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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의 내용은 ‘총, 균, 쇠’의 2부, 식량 생산의 기원과 문명의 교차로에 속하는 내용으로 필자의 글,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2부 1편에서 이어지는 내용이다. 읽는 데 참고 바란다.)
제8장 작물화하는 데 적합한 식물의 식별과 성패의 원인
비슷한 조건에서 어떤 곳에서는 농경이 시작되고 다른 곳에서는 시작되지 못한 탓은 사람 탓일까? 그곳의 야생 식물 탓이였을까? 총 20만 종의 야생 식물 중에서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수천 종에 불과하고 현대 세계의 농작물 중, 연평균 총생산량의 80%를 차지하는 농작물은 고작 12종이다. 이 종들은 이미 수천 년 전에 작물화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세계의 많은 지역에 탁월한 야생 식물품종이 없었다는 가설도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어째서 똑같이 자생하던 야생 식물을 비옥한 초승달지대에서는 작물화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그러지 못했는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그러나 이런 논의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데, 어떤 한 지역의 전체 식물군에서 작물화 가능성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의 문제다. 정주할 수 있는 곡물이 재배되지 못하면 사과 같은 과실수는 재배가 불가능하다. 과연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식물군은 어떤 이점이 있었던 것일까?
현대 세계의 기원을 이해하려면 비옥한 초승달 지대(서남아시아의 고지대로 초승달 모양으로 생겼다.)에서는 동식물의 가축화, 작물화가 왜 그렇게 빨랐느냐 하는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첫째, 이 지역은 겨울에는 온난 다습하고 여름은 길며 덥고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대에 속하는데, 이 같은 기후는 긴 건조기에도 살아남았다가 다시 비가 내리면 재빨리 성장을 재개할 수 있는, 즉 인간에게 유용한 방향으로 식물을 진화시켰다. 둘째, 그 야생 조상이 이미 풍부하고 생산성이 높았기에,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일부 수렵 채집민들은 식물을 재배하기 전부터 정착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세째, 여기에는 자웅 동주형 제꽃가루받이(자화수분)식물의 비율이 높아 농작물로써의 이점이 사라지지 않았다.
기후대는 비옥한 초승달지대와 비슷한 곳이 많이 있지만 이처럼 너르게 분포된 곳은 없었다. 기후변화가 크고 저지대와 고지대가 고르게 분포되어 식물들의 진화를 촉진했다. 종자가 큰 56종의 볏과 식물 중 32종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또 가축화된 대형 포유류의 야생 조상도 이 지역에 풍부했다. 더해 또 하나의 이유를 들자면 이곳은 큰 강이 별로 없고 해안선도 짧았으며 가젤은 남획되어 수가 줄어들어 수렵 채집생활의 경쟁력이 약했졌으리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사람 간의 우열은 없었을까? 적어도 그런 증거는 발견되지 않는다. 민족생태학에 따르면 아직도 수렵 채집민으로 남은 민족들은 걸어다니는 자연사 백과사전이라 이를 만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야생종의 특질을 모르고 가능성을 놓쳤을 확율은 매우 낮다. 실제 텔 아부 후레이라라는 선사시대 수렵 채집민의 생활터에서 발견된 곡물의 종류는 157종이나 된다. 따라서 그들이 작물화에 적합한 야생 식물종을 재배하지 않고 빠뜨렸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지금까지의 논의에도 불구하고 어떤 문화적 요인 때문에 활용되지 않은 식물이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은 쉽게 거둘 수 없다. 뉴기니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수렵 채집민들처럼 독립적인 식량 생산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뉴기니에는 가축화, 작물화할 수 있는 곡류, 콩류, 동물이 없었다. 뉴기니의 식량 생산에 한계가 있었던 것은 뉴기니인의 탓이 아닌, 뉴기니의 생물상(한 지역이나 시대의 동식물 전체)과 환경 때문이다. 미국 동부 아메리카 원주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대 과학으로도 북아메리카의 야생 식물을 작물화하는 데는 별 소득을 올릴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미국 동부 인구 폭증 시기는 멕시코산 3대작물(옥수수, 누에콩, 호박)을 들여온 이후인 A.D.900년 대 이후가 된다. 구대륙에 비해 너무 늦었다.
