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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니만 사람이냐!
시월, 안창민은 작전 수행 후, 비밀 비트에서 염상진을 만납니다. 조직개편의 의의와 윤곽을 간략하게 듣습니다. 염상진은 정치위원이 되어 있었습니다. 율어에 풍년이 듭니다.
시위대 백여 명을 검거한 뒤 백남식은 주모자 색출에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사이 이지숙은 신 씨네 작인들과 부녀자를 동원한 석방시위를 계획합니다. 다시 사백여 명의 여자들이 석방시위를 벌입니다. 권 서장이 시위자를 석방하기로 발표합니다. 그러나 김종연, 유동수 등의 주모자들은 이미 순천으로 넘겨져 버리고 없었습니다.
중도방죽의 땅 육만 평을 사들인 정현동은 발동기로 바닷물을 퍼 올렸습니다. 염전허가를 위해 우선 바닷물을 채워야 했던 것이죠. 들에 있던 소작인들이 모여들어 땅이 팔린 것을 확인하고 살려 달라 애원합니다만 정현동은 모지락스럽게 내칩니다. 한 소작인이 벼베기하던 낫으로 정현동을 난자해 죽여 버립니다. 발동기도 엎어버립니다.
2. 접선 실패
감골댁은 아들 고두만에게서 돌아온 며느리를 늙은 오빠 집에 맡깁니다. 백남식이 며느리가 돌아오면 데리고 오라고 을렀기 때문입니다. 정작 백남식은 다른 일이 많이 터져 그 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순덕이는 경찰서에서 알아낸 심재모의 주소지를 찾아 몰래 동네를 떠났습니다. 순덕의 어미, 나주댁은 며칠 정님이를 들볶았지만 정님은 모른다고 잡아뗐습니다. 하섭을 생각하다가 정님은 흉하게 죽은 정현동을 생각합니다. 한편 정하섭은 서울에서 형사들에게 쫓기고 있었습니다. 도당에서 중앙당으로 보내는 비밀문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접선 직전 위험을 감지한 접선자가 신호를 보냈고 정하섭은 그대로 달아납니다. 조직이 점점 노출되고 위험해지고 있었습니다.
하대치가 쌀을 나르고 돌아와 염상진의 명령을 전달합니다. 중대장 급으로 강동식 외 두 명을 차출해서 보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강동식은 명령을 듣고 떠나기 전, 염상구를 제거하기 위해 강동기와 은밀히 계획을 짭니다.
3. 두 형제의 야행
김범우는 아버지 김사용이 위급하단 전보를 받고 벌교로 내려옵니다. 대행히 김사용은 회복 중이었습니다. 염상구는 김범우가 온 것을 보고 손승호가 김범우에게 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 백남식에게 제보합니다. 백남식과 과히 유쾌하지 않은 면담을 마치고 김범우는 돌아갑니다. 염상구는 강동식, 강동기의 기습을 받았지만 치명상을 입지 않았고 강동식은 가슴에 총을 맞아 죽고 맙니다.
김범우는 순천으로 가 집행유예로 풀려난 법일 스님을 만납니다. 법일이 이학송의 과거를 말해줍니다. 강진에서 해방직후 자치대를 이끌면서 가장 악질이던 친일파 두 명을 처단하고 다시 친일파가 득세하자, 서울로 달아난 것이라고 합니다.
4. 태백산맥에 내린 소개령
심재모는 단양에서 소개 작전에 투입되어 있었습니다. 소개 작전은 막무가내였고 일방적이었으며 대책이 따로 없었습니다. 추운 겨울 집에서 쫓겨난 산골 사람들과 행정의 충돌은 불가피했습니다. 동계대공세에 맞춰 심재모도 하는 수 없이 우격다짐을 하게 되지만 착잡합니다. 소개시킨 집은 다 불태워졌습니다. 심재모의 또 다른 고민은 자신을 불쑥 찾아온 순덕이었습니다.
지리산지구에서도 소개 작전이 한창이었습니다. 겨울자체가 무서운 적이 되리라 생각하던 염상진은 부하의 보고를 받고 즉시 소개가 일어나고 있는 마을로 달려갔지만 이미 집은 불타고 있었습니다. 버리고 간 닭과 무 등을 노획해 돌아갑니다.
벌교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인근에 야산대가 있는 산골마을 사람들이 대책도 없이 허술한 천막에서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외서댁이 아들을 출산합니다. 밤골댁은 밤에 아이를 안고 호산댁을 찾아가 아이를 넘깁니다. 호산댁이 병원에 있는 염상구에게 말을 전하자 의외로 선선이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입니다. 염상구가 일말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퇴원하자마자 외서댁을 찾아가 장사밑천이라도 대겠다는 말을 전합니다.
