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설 / / 2024. 2. 6. 15:48

모비 딕 줄거리 완역본 소설책-허먼 멜빌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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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에 관하여

모비 딕은 허먼 멜빌이 1851년 발표한 세 권 분량의 대작이다. 발표 당시에는 주목 받지 못했으나 1919년 멜빌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전기 작가 레이먼드 위버가 '모비 딕'을 극찬하는 평론을 발표한 뒤 1920년대에 '멜빌 부흥'이 일어났다. 20세기 초반 미국 모더니즘 문학이 도래하던 시기에 '모비 딕'의 종교적, 철학적 통찰과 다층적인 상징성,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서술 방식 등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멜빌의 진면목이 비로소 드러난 것이다. 이후, 미국 모더니즘 문학을 예고한, 시대를 앞선 선구자로 재평가 받았다. 모비 딕의 이러한 재평가를 바탕으로 허먼 멜빌은 호손, 에머슨, 소로와 함께 미국 문학을 세계적 반열에 올린 작가로 평가 받고 있다.

모비 딕의 저자 허먼 멜빌(1819 ~1891)

모비 딕 줄거리에 앞서 일러두기

모비 딕은 이미 영화, 만화, 축약본 등으로 많은 대중을 만나왔다. 그러나 모비 딕을 해양 모험 소설 정도로만 짐작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그런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나, 모비 딕이 가진, 이를테면 허먼 멜빌이 이 신비로운 흰 고래를 집요하게 추적하면서 하고자 했던 말은 단순한 해양 모험이 아니다. 오히려 바다는 인생이나 삶이란 주제에 맞닿아 있고, 모험은 그러한 삶 혹은 인생을 풀어나가는 철학적 은유에 의거한다.

모더니즘을 예고한 선구자적 작품이란 수사가 마땅한 작품이 이 모비 딕이지만, 역시 시대적인 한계는 있다. 일인칭의 시점에서 시작되고 서술되지만 어느 순간 작가는 누구의 머릿속에나 들어앉아 있을 수 있고, 어느 정도는 과장된 연극톤의 대화, 연극의 방백 같은 대사들이 나오게 된다. 이 작품은 고전과 현대의 경계에서 현대에 많이 치우친 작품이지 당시로써 완전한 미래 소설은 아니란 점을 기억해야 한다.

모비 딕 표지

그래서 줄거리를 작성하는데 필자의 많은 고민이 있었다. 일인칭 시점 그대로 옮길 것인가, 객관적으로 보면서 삼인칭의 시점으로 써 나갈 것인가? 필자는 후자를 선택했다. 앞서 언급했지만, 때로 일인칭으로 서술하기 까다로운 장면들이 있다. 이는 처음 이 소설의 완역본을 읽었을 때 고개를 갸웃하게 된 어색함이기도 하다. 왜냐면 우리는 이 모비 딕 소설을 수사하는 화려한 문구들부터 접했으므로.

최대한 원문에 충실하게 줄거리를 옮기려 했다. 위대한 원작의 명예를 감히 필자 같은 필부가 훼손할 수는 없다는 표면적 명분 아래에, 갓 서른이 넘은 허먼 멜빌이 썼다고는 믿기지 않는 사회, 역사, 철학, 신학적 통찰에 주석을 단다는 게 실제 불가능했기 때문이라는 심층적 이유가 내재한다. 그렇다고 해도 온전히 원작의 깊이, 문학적인 표현을 옮기기란 불가능하다. 이 글을 계기로 원작 모비 딕을 접할 마음이 독자에게 생긴다면 내 소임은 다한 것이리라 여긴다.

 

아래 줄거리는 원작의 느낌을 전달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좀 장황하다. 짧게 줄거리만 파악하고자 한다면 완전히 간추린 '짧은 줄거리'를 추천드린다. 아래 바를 클릭하시면 해당 페이지로 넘어가니 참고하시라.

※ [ ]괄호 안은 필자의 생각이나 주석을 옮긴 것이다. ( )는 허먼 멜빌이 연극의 지문처럼 썼기에 사용할 수가 없었다.

※ '레이먼드 비숍'의 목판화가 수록된 현대지성 출판사의 모비 딕 완역본으로 줄거리를 썼다. 책의 느낌을 주기 위해 크게 편집 없이 이미지들을 사용했음을 밝혀둔다.

모비 딕 - 돛대 망루에 올라 고래를 찾는 선원 / 포경 보트를 공격하는 향유고래
모비 딕 - 포경 보트로 고래를 사냥하는 모습
모비 딕 - 향유고래의 공격 / 고래의 지방층을 도려내 들어올리는 모습
모비 딕 - 선체 옆에 고래의 사체를 두고 '담요'를 벗겨내는 모습. 상어들이 쉴 새 없이 만찬을 즐기고 있다. / 정유작업

(1800년대 포경업의 이해를 돕기 위해 책에 수록된 그림들이다. 참고하면 머릿속에서 장면들을 상상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모비 딕 줄거리

어원

고래, Whale의 어원을 중등보조교사의 메모에서 발췌하는 형식으로 잠시 살펴본다. 둥글거나 구르다에서 파생된 경우가 많다.

