 꼬이고 그런 추종자에겐 충분한 보상이 따랐기 때문이다. 최고의 권력(교황)이 될 수도 있는 신분은 신부 외에 없다. 주교가 대주교가 되고 대주교가 추기경이 되며, 추기경과 교황은 한 끗 차이다.
그러나 비앵브뉘 예하는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아무래도 끌어줄 의지도 능력도 없는 데다, 극도의 자기희생 속에 사는 성자는 위험하기 때문이다. 출세는 커녕, 자신들도 그렇게 전염될 수 있었기에.
13. 그의 신앙
그는 어떤 어려움에 빠져도 결코 위선에 빠진 일은 없었다. 그는 지고한 신앙을 가졌다. 그는 신앙을 초월하여 과도한 사랑도 가지고 있었다. 개미 한 마리를 밟지 않으려다 발목을 삔 일도 있었다.
그런 그는 온화하며 친근했지만 위엄도 갖추고 있었다.
14. 그의 사상
브앵브뉘 예하는 사상이 없다. 그는 그저 복음의 길을 선택한 자였다. 그는 세상이 하나의 질병으로 보였고, 불가해한 문제를 풀기보다 그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애썼다. 브앵브뉘 예하는 신비하고 심오한 문제들을 밖에서 확인할 뿐, 그것을 탐색하지 않았다.
Ⅱ. 추락
1. 하루 내 걸은 날 저녁
1815년 10월 초순 저녁, 한 초라한 사나이가 소도시 디뉴로 왔다. 120리(약 48킬로미터)를 걸어온 이 남루한 사내는 여관에서 숙식을 거부당했다. 그는 장 발장이었다. 숙소 주인은 시청에 이 낯선 사내에 대해 물어보았던 것이다.
나그네는 목로주점을 찾아 들어갔다. 거기서도 쫓겨났다. 따라온 아이들이 돌멩이를 던졌다. 민가를 찾아갔으나 이미 그에 대한 소문이 퍼져 잠자리를 얻을 수 없었다. 성당에 이르러 벤치에 누웠을 때, 한 부인이 주교관 옆의 작은 집으로 가보라 일러주었다.
2. 지혜에 신중을 권고하다
예하가 식당으로 들어섰을 때, 마글루아르 부인은 바티스틴 양에게 시내에서 들은 험상궂은 사내에 대해 이야기하며 문단속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마글루아르 부인이 언제나 들어오라고 말하는 게 습관이 되어있다고 예하를 지청구하고 있을 때, 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시오.’라고 주교는 말했다.
3. 영웅적인 순종
문이 열리고 그 나그네가 들어왔다. 사내는 스스로를 지레 밝혀버린다. 장 발장이다, 형무소에서 십구 년을 살았다, 나흘 전 석방되어 퐁타를리에로 가는 길이다, 시청에 제시한 노란 통행권 때문에 어디에도 숙식을 할 수 없었다, 라며 음식과 잠자리를 청하는 것이었다.
주교는 친절하게 그를 맞이했고 잠자리까지 보게 했다. 마글루아르 부인은 말없이 예하의 지시를 빈틈없이 수행했다.
4. 퐁타를리에의 치즈 제조소에 관한 이야기
주교는 장 발장에게 ‘그뤼랭’이라 부르는 퐁타를리에 치즈제조 직업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5. 고요
비앵브뉘 예하는 직접 장 발장을 기도실 안쪽 침소로 안내했다. 브앵브뉘 예하가 정원에서 자기 방으로 돌아왔을 때는 자정이었다. 곧, 이 작은 집의 모두가 잠들었다.
6. 장 발장
장 발장은 브리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나뭇가지 치는 일을 했다. 어려서 어머니는 산욕열로 죽고 그와 같은 일을 하던 아버지는 나무에서 떨어져 죽었다. 그에게 남은 가족은 아들딸 일곱을 두고 과부가 된 누나, 잔 하나뿐이었다. 부모가 다 죽고 이 누나가 장 발장을 길렀다. 매형이 죽자, 이제 장 발장이 누나네 식구들을 먹여 살렸다. 갈수록 가난해졌다.
1795년 겨울, 장 발장은 빵집에서 빵 하나를 훔치다 빵집 주인에게 붙잡혔다. 그는 오 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툴롱을 이감되었다. 거기서 그는 24601호가 되었다. 사 년째 되던 해 장 발장은 탈옥했다가 이틀 만에 다시 붙들렸다. 이 죄로 그의 형기는 삼 년 연장되었다. 육 년째에 또 탈옥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그로 인해 오 년이 가중되었다. 뒤에도 두어 차례 더 탈옥을 시도했다가 실패, 가중형이 선고되어 그는 도합 십구 년의 형기를 채워야 했다. 장 발장은 1815년 10월에 석방되었다.
7. 절망 속에서
장 발장은 자신이 옳지 않은 일을 했다는 것은 인정했다. 이어서 그는 자문한다. 일거리가 없고 잘못에 비해 과도한 징벌이지 않은가? 그는 이 사회에 유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사회를 만들어 놓은 신의 섭리도 비난했다.
그는 영혼이 메마른 사람이 되었다. 형무소를 나올 때까지 십구 년 동안 그는 눈물 한 방울 흘린 적이 없었다.
