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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편은 제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3부 1편에서 이어지는 내용이다. 참고하시라.)
제13장 발명은 필요의 어머니
기술은 어떻게 이렇게 불균형하게 발달한 것일까? 사실 발명품은 발명가가 만들고 나서 그것의 용도를 찾아내야 했다. 그리고 대중은 상당시간 사용한 후에야 ‘필요'를 느끼게 된다. 때론 특별한 용도로 발명되었지만, 외려 예기치 못한 용도로 더 많이 사용되기도 한다. 에디슨의 축음기의 경우, 다른 사업가가 축음기를 이용해 주크박스를 만들자, 처음에 에디슨은 자신의 축음기가 음악재생에 쓰이는 걸 반대했었다. 증기기관도 단지 광산 갱도에 고인 물을 퍼내기 위해 고안되었던 장치였을 뿐이다.
기술 발달사에 와트나 에디슨 같은 천재들의 역할을 중요하게 강조하는 견해를 ‘발명의 영웅 이론'이라 하는데, 사실 순수하게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경우는 없다. 와트도 실은 토머스 뉴커먼의 증기기관을 고치던 중,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뿐이었고 에디슨의 백열전구도 이전의 것을 개량한 것에 불과했다. 두루 인정받는 유명한 발명가에게는 그만큼 유능한 선후배가 있었고 더해서 사회가 그들의 제품을 이용할 수 있는 시기에 개량했던 행운이 따랐다.
기술은 인간의 누적된 행동을 통해 발전하는 것이며, 발명된 후 그 용도가 새로 발견되는 경향성을 지니고 있다. 증류법은 이전부터 있어왔는데, 19세기 이전의 화학자들은 원유를 증류법으로 분류해 휘발성이 가장 높은 분류층을 폐기물로 내다버렸지만, 이후 그것이 내연기관의 이상적 연료라는 점이 밝혀진다.
기술은 끝까지 채택되지 못하기도 하거니와, 아주 오랫동안 저항을 겪은 후에야 채택되기도 한다. 멕시코에서 개발된 바퀴는 운송용이 아니라 장난감이었다. 수레를 끌 가축이 없었던 탓이다. 1873년 당시의 타자기가 인접한 글자를 빠르게 치면 엉켜버렸기 때문에 타이핑 속도를 늦추기 위해 고안된 쿼티자판 배열은 더 능률적인 자판배열이 발명되었음에도 여태 기득권의 자리를 누리고 있다.
각 사회가 발명품을 수용하는 차이는 왜 생기는가? 기술적 차이가 존재하므로 당연히 그에 맞게 관념적 차이가 존재할 것이라 추론하는 따위는 순환논법에 불과한 오류다. 어느 지역이든 보수적인 집단과 개방적인 집단이 있게 마련이고 이것은 또 고정불변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중세 말기에만 해도 유럽은 유라시아의 어떤 지역보다도 기술이 뒤처진 곳이었다. 어떤 대륙은 항상 혁신적이었고 어떤 대륙은 늘 보수적이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유용한 발명품이 처음 나타나면, 수용적인 사회가 그것을 채택하거나, 수용하지 못한 사회가 불리하게 되어 결국 교체당하거나, 이 두 방식 중 하나로 전파된다. 전파될 때는 또한 문자처럼 청사진 복사와 같이 이루어지거나 아이디어 자극으로 이루어진다. 제지술의 경우 제지공이 포로가 되어 이슬람에 전파된 경우로 청사진 복제로 볼 수 있겠고, 도자기는 기술이전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중국과 같은 것을 만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 결과, 유럽에서도 같은 것을 만들어낸 것으로, 후자의 아이디어 자극으로 볼 수 있는 사례다.
지리적 요인은 기술이 확산과 유지,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고립된 일본은 총기를 포기할 수 있었지만, 대륙에 있던 유럽국가는 총기를 포기한 순간, 이웃나라에 짓밟혀 버렸다. 확산은 지리적 영향을 많이 받고 확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기술을 습득하는 일이 적어지며 기존의 기술을 잃어버리는 일이 잦아진다.