발췌록

성서, 신화 또는 철학이나 문학, 기록에서 나타나는 고래 혹은 리바이던에 관한 기사들을 짧게 짧게 인용해 보여준다. 대체로 고래의 무서움, 특히 향유고래의 성향, 공격성, 고래사냥에 관련한 것들이다. [마치 어떤 전설이나 영웅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인트로로 짤막한 기사나 인터뷰 따위를 삽입해 흥미를 자극하는 것과 비슷해 보였다.]

1장 어렴풋이 드러나는 것들

나를 이슈메일이라 불러다오. [이슈메일이란 모비 딕의 일인칭 화자가 등장하는 유명한 장면이다. 이슈메일은 기독교 성서에 나오는 이스마엘을 의미한다. 이스마엘은 유대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서장자로서 본처에게 이삭을 얻은 아브라함이 멀리 내쫓게 되는 인물이다. 이런 점에서 화자의 이런 선언은 이 작품이 일종의 이단아적인 글이 될 것이란 암시라 볼 수 있다. 모비 딕의 이 첫 문장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첫 문장으로 꼽히곤 한다.] 이 장에서 이슈메일은 자신이 바다로 나갈 수밖에 없는 심리를 여러 이유를 들어 고백한다.

2장 여행가방

추운 12, 낸터킷으로 가기 위해 뉴베드퍼드에서 하루를 묵게 된 이슈메일. 가벼운 주머니 덕에 싸고 낡은 여관을 찾으면서 빈부와 추위를 상념한다. 이슈메일은 물보라여관에 든다.

 

3장 물보라여관

이 음산한 여관에는 마침 빈 방이 없다. 그래서 주인장은 커다란 침대가 있는 방에서 원래 있던 손님과 함께 투숙하라고 권했다. 너무 추웠던 밤이기에 이슈메일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하필 동침할 자가 식인종 야만인이어서 잠시 소란이 일게 되고 이슈메일은 다른 인종에 대한 편견을 조금은 극복하게 된다. 이슈메일은 그날밤 아주 달게 잘 잤다. 이것이 야만인 출신 작살잡이 퀴케그와의 첫 만남이었다.

모비 딕 - 퀴케그

4장 이불

아침, 자기 쪽으로 척척 걸쳐져 있는 퀴케그의 팔다리를 보면서 문신투성이 그의 몸이 이불 같다고 이슈메일은 생각한다. 그러다 예전 계모가 이른 시간에 잠자리로 보냈던 날이 떠올랐다. 낮에 잠들었다가 가위에 눌린 기억이었다. 퀴케그는 일어나 작살로 면도를 하더니 먼저 나갔다.

5장 아침식사

물보라여관 주점에서 아침식사를 하며 다른 선원들을 관찰한다. 이슈메일의 기대와 달리 그들은 고래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그들 사이에서 퀴케그는 작살로 비프스테이크를 먹고 있었다.

6장 거리

뉴베드퍼드 거리에는 이교도 야만인들이 많다. 포경업에 뛰어드는 신출내기들 또한 많았다. 뉴베드퍼드는 미국에서 제일 돈이 많이 흐르는 동네 중 하나다. 이 모든 화려한 부는 대서양과 태평양, 인도양에서 작살로 찍어 끌어올린 것들이다.

7장 예배당

뉴베드퍼드에는 고래잡이 예배당이라는 곳이 있다. 그곳에는 고래잡이를 하다가 실종되거나 죽은 이들을 추모하는 비석들이 많았다. 이슈메일은 그곳에서 이교도인 퀴케그를 보고 놀란다. 이슈메일은 신앙과 내세관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

8장 설교단

포경선 작살잡이 출신의 매플 목사가 들어왔다. 줄사다리가 달린 독특한 설교단에 오른 그는 다 오르자 줄사다리를 걷어올려 갈무리했다. 설교단은 마치 뱃머리처럼 생겼고, 진실로 앞서 이끄는 듯 보였다.

9장 설교

기도와 찬송을 마친 매플 목사는 요나서 1장을 펼쳐 요나에 대해 설교하기 시작한다. 하나님을 피해 도망치고 있던 요나는 다시스행 배에 오른다. '이 세상에서는 죄인도 돈만 내면 여권 없이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지만, 아무리 선량해도 가난한 사람은 모든 국경에서 저지를 당합니다.' 무서운 폭풍에 짐들을 바다로 던지는 소란이 일지만 요나는 잠에서 깨지 못한다. 선장의 다그침에 일어난 요나. 선원들은 이 일이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제비뽑기를 통해 요나를 뽑는다. 그리고 그의 자백을 받아낸다. 요나는 자신이 주님의 뜻을 저버린 죄인이라 자백하고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외쳤다. 요나를 바다에 던지자, 바다는 잔잔해진다. 요나는 그렇게 고래의 입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요나는 당장 꺼내달라 기도하지 않고 기꺼이 그 벌을 받는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다, 라고 매플 목사는 말한다. 매플 목사는 '거짓' 앞에 '진실'을 말하고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라는 말로 설교를 맺었다.