8. 바다와 어둠
홀로 바다의 폭풍우 속에 빠진 선원. 그 비참하고 참담한 허무, 절망이 인류 사회의 냉혹한 진행과 같다.
9. 새로운 피해
장 발장이 징역 중 적립한 적립금은 109프랑 19수였다. 그의 계산으로는 171프랑이었다. 그는 도둑맞았다고 생각했다.
증류소에서 짐 부리는 일을 하고 받은 임금도 다른 사람들보다 5수가 적었다. 장 발장의 노란 통행권을 사장이 본 탓이었다. 그는 또 도둑맞았다고 생각했다.
석방은 해방이 아니었다. 사람은 형무소에서 나왔지만 처형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디뉴에서 받은 차별 또한 마찬가지 맥락이었다.
10. 잠을 깬 사나이
새벽 두 시 장 발장은 잠에서 깼다. 잠이 다시 오지 않아 뒤척이다 그는 식탁 위에 놓였던 여섯 벌의 은식기와 큰 스푼이 떠올랐다. 200프랑은 나가리라, 짐작되었다. 그는 살금살금 주교의 방으로 갔다. 문은 방긋 열려있었다.
11. 그의 소행
장 발장은 주교의 잠든 모습을 보고 갈등했다. 주교의 모습은 달빛 아래 신성해 보였다. 망설이던 장 발장은 도둑질을 결행했다. 은그릇 바구니를 훔쳐 비호처럼 사라졌다.
12. 주교가 일을 하다
은그릇을 도둑맞았다는 마글루아르 부인에게 정원에서 일하던 주교는 그 은그릇이 우리 물건이었던가, 라고 되물어 기가 막히게 했다. 아침식사를 하는데 헌병 세 사람이 장 발장의 멱살을 쥐고 나타났다.
헌병이 예하, 라고 부르는 말에 장 발장은 깜짝 놀란다. 예하는 장 발장을 보며 외쳤다. 자신이 촛대도 드렸는데 왜 가져가지 않았느냐고. 헌병대가 놓아주자, 주교는 촛대도 가져가라고 장 발장을 불렀다. 헌병대가 자리를 뜨자, 주교는 장 발장에게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 은을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해 쓰겠다고 자신에게 약속한 일을. 그런 약속을 한 일이 없었던 장 발장은 어리둥절했다. 예하가 말을 이었다.
“장 발장. 나의 형제여. 당신은 이제 악이 아니라 선에 속하는 사람이오. 나는 당신의 영혼을 위해 값을 치렀소. 나는 당신의 영혼을 암담한 생각과 영벌(永罰)의 정신에서 끌어내 천주께 바친 거요.”
13. 프티제르베
장 발장은 감동하고 또 분노 같은 것도 느꼈다. 한적한 오솔길 덤불에 앉아 있다가 사부아 소년인 프티제르베를 만났다. 장 발장은 소년이 가지고 놀다 떨어뜨린 동전을 밟고 돌려주지 않았다. 소년은 흐느끼며 돌아갔다.
장 발장은 뒤늦게 동전을 들고 프티제르베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그의 마음속에서 주교의 말이 자꾸 맴돌았다. 장 발장은 자신의 증오심이 갈 곳을 잃어 당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누군가의 것을 훔칠 수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 장 발장은 오래 울었다. 장 발장은 새벽 비앵브뉘 예하의 집 문 앞 어둠 속에 꿇어앉아 있었다.
Ⅲ. 1817년에
1. 1817
1817년은 루이 18세가 국왕답게 자신의 재위 22년이라고 부르던 해다. 격동적인 해며 혼란스럽게 새 사조와 구 사조가 양립했다. 반역자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횡행하고 있었다.(1817년의 프랑스 정치, 사회 전반에 대해 조금은 지루하게, 또는 냉소적으로 기술한다.)
이 1817년에 파리의 네 젊은이가 ‘재미나는 연극’을 꾸몄다.
2. 이중의 사중주
펠릭스 톨로미에스, 리스톨리에, 파뫼유, 블라슈벨이 그 네 젊은이다. 블라슈벨은 파부리트라는, 리스톨리에는 달리아라라는 별명의, 파뫼유는 조제핀(제핀)이란, 톨로미에스는 팡틴이란 각각의 애인이 있었다. 그러나 진짜 서로 사랑하는 사람은 팡틴뿐이었다. 팡틴은 금발의 미인으로 열다섯 살 때 돈벌이를 위해 파리로 왔다.
톨로미에스는 무리의 머리 격이었고 나이 서른의 부자에 난봉꾼이었으며 쇠약했다. 네 청년들은 모여서 네 처녀를 초대하는 들놀이를 계획했다.
3. 네 사람에 네 사람
사십오 년 전에 학생들과 바람기 있는 젊은 여공들의 들놀이가 어떤 것이었는지 상상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서술상의 현재가 1862년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이 해에 출판되었다.) 모두 다 아름다운 처녀였지만 팡틴은 특히 아름다웠다. 정숙함까지 겸비했기 때문이다.
사랑은 과오다. 좋다. 팡틴은 과오 위에 떠 있는 순결이었다.