5. 소화의 씻김굿
정현동의 사십구제에 씻김굿을 하게 된 소화를 이지숙이 찾아와 손대잡이를 할 때 정현동이 사들인 땅을 소작인들에게 제대로 나누어주란 이야기를 섞어 달라 부탁하고 소화는 그렇게 하겠노라고 답합니다.
(손대잡이: 진도 씻김굿의 한 절차. 죽은 이의 가족이나 친척에게 내림대를 잡혀 넋이 내리도록 하여 이승에서의 원한을 듣게 하는 것을 이릅니다.)
소화의 씻김굿이 차례로 서술됩니다. 이 부분은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상세한 묘사가 걸작일뿐더러 작가의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소화는 이지숙의 부탁을 잘 수행합니다. 낙안댁은 그 일을 소화가 굿판에서 이야기한 대로 시행합니다.
씻김굿으로 땅을 받게 된 작인들이 소화에게 시루떡을 해왔습니다. 같이 있던 이지숙은 잡혀들어 간 열두 명에게도 이런 생각을 하라 조언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일을 벌였기에 이런 일도 생긴 것이니 마음을 모아 변호사를 붙여주라고 한 것입니다. 들몰댁은 그 시간 친정에 갔습니다. 동생 서인출이 지난 시위주모자로 순천으로 넘어가 있었기 때문이었죠.
백남식은 조성의 부하 셋이 탈영한 보고를 받고 열이 뻗쳤습니다. 그들은 오판돌의 선을 따라 율어로 들어간 좌익사상을 가진 사병들이었습니다. 야산대(빨치산) 지역사령부는 보성군당에 지역별 독립투쟁을 하되, 율어를 비우라고 지시합니다.
6. 산중의 엄동설한
12월 8일 백남식의 계엄군과 각 읍면 경찰, 청년단 까지 율어로 협공작전을 개시합니다. 이미 비어있던 율어를 싱겁게 장악한 백남식은 권 서장의 권고를 따라 면민들에게 유화책을 씁니다. 그러나 지주들은 그렇지 않았죠. 이 년 치의 소작료를 내라고 윤삼걸 등이 닦달했지만 안창민의 지시대로 작인들은 좌익들이 다 가져갔다고 발뺌합니다. 집뒤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미 비밀장소에 숨겼기 때문이었습니다.
1월 산중의 추위는 절정이었습니다. 사상자와 이탈자가 늘고 있어 염상진의 고민은 깊어갔습니다. 위장자수나 위장전향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며칠 지나 염상진은 도당이 장흥 유치구로 이동한다는 연락을 받습니다. 상황이 더욱 안 좋아진 것이었습니다.
7. 소작인의 의지
보성군경찰 서장으로 와있던 남인태는 율어지서장 자리를 놓고 인사청탁의 대가로 짭짤한 수익을 올립니다. 자신이 광양에서 나오기 위해 썼던 돈을 벌충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위험지구가 된 율어로 아무도 들어가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근술 지서장이 자원하고 나섭니다. 이근술은 일정 때부터 순사를 했지만 해방 후 해코지를 전혀 당하지 않을 만큼 어질고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서민영은 순천에서 기차를 타고 넘어오면서 정현동 살인사건 재판을 생각합니다. 살인한 당사자 사형에 나머지는 오년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염상구는 외서댁에게 쌀 열 가마니 값을 줘 아이와 장흥으로 갈 수 있도록 길을 터줬습니다.
미국 국무장관 애치슨이 선언을 발표합니다. 애치슨 선언은 미국의 극동방위선에서 한반도를 제외한 선언이었습니다. 이에 벌교 지주들은 미국이 지켜주지 않으면 빨갱이 세상이 될 거라며 흥분합니다.
김종연과 서인출 등 일곱은 삼 개월 만에 집행유예로 풀려납니다. 단순 소작쟁의에 이렇게 시일을 끈 것은 일종의 경고요, 억압이었습니다. 더 강한 결기로 뭉친 김종연과 서인출, 유동수는 다른 작인들을 선동합니다. 오동평이 구슬려보려고 들지만 이들은 끝까지 지주와 싸우겠다고 선언합니다.
8. 어떤 여자빨치산의 죽음
심재모는 웃으면서 죽어간 여자빨치산 시체를 살펴봅니다. 조선공산당사를 품에 안고 죽은 그녀에게서 묘한 압박감을 느낍니다.
