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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달은 막일 판을 찾아 전전하는 일당 노동자다. 겨울, 하던 일이 끝날무렵, 하숙집 아낙과 붙어먹다가 남편에게 들켜 아침 댓바람에 도망쳤다. 갈 곳이 딱히 없어 길에서 서성거리고 있을 때쯤, 길을 가던 정 씨를 만난다. 정 씨 또한 영달과 같은 막노동 판에서 일했던 사람으로 서로는 앞면이 있었다. 정 씨는 능청스럽게 영달에게 아침부터 덕분에 좋은 구경했다고, 영달과 붙어먹었던 청주댁이 남편에게 죽도록 맞는 것을 보았다고 전한다.
영달은 삼포로 간다는 정씨를 무작정 따라나선다. 갈 곳이 없었던 탓이다. 가난한 그들은 버스를 타지 않고 기차역이 있는 곳으로 걸었다. 찬샘골이란 마을에 이르러 ‘서울집’이라는 대폿집겸 국밥집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아침에 도망친 술집 작부, 백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뚱보 주인 여자는 길을 떠나는 그들에게 백화를 잡아다주면 만 원을 주고 재워도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밥을 먹고 나선 길엔 함박눈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길이 끊겨 원래 목적지, 월출 가는 길을 버리고 감천으로 가는, 비교적 멀지만 눈길이 편한 쪽으로 향하던 둘은 송림 숲에서 도망친 백화와 마주친다. 셋은 동행이 되어 감천을 향하게 된다.
백화는 스물두엇된 앳된 처녀였지만 술집 작부, 창녀로 꽤 고달픈 삶의 이력을 지닌 여자였다. 열여덟에 가출해, 군대부대 근처를 전전하며 군인들을 상대해 왔던 것이다. 짓궂은 농담을 던지며 백화와 대거리하던 영달은 그녀에게 호감을 느낀다. 백화도 영달이 좋은 눈치였다.
감천에 닿자, 백화는 두 사람에게 자기 고향으로 가자고 한다. 그러나 영달과 정 씨는 같이 삼포로 가기로 한다. 영달이 비상금으로 백화에게 차표를 끊어주고 셋이 헤어질 때, 백화는 자신의 본명이 이점례라고 알려주고, 둘을 잊지 않겠다고 말하곤 떠난다.
대합실에서 쪽잠을 자고 기차를 기다리는 그들은 어떤 노인에게서 삼포가 한창 개발 중이란 말을 듣게 된다. 영달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떴지만, 정 씨는 고향을 잃은 상실감을 느낀다.
기차가 어두운 들판을 달려가기 시작하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작품은 1973년 신동아에 발표되었다. 이 소설은 한편의 그림 같은, 아니면 영상미가 아름다운 단편영화 같은 작품이다. 겨울과 눈, 회색빛이 감도는 빈 들판과 스산한 신작로를 읽는 내내 농도가 옅은 수채화, 혹은 수묵화처럼 머릿속에 그릴 수 있다. 얼어붙은 강과 갈대숲, 그리고 그 곳에 점처럼 박힌 셋. 그러나 이런 영상미와는 또 다른 사실적 대화는 섬뜻한 무게감으로 현실을 자각하게 한다.
이런 소설을 굳이 분류하자면, 여로소설이라고 한다. 풀어서 말해, 길을 가며 진행되는 소설이란 말이다. 길을 걷는다는 것에는 두 가지 요소가 내재되어있다. 여정과 목적이 그것이다. 하지만 영달은 애시당초 떠날 길이 아니었고, 정 씨는 목적지는 뚜렷했지만 목표는 없었다. 백화는 쫓기는 몸이지만 목적지와 목표가 가장 명확하다. 이런 부재와 불안정성은 소설이 품고 있는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도 감정의 공백, 허함을 느끼게 한다.
그 셋이 겨울 길 위에서 만난 설정은 한겨울의 해만큼 그들의 인연이 짧을 것이라는 암시이고 차가운 현실에 대한 상징이다. 목적지가 뚜렷한 백화는 갈보출신임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시종 당당했으며 또한 서글프다. 동생이 여럿 있다는 그녀의 말은 그녀가 입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 가출했음을 암시한다. 목적지를 무작정 고향인 삼포로 잡은 정 씨는 삼포가 대처로 변했다는 말에 당황한다. 그가 도시화, 산업화된 현장에서 좌절하고 돌아가던 참이었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그는 때 묻지 않은, 신작로가 없고, 돈이 아닌 인정으로 거래되던 옛 고향을 그리며 길을 나선 것일지도 몰랐다. 목적지가 없던 영달은 외려 공사판이 벌어졌다는 삼포소식을 반긴다. 떠돌이 막일꾼이 살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제 품을 팔아야 했다. 이런 작중 인물들의 불안은 당시의 시대현실을 강하게 반영한 것이다.
소설의 배경인 70년대는 산업화로 전통적인 농업이 급속도로 무너지고 농업인력이 도시노동자로 빠르게 전환하던 시기였다. 도시와 산업은 농촌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정 씨, 영달, 백화는 이런 전환의 시기를 힘겹게 살아낸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를 상징한다. 노동을 흡수했으되, 노동자의 권리, 인권 같은 것에 대해서는 담론이 형성되지 않았던 시기다. 말 그대로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살아야 했던 시절이다. 어디를 가나 공사판이 벌어지고 공장이 들어섰지만 어디에서나 공사판은 끝이 났고 공장은 더럽고 위험했다. 고질적인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시대였던 것이다. 그나마 일자리라도 찾을라치면 나았다. 농촌에서 떠나온 많은 사람들이 실업상태로 도시빈민을 형성했다. 도시빈민은 죽거나, 다치거나 사라진 노동력을 보충해주는 보충대 역할을 충실히 했다. 그런 피를 먹고 산업화는 자라났다.
세 사람의 내력은 다 달랐지만 가난했고 팔 것이라고는 몸뚱아리 하나 뿐이라는 점에서 꼭 닮았다. 산업화로 고향을 잃고 날품을 팔아 전전하는 삶들이 어느 함박눈이 축복처럼 펑펑 내리던 날, 길 위에서 만난다. 아름답지만 처참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각자의 길을 가고 서로를 잊지 않겠지만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그 시절은 교통도 통신도 지금처럼 발달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그들은 가난했다. 그들의 어떤 상실과 부재가 그들을 짧은 시간에 뭉치게 만들었지만, 또한 그런 상실과 부재 때문에 헤어져야 했다. 그래서 짧은 만남이 깊었어도 헤어짐은 길고도 슬플 것이다.
삼포 가는 길은 닿을 수 없는 고향을 향해 가는 정처없는 방랑의 길이다. 정 씨는 끝내 고향을 찾지 못할 것이고, 영달은 공사판이 끝나면 또 그곳을 떠날 것이다. 백화는 고향에 잘 안착했을까?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그다지 희망적이지 못하다. 삼포는 우리 사회가 선택한 어떤 것, 산업화, 자본주의를 위해 파괴된 인간성이며, 인본주의적인 이상향이 아닐까. 그래서 닿을 수 없고 다만 길 위에서 길을 가기 위해 상정된 목적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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