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제3부 인류의 통합
9. 역사의 화살
모든 문화는 외적 자극, 내적 모순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한다. 현재 인류가 보편적으로 주장하는 자유와 평등도 모순된다. 이런 인지부조화는 실패가 아니라 변화의 핵심자산이다. 수천 년의 거시적 시각에서 보면 역사는 통일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인류는 동일한 지정학 체계(국가), 경제(자본주의), 법(인권, 국제법), 과학을 공유하고 있다. 보편적 질서가 될 잠재력을 지닌 후보는 첫 밀레니엄 시기에 등장한 화폐, 제국, 종교 이 세 가지다.
10. 돈의 향기
수많은 낯선 사람들이 협력할때, 호의와 의무의 경제는 작동하지 않는다. 물물교환은 한계가 뚜렷하다. 그래서 가치의 담지자인 화폐가 등장한다. 화폐는 정신적 혁명이다. 상호주관적 실체다. 부의 전환과 저장, 이동이 용이하다. 이는 다시 복잡한 상거래망과 역동적 시장을 추동한다.
돈은 실체가 아닌 심리적 구조물이다. 돈은 인간이 고안한 것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효율적인 상호신뢰시스템이다. 그러나 금과 은의 역할 못지 않게 강철 또한 오늘날 지구촌 형성에 많은 역할을 했다.
11. 제국의 비전
21세기를 사는 거의 모든 사람은 싫든, 좋든 간에 어디가 되었든 제국의 후예이다. 제국은 첫째, 상당히 많은 숫자의 다른 민족이나 국민을 지배한다. (대략 20~30여 개). 둘째, 탄력적인 국경과 잠재적으로 무한한 식욕을 지니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제국은 인류의 다양성을 급격히 축소시켰다. 제국은 매우 안정된 형태의 정부다. 제국은 인류를 대가족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문화가 확산되고 융합한다. 도시계획이 수립되고 도량형이 통일된다. 물론 초기에는 차별이 존재하지만 결국 혼성문명이 되어가는 것이 보편적이다. 점점 '그들'이 '우리'가 된다. 21세기 이후 민족주의는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오히려 보편적 인권의식과 국제질서에 대한 인식은 강해지고 있다.
12. 종교의 법칙
종교는 초월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규범과 가치체계다. 모든 사회 질서와 위계는 상상의 산물이다. 종교는 이 사회 질서라는 것에 초월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서로 다른 집단을 묶기 위해서는 종교가 보편적이며 선교적이어야 한다. 초기 수렵시절 모든 생명체와 공명하던 애니미즘의 시대는 차츰 농업혁명을 거치면서 사피엔스에게 우선적 지위를 부여하는 다신교 시대로 바뀌게 된다. 다신교는 일신교에 차츰 자리를 빼앗긴다.
보통의 기독교인은 일신론을 하나님과 이신론적 악마, 다신론적 성자숭배, 애니미즘적인 유령을 모두 믿는다. 제설혼합주의라 하겠다. 이것이 유일한 인류의 종교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인본주의라는 새로운 종교의 시대다. 스스로는 종교임을 부정하며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하지만 초월적인 질서를 믿는 허구를 기반으로 한다는 데는 하등의 차이가 없다.
13. 성공의 비결
왜 하필 그렇게 되었는가? 결정론은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비과학적이다. 역사는 카오스적이다. 역사연구는 지평의 확장이 목적이지 예측이 목적이 아니다. 역사가 인류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증거는 없다. 객관적 척도가 없기 때문이다.
문화는 기생충처럼 인간을 숙주 삼아 증식한다. 문화적 진화는 밈이라 불리는 문화적 정보 단위의 복제에 기반한다. 성공한 문화란 숙주(사피엔스)의 희생이나 혜택과는 무관하게 스스로의 밈을 증식시키는 데 뛰어난 문화다.
1500년경 역사는 가장 중요한 선택을 한다. 유럽에서 과학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왜 그곳에서 그때일까? 모른다. 많은 가능성 중 하나가 실현되었다는 말밖에는 할 게 없다.