염상진은 도당의 지령을 받고 도당을 구하기 위해 갑니다. 그곳에서 부상당한 정하섭을 만납니다. 백운산으로 이동하다가 조계산지구에서 정하섭을 하대치에게 넘깁니다. 하대치는 소화에게 정하섭을 보냅니다. 소화는 염상진의 편지를 들고 전 원장을 찾아갑니다. 이틀 후, 1950년 2월 5일 계엄이 해제됩니다.
계엄해제로 벌교읍내는 예전의 활기를 되찾습니다. 옥산비트에서 안창민과 염상진은 도당회의 결과를 공유합니다. 적극적인 공세가 아닌 조직의 유지를 최우선으로 정한 방침이었습니다.
광조는 베틀에 앉은 죽산댁을 졸라 무를 하나 덕순과 나눠먹습니다.
남양댁(강동기의 아내)은 설을 맞아 내색 한번 없이 두 마지기 농사를 나줘 짓고 타작까지 해서 마루에 부려놓았던 김복동, 마삼수의 집에 인사차 찾아갑니다. 고무신 사간 것도 타박할 정도로 속 깊고 의리가 깊었습니다. 남양댁과 목골댁(마삼수의 처)의 대화를 통해 청년단 등이 강압으로 보도연맹원을 모집하고 있단 것을 보여줍니다. 그 시기까지 보도연맹에 가입된 사람의 수는 전국적으로 삼십만 명을 헤아렸습니다.
2월 10일에 공포된 법에 따라 벌교도 농지위원회를 꾸리느라 분주했습니다. 먼저 나선 것은 두말 할 나위 없이 지주들이었죠. 지주들과 술자리를 갖던 읍장 이병주는 이미 실패한 농지개혁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9. 민중의 승리, 2대 국회의원 선거
숱한 전설을 만들어내었던 남로당 최고위급 간부, 김삼룡과 이주하가 검거되었습니다. 이것은 조직내부의 배신으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남은 전설은 지리산의 이현상 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문학가동맹 가입이 빌미가 되어 이학송도 체포됩니다. 고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예당댁의 남편은 정현동 살해혐의로 사형됩니다. 초상이 치러지던 4월, 분배예정통지서가 소작인들에게 날라듭니다. 이미 지주들이 빼돌린 토지가 많아 분배 토지는 적었고 그마저도 소작 짓고 있던 땅이 아닌 다른 땅을 분배하기로 되어있어 불만이 높아졌지만, 관의 입장은 역시 단호했습니다. 이마저도 혜택을 못 보는 머슴들의 불만은 높아만 갔습니다. 농지값은 평년작 생산량의 한 배 반을 오 년간 분할상환하고, 정부는 지주들에게 같은 금액의 지가증권을 교부하기로한 유상몰수, 유상분배의 농지개혁은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양효석은 1년 후배로 사관학교에 들어온 현오봉이 적응을 못하자 을러대고 달래 마음을 다잡게 합니다. 송성일의 누나 송경희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보내 약속을 잡고 반도호텔로 가지만 보부상집안인 양효석을 송경희는 무시하며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합니다. 양효석은 뿌드득 이를 갑니다.
하섭은 한 달여 간 소화네에서 치료를 받고 떠났습니다. 전 원장과 간호사가 고생을 마다 않고 도와주었습니다.
하대치와 안창민은 보급을 위해 징광산으로 향하다가 전향을 종용하는 삐라를 뿌리는 미제 비행기를 봅니다. 조직보위를 최우선으로 두는 지금, 그런 선동 작업은 실제 빨치산의 거처와 규모를 파악하려는 전술로 보였습니다.
선거에서 최익승은 기호 4번을 뽑았습니다. 재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염상구는 최익승의 선거운동을 하면서 청년단장 자리를 되찾습니다. 돈 선거가 판을 칩니다. 그러나 민심은 싸늘했습니다. 그 속에 변호사 출신 안창배가 유일하게 깨끗한 선거전을 펼칩니다. 서민영, 전 원장이 도와 1200표 차이로 안창배가 당선됩니다.
선거는 이승만의 대한국민당의 참패였습니다. 70여 의석의 여당은 스물두 명의 당선자를 내면서 대패했던 것입니다. 이승만이 버린 한민당계가 새로 창당한 민주국민당 또한 고작 스물세 명의 당선을 내면서 고전한 반면 무소속 당선자는 자그마치 백스물여섯 명이나 되었습니다. 전국에 걸쳐 이승만과 한민당계열에 대한 민심의 심판이 내려진 것이었습니다.
