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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부 식량생산의 기원과 문명의 교차로]

    제4장 식량생산의 기원

    몇몇 민족이 식량생산을 시작한 것은 약 11000년 전 즈음이다. 식량 생산은 간접적으로 총기, 병원균, 쇠가 발전하는 선행조건이다. 소비할 수 있는 열량이 많고 정착 생활을 할 수록 인구가 늘고 조밀해진다. 이는 수렵 채집민보다 군사적으로 이점이 된다. 식량을 저장하는 것은 사회조직의 발전을 촉진한다. 비생산인구가 생기고 사회정치적 조직, 계급이 나뉜다. 

    더해서 농작물과 가축에서는 천연 섬유가 나온다. 가축화된 대형 포유류는 철도이전 가장 중요한 이동수단이었다. 말은 전쟁의 양상을 바꾸어놓기도 했다. 정복전쟁에서 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가축화된 동물과 더불어 인간 사회에서 진화한 병원균이었다. 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 등의 전염병은 동물에서 유래되었다.

     

    제5장 인류 역사가 갈라놓은 유산자와 무산자

    농업이 오히려 농업한계선에 가까운 듯한 지역에서 제일 먼저 시작되었고 오늘날 가장 비옥한 농경지나 목축지에서는 늦어진 이유는 무얼까? 농업이나 가축화의 전파 또한 불균형이 많았다. 이는 어떤 민족은 무산자가 되고 어떤 민족은 유산자가 되는 분수령이 되었다.

    고고학자들은 유적지에서 발견한 탄소가 함유된 물질에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을 사용하여 식량생산 연대를 추정한다. 식물의 탄소는 먹이사슬을 따라 이동한다. 해당 개체가 죽으면 탄소14가 붕괴되어 탄소 12로 바뀌기 시작, 약 5700년마다 그 함유량이 반으로 줄어든다. 고고학자들은 탄소 14와 12의 비율을 보고 연대를 계산해 낸다. 이도 기술의 발달로 종전의 연구와 다른 연대가 근래 속속 밝혀지고 있는데, 이를 보정연대라 한다. 본서는 보정연대를 기준으로 한다.

    연대를 식별했다면 원산지, 유래, 전파과정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 첫 번째는 지리적 분포도를 검토하고 가축화, 작물화는 그 야생 조상이 있었던 지역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라 추론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지역에서 가축화, 작물화 형태가 처음 나타나는 연대를 지도에 표시해 보는 것이다. 중심부와 주변부가 나타나면 거의 확실하다. 그러나 동일한 동식물이 몇몇 장소에서 독립적으로 길러진 경우에는 복잡해진다. 독립적으로 이루어진 형태학적, 유전적 차이나 염색체 차이까지 분석해야 한다. 

    다섯 지역, 비옥한 초승달지대라 불리는 서남아시아, 중국,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산맥 일대와 아마존 강 유역, 미국동부 등이 독립적으로 가축화, 작물화가 발생한 확실한 지역이다. 이런 곳에서 창시된 창시작물이 도착한 후, 지역적으로 자생하던 토종동식물을 가축화, 작물화한 지역도 많다. 에티오피아의 커피가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농경의 확산에서, 수렵, 채집민들이 창시작물을 가져와 농경민이 된 것일까? 아니면 농경민들이 창시 동식물을 가지고 쳐들어와 수렵, 채집민을 대체한 것일까? 이집트와 유럽은 전자로 보이고, 아메리카 대륙과 오스트레일리아, 시베리아 등은 후자다. 후자는 거개, 유럽인종으로 대체되었다. 

    이와 같이 외부 가축 작물에 의존하는 식량 생산이 갑작스럽게 시작되고 인구가 대량으로 교체되는 현상은 선사시대에도 많은 지역에서 나타났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자로 남은 증거가 없기 때문에 고고학적 증거나 언어적 증거들로 증명해야 한다.

    아무튼 그렇게 식량생산을 일찍 시작한 지역의 민족들은 총기, 병원균, 쇠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일찍 출발한 셈이고 그렇지 못한 지역은 뒤처지게 되었다. 그결과는 역사의 유산자와 무산자의 수많은 충돌이었다.

