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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설

개밥바리기별 독후감

트레바리 2021. 4. 15. 12:08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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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삶은 궤도 위에서 시작한다. 설령 내가 서울에서 태어나고 싶었다고 하더라도 군소지방도시에서 태어났다면 수정이 불가능하다. 이 궤도는 내가 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생물학적으로도 그렇다. 이렇게 지면에 글을 쓰고 있는 존재이기를 내가 선택한 적이 없다. 침목은 이미 유전자, 진화의 단계대로 놓여 있었고 레일은 이미 저 까마득한 곳으로 뻗어 있을 뿐이다. 나의 선택은 무엇이었는가?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며 나의 존재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의문은 보통 사람의 일생에서 청소년기에 가장 많이 하게 된다. 하염없을 것 같았던 부모의 사랑은, 노는 일이 전부였던 어린이의 삶은 이 시기에 다다라 격렬하게 굴절되기 때문이다. 네 삶의 목표는 무엇이냐?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이냐? 이런 격렬한 변화는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고찰로 이어지고 가볍든, 지독하든 어떤 성장통을 동반한다.

    소설 속에 기차가 자주 등장한다. 그 시절 원거리 교통수단으로써 기차가 대표적이었음 또한 사실이지만 결국 주인공이 벗어날 수 없었던 어떤 시대적인 궤도, 운명 따위를 상징하는 것임도 분명하다. 그래서 소설의 시작과 끝을 기차에서 타고 내리는 것으로 맺었던 것이다. 회상 속에서 또한 기차는 제법 상세한 거점과 경유지, 그리고 달리는 소리묘사 등으로 궤도에 갇힌 자아를 부각시킨다. 뛰어내리거나 자살을 시도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결국에 그들이 향하는 곳은 기차역이다.

    궤도는 안정과 평온을 주지만 주체적인 자아를 가진 인간이란 존재에게 어쩌면 더할 수 없는 억압이기도 할 테다. 앞서 말했지만 우리는 선택한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인간들은 더러 이 궤도를 수정하거나 이탈하기 위에 노력한다. 개인적인 일탈에서부터 사회흐름 전반을 바꾸기 위한 저항까지 그 양태는 다양하다. 앞서 언급한 생물학적인 나고 죽음에 내 선택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면, 내 삶의 방향이나 목표, 사회집단의 흐름에는 일정정도 개입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학교를 그만둔다든지, 시위에 참가해 사회적 목소리를 낸다든지. 이런 노력들은 궤도, 정해진 운명이라 생각한 것들에 대한 수정의 요구이자, 거부의 몸짓이다. 권위주의 독재시대를 겪어온 소설 속 주인공들의 반발심은 오죽했을까?

    이 소설의 주인공이 겪는 성장통은 우리 시대의, 한국사회의 성장통과 그 맥을 같이 한다. 해방과 전쟁, 4.19와 그에 이은 5.16 등등. 우리 사회의 민주적 성과들은 그들, 그리고 우리가 감내한 성장통 속에서 자라난 것들이다. 그리고 학력위주의 무한경쟁, 자본의 무한 독식 또한 그 속에서 몸집을 키워온 침목이자, 완고한 궤도이다.

    베트남 파병을 앞두고 행정병이던 군대동기의 도움으로 이박삼일 일탈을 감행함으로써 주인공의 여정은 시작된다. 그러나 그곳에는 그가 바라던 어떤 것도 온전히 남아 있지 않다. 하나, 둘 놓인 철로의 침목들처럼 그가 밟고 온 과정, 과거만 남았을 뿐이다. 그러나 분명히 그런 궤도를 밟고 왔기에 그는 거기에 있다는 것도 확실했다. 강렬했던 청소년, 청년기의 통증, 일탈, 행복 따위의 총체적인 경험은 다시 주인공을 서울역으로 이끈다. 그리고 다시 궤도 위에 오른다. 다시 돌아와도 온전히 돌아온 것이 될 수 없는 인생사의 묘미를 깨달으면서.

    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황석영 작가가 필자보다 한 세대 앞의 아버지뻘 세대임에도 많은 공감을 느낀 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인간사 백 년의 보편적 궤도 때문일 테다. 해서 이 책이 주는 감동, 혹은 느낌, 서사의 보편성은 시대를 뛰어넘는다고 확신한다.

    화가 나고 두렵고 슬프다면 이따금 그 궤도를 이탈해 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직접 생흙을 밟고 길이 아닌 곳, 누군가 지정하지 않은 목적지를 가져보라고 말하는 것이다. 커다란 틀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세상 속에는 수많은 삶이 있고 가치들이 보석처럼 숨어 있기에.

    자신만의 주체적인 삶을 살아 보라!’ 필자가 느낀 이 글이 말하고자 주제라면 주제겠다. 이런 틀 짓기 또한 그대들의 생각을 억압하는 궤도가 아닐 런지 두려워진다. 해서 필자는 이 소설을 잘 읽은 것 같다. 당신들 또한 그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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