4. 흥겨워 스페인 노래를 부르는 톨로미에스
톨로미에스는 여인들을 그네 태우며 애처로운 곡조로 스페인의 옛 노래 ‘갈레가’를 불렀다. 그런데 팡틴만은 그네 타기를 거절했다. 파부리트는 때때로 뜻밖의 선물이 뭔지 물었다. 톨로미에스는 조금 더 기다리라고 답했다.
5. 봉바르다 요릿집
롤러코스터까지 탄 여덟 청춘은 조금 지쳐서 봉바르다가 샹젤리제에 낸 지점에 저녁을 먹기 위해 들어갔다. 식탁 위는 별로 질서가 없었고, 아래는 좀 문란했다.
파리경찰청장은 파리 민중들을 지나치게 좋게 보고 있었지만, 파리 시민들은 언제든 창을 주면 봉기를 일으킬 사람들이었다.
저녁 식사는 끝나가고 있었다.
6. 열렬한 사랑의 장(章)
달리아와 파부리트는 상대를 사랑한다고 이야기하지만 나직하게 다른 남자들을 이야기했다.
7. 톨로미에스의 지혜
왁자지껄한 자리를 톨로미에스가 정리했다. 재담에도 한도가 있어야 한다가 그의 주장이었다. 이어서 욕망의 절제를 피력했다.
그리고 차례로 여인들을 온갖 지식과 미사여구로 칭찬했다. 그리고 결혼을 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친구들의 노력이 그 장광설을 끊었지만, 톨로미에스는 다시 연설을 시작했다.
8. 말의 죽음
톨로미에스의 장광설은 뜻밖에도 강둑에서 말 한 마리가 거꾸러지면서 끊어졌다. 팡틴이 그 암말을 가엾어 했다.
파부리트는 뜻밖의 선물을 물었다. 네 청년은 제각의 애인의 이마에 입 맞추고 문 쪽으로 나갔다.
9. 환락의 즐거운 종국
남은 네 처녀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남자들을 기다렸다. 식당의 급사가 편지를 가져왔다. 편지 위에는 ‘이것이 뜻밖의 선물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로 돌아간다며, 그녀들에게 이별하자는 내용이었다.
팡틴은 집에 돌아와 울었다. 그는 그녀의 첫사랑이었고 몸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어린애까지 있었던 것이다.
Ⅳ. 위탁은 때로 버림이다
1. 어머니끼리의 해후
몽페르메유. 거대한 짐마차가 길을 막고 있는데 그곳에 늘어진 사슬을 그네삼아 한 살, 두 살 박이 아이 둘이 그 위에 앉아있었다. 아이들 엄마는 그 쇠사슬에 끈을 묶어 흔들어주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엄마 곁에 가난해 보이는 다른 부인이 계집아이를 안고 나타났다. 팡틴이었다. 그 재미난 소극이 있은 지 열 달 후였다.
스물두 살에 팡틴은 파리를 떠났다. 딸을 자기 젖으로 길렀고, 가슴이 피로해졌는지 팡틴은 기침도 좀 하게 됐다. 아이 아빠, 톨로미에스 씨는 이십 년 후 루이 필리프 왕 시대에 지방의 유력하고 부유한 거물급 변호사가 된다.
팡틴은 두 아이가 쇠사슬 그네 위에 있는 모습에 감동해 아이들이 어머니에게 다가간 것이었다.
“아이들이 참 예쁘네요, 부인.”
테나르디에 부인은 이 여인숙의 주인이었다. 팡틴은 남편이 죽고 직장을 잃어 파리를 떠난다고 이야기했다. 팡틴이 자기 아이를 ‘코제트’라고 소개했다. 세 아이가 잘 어울려 노는 것을 보던 팡틴은 다달이 6프랑을 보내줄 테니, 코제트를 맡아주지 않겠느냐고 테나르디에 부인의 손을 잡고 말했다. 테나르디에 부인의 남편이 7프랑 이하로는 안 된다고 식당 안에서 소리쳤다. 게다가 여섯 달 분의 선금과 채비에 드는 돈 15프랑을 더 요구했다. 팡틴은 돈을 벌어 곧 찾아올 거라 다짐했다. 팡틴이 다음날 떠나자 테나르디에 부인의 남편은 110프랑짜리 어음을 지불할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2. 수상한 두 인물의 초벌 소묘
테나르디에 부부는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쉽사리 흉악해지는 영특한 성질의 사람들이었다. 테나르디에는 자기 말로 군인 상사였다고 하는데 실제는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
아내는 야비하고 심술궂은 여자였다. 유치한 소설 몇 개 읽은 그녀는 큰딸을 에포닌, 작은 딸은 아젤마라고 불렀다.
3. 종달새
이 싸구려 식당은 잘되지 않았다. 다음 달 그들은 또 돈이 필요하게 되어 코제트의 옷을 파리에 가 전당포에 잡혔다. 코제트에겐 누더기가 돌아갔다. 코제트는 식사를 개, 고양이와 함께 했다. 팡틴의 편지가 오면 이 부부는 늘 코제트가 아주 잘 있다, 라고 답장을 했다. 시간이 좀 흐르고 부부는 팡틴에게 매달 12프랑을 요구했다. 팡틴은 순순히 보내주었다.
테나르디에의 아내는 코제트에게 욕설과 매질까지 했다. 엄마가 그렇게 하자, 그녀의 두 딸도 코제트에게 심술궂게 굴었다.
