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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을 읽고 나니 다른 어떤 감상보다도 자전적 글을 하나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게 얼마 만큼의 진실이든, 얼마 만큼의 허구든. 담담하게, 때로 도발적이게 - 물론 나의 담담함이 외려 독자에게 도발이 되는 - 뭔가를 토해 내고 싶다는 욕망이 일었다.
살면서 어쩌면 한 번, 아니면 두세 번, 많으면 무수히 느꼈을 인간 관계의 허무함과 염증이 [인간실격]의 주인공을 통해 구체화되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구체성은 분명히 타자의 경험인데도 불구하고 내 경험처럼 느껴지게 되는 묘한 체험을 선사하는 작품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가면 하나쯤 쓰고 산다.
학교에서는 좋은 선배나 후배, 직장에서는 일을 좋아하는 직장인, 가정에서는 가족에 헌신적인 남편.... 그 속에 웅크리고 있는 놀러 가고 싶은, 다른 여자를 힐끔거리는, 당장 일을 때려치우고 싶은 욕망은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나를 차치하더라도 나를 향해 웃고, 다른 사람을 향해 헌신적인 누군가의 이면에는 또 어떤 욕망이 숨어 있는 것일까? 아니 정확하게는 감추고 가리고 있는 것일까?
조금은 중2병적인 고민이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생각이다. 인간은 평면적인 존재가 아니니까. 계층, 문화, 민족, 지위, 상대적 자리.... 이 모든 것은 나의 얼굴에 겹겹의 가면을 씌우고 있다. 현상이 그러한 것과 그러려니, 하는 받아들임은 분명 다른 층위의 문제다.
오사무는 이 글을 쓴 한 달 뒤, 자살했다.
때로 스스로에게도 놀랄 만큼 느끼는 어긋남의 쾌감. 그렇다. 오사무는 소설적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자신의 자살로 무너뜨렸다. '인간'이란 가면을 쓰고 사는 데 지친, 그래서 그것을 벗으려니 '실격'이 되고 마는 한 인간의 마지막 선택.
필자는 저자의 자살이야 말로 진정 이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대미라고 느꼈다.
꽤 뭉근하게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다. 몇몇 문장에서는 뼈를 맞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놀라운 내면의 통찰이 아닐 수 없었다. 시대도 사는 곳도 달랐던 작가의 통찰이 내게 닿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정서, 사회나 문화의 본질 또한 비슷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도 이르게 했다.
딱히 덧붙일 말은 없다.
몇 가지 문장을 그대로 옮김으로써 이 소설에 흥미를 자극해 주고 싶을 뿐이다.
"인간을 지독하게 두려워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무서운 요괴를 두 눈으로 확실하게 보고 싶어 하는 심리. 예민하고 겁을 잘 먹는 사람일수록 폭풍우보다 더욱 강력한 것을 바라는 심리."
"겁쟁이는 행복도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빈부의 어긋남은 진부한 듯하지만, 지금은 역시 드라마의 영원한 테마라고 생각합니다."
"마시다 남은 한 잔의 압생트. 나는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듯한 그 상실감을 은밀히 그렇게 형용했습니다."
"이 아이 역시 그 <갑자기 등에를 때려죽이는 소꼬리>를 갖고 있었던 거지요."
"인간은 피자 서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전혀 다르게 보고 있으면서 둘도 없는 친구라 여기고, 평생 그걸 깨닫지 못한 채 상대가 죽으면 눈물을 흘리면서 조사 따위를 낭독하는 것이 아닐까요?"
"나의 불행은 거부하는 능력이 없는 자의 불행이었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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