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설 / / 2019. 10. 31. 13:19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덮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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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긴 시간 이야기 한 것 같은데, 사실 몇 편 안 썼다. 필자가 느끼는 피로도는 어쩌면 너무나 더딘 세상의 변화에 지친 탓일 수도 있겠고, 이십대에 처음 접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사십이 넘은 내 서재에서 여전히 나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라 해도 맞겠다. 이것은 놀랍고 피곤한 일이다. 이런 뼈아픈 작품은 그 시대에 한시적으로 들어맞아, 그 시대에 소비되고 그저 고전으로 남아야 좋다. 그런데 여전히 유효하다고 느낀다면, 그만큼 사회가 정체되었다는 뜻이고, 그런 정체는 은강시의 스모그처럼 사람들을 질식시킬 지도 모른다. 이런 걱정은 늘 피곤함을 동반한다.

 

87년 이후 한국사회의 많은 부분이 민주화되었다고들 상찬한다. 일정부분 인정한다. 군부독재는 무너졌고-그 속에 부역한 기득권을 처벌한 것과는 별개다- 명목상으로라도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이 나라의 수장으로서 국가를 이끌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게 과연 다인가? 물론 노동자들의 강력한 투쟁, 요구 덕이었지만, 어쨌든 어느 정도 분배 쪽에서 성과를 내고 담론이 형성될 때쯤, 우리는 다시 거대한 자본의 역습을 받게 된다. 비극의 IMF. 숱한 노동자가 일터에서 쫓겨났고 정규직은 비정규직이 되었으며 수많은 중소기업, 소기업들은 쓰러져갔다. 그럴 때, 외국계 대자본과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은 외려 몸집을 더 키웠다. 소위 신자유주의는 그렇게 우리의 교리가 되어, 난장이를 핍박하던 건달 사장처럼 우리를 짓눌렀다. 신애가 칼을 들고 뛰쳐나와 주었으면 좋으련만!

 

그러는 사이 양극화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삶의 행복지수는 OECD도 고쳐주지 못했다. 언론자유지수는 여전히 부끄러운 수준이며, 대자본에 맞설 노동조합 조직률은 놀랍도록 저조하다. 우리는 여전히 깜깜이, 장님이고 을이며 병이고 정일 뿐이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기본적인 안전수칙인, 2인1조 규정만 지켰어도 김용균 씨는 그렇게 처참하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노동자를 값싼 기계로, 부속으로만 취급하는, 사랑이 없는 천박한 자본의 천국, 21세기 대한민국은 과연 1970년대의 낙원구 행복동보다 행복한 낙원인가? 본질적으로 내가 느끼는 피로감엔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난장이가 죽은 그 시절과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1970년대 배제당하고 죽임당하고 아무렇게나 취급 받았던 난장이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었다. 바로 나로, 내 아비로, 우리 이웃들로. 그리고 지난 사십 년간 끝도 없이 굴뚝 안으로 몸을 던져야 했다. 난장이에게 이 땅은 무간지옥이다. 김용희 씨가 아직도 삼성사옥 앞, 통신철탑 위에 있다.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 삼성. 그 삼성이란 거인은 김용희란 난장이의 지극히 정당하고 사소한 요구 하나 들어줄 수 있는 아량, 사랑이 없다. 정치는 언제나 이런 싸움에선 중립을 지킨다. 가소롭다. 야비한 이 시대의 율사들. 

 

난장이는 굴뚝위에서 종이비행기에 무슨 말을 써서 날렸을까, 생각해 본다. 모르긴 모르되, 오늘날 김용희 씨가 말하고자 하는 뜻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나도 사람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상이 불행할 수록 사람들은 하늘을 꿈꾼다. 그래서 그들, 김용희와 난장이 모두는 고공으로 갔는 지도 몰라. 

 

사람 사이의 높이가 다르지 않는 세상을 꿈꾸는 모든 이들과 가장 낮은 이 땅위에서 행복하고 싶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결국 난장이들이 쏘아올릴 커다란 세상, 구체, 행성이 되어 따로 우주여행을 하지 않아도 바로 여기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난장이는 어쩌면 나를 올려다보며 내 머릿속에 이런 씨앗 하나를 쏘아올려, 심었는 지도 모른다. 그 씨앗은 지금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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