두 해가 흘렀다. 부부는 마을에서 칭찬을 듣고 있었다. 코제트를 엄마가 버린 아이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제 부부는 코제트가 많이 먹는다고 팡틴에게 15프랑을 요구했다.
코제트는 다섯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이집의 하인이 되어버렸다. 팡틴의 송금이 잘 안 되자, 부부는 당연한 처사라 생각했다.
그 고장에서 이 아이를 종달새라 불렀다. 새보다 작은 것이 발발 떨면서 깜짝깜짝 놀라고 두려워하면서 마을에서 제일 먼저 일어나, 거리나 들에 나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코제는 결코 노래하지 않았다.
Ⅴ. 하강
1. 흑구슬 제조법 개량의 이야기
1818년 팡틴은 걸어서 몽트뢰유쉬르메르에 도착했다. 그녀의 고향이었다. 십 년 사이 고향은 공업화되어 많이 변해 있었다. 전통적으로 생산하던 흑구슬 제조법이 개량되어 이 지방에 혜택을 많이 주었다. 이 제조법을 개발한 사람은 이 지방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은 당연히 부자가 되었고 주변 사람들도 부자로 만들어주었다. 겨우 몇 백 프랑이라는 적은 돈을 가지고 정착한 그는 자기 재산을 이룩하는 동시에 그 지방 전체를 윤택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12월, 그가 처음 이 지방에 도착했을 때 시청 화재에서 헌병대장 아들 둘을 구조해냈다. 그래서 아무도 통행증을 요구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를 ‘마들렌 아저씨’라 불렀다.
2. 마들렌 씨
그는 쉰 살쯤 되는 남자였다. 마들렌 아저씨의 공장은 주린 자가 가면 틀림없이 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여성에겐 정숙을 남성에겐 성의를 요구했다. 그리고 모두에겐 정직을 요구했다. 그가 오고 몽트뢰유쉬르메르는 실업과 빈궁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는 누구든 고용했다.
그는 공동체를 위해 돈을 많이 썼다.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지원했다. 유치원을 세우고 병든 노동자를 위해 구제 기금을 조성했다. 무료 약국도 세웠다.
1819년 어느 날 아침, 시내에 마들렌 아저씨가 도지사의 천거와 지역에 대한 공헌으로 국왕에 의해 몽트뢰유쉬르메르의 시장에 임명되었다. 마들렌 아저씨는 사양했다. 훈장도 사양했다. 이러니 지역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지 않고 존경하지 않을 수가 있었으랴. 그만큼 한다하는 사람들의 질투도 더해 갔다.
1820년 왕이 다시 그를 시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거절했지만 도지사가 사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민중들이 강력히 원해 하는 수 없이 그는 시장 직을 수락하게 된다.
3. 라피트 은행에 맡긴 예금액
마들렌은 처음 이 도시에 나타났을 때처럼 여전히 소탈했다. 그는 곧잘 혼자 지냈다. 책을 사랑했고 산책을 즐겼다. 총을 늘 소지하고 다녔는데 잘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쏘면 백발백중이었다. 힘이 장사라, 지나다 보이는 험한 일을 잘 거들었고, 아침에 돈을 가득 가지고 나가지만 돌아올 땐 텅 빈 지갑을 들고 들어왔다.
그는 아주 검소하게 살았다.
라피트 은행에 예금이 200만~300만 프랑이라고 소문이 났지만 실은 63만~64만 프랑밖에 안 되었다.
4. 상복 입은 마들렌 씨
1821년 비앵브뉘 예하가 서거했다. 마들렌 씨는 그 이튿날 상장을 달고 새카만 상복을 입은 채 나타났다. 사람들은 마들렌 씨가 죽은 거룩한 주교와 무슨 인척관계일 거라 추측했다. 그 일은 뜻밖에도 마들렌 씨의 지위를 크게 높여주었다. 귀족들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누가 그 일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주교님 댁에서 하인 노릇을 한 일 때문이라 답했다. 그는 또 굴뚝 청소를 하는 사부아 소년을 보면 이름을 묻고 돈을 주곤 했다.
5. 지평선에 비치는 미광
마들렌 씨에 대한 반대는 모두 사그라져 버렸다. 그는 완전히 만인의 존경을 받았다. 1821년 무렵 몽트뢰유쉬르메르에서 시장의 말은 1815년 디뉴에서 주교 예하의 말과 같이 취급되었다. 그에 대한 존경은 전염병처럼 번져 나갔다. 단 한 사람만 빼고.
그 한 사람은 자베르라는 경찰이었다. 자베르는 마들렌 씨가 대공장의 사장이 된 이후, 이곳으로 온 사복경찰이었다. 그는 청년 시절 남부 지방의 형무소에서 근무했었다. 그는 한 번 법을 범하여 범죄자가 된 사람에게 경멸과 반감, 혐오를 품었다.
자베르는 깡패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는 마들렌 씨를 줄곧 응시했다. 마들렌 씨도 눈치 챘지만 그다지 개의하지 않았다.
