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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일기 줄거리, 감상
이 작품은 어떤 광인, 즉 정신이상자가 쓴 일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형식으로 쓴 독특한 서사구조의 소설이다. 광인일기는 짧은 단편소설이지만, 루쉰의 첫 소설이자 중국의 첫 번째 현대 백화문 소설로 그 의의가 대단한 작품이다. 월간 '신청년' 4권 5호에 발표되었다.(위키백과) 백화문은 쉽게 말해 구어체를 뜻한다.
고백컨대, 필자는 광인일기란 이 짧은 단편을 이해하기 위해 광인일기 전문보다 더 많은 활자들을 씹어서 소화해야 했다. 몇몇 신문기사, 논고, 블로그, 특히 위키백과가 광인일기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돌아와서, 광인일기는 30년 동안 어둠 속에 있던 광인이 밝은 달을 본 이야기로 시작한다. 밝은 달을 보고서 광인의 광기가 시작되는 것은 많은 함축을 담고 있다. 밝은 달은 어떤 깨달음일 테다. 여기서는 식인행위의 죄악을 깨닫는 것이겠다. 그리고 광기의 시작은 그것을 잘못된 행위라 말하고 저항하는 말과 행동이 된다. 식인이 자행되는 세계 속에 놓인 자신을 발견하고 싸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서문과 13개의 길고 짧은 일기로 구성된 광인일기는 지독한 피해망상으로 점철되어 있다.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식인을 하려고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진료하기 위해 온 의원마저도 자기 살집이 얼마나 늘어났나 보고 큰형과 함께 자기를 잡아먹기 위해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루쉰은 어째서 이런 희한한 광기를 소재로 글을 썼을까?
우선 이 소설이 쓰여진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아야겠다. 왜냐면 광인은 그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을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집단으로 본다. 그렇다면 사회전반에 걸친 어떤 문제를 식인으로 비유했을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소설이 발표된 시기는 신해혁명으로 봉건왕조를 몰아내고 중화민국이 수립된 지 7년이 되던 해였다. 사회는 혼란하고 보수와 진보가 격렬히 다투던 시기였다. 변발과 단발이 공존하고 창파오를 입은 사람이 양복을 입은 사람과 서양차를 마셨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식인일까?
4천 년을 내려오면서 사람을 잡아먹는 고장이 오늘에야 알려졌다.-광인일기 중에서-
4천 년을 이어온 폐습을 상징하는 것임을 짐작케 하는 문장이다. 어떤 폐습일까? 유교적 허례허식과 귀천의 구분, 또는 가부장적 의식 등일 테다. 아직도 봉건적 잔재가 남아 가부장적 악습, 권위주의가 문제가 되고 있는 판국인데, 갓 중화민국이 탄생했던 그 시기는 오죽했으랴.
특히 자신의 큰형이 자신을 잡아먹기 위해 획책하고 있음을 깨닫는 장면은 유교적 구습이 한 인간에게 주입되는 기본 단위가 가족임을 암시하는 장치다. 이어서 광인이 형부터 바꾸려고 마음을 먹는 것은 이런 구습철폐의 시작 또한 가족단위에서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는 주장일 테다.
유교적 폐습 같은 정신문화는 세상이 바뀌었다고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제도가 바뀌어도 오래도록 내면화된 가치는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작품에서 루쉰은, 유교적 가족관계, 신분관계 같은 폐습이 차별과 착취를 스스로 정당화시키면서 상당기간 사람들 마음에 잔존해 복종과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록 만들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고유의 자아를 잃어버리고 자주적이지 못한 채로 유교적 폐습이 나눈 계급과 서열, 그로인해 인격이 말살되는 현상은 가히 식인이라 이를 만큼 잔혹한 것이라고 루쉰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광인은 4천 년 악습 속에서 살아온 자신 또한 어떻게든 구습에 영향을 받았고 또 누군가를 -소설속에선 죽은 누이- 먹었다는 말로 누군가에게 나쁜 영향을 주었다거나 구체제에 복무했을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그래서 광인은 봉건제가 갓 무너지고 새로운 체제가 들어서는 시대, 선각자나 지식인을 상징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아무튼 그런 깨달음에 광인은 마지막 일기를 남긴다.
사람을 잡아먹어 본 적이 없는 아이가 아직까지 남아 있을 지도 모른다! 아이들을 구하라…….
-광인일기 중에서-
구습과 단절시키고 완전히 새로운 인간형을 완성하겠다는 의지가 드러나는 장면이다. 문제는 소설의 서문에서 이 광인이 이제 제정신으로 돌아와 관리가 되었다고 썼다는 점이다. 관리는 대개 어떤 사회에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게 마련이다. 사회를 유지하는 데 관여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광인이 관리가 된 것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한계인가, 아니면 더욱 적극적인 투쟁인가? 우리는 알 수 없다. 후자이기를 바라는 수밖에. 루쉰도 그렇지 않았을까?
광인일기는 격변기에 중국인들이 구습, 인습, 폐습을 버리고 인본주의적, 민주주의적 보편적 가치를 하루 빨리 체화하기를 바라는 루쉰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작품이라 여겨진다. 이런 선각자들의 노력으로 근대 중국, 그리고 지금의 중국이 있는 것일 테다. 중국의 문화, 그리고 정신을 보고자 한다면 꼭 한 번 읽어봄직한 작품이 아닌가 한다. 짧아서 강렬하고 강렬한 상징에 눈이 따가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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