10. 아,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이다
손승호도 출판사의 ‘친일문학과 민족정신의 훼손’이 문제가 되어 체포됩니다. 김범우는 백방으로 노력해도 면회를 할 수가 없어 민기홍을 찾아갑니다. 민기홍도 방법이 없다면서 이번 선거를 보면 이삼 년 안에 사회혁명이 일어날 것이라 말합니다.
손승호는 뺨을 맞으면서 모욕감에 치를 떱니다. 경찰은 계속 남로당의 직책을 대라며 손승호를 고문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관념적인 이상주의를 이 시기 버리게 됩니다.
모내기가 한창인 유월 계엄군 반이 주둔지를 떠납니다. 백남식도 계엄군사령관에서 주둔군지휘관으로 직위가 바뀌었습니다. 그 전에 철수한 토벌대 대장 임만수는 한바탕 홍역을 치릅니다. 남원장 기생 춘심이 임만수의 애를 배었던 것입니다. 시치미를 떼려는 때, 염상구가 나타나 벌교주먹답게 춘심의 편을 들어 쌀 열 가마니를 받아냅니다.
벌교중, 상업고등학교가 정식으로 개교합니다. 친일전력의 조한규가 교감이 됩니다. 안창민네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군경은 완전소탕된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입산자 가족들은 애가 탑니다. 그러나 그들은 은밀히 조직의 복구를 위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백남식은 송 씨의 세째 딸, 말자(연희)와 소록도 나들이를 가 그녀를 덮칩니다.
율어에서 빨치산에게 보리를 빼앗긴 두 농민을 한 차석이 매질 중, 이근술이 나타나 풀어줍니다. 그는 좌익이 민심을 얻은 것은 좌익의 노력이고 우익이 민심을 잃은 것은 우익의 잘못이라 생각합니다.
백남식도 나머지 인원을 데리고 벌교를 뜹니다. 말자가 송 씨에게 백남식과의 관계를 말했고 송 씨는 환장합니다. 자신과의 관계나 딸과의 관계가 알려지면 손해는 이쪽만 입는 것이었습니다. 백남식은 딸과 결혼하는 대신 송 씨의 재산 반의반을 꿀꺽합니다.
김범우는 순덕이란 아가씨가 고민이라는 심재모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때 송경희가 손승호의 안부를 물으며 찾아옵니다. 송경희는 김범우에게 노골적으로 여자냄새를 풍기지만 김범우는 역겨워합니다.
11.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터졌음을 타전하는 라디오를 들은 이지숙은 감격에 겨워하며 안창민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고정선을 찾아갑니다.
권 서장은 당황했지만 여러 모로 생각을 해봅니다. 북진통일을 주장하던 이 정권이 불법남침 운운은 우스운 말이라 생각했습니다. 북진은 합법이고 남진은 불법이란 말은 해괴한 주장이었습니다. 또 작지만 전쟁은 계속 이어져 왔던 것입니다. 빨치산의 활동과 이남의 활동이 전쟁이 아니라면 무엇이었습니까?
이지숙은 보도연맹을 가만 두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을 합니다. 안창민의 연락은 오지 않고 있다가 보도연맹 집회가 있은 날 ‘보도연맹 위험, 선 따라 입산 요망’이라는 지령이 내려옵니다. 그녀는 전 원장, 소화에게 위험을 알리고 대피를 종용합니다.
28일 자정, 한강인도교가 폭파되었습니다. 그 시간 김범우는 인민군이 밀고 들어간 서대문형문소에서 풀려나온 손승호와 마주 앉아 있었습니다. 손승호는 이번 전쟁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전향했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김범우는 오전 문을 닫은 통신사에서 미군의 참전을 확인한 바 있었습니다. 정부는 대전으로 이전했습니다. 다음날 인민군에게 점령당한 서울시내로 두 사람은 나섭니다. 이학송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김범우는 손승호가 이번 전쟁을 사회주의혁명을 통한 민족통일세력과 친일민족반역자에서 신식민주의자로 바뀐 매국적 세력과의 싸움이라 정의한다 말하며 이학송의 조언을 구합니다. 이학송은 손승호보다 더 강경한 입장입니다. 미국이 저지른 죄를 바로잡는 전쟁이라 정의한 것입니다.