6. 포슐르방 영감
포슐르방 영감은 몇 안 되는 마들렌 씨의 적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의 마차가 넘어져 그 밑에 그가 깔렸을 때, 마들렌 씨는 기중기가 오기 전에 등으로 마차를 들어 올릴 사람을 구하며 20루이를 제시했다. 그때 자베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 툴롱 형무소의 한 사람만 알고 있다고 비아냥거렸다. 마들렌 씨는 새파래졌다. 마차는 계속 포슐르방 영감을 짓누르고 있었다. 마들렌 씨는 직접 마차 밑으로 들어가 마차를 힘겹게 받쳐냈다. 포슐르방 영감은 그를 하느님으로 불렀다. 마들렌 씨는 자베르를 평온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7. 포슐르방, 파리에서 정원사가 되다
포슐르방은 슬개골이 어긋났는데, 마들렌 씨가 자신의 공장 안, 병원에서 치료받게 하고 1000프랑을 주어 마차와 말을 매수해 주었다. 마들렌 씨의 주선으로 포슐르방은 파리의 수녀원 정원사로 취직하게 되었다. 그 후 얼마 안 가서 마들렌 씨는 시장으로 임명되었던 것이다. 그 후 자베르는 마들렌 씨를 되도록 슬금슬금 피했다.
마들렌 씨에 의해 시가 부유해지면서 세금징수 비용이 줄었다. 재무 대신 빌렐 씨가 몽트뢰유쉬르메르 군을 자주 언급했던 이유였다. 이즈음 팡틴이 고향에 돌아온 것이다. 팡틴도 마들렌 씨의 공장에 취업했다. 숙련공이 아니라 임금은 변변치 않았지만 충분히 밥벌이는 되었다.
8. 빅튀르니앵 부인이 35프랑을 들여 정조를 염탐하다
팡틴이 테나르디에에게 편지를 자주 쓰면서 주변 작업실의 여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팡틴은 읽을 줄은 알지만 쓸 줄을 몰랐기에 부득이 대서인을 시켜 쓰다가 보니 주변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팡틴이 편지를 보내는 주소를 입수했다. 팡틴에게 어린애까지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냈다.
35프랑이나 들여서 이 일을 들춘 사람은 수다스러운 쉰여섯의 추녀 빅튀르니앵 부인이었다. 팡틴이 공장에 온 지 일 년이 넘어가던 시기였다. 팡틴에게 50프랑이 전해졌고 도시를 떠나라는 전언이 시장으로부터 왔다. 육아비가 15프랑으로 오르던 시점이었다. 시장을 만나보라는 사람도 있었으나, 팡틴은 이 결정이 타당하다고 생각해 그만두었다.
9. 빅튀르니앵 부인의 성공
마들렌 씨는 그 일을 통 모르고 있었는데, 이유는 마들렌 씨가 사제가 보내 준 한 노처녀를 여자 작업실의 감독으로 삼고 전적으로 맡겨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50프랑도 마들렌 씨가 여직공들에게 지급할 보조금으로 그녀에게 맡겨 놓은 돈에서 지급된 것뿐이었다.
팡틴은 세간살이를 마련하면서 쓴 돈을 50프랑으로 갚고도 100프랑의 빚이 남았다. 팡틴은 삯바느질을 하며 극도로 곤궁한 생활을 이어갔다. 멸시도 감내해야 했다.
빅튀르니앵 부인은 그녀의 궁상을 보고 기뻤다. 팡틴은 열이 자주 났고 기침도 심해졌다.
10. 성공의 결과
팡틴은 빚 독촉과 테나르디에의 털 스커트 요구에 힘들었다. 그녀는 그녀의 아름다운 금발도 10프랑에 팔았다. 털 스커트를 사서 보냈다. 당연히 그 옷은 에포닌에게 갔고, 코제트는 여전히 추위에 떨었다.
팡틴은 자기 주위의 모든 사람을 증오하기 시작했는데, 특히나 자신을 해고했다고 생각하는 마들렌을 특히 증오하게 되었다. 팡틴은 닥치는 대로 아무나 애인으로 삼았다.
그녀가 타락할수록 딸을 더 열렬히 사랑했다. 그러던 어느날 테나르디에에게서 편지가 왔다. 코제트가 속립진열이라는 병에 걸렸는데 약값 40프랑을 송금하지 않으면 어린애가 죽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팡틴은 예쁜 앞니 두 개를 팔아 40프랑을 마련했다. 하지만 발병은 테나르디에 부부가 돈을 뜯어내기 위해 짜낸 술책이었을 뿐, 코제트는 아프지 않았다.
그녀는 하루 17시간 일을 하고 겨우 9수를 벌었다. 빚쟁이들은 죄어치고 한 없이 괴로운 때 테나르디에한테서 100프랑을 보내지 않으면 딸을 쫓아내겠다는 협박에 가까운 편지가 도착했다. 이 불행한 여자는 창녀가 된다.
11.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하시다
팡틴의 이야기는 사회가 빈궁에게서 한 여자 노예를 사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매음이다.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는가? 그것을 아는 자는 모든 암흑을 뚫어보는 신뿐이다.
12. 할 일 없는 바마타부아 씨
모든 소도시에는 한량이 같은 부류의 청년들이 있다. 팡틴을 망친 톨로미에스 씨가 이곳에 살았다면 딱 그 부류이리라.