기술이 스스로 자가촉매작용(스스로 촉매 작용을 일으켜 가속이 붙는 현상)을 일으키는 이유는 일을 해결하는 데는 순서가 있기 때문이다. 2000년의 청동 야금술 경험이 철물을 만들게 했던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새로운 기술과 재료들이 결합해 새 기술을 탄생시키기 때문이다. 인쇄술은 종이를 만나 꽃피게 된다.
발전의 역사에 중요한 두 차례의 도약을 말하자면 첫 번째, 50000년~10만 년 전, 현세인처럼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된 어떤 유전적 변화, 즉 진화다. 두 번째 도약은 식량 생산을 통해 정주형 생활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소유물을 축적할 수 있게 된 것을 의미한다. 이동에 구애 받지 않는 물건들을 만들 수 있게 했다. 또 식량 생산은 잉여생산물로 전문가 집단을 양성하게 만들었다. 다른 모든 요건이 동일할 때, 생산성이 높고, 면적이 넓으며 인구가 많은 지역의 기술이 가장 빠르게 발달할 수 있다.
유라시아 동서의 축은 기술 확산에도 유리해 결과적으로 가장 많은 기술을 축적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남북의 축 위에서는 위도의 장애에 막혀 원활한 전파과정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아프리카는 남북의 축에 더해 사하라 사막이라는 생태적 장애물까지 있었다. 또 인구가 많다는 것은 경쟁과 아이디어가 많다는 뜻으로 기술 발전과 혁신에 유리하다는 뜻도 되는데, 유라시아는 그점에서 또한 우연히 유리한 위치에 섰다.
이러한 요인들로 유라시아에서 총과 쇠가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것이다. 각 대륙의 면적, 인구, 확산의 난이도, 식량 생산의 출발 시기 등에서 나타난 기술 발전의 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지기 시작한다. 기술은 자가촉매 작용을 함으로. 이는 유라시아인들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들이 정착한 유라시아의 지리적 요건이 좋았던 탓이다.
제14장 평등주의부터 도둑 정치까지
지난 13000년 간의 경향은, 종교가 먼저 들어간 후, 교사, 관료, 군인, 즉 정부가 들어가거나, 정부가 먼저 힘으로 정복한 뒤 , 종교가 그것을 정당화시키거나 하는 방식으로, 조직화된 정부와 종교를 가진 집단이 유랑민과 부족민을 제거하거나 지배하는 구도로 흘러왔다. 정부와 종교의 결합은 병원균, 문자, 기술과 함께 역사를 좌우한 요인이었다.
이 책에서는 각종 사회형태를 무리band, 부족tribe, 추장사회chiefdom, 국가state의 네 가지 범주로 나누는 간단한 분류법을 사용한다.
(본 책 p.388의 표 사진)
무리 사회는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의 역사에서 물려받은 정치, 경제, 사회 조직이다. 그 이후의 모든 발전은 겨우 지난 몇만 년 사이 이루어졌다.
무리사회 다음 단계는 부족단계로, 대략 수백 명이 주로 정착생활을 하는 씨족clan 집단이다. 부족 조직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약 13000년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고 다른 지역은 그보다 늦었다. 인간이 기억하고 통제할 수 있는 최대 단위는 수백인 듯하다. 그래서 그것을 넘어서면 정치조직이 등장한다. 모르는 사람끼리의 갈등을 해결하기가 쉽잖기 때문이다. 부족엔 아직 계급이 없다.
추장사회는 바옥한 초승달지대에서 B.C.5500년 경, 중앙아메리카에서는 B.C.1000년 경에 나타난 것으로 보이는데, 규모는 부족사회보다 수십에서 수백 배 커진 형태며, 권력이 세습되기 시작하는 단계다. 재분배 경제라는 새로운 체계를 발전시키는데, 이것은 곡물 등을 거둬들여 지도자의 자의대로 나누는 방식이다. 욕심이 많은 추장이라면 개인의 치부에 많이 썼을 것이고 반대라면 많이 나눠줬을 테다. 비평등 사회에 존재하는 근본적 딜레마는 이 추장사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평민들은 어째서 도둑 정치에 당하면서 참고 있는가? 고금 막론, 도둑 정치가들은 다음 네 가지 해결책을 혼합하여 사용한다. 첫째, 대중을 무장해제하고 엘리트 계급을 육성, 무장시킨다. 둘째, 거둬들인(훔친) 공물을 대중이 좋아하는 일에 많이 사용해 재분배한다. 셋째, 무력을 독점한다. 넷째, 도둑 정치가는 도둑 정치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나 종교를 구성한다. 추장의 제정일치적 형태는 제도화된 종교의 선행 형태였다.
