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설 / / 2024. 2. 25. 17:19

동물 농장 [조지 오웰 作] 줄거리와 상징, 독서후 감상문

728x90
반응형

목차

 


조지 오웰

조지 오웰은 작가 에릭 아서 블레어의 필명이다. 1903년 6월 25일,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영국령 인도의 벵갈에서 태어난 영국의 작가이자 언론인이었다. 그는 이튼 스쿨을 졸업하고 미얀마로 가 식민지 경찰이 되었다가 제국주의를 증오하게 되면서 그만두게 된다. 1927년 영국으로 건너와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파리에 체류하면서 몇 편의 글을 썼으나 인정받지 못하다가 1934년에 이르러서야 전업작가로 설 수 있게 된다. 1936년에는 스페인내전에 참전한다. 민주사회주의자로 분류되는 그는 자본주의, 제국주의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한편, 공산권에서 나타나고 있던 전체주의 또한 강도 높게 비판했다. 오웰은 문학 평론, 시, 평론, 소설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특히 본 작품인 '동물농장'과 '1984년' 두 작품이 유명하다. 논픽션 르포타주인 '위건 부두로 가는 길'과 '카탈로니아 찬가' 등은 현장성 있는 묘사와 날카로운 비판으로 탐사 취재기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평가 받는다. 조지 오웰은 1950년 1월 21일에 오랫동안 앓아온 결핵으로 숨을 거두었다. 

더 타임스는 전후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의 2위로 조지 오웰 선정했다. BBC 투표에서는 지난 천 년 동안 가장 위대한 영어 작가 3위로 뽑히기 했다. 

동물농장 작가 조지 오웰

 

동물농장 줄거리

 

 

 

  • 우크라이나판 서문

여기에서 조지 오웰은 자신이 친 사회주의자가 되었다가 스페인 내전을 겪으면서 반소주의자 된 이유를 설명한다. 그리고 서유럽 사람들이 소비에트 정권을 실체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고 조언하며 자신은 1930년대 이후로 소련이 진정한 사회주의라고 부를 만한 쪽을 발전하고 있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혹독하게 비판한다. 오웰은 사회주의 운동의 부활을 원한다면 소비에트 신화는 혁파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페인에서 돌아온 자신은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고 다른 언어로도 쉽게 번역될 수 있는 이야기로 소비에트 신화를 한번 폭로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물이 '동물 농장'이라는 것이다. 단,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러시아 혁명의 실제 역사에서 따온 것이지만, 도식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음도 밝혀두었다. 또 많은 독자들이 오해하듯, 돼지들과 인간이 화해했다고 믿는 것은 자신의 의도가 아니라고 밝혔다. 

"오히려 나는 돼지들과 인간들이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언성을 높이며 입씨름하는 것으로 이 소설의 결말을 계획했다. 모든 사람들이 테헤란 회담이 소련과 서구 세계 사이의 최선의 관계를 끌어 냈다고 생각하던 직후에 이 소설을 썼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소련과 서구 세계 사이에서 좋은 관계가 오래 지속되라고는 믿지 않았다. 그리고 여러 사건들이 증명해 보여 주듯이 내 생각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어제 누군가 한 말 같은 이 이야기는 무려 80년 전 오웰이 남긴 말이다. 대단한 통찰력이 아닐 수 없다. 

※테헤란 회담은 제2차 세계 대전 기간인 1943년 11월 28일에 미국의 루즈벨트, 영국의 처칠, 소련의 스탈린이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모여 3국의 협력과 전쟁 수행 의지를 표명한 회담이다. 

  • 동물 농장 Animal Farm

술을 많이 마시는 존슨 씨는 농장 경영에 무관심하다. 어느 날 밤, 존경받는 수퇘지 메이저 영감이 농장의 동물들에게 자신들을 억압하는 인간들을 단결해 몰아내야 한다는 격정적인 연설을 하게 된다. 며칠 뒤, 메이저 영감이 죽고 총명한 두 돼지 스노볼과 나폴레옹이 동물들의 지도자가 되어 농장의 동물들을 가르치고 조직한다. 어느 날 의도치 않게 일어난 반란이 성공하고 농장주 존슨 씨와 일꾼, 가족들이 농장에서 달아나고 만다. 나폴레옹은 매너 농장이란 간판을 지우고 '동물 농장'이라고 덮어쓴다. 스노볼은 창고의 커다란 벽에 동물주의 행동 강령인 7 계명을 커다랗게 썼다. 

처음에는 모든 동물들이 힘을 합쳐서 일하고 동등하게 나누며 배움의 기회까지 주어지는 이상적인 사회가 열리는 듯했다. 그러나 점차 동물들을 지도하는 입장인 돼지들과 나머지 동물들 간에 부정할 수 없는 차이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돼지들은 '동물주의' 강령들조차 자신들의 입장에 유리하도록 수정하기에 이른다. 수많은 동물들을 처형하고 절대적인 지배권을 확립한 나폴레옹은 인근 농장주들과 관계 개선에 나선다. 그것은 '동물'들과 인간의 관계 개선이 아니라, '돼지'와 인간의 관계 개선이었다. 동물 농장에서 열린 만찬과 뒤이은 카드놀이 광경을 몰래 훔쳐보던 동물들은 이미 누가 돼지이고 누가 인간인지 구별할 수 없어 깜짝 놀란다. 