1823년 초 겨울, 그런 부류의 바마타부아 씨가 팡틴을 길거리에서 희롱하고 있었다. 그녀가 아무 반응이 없자 이쪽이 외려 비위가 상했다. 그가 그녀의 옷 속에 눈뭉치를 집어넣었다. 팡틴이 앞니 빠진 입으로 끔찍한 욕설을 내뱉고 엉겨 붙어 싸움이 났다. 큰 소란이 일자 카페 안 장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구경거리가 된 잠시 후, 그녀는 자베르에게 붙들리고 만다.
13. 몇 가지 시 경찰 문제의 해결
이런 유의 여성들은 경찰의 자유 재량권에 운명이 결정되고 만다. 자베르가 볼 때, 방금 그녀는 가옥 소유자인 선거권자를 사람 축에 들지도 못하는 주제에 공격하고 모욕한 것이다. 육 개월 감옥살이가 그의 손에서 그녀에게 떨어졌다. 용서해 달라고 그녀는 자베르에게 빌었다. 그에게 자비는 없었다. 그녀를 끌고 가려는 순간 마들렌 씨가 제지했다. 시장이란 것을 안 팡틴이 마들렌 씨에게 달려가 침을 뱉았다. 그러나 마들렌 씨는 그녀의 석방을 자베르에게 요구했다.
팡틴은 미친 듯이 중얼거린다. 시장이 자신을 내쫓아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는 것과 지금의 처지, 코제트 등을 되는 대로 주워섬겼다.
마들렌 씨의 결정에 자베르는 꼬치꼬치 따졌지만 마들렌 씨는 요지부동 석방을 요구했다. 치안에 대한 자신의 권한을 주장했지만 마들렌 씨는 법조항을 들어 이 여자에 대한 판결은 자신의 권한이라 못 박고 그녀를 석방시켰다. 자베르는 마들렌 씨에게 깊이 인사 한 후 경찰서를 나가버렸다.
팡틴은 자신이 저주하던 남자가 자신을 구했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느꼈다. 마들렌 씨는 팡틴에게 일어난 일을 몰랐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당신과 아이는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마들렌의 손에 입맞춤하던 팡틴은 혼절하고 말았다.
Ⅵ. 자베르
1. 안식의 시작
마들렌 씨는 팡틴을 자기 집 안에 있는 의무실로 옮기게 했다. 그날 밤 자베르는 파리에 편지를 썼다. 마들렌은 300프랑을 테나르디에 부부에게 보내 아이를 데려오라 했지만 그 못된 부부는 500프랑의 영수증을 거짓으로 만들어 답장을 보냈다. 다시 300프랑을 보냈지만 테나르디에는 아이를 보내기 싫었다.
수녀들은 팡틴을 돌보면서 그녀에게 처음에는 혐오를 느꼈지만 그녀의 진실한 모성애를 보면서 점차 마음이 바뀌어갔다. 하지만 팡틴의 상태는 계속 안 좋아지고 있었다.
2. 장이 변하여 샹이 된 이야기
마들렌 씨가 직접 몽페르메유에 가야 될 경우를 생각해 몇 가지 긴급한 사무를 보고 있는데 자베르가 찾아왔다. 자베르는 자신이 행정관을 심히 모독했다면서 보고하러 왔다고 했다. 육 주 전, 그 사건으로 자베르는 마들렌을 장 발장이란 전과자로 착각해 고발했단 것이었다. 그러니 파면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이 더 놀라웠다. 장 발장이 잡혔다는 것이다. 샹마티외라는 노인인데 그가 사과를 훔치다 체포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감옥에서 한 재소자가 그를 알아보고 장 발장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파면시키지 않을 거라며 그에게 일을 시키는 마들렌 씨에게 샹마티외의 재판이 내일이라 자신도 증인으로 간다고 다시 파면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그는 나중에 이야기하자는 마들렌 씨에게 후임이 올 때까지만 자신의 일을 보겠다 말하고 자릴 떴다.
Ⅶ. 샹마티외 사건
1. 생플리스 수녀
자베르가 온 날, 마들렌 씨는 팡틴에게 가기 전, 의무실에 있는 생플리스 수녀를 불렀다. 마들렌 씨는 그녀에게 팡틴을 부탁했다. 말하는 투가 이상했음은 나중에 알아차린다.
2. 스코플레르 영감의 형안(烱眼)
마들렌 씨는 시청에 갔다가 나와 스코플레르라는 말과 삯마차를 빌려주는 영감에게 갔다. 그는 하루 200리를 달리는 말을 빌렸다. 어딜가시냐는 물음에 답을 회피하는 마들렌 씨였다. 그리고 가다가 돌아와서는 말과 마차의 보증금을 500프랑 맡겼다. 스코플레르 영감은 마들렌 씨가 아라스에 간다고 추측했다.
마들렌 씨의 아래층에 사는 회계원은 새벽 내내 마들렌 씨가 오가는 소릴 들었다.
3. 머릿속의 태풍
마들렌 씨는 짐작하다시피 장 발장이었다. 그는 두 가지만 생각했다. 이름을 감출 것, 그리고 자기의 삶을 성화(聖化)할 것. 다시 말해 인간들을 피할 것, 천주에 귀의할 것. 그러나 지배적인 것은 두 번째 것이었다. 그는 필요하면 가면을 벗었었다.