제도화된 종교는 도둑 정치가에게 부를 이동시키는 외에도, 유대감을 주어, 무관한 개인들이 서로 죽이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데 보탬이 되었고, 이타적인 행위의 동기를 부여하는 등의 중앙집권적 사회에 주요한 이득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국가는 이전 단계와 다르게 혈연 중심이 아니라 정치적 계열과 세력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또한 대개 여러 민족으로 구성되어 많은 언어를 사용했는데, 이런 경향은 제국에서 더욱 심화된 형태로 나타났다. 비세습제 국가도 흔했으며 세습적 계급 체제를 포기한 국가도 많았다.
추장사회와 국가는 무기류를 비롯한 기술이 더 우수하면서 인구도 더 많다는 이점 외에도 두 가지 이점이 더 있는데, 첫째, 중앙 집권화된 결정권자가 있으면 군사력과 물자가 집중된다는 점과 둘째, 종교를 퍼뜨리고 애국심을 고취시켜 구성원들의 충성을 담보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의 정복 전쟁에서 나타난 것 같은 광신적 행위가 지구상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추장사회가 생기기 시작한 이후, 특히 지난 6000년 사이 국가들이 탄생하면서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변해 갔을까? 루소의 사회계약설처럼 형성된 국가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관개나 수력관리를 위한 대규모 노동력이 필요해서란 이론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학설이다. 훨씬 보편 타당성을 가진 분명한 사실은 인구다. 집약적 식량생산과 사회적 복잡성은 자가 촉매 작용에 의해 서로 자극하는 관계다. 인구가 성장하면 사회가 복잡해지고 이는 다시 식량생산을 강화해 인구성장에 기여한다.
대규모 사회가 복잡한 중앙 집권적 사회가 되는 이유는, 무관한 사람들 사이의 갈등 해결해야 하고, 공동으로 결정을 내리기 불가능해질 정도로 집단이 커졌다는 점과 경제적으로 호혜적 형태 뿐만 아니라 재분배적 경제 형태도 반드시 필요한 점, 그리고 인구 밀도가 높아지면서 무리의 영토가 좁아져, 갈라진 상태에서는 일상이 불가능하기 때문 등이다.
이런 융합의 과정은 진화론으로 설명된다. 잘 융합하고 규모가 커진 사회가 그렇지 못한 사회와의 경쟁에서 이긴 것이다. 여러 사회가 융합될 때 대부분의 경우 전쟁이나 전쟁의 위협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전쟁은 사실상 인류 역사에 언제나 존재했던 불변요소다. 패배한 사람들의 운명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하나. 쫓겨난다. 둘. 전멸당한다. 셋. 노예화된다.
이제 제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의 3부까지를 살펴보았다. 지배하는 문명이 가졌던 이점들에 대한 분석이었다. 지배하는 문명들은 공통적으로, 가축화를 통해 균을 얻었고, 문자를 통해 정보를 쉽게 전달, 공유했으며, 오랜 정착생활로 누적된 기술로 많은 발명품을 만들었고, 중앙집권적 정치제도를 발전시켰다는 것 등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는 유라시아인들이 뛰어나서 지배하는 문명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연히 정착한 유라시아의 지리적 요건이 식량 생산에 적합했던 행운에 의해서라는 말이다. 동의하는가? 자, 이제 마지막 4부를 함께 탐독해 보도록 하자.
(4부 1편으로 이어집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4부 1편
[제4부 인류사의 발전적 연구 과제와 방향] 제15장 대륙 간 불균형 이론과 원주민들이 낙후된 원인 약 4만 년 전만 해도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사회는 다른 인간 사회보다 발전된 사회였다. 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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