제4부 과학혁명
14. 무지의 발견
지난 500년간 인간의 힘은 경이적으로 커졌다. 이런 배경에는 전통지식과 현대과학의 결정적 차이가 존재한다. 첫째, 무지를 기꺼이 인정한다. 둘째, 관찰과 수학이 중심이 된다. 셋째, 새 힘의 획득에 방점을 둔다. 과학혁명은 지식의 혁명이 아니라 무지의 혁명이라 이를만 하다. 이런 추세는 협력하게 하는 공동의 신화를 위협한다. 신화의 신이나 신인은 무지를 인정하지 않았다.
15. 과학과 제국의 결혼
세계권력의 이동은 1750~1850년 사이에 일어난다. 군사-산업-과학 복합체가 유럽에서 출현한다. 15세기 이후 유럽인들은 비어있는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대탐험시대의 시작이었다. 유럽인들은 주요 군사탐험대에 거의 지리학자, 생물학자 등의 과학자를 태우고 출발했다. 덕분에 비글호에는 다윈이 타고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300년 간 유럽은 아시아제국의 견제없이 신대륙을 탐욕스럽게 갉아먹었고 그 부로 패권을 강화, 아시아까지 집어삼킨다.
근대유럽인들에게 제국주의는 과학적 프로젝트였고 과학이란 분과를 건설하는 것은 제국의 프로젝트였다. 군인이 고대설형문자를 해독하기도 하고 법률 관료가 비교언어학의 선구자가 되기도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제국은 입체적이다. 압제와 착취에서 사악하고 동시에 과학에서 선하다. 곧 진보적이다.
16. 자본주의의 교리
현대, 은행의 지급준비율을 10%다. 곧, 모든 예금액의 90%에 대응하는 화폐를 실재로 가지고 있지 않아도 된다. 이것도 사피엔스의 상상의 산물인 신용, 즉 미래의 성장을 지금의 비용으로 만들어낸 기적이다. 이런 신용이 커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과학혁명이 있다. 미래에는 반드시 경제가 성장한다는 '믿음'을 만들어낸 것이다.
자본주의의 폐단도 많았지만, 자본주의가 만든 성장은 엄청났다. 유럽의 제국은 신용대출로 식민지를 건설했고 이 식민지에서 얻은 수익으로 신뢰를 창출, 다시 더 큰 신용대출로 더 큰 식민지를 건설할 수 있었다. 서구 정부는 자본주의자들의 조합이란 맑스의 비아냥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다. 제국주의는 자본의 증식본능과 깊은 연관이 있다.
17. 산업의 바퀴
산업혁명의 핵심은 에너지의 전환혁명이다. 증기기관은 열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꾼 것이다. 유일한 한계는 우리의 무지다. 태양은 매년 376만 6800 엑사줄의 에너지를 지구에 쏟아붓는다. 인간이 연간 소비하는 에너지는 500엑사줄에 지나지 않는다. 더 나은 에너지전환펌프를 발명하는 일만 남은 셈이다.
산업혁명은 무엇보다 제2차 농업혁명이었다. 농부가 먹여살릴 수 있는 인구가 급격히 확대됨에 따라-미국은 인구의 2%만이 농업인구다. 그러나 미국인을 다 먹여살리고 남아서 수출까지 한다.- 농업인구가 산업인구가 된다. 이것은 산업생산과잉으로 이어지고, 소비지상주의 윤리를 등장시킨다. 자본주의 윤리(재투자)와 소비지상주의(구매) 윤리는 동전의 양면이다.
18. 끝없는 혁명
1900년 16억 명이던 인구는 오늘날 70억 명을 넘는다. 앞서 말했듯 자원은 희소하지 않다. 그러나 생태계 파괴는 그 근거가 확실하다. 사피엔스가 이런 변화에 적응해낼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산업화의 가장 커다란 격변은 가족과 지역공동체를 해체하고 그 자리를 국가와 시장이 차지한 것이다. 국가와 시장은 개인주의를 조장해 가족과 지역공동체를 효과적으로 해체하지만, 개인은 친밀한 공동체의 파괴로 인해 깊은 상실감을 가진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 상상의 공동체 육성이다. 민족주의로 국민을 만들고 소비자지상주의로 소비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지난 2세기의 변화는 너무나 빨라 변화만이 사회의 속성인 것으로 간주하게 만들었다. 20세기부터는 한 해, 한 해가 혁명적이다. 이러한 변화로 국가와 국가의 연결망이 강화되면서 국제전의 가능성은 비약적으로 낮아지고, 통계적으로 역사상 그 어느 시대보다 평화적인 시대를 구가하게 만들었다.