그러면 다시 묻는다.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북아메리카산 사과를 작물화하지 못한 이유가 인디언 때문이었느냐, 아니면 사과 때문이었느냐를. 둘 다 아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주어진 야생 동식물 전체의 문제였다. 그 동식물들이 가축화, 작물화에 그다지 유망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따름이다.
제9장 선택된 가축화와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은 모두 엇비슷하고 가축화할 수 없는 동물은 가축화할 수 없는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이는 톨스토이의 <안나 케레니나>의 유명한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라는 첫 문장과 아주 비슷하다.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은 어떤 중요한 성공을 거두려면 우선 수많은 실패 원인들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제 사과냐, 인디언이냐에서 얼룩말이냐, 아프리카 원주민이냐의 문제로 넘어간다. (작은 포유류나 조류 등은 대형 포유류에 비해 인류사에 미친 영향이 지극히 적다. 그래서 이 장에서는 논외로 한다.)
체중 45키로 이상의 대형 육서 포유류 중, 20세기 이전에 가축화된 종은 14종에 불과하다. 이 고대 14종 중에서도 9종(낙타류, 라마, 순록 등)이 지구상의 한정된 지역에서만 중요한 가축이므로, 전세계에 두루 퍼진 중요 가축은 소, 양, 염소, 돼지, 말, 이 5종 뿐이란 결론이 나온다. 코끼리를 떠올리지는 마시라. 코끼리는 길들여지기는 했지만 ‘가축화’되지는 않았다. 감금 상태에서 인간의 용도에 알맞도록 번식시킬 수 있어야 가축이라 이른다. 인간의 선택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이 가축들이 진화하도록 촉진시켰다.
고대 14종 중 13종이 모두 유라시아의 야생 조상에서 나왔다. 야생 조상종의 이런 쏠림은 다른 대륙이 아니라 유라시아 사람들이 총기, 병원균, 쇠를 갖게 한 중요한 요인이다. 이런 쏠림의 이유는 우선 이 지역에 대형 야생 육서 포유류의 종수가 가장 많았다는 점에 기인한다. 가축화 후보종은 평균 45키로를 넘는 초식성 또는 잡식성의(그러나 초식위주의) 육서 포유류가 모두 포함된다. 유라시아는 그런 후보종이 72종이나 된다. 다른 이유 없다. 유라시아가 가정 크기 때문에 여러 생태학적 서식지가 있었던 탓이다. 아메리카 대륙에는 많은 후보가 있었지만 선사시대 인간이 아메리카대륙에 닿은 무렵, 멸종했다. 눈여겨 볼 것은 유라시아가 52종의 후보종이 있는 아프리카에 비해 가축화 비율도 압도적으로 높은 점이다.
그래서 비유라시아인들이 가축화에 어떤 문화적 장애를 가지고 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절대 아니다. 왜냐면, 첫째, 가축을 일단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무섭게 현지화시켰다. 둘째, 인간은 애완동물을 기르고 싶어하는 보편적 경향이 있다. 세째, 고대 14종은 신속하게 가축화된 점이다. 이미 사실상 대형 포유류의 가축화는 4500년 전에 이미 끝났다. 네째, 그 중의 일부는 여러 곳에서 되풀이 되어 독립적으로 가축화 되었다는 것이다. 인도의 혹등소와 혹이 없는 유럽소, 여러 대륙에서 이리를 길들여 가축화한 개가 그 예다. 다섯째, 새로운 가축의 개발은 현대에 들어서도 제한적인 성공밖에 거두지 못했다. 그렇다면 역으로 고대인의 어떤 단점이 문제가 아니라 야생 후보종들의 단점 때문으로 봐야 타당할 것이다. 유럽인의 가축화 전통은 일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그 유럽인들이 새로운 대륙에서 발견한 대형 포유류를 다시금 가축화에 성공시키지는 못했다.