     

    제6장 식량 생산민과 수렵 채집민의 경쟁력 차이 

    어째서 비슷한 환경도 많은데, 비옥한 초승달지대에서만, 그것도 유독 B.C. 8500년 경에 식량생산이 시작된 것일까? 전 세계 식량생산자의 대다수는 수렵, 채집민들보다 편안하게 산다고 말하기 어려운데 어째서 농경은 유지되고 전파된 것일까? 

    식량생산이 발견되거나 발명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식량생산은 여러 실험들 중에 나타난 하나의 부산물로서 ‘진화’되었던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해서 왜 식량생산이 진화했고, 또 어떤 곳에서는 진화했고 어떤 곳에서는 진화되지 못했는지, 지역편차는 왜 생긴 것인지 물어야 맞다. 더해, 유랑형 수렵 채집민과 정주형의 식량 생산자가 명확히 갈린다고 생각하는 것도 오해다. 초기 풍요로운 지역의 채집민들은 본시 정주했다. 반대로 이동하며 농경생활을 하는 무리도 없지 않았다. 수렵 채집민 중에서도 야생 먹거리 작물을 잘 관리해 생산량을 늘리는 사례도 많았다. 

    수렵 채집과 농경은 바로 교체된 것이 아니라 공존하며 사람의 필요에 따라 취사선택되었다. 많은 요소들이 고려되었을 것이고 조금 더 안정적인 보상이 주어지는 방향으로 변화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의식적으로 농경을 시작할 수 있었던 때는 최초의 농경이 시작된 이후일 것이다. 이웃한 집단은 전적으로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거나, 일부만 받아들였다. 어떤 경우엔 농경을 받아들였다가 다시 수렵 채집민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식량 생산과 수렵 채집은 서로 경쟁하는 ‘대안적 방식’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난 1만 년 동안 나타난 지배적인 경향은 수렵 채집이 식량 생산으로 전환되는 것이었다. 식량 생산이 경쟁력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왜일까? 첫 째, 야생 먹거리가 감소했다. 기후 변화든, 남획이든, 멸종하는 동물군이 생긴다. 두 번째, 작물화할 수 있는 야생 식물이 증가했다. 세 번째, 야생 먹거리를 채집하거나 가공, 저장하는 등 식량생산 기술의 발전이 따랐다. 네 번째, 인구 밀도의 증가와 상호작용이다. 이는 일방의 선행관계가 아니라 양방향으로 보고 있다. 식량 생산의 도입은 ‘자기 촉매 작용’이다. 

    왜 B.C. 8500년 경이었는가는 해명된다. 그 전에는 수렵 채집의 보상이 더 컸다. 인구의 요인 같은 경우 수렵 채집민을 몰아내는 주요 요인이다. 그 결과 식량생산에 적합한 지역에 사는 수렵 채집민은 쫓겨나든지, 스스로 식량을 생산하든지 두 가지 선택지 밖에 없었다. 특별히 고립된 지역이 아니고서는 이러한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제7장 야생 먹거리의 작물화

    떡갈나무는 맛있는 도토리를 생산하지만 작물화되지 않았다. 그런데 야생에서 독성이 있어 위험한 아몬드는 외려 독성까지 없애면서 작물화시켰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식물은 발이 없다. 그래서 동물이 씨를 대신 퍼뜨려줘야 한다. 그래서 맛있는 과육, 먹음직스러운 색깔을 진화시켰다. 무수한 식물이 특정 동물에 의존해 번식하도록 적응했다. 인간에 작물화된 식물은 번식에 인간을 이용하도록 진화한 식물들이다. 인간으로서는 무의식적인 작물화였던 것이다.

    우리가 보통 채집을 상상해 볼 때, 같은 딸기 덤불이라도 많이 달린 개체, 맛있게 보이는 개체를 찾아 채집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농작물이 된 작물들은 야생의 같은 종보다 수확성이 좋은 개체다. 독성이나 쓴 맛도 마찬가지다. 우연히 독성이 없는 개체가 나타나고 그것을 아주 우연한 기회에 인간이 발견한 것뿐이다. 아몬드 뿐만 아니라 리마콩, 수박, 감자, 가지, 양배추를 비롯한 많은 농작물들도 그 야생 조상은 쓴맛이 나거나 독성이 있었다.