19.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과거보다 사피엔스는 과연 더 행복해졌는가? 지나친 비관도 낙관도 옳지 않다.
쾌락적 감각이 행복이라면 스스로의 생화학적 시스템을 개조할 필요가 있고, 행복이 삶의 의미를 느끼는 데 기반을 두고 있다면 우리는 더 행복해지기 위해 순수하게 의미가 없는 삶을 속이는 효과적인 기만이 필요하다. 앞의 두 견해는 행복이란 모종의 주관적 느낌이라는 가정을 두고 있다. 논리적으로 보이지만 이런 견해는 기실 자유주의에 특유한 것일 뿐이다. 주관적인 느낌은 과연 믿을 만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마약중독자를 떠올려 보라. 대부분의 종교와 철학은 행복에 대해 자유주의와는 매우 다른 접근법을 취했다. 특히 행복에 대한 불교의 접근방식은 생물학적 접근방식과 기본적 통찰의 측면에서 일치한다. 행복을 자신의 내면에서 찾는 것이다. 그러나 결론은 아주 상이하다. 부처는 진정한 행복은 주관적 느낌이나 감정과도 무관하다고 말한다. 주관적 느낌을 중요하게 여길수록 우리는 더 많이 집착하게 되고 괴로움도 더욱 심해진다. 부처는 우리가 외적 성취의 추구뿐 아니라 내 내면의 느낌에 대한 추구 역시 중단하라 말하는 것이다.
행복에 대한 정의는 아직 많은 논란거리가 남아있다. 하지만 우리가 활발히 논의해야할 부분임은 분명하다.
20.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
호모 사피엔스는 스스로의 한계를 초월해 자연선택의 법칙을 지적설계의 법칙으로 바꾸고 있다. 지난 40억 년, 지적설계에 의해 창조된 생명체는 단 하나도 없었다. 농업혁명 시기, 동물의 교배를 통해 필요한 습성의 가축을 얻어냈다. 지금은 유전자를 조작해 원래 해당 종에 없던 특성을 부여한다.
생명공학은 생물학 수준에서 인간이 계획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이른다. 거세 수소에서 유전자조작까지를 아우르는 분야다. 매머드 복제, 네안데르탈인 아기 만들기도 가능하다. 보다 나은 사피엔스라고 불가능할까? 생명공학은 호모 사피엔스 시대의 막을 내리게 할 가능이 매우 큰 분야다.
사이보그 공학은 생물과 무생물을 부분적으로 합친 존재다. 마이크로칩 망막, 기계팔 등이다. 가장 혁신적인 것은 뇌와 컴퓨터를 직접 연결하는 방법을 고안하려는 시도다. 기억과 기억이 공유되고 섞인다면?
생명의 법칙을 바꾸는 제3의 방법은 완전히 무생물적 존재를 제작하는 것인데, 독립적 진화를 겪을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 같은 것이다. 만약 당신의 뇌가 완전히 복제된 컴퓨터가 있다면 그 컴퓨터는 당신일까? 이런 것들이 가능하다면, 생명이 유기화합물이라는 그릇에서 비유기물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이런 기술들의 발달로 곧 초인간이 탄생하리라 보인다. 초인간은 보편화될까, 특정집단만 될까? 아무튼 미래의 인류는 신과 비슷할 것이다.
그러면 이 질문이 중요해진다.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
후기
인간의 역량은 크게 늘어났지만 개별 사피엔스의 복지를 개선시키는 데는 이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에게는 큰 불행을 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원하고 어디로 가고 있는 지를 모른다. 우리는 무책임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거의 없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 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과학서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2편 (0) | 2019.11.22 |
---|---|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1편 (0) | 2019.11.20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1편 (0) | 2019.11.10 |
<총, 균, 쇠> 10분만에 읽기 (0) | 2019.11.05 |
제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특별증보편과 독서후기 (0) | 2019.1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