148종의 후보종 중, 탈락한 134종은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에 부합된다. 가축화 실패의 원인은 최소 6가지다. 첫째, 식성이다. 어떤 동물이 식물이든, 다른 동물이든 먹을 때 환원 효율이 관건이다. 둘째, 성장 속도가 빨라야 사육할 가치가 있다. 세째, 감금 상태에서 번식을 잘 하느냐다. 치타의 복잡한 구애와 교미과정은 사육에 알맞지 않다. 네째, 온순한 성격이어야 한다. 회색곰은 잘 자라서, 770킬로그람까지 나가며 주로 초식을 한다. 그러나 회색곰은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는 힘과 광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또 얼룩말은 사람을 잘 문다고 한다. 다섯째, 겁을 너무 많이 먹는 종은 또 안 된다. 발광하다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여섯째, 사회적 특성을 가진 동물이어야 한다. 무리 속의 사회적 위계 질서를 인간이 물려받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유럽사회가 대단히 유리해진 것은 첫째, 유라시아의 넓은 면적과 생태학적 다양성 때문에 가축화 후보종 수가 가장 많았던 덕이다. 둘째, 어떤 이유에서 건, 다른 대륙이 겪은 대형 포유류의 멸종이 없었다. 그 멸종된 동물은, 그들의 생물 진화사에서 인간을 너무 늦게 만났던 탓이다. 세째, 유라시아에 가축화에 적합한 동물 비율이 높았다.
제10장 대륙의 축으로 돈 역사의 수레바퀴
남북아메리카의 주요 축은 남북방향이다. 아프리카도 마찬가지다. 이와 대조적으로 유라시아의 축은 동서방향이다. 식량 생산은 동서 축 방향으로 가장 신속하게 전파되었다. 그와 반대로 식량 생산이 가장 느리게 전파되었던 것은 남북 축의 방향이다. 해서 유라시아에서는 한 작물의 작물화가 단 1회로 끝났음에 비해 남북아메리카에서는 흔히 여러 번 작물화가 이루어지는 비효율을 겪는다.
B.C.8000년에서 조금 앞선 시기에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식량 생산이 시작된 후, 얼마 안 되어 식량 생산은 주변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가축과 농작물이 전해진 뒤에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나 그 부근에서 발명된 바퀴, 문자, 금속 기술, 젖 짜기, 과실수, 맥주와 포도주 제조 기술 등이 따라왔다. 이런 신속한 전파는 이 지대 안팎의 동일한 야생 조상이 다시 작물화될 수 있는 가능성들을 모두 견제했다.
유라시아와 같이 비슷한 위도상에 동서로 늘어서 있는 지역들은 작물화, 가축화 등, 문물 전파에 빨랐다. 낮 길이와 계절이 같고, 기후도 비슷하니, 생물 군계 등도 비슷한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동서로 6400키로 떨어진 곳이 남쪽으로 겨우 1600키로 떨어진 지역보다 기후가 더 비슷하다. 위도는 기후, 성장 조건, 식량 생산 전파의 난이도를 결정하는 주된 요소다. 따라서 특정 기후에 적응한 동식물이 위도를 바꿔 남북의 축을 따라 이동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이런 이유로 역사의 수레바퀴는 남북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남북의 축이 아닌 유라시아의 동서 축을 중심으로 회전했다.
이것으로 2부 내용 요약은 모두 끝났다. 어떻게 서남아시아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농업이 시작되었고 동물의 가축화가 진행되었으며, 전 유라시아가 어째서 유독 빠르게 농경화가 될 수 있었는지 알아보았다. 충분히 이해하셨는지 모르겠다. 상당히 긴 글을 중요한 내용만 골라 요약했기 때문에 조금은 어렵게 느껴지실 수도 있겠다. 이는 오롯이 필자의 모자란 전달력 탓이라 여기고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어쨌든 이렇게 총과 균과 쇠를 발전시킬 주요한 물적 토대를 완성한 고대의 유라시아가 앞으로 문명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아갔는지, 다음에 이어지는 3부에서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3부 1편으로 이어집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3부 1편
[제3부 지배하는 문명, 지배받는 문명] 제11장 가축의 치명적 대가, 세균이 준 사악한 선물 인류 근대사의 주요 사망원인이었던 천연두, 인플루엔자, 결핵, 말라리아, 페스트, 홍역, 콜레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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