 

동물 농장 상징, 비유 분석

앞서 잠시 살펴 보았듯, 동물 농장은 1917년 러시아 혁명과 혁명 지도부의 변질을 풍자하기 위해 조지 오웰이 쓴 일종의 정치적 우화이다. 이 소설은 그래서 정치와 권력, 인간 본성의 다양한 측면을 나타내는 은유와 상징이 많다. 

    • 농장은 국가나 사회를 상징한다. 다양한 계층과 정치적 인물들을 나타내는 동물들이 어우러지며 권력 투쟁을 하는 배경이 된다. 
    • 동물들은 국가나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회 계층과 집단을 은유한다. 돼지들은 지배 계급, 곧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들, 곧 현재 군림하고 있는 권력자, 지배층을 상징한다. 이에 대비해 다른 동물들은 무산계급, 소작농, 노동 계급 등의 피지배층으로 나타난다.
    • 올드 메이저의 연설은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념에 대한 은유다. 공산주의의 이념적 기반을 반영하여 인간에 대한 반란과 동물주의의 확립을 위한 발판이 된다.

 

 

 

 

  • 동물들의 반란은 러시아 혁명과 로마노프 왕조의 전복에 대한 비유다. 유토피아 사회에 대한 동물들의 초기 희망은 혁명 직후 러시아 인민들의 이상주의적 열망을 보여준다.
  • 7 계명은 처음에 동물들의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설립된 동물주의의 원칙을 상징한다. 그러나 돼지들이 계명을 조작하고 바꾸면서 그것이 정치적 이상의 부패와 혁명 정신의 배신으로 나타난다.
  • 풍차는 진보와 산업화의 상징이다. 농장을 현대화하고 경제적 생산량을 향상하려는 돼지들의 노력을 나타낸다. 러시아가 혁명 직후 단행한 산업 전반의 개혁을 은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풍차, 산업화는 또 다른 논쟁의 대상이 되고 중앙의 계획이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 복서라는 말은 헌신적인 노동 계급을 은유한다. 돼지들이 그를 학대하고 배신하는 모습은 지배 계급에 의한 프롤레타리아의 착취를 드러낸다.
  • 돼지들 중 나폴레옹과 스노우볼은 지배층과 정치적 지도력을 상징한다. 그들이 점차 부패하고 권력 지향적으로 변하면서 다른 동물들이 배신감이 들도록 만들어가는 과정은 혁명 이후 소련의 지도자들이 변질되었음을 은유하는 것이다.
  • 개들은 억압적 통치기구, 즉 비밀경찰이나 군사력을 의미한다.
  • 농가는 종국에 돼지들이 입주해 사는 공간이 되는데 이는 분화된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들이 누리는 특권을 상징하며, 평등을 주창하던 그들의 변질, 혹은 권력의 본질을 보여주는 공간적 장치다.

 

동물 농장 독서후 감상문

동물 농장이 스탈린을 정면으로 비판한다는 이유로 출판 당시 상당한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한다. 당시 영국과 소련은 연합국의 일원으로 나치의 독일을 상대하고 있던 우방이었다. 결국 동물 농장은 종전 후에서야 출판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오웰은 모두 까기 인형이라고 할 만하다. 그는 자본주의 종주국인 자신의 조국인 영국에서부터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까지 모두 비판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일관된 정신 하나가 있다. 자유와 인간애. 

작품은 메이저영감이라는 탁월한 동물주의자의 연설로 시작한다. 생산의 주체인 동물(노동자, 농민 등)이 그 생산물의 소유하지 못하는 부조리한 현실은 모두 인간(착취자)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니, 그들을 타도하고 동물들(노동자, 농민)의 새 세상을 건설하자! 그의 선언에 고무된 많은 동물들. 그렇게 조직이 되자, 조직을 앞서 이끄는 엘리트들이 등장한다. 돼지로 비유된 이 지식인이자 선동가 정치집단은 혁명을 이끌고 고무시키다가 결국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특권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변질되어 간다.

스탈린의 소련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조지 오웰은 분명히 스탈린을 저격한 것이었지만, 그 과녁에는 세상의 모든 정치가, 권력가들이 내걸릴 만한 내용이다. 전체주의의 위험은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다. 우리가 남이가? 정당, 종교, 국가, 민족. 이 모든 근저에는 전체주의적인 맹목, 통제가 내재하고 있다. 결국 집단의 속성, 인간의 속성이 이러하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견제하며 통제할 수 있을까? 선거라는 참여? 히틀러도 국민들이 선거로 선출한 권력이었다. 

그러나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다. 지난 촛불에서부터 유월혁명, 4.19.... 시민들이 권력을 길들이고 있다. 그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민주적 제권리는 더디더라도 분명 성장하고 있다. 국민은 권력에 길들지만, 시민은 권력을 길들인다. 시민으로서 부단히 배우며 현실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할 것이다.

반응형
  • 네이버 블로그 공유
  • 네이버 밴드 공유
  • 페이스북 공유
  • 카카오스토리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