하숙집으로 돌아오자 송경희가 와 있었습니다. 그녀는 김범우에게 헤엄으로 한강을 건너게 해 달라 졸랐습니다. 도가 지나친 좌익비하에 손승호가 발끈합니다. 뚝섬에서 송경희를 건네다주려고 출발합니다. 김범우는 헤엄을 치며 손, 이 두 사람의 역사의식은 맞지만 전쟁에는 승자도 패자도 따로 없다는 것을 되씹습니다. 미국의 강력함까지도. 건너편에 다다르자 송경희는 김범우를 사랑한다며 입맞춤을 해옵니다. 밀쳐냈지만 계속 엉겨드는 송경희 때문에 순간의 성욕을 이기지 못한 김범우가 송경희와 몸을 섞고 맙니다.
12. 산골짜기를 울리는 한밤중의 총소리들
순덕에게 집으로 가라 이르고 심재모는 부대와 후퇴합니다. 구미에 다다랐을 때 한국군이 유엔군에 편입되었다는 해괴한 소문을 듣습니다.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주권의 해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7월 12일, 국군의 통수권이 미군에게 이양되는 협정이 체결됩니다. 심재모는 허탈했습니다. 일본 만군 출신의 연대장은 심재모에게 대한학도의용대를 이끌라며 전라도로 파견합니다.
보도연맹원이 소집되어 동척의 쌀창고에 갇혔습니다. 여기저기 불안한 말이 터져나오는 가운데 문기수가 연맹원들을 안심시킵니다. 권 서장은 모인 보도연맹원들 중 무당과 이지숙이 빠져있는 것을 확인합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전 원장이었습니다.
보도연맹원들은 통행금지가 지난 시간 열 명씩 묶여 이동합니다. 뱀골재에 이른 보도연맹원들은 열 명씩 차례로 총살당합니다. 한 명이 빠진 것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예비검속은 보성군 각 읍면단위로 비슷한 시간에 실시되었으나 율어면만은 아무런 총성이 울리지 않았습니다. 유족들은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통곡하기만 합니다. 그 사이 정부는 대전에서 대구로 옮겼다고 합니다.
송경희는 자신을 두고 도로 서울로 간 김범우를 생각하며 남으로, 남으로 걸었습니다. 이해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똑똑하고 잘 사는 사람들이 왜 다들 좌익을 하는지. 아무리 빨리 걸어도 결국 인민군에게 따라잡히고 말았습니다. 송경희는 다시 한 번 놀랍니다. 인민군은 무엇을 하나 먹어도 값을 치르고 먹었으며 예의바르게 행동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농촌의 들녘은 태평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심재모는 광주에서 학도병을 모집하고 있었습니다만 말이 모집이지 강제징집이었습니다. 집에 와 있던 송성일은 어머니의 강권으로 돈을 써서 징집을 피합니다.
심재모와 권병제는 벌교에서 해후합니다. 심재모는 대구로 정부이전이 전라도 포기라고 말해줍니다. 이 만남에서 권 서장은 손승호가 서울에 김범우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신이 빼돌린 전 원장을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심재모는 이학송, 손승호, 김범우가 어째서 서울을 빠져나오지 않은 것일까 생각합니다. 심재모는 순덕의 집으로 찾아갑니다. 순덕이 아직 오지 않은 것을 확인한 심재모는 참담했습니다.
13.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군의 폭격 때문에 모깃불도 제대로 놓지 못하는 여름밤이 계속되었지만 봉화만은 더욱 활기차게 타올랐습니다. 권 서장은 심재모가 떠난 이틀 만에 광주가 떨어졌으니 비상이동대기하라는 지시를 받습니다. 7월 24일 경찰은 읍내를 빠져나갑니다.
양효석은 대전에서 임관하고 미군의 배를 타고 진해로 향합니다. 현오봉은 진해에서 훈련을 조금 더 받고 임관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서울은 미군의 공습으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인민군은 하는 수 없이 야음을 틈타 물자를 한강 이남으로 보내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이 일에는 민간인이 동원되었습니다. 이학송은 취재를 위해 나왔다가 공습현장을 목격합니다. 김범우의 말이 메아리칩니다. 미국의 힘. 이념도 좋지만 그 속에 희생당하는 대중은 무엇이냐는 것이었습니다.
해방일보에 근무하기로 결정한 날 이학송은 손승호와 함께 김범우를 만나러 갑니다. 함께 일할 것을 권고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김범우는 민족제일주의를 내세우며 양대 패권국가의 꼭두각시처럼 섣부른 행동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기사를 쓴 이학송을 해방일보 편집국장 이원조가 부릅니다. 공습으로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모습에서 끝나는 기사를 이 어머니가 미제국주의를 증오하며 싸울 결의를 다지는 선동적인 장면으로 이끄는 것이 좋겠다 말합니다. 그것이 진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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