그는 갈등했다. 자기 보존 본능과 양심의 갈등이었다. 그는 프티제르베에게 한 도둑질이 감옥의 빈자리로 돌아왔다고 결론 내렸다. 운명과 인간의 오류가 이루어지게 내버려 두는 것은 그것은 무엇이고 다 하는 것이다! 위선적 비굴의 최후 단계다. 추악한 죄였다! 도둑질 중에서도 가장 극악한 도둑질, 한 사람의 인생을 훔치는 범죄였다.
그는 가난한 소매상들한테서 받아 놓은 차용 증서를 태우고 은행에 편지를 썼다.
그리고 다시 팡틴과 지역을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자신만 생각했던 것이다. 다시 팡틴을 비롯한 수많은 지역민과 샹마티외를 저울에 올려놓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수는 다시 어리석은 기만이 되었다. 누더기와 지팡이, 배낭을 태웠다. 은촛대로 난로 속 잉걸을 허비적거렸다. 그때 자기 속에서 장 발장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자기혐오였다. 천국에 머물면서 악마가 될 것인가, 지옥에 돌아가서 천사가 될 것인가!
4. 꿈속에 나타난 고뇌의 형상
새벽 세 시경 의자위에 쓰러져 잠든 마들렌 씨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의 충격에 그는 꿈의 내용을 적어놓았다.
꿈에서 만난 사람이 그에게 당신은 어딜 가느냐고, 당신은 오래 전부터 죽어 있다는 것을 모르냐고 물었다. 그는 잠에서 깼다. 마차가 왔다.
5. 고장
장 발장의 마차가 우편마차와 길모퉁이에서 충돌했다. 멈추라는 우편마차 마부의 소리도 무시하고 그는 내쳐 어둠속을 달렸다. 스스로도 어디를 향해 가는지 가늠이 안 되었다. 그는 아스라에 가고 있었다. 쉬기 위해 들른 여관에서 마부가 그의 마차가 한 마장도 더 못 가겠다 알려주었다. 아까의 충돌로 바퀴가 망가진 것이다. 수리에 하루가 꼬박 걸린다 했다. 아무리 방법을 찾아도 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는 기뻤다. 하늘의 뜻으로 읽혔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던 꼬마가 마차가 있는 노파를 데려와 버렸다. 낡은 이륜마차였지만 아스라까진 갈 수 있음직했다. 그는 다시 운명을 느끼며 마차를 몰았다.
이번에는 길이 끊겼다. 도로가 수리 중이라 20리를 더 둘러가야 했다. 말구종을 데려다 아스라에 다가가면서 공판시간도 모름을 깨달았다.
6. 시련을 겪는 생플리스 수녀
팡틴은 스물다섯 밖에 되지 않았지만 거의 허깨비에 가까웠다. 그녀는 마들렌 씨를 기다렸다. 그녀는 내일 떠날 텐데 오늘 오시지 않는 건 정말 잘못이에요, 라고 중얼거렸다. 생플리스 수녀도 마들렌 씨가 늦어지는 것에 놀라고 있었다. 팡틴은 코제트에게 불러주던 자장가를 불렀다.
생플리스 수녀는 심부름꾼을 보냈는데 마들렌 씨는 이 도시에 없는 게 확실했다. 생플리스 수녀는 그녀에게 시장님이 출타하셨다고 전했다. 그러자 팡틴은 코제를 데리러 간 줄로 알고 기뻐했다. 진맥한 의사는 놀랐다. 차도가 있었는데 숨이 덜 가빴고 맥은 힘을 되찾았다.
나가던 의사는 수녀에게 우리는 어쩌면 저 여자를 살려낼 수도 있을 거라고까지 말했다.
7. 도착한 나그네가 다시 출발할 대비를 하다
장 발장은 아스라에 저녁 8시에 도착해 새벽 1시, 돌아가는 우편마차 편을 예약했다. 재판소를 찾아갔다. 다행히 일이 많아서인지 재판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자리가 없었다. 공무원에게만 허용된 자리가 있었는데, 장 발장은 몽트뢰유쉬르메르 시장, 마들렌이란 쪽지를 써서 수위에게 전달했다.
8. 특별한 입장 허가
자신의 생각보다 몽트뢰유쉬르메르 시장의 유명세는 더 컸다. 재판장은 공손하게 그를 안으로 들게 했다. 안내되어 들어간 대기실에서 그는 다시 복도로 나왔다. 달아났다. 번민하던 그는 다시 대기실로 쓰는 평의실로 들어갔다. 그는 끝내 법정 안으로 들어갔다.
9. 죄상 결정의 장면
그곳 피고인석에는 증오심에 불타면서 디뉴 시로 들어가던 그날의 자기 모습이 있었다. 재판장과 차장 검사가 시장을 알아보고 목례를 했다.
변호사와 검사의 공방이 시작되었다. 모든 증거, 증인이 그를 장 발장으로 지목하고 있었기에 변호인의 논봉은 무디어지고 있었다.
10. 부인(否認)의 방식
그는 중구난방으로 자신을 변론했다. 그러자 방청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자베르는 저 치가 장 발장이 분명하고 극히 악한 자란 자술서를 남기고 일 때문에 먼저 떠나고 자리에 없었다. 다른 죄수들이 샹마티외를 대질했다. 죄수들은 모두 그를 장 발장으로 지목했다. 절망적이었다. 그 순간, 한 남자가 외쳤다. 여길 보시오! 라고. 그 자리에는 마들렌 씨가 서있었다.