    수확과 관련된 편의, 보관의 편의성 등으로 인간이 선택한 종은, 야생에서의 자연선택과는 정반대로 흐른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콩은 깍지가 스스로 터지지 않는 개체라야 인간에게 유리했다. 또 야생상태의 한해살이풀의 경우 종자가 한꺼번에 발아되지 않도록 진화했다. 지역을 벗어날 기회를 늘리고 또 갑자기 닥쳐올지도 모르는 천재지변을 이겨내기 위한 자연선택이었다. 그런데 이런 경우 매해 파종을 해야하는 인간에게 좋지 않았다. 그래서 매해 발아하는 돌연변이가 인간에게 선택되었다. 그러니까 농경민들이 작물을 선택하는 기준은 다만 맛이나 크기, 색깔만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적응한 작물은 인간이 조성한 인공적인 환경에서 또다른 진화를 겪는다.

    처음에는 야생상태에서 먹을 수 있고 수확량도 많았던 밀, 보리, 콩 같은 식물이 작물화되었다. 저장도 간단하고 자화수분 식물이라, 이점이 많은 돌연변이가 희석되지도 않았다. 그 야생조상들은 약간의 변이만으로 작물이 될 수 있었다. 

    다음 단계는 과실수와 견과수다. 올리브, 무화과, 대추야자, 석류, 포도 등이었다. 곡류나 콩류에 비해 수확기도 오래 기다려야 하는 작물이다. 정착한 무리만이 재배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도 이 나무들은 수월한 편이다. 땅에 직접 꺾꽂이를 하거나 씨앗을 심는 것만으로 재배가 가능했다. 

    그 다음 단계는 사과, 배, 서양자두, 체리 같은 재배가 어려운 과실수다. 이 나무들은 꺾꽂이가 안 된다. 그리고 종자재배 시도도 헛수고다. 중국에서 개발된 접목법이란 까다로운 기술이 투여된다. 재배가 늦어진 과실수들은 그 야생 조상이 자화 수분 식물과는 전혀 달랐다. 

    콩과 곡류가 함께 나타나는 이유는 곡류에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서다. 곡류와 콩류는 균형식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많은 식량 생산 지역에서 토종 곡류와 콩류가 결합된 형태의 작물화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식량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한데도 끝내 작물화하지 못한 야생 식물도 많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앞서 언급한 떡갈나무가 대표적이다. 첫 째, 떡갈나무는 생장이 너무 느리다. 둘 째, 떡갈나무는 원래 다람쥐에게 알맞게 진화했다. 마지막으로, 떡갈나무에는 쓴맛을 조절하는 유전자가 여러 개인 듯하다. 우연히 쓴맛이 없는 도토리를 심어도 다시 쓴맛이 나는 도토리가 열린다. 

    다윈은 그의 위대한 저서 <종의 기원>에서

    “하찮은 재료를 가지고 그토록 기막힌 결과를 빚어낸 원예가들의 솜씨에 크나큰 놀라움을 표시하는 원예 서적을 많이 보았다. 그러나 그 기술은 사실상 간단한 것이고 마지막 결과를 놓고 본다면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예외 없이 처음에는 가장 잘 알려진 변종을 재배하다가 그 종자를 뿌렸을 때 약간 더 나은 변종이 나타나면 다시 그것을 선택하는 식으로 되풀이했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말한다. 




    넓은 바다를 항해하다보면 방향감각을 상실할 때가 많다. 그래서 잠시 환기시키자면, ‘총, 균, 쇠’는 인류가 어째서 지역별, 민족별로 고르게 발전하지 못하고 차등적으로 발전했는지, 그것이 민족적 특질인지, 아니면 환경과 결합한 우연의 결과인지를 탐구하는 인류사학 서적이다. 지금 2부는 인류의 식량생산 시작을 탐구하는 큰 단락이다. 다음 편까지 2부의 내용이 이어진다. 

    (2부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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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2부 2편

    (이 편의 내용은 ‘총, 균, 쇠’의 2부, 식량 생산의 기원과 문명의 교차로에 속하는 내용으로 필자의 글,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2부 1편에서 이어지는 내용이다. 읽는 데 참고 바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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