11. 샹마티외, 더욱더 놀라다
마들렌 씨의 반백머리가 완전히 백발이 되어 있었다. 한 시간 만에 머리가 세어 버린 것이다. 감격적인 광경이었다. 마들렌은 죄수들에게 다가가 자신을 체포하라 말하며 스스로 장 발장이라 고백했다. 차장 검사는 장 발장을 집으로 모시라 명했다. 그러나 그는 천주께 맹세하며 자신이 장 발장이라 주장했다.
죄수들의 신체적 특징, 상처까지 다 맞춘 장 발장은 승리인 동시에 절망의 미소를 지었다. 법정엔 오직 고정된 시선과 감동뿐이었다. 그는 빛나고 있었다. 장 발장은 ‘체포하지 않으니 저는 가겠습니다. 저는 여러 가지 용무가 있습니다. 제가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계시니, 언제고 원할 때 저를 체포하시라.’란 말을 남기고 그는 자리를 떴다.
샹마티외는 기소가 기각되어 즉시 석방되었다.
Ⅷ. 반격
1. 마들렌 씨가 머리털을 비춰 본 거울
새벽, 마들렌 씨는 팡틴에게 왔다. 수녀가 그간의 일을 설명했다. 햇빛이 비껴들자, 수녀는 시장의 머리가 하얗게 센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장 발장도 놀랐다.
그는 그녀 옆에서 기도했다. 그 사이 깬 팡틴이 코제트를 찾았다.
2. 행복한 팡틴
의사가 나타나 아기는 저기 있다고 눙치고 지금은 안 된다고 잘랐다. 그녀는 수긍했다. 그녀는 아이의 말소리가 들린다고 소리쳤다. 그녀는 코제트의 목소리라 생각했지만 사실 마당에서 뛰놀던 아이는 다른 아이였다. 행복한 앞날을 상상하며 재잘거리던 팡틴이 갑자기 창백해졌다. 마들렌 씨 뒤편으로 자베르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3. 만족한 자베르
마들렌 씨는 몽트뢰유쉬르메르에 도착하여 라피트(은행장) 씨에게 보내는 편지를 우체통에 던져놓고 병실에 왔다. 그 사이 정신을 차린 차장 검사와 재판장은 장 발장의 체포에 동의했다. 바로 체포명령이 떨어졌다. 그 임무는 자베르에게 주워졌던 것이다.
장 발장과 눈을 마주치자 자베르의 표정은 승리의 기쁨으로 무시무시해졌다.
4. 다시 권력을 휘두르는 관헌
팡틴은 자베르가 다시 자기를 잡기 위해 온 것으로 생각했다. 자베르는 장 발장을 독촉하는데 팡틴은 자기를 독촉하는 걸로 생각했다. 자베르가 장 발장의 멱살을 잡았다. 장 발장은 코제트를 데려오도록 사흘만 달라고 했다. 팡틴은 부르르 떨었다. 발작을 일으킨 팡틴이 절명하고 말았다. 장 발장이 자베르에게 당신이 이 여자를 죽였다 말했다. 자베르가 계속 그를 포박하려 하자, 장 발장은 간이침대 머리 가로장을 떼어 손에 쥐었다. 자베르는 뒤로 물러났다.
장 발장은 팡틴에게 몸을 구부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무언가 말했다. 그리고 팡틴을 수습하고 눈을 감겨주었다. 그 후, 자베르에게 이젠 마음대로 하라 일렀다.
5. 알맞은 무덤
자베르는 장 발장을 시 형무소에 가뒀다. 몽트뢰유쉬르메르 시민들은 비상한 동요를 일으켰지만 ‘전과자’라는 단 한마디 말로 거의 모든 사람이 그를 버렸다. 온 시내에서 오직 서너 사람만이 그에 대한 기억을 충실히 간직했다.
문지기 노파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갑자기 장 발장이 나타났다. 장 발장은 그녀가 난로에서 꺼내놓은 40수 짜리 은화에 프티제르베한테서 훔친 거라고 메모를 남겼다. 그리고 두 은촛대를 헝겊으로 쌌다. 생플리스 수녀에게 그것을 넘기며 신부님께 전해주라 일렀다. ‘여기 두고 가는 모든 것을 신부님께서 보살펴 주기 바란다. 그중에서 소송비와 오늘 운명한 여자의 매장비를 지불해 주고 나머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어 달라.’는 쪽지도 함께 주었다.
자베르가 왔고 노파가 아무도 없다고 씨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장 발장이 문 뒤로 숨고 자베르가 방에 왔을 땐 수녀만 보였다. 수녀는 그 방에 혼자 있다고 답한다. 그리고 장 발장을 못 보았냐는 질문에도 서슴지 않고 못 보았다고 했다. 수녀의 대답은 자베르에게 결정적인 것이었다. 그는 돌아갔다.
장 발장이 파리로 향하던 모습이 목격되었다.
팡틴은 무료 묘지의 한쪽 구석에 매장되었다. 공동 묘혈에 던져진 것이다.(1부 팡틴 끝)
레 미제라블 2부 코제트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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