[기독교 성경에서 나오는 고래와 관련된 요나서의 이야기로 작가는 무엇을 미리 넌지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일까? 비극적인 최후일까, 아니면 기사회생일까?]

10장 절친한 친구

물보라 여관의 방에 돌어온 이슈메일은 그곳에서 다시 퀴케그를 만났다. 이슈메일은 그를 관찰하면서 그가 고결하면서도 소박하고 정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슈메일은 그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담배를 나누며 둘은 친구가 되었다. 퀴케그는 절친한 친구가 되었음을 선언하며 필요하다면 이슈메일을 위해 기꺼이 죽겠노라 선언했다. 순박한 야만인이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퀴케그는 이슈메일에게 두개골과 은화까지 나누어준다. 퀴케그는 자신의 우상에 이슈메일이 함께 기도하기를 바라는 듯했다. 그러나 이슈메일은 갈등한다. 엄격한 장로교 집안에서 자란 기독교 신자가 자신이었다. 그러나 끝내 이슈메일은 퀴케그의 의식에 동참한다. 이웃을 위한 일이고 그것은 교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합리화했기 때문이었다. 둘은 침대에 누워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눈다.

[엄숙한 기독교식 예배와 설교를 듣고 돌아온 시점에 이교도의 의식에 참여하는 이슈메일. 종교적 편견과 기독교적인 독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작가의 주장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11장 잠옷

둘은 잠을 포기하고 침대 위에서 담배를 나눠 피웠다. 이슈메일은 퀴케그에게 자기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고 퀴케그가 응해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12장 살아온 날들

퀴케그는 코코보코 섬 대족장의 아들이었다. 그는 기독교 세계를 구경하고 싶어 새그항에서 온 배에 태워달라 졸랐으나 거절당한다. 그래서 그는 카누로 접근해 배에 올라탄 다음 갑판에 드러누워 버텼다. 퀴케그의 열망은 기독교 세계에서 배운 지식으로 동족들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고래잡이가 되면서 기독인들도 비열하고 사악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원래 목표를 포기하고 그냥 이교도로 살다가 죽겠다고 생각했다. 당장은 돌아가 왕이 될 생각은 없고 작살잡이로 살 거라 했다. 이슈메일은 자신 또한 포경선에 타기 위해 낸터킷으로 간다고 했고 둘은 바로 의기투합해 운명을 함께 하기로 한다.

모비 딕 - 부둣가에서 짐을 선적하고 있다.

13장 외바퀴 손수레

외바퀴 수레를 빌려 짐을 나르다가, 퀴케그가 일전, 외바퀴수레의 사용법을 몰라 등에 매고 갔던 이야기를 해준다. 이슈메일이 웃자, 퀴케그는 예전 자신이 살던 곳에 왔던 한 서양인 선장이 자신들에게 범했던 결례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정기선을 타고 가는데, 이 둘을 우습게 보던 촌뜨기를 퀴케그가 혼내준다. 촌뜨기가 선장을 불러와 사태가 험악해졌는데 마침 거센 바람에 끊어진 아딧줄이 그 촌뜨기를 쳐서 바다로 빠뜨리고 만다. 퀴케그는 아딧줄을 잡아 정리하고는 그 청년까지 구해낸다. 그때부터 이슈메일은 퀴케그가 마지막으로 영원히 물속에 뛰어들던 순간까지 함께 한다. 사람을 구하고 칭송 앞에서도 무덤덤한 그는 마치 '세상은 어디를 가든 서로의 공동 자본으로 운영되고 있어. 그러니 우리 식인종도 기독교인들을 도와야 해.'라고 말하는 듯 느껴졌다.

[문화적 상대성에 대한 이야기다. 틀린 것이 아닌 다름의 영역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편견없이 기독교인을 구한 이교도인을 보여줌으로써 기독교 세계의 독선과 오만을 지적한다. 고결함은 종교나 사는 세계, 피부색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14장 낸터킷

낸터킷에 도착한다. 낸터킷은 모래섬이다. 그 섬의 황량한 환경에 대해 한참을 기술한다. 그리고 인디언들이 낸터킷 섬을 발견했던 일화를 전한다. 그리고 인류의 바다를 향한 갈망이 응집된 낸터킷을 그 어떤 곳보다, 그 어떤 정복욕의 산물보다 더 위대한 곳이라 칭송한다.

15장 차우더

[차우더: 조개 또는 생선과 채소류로 만든 미국식 수프]

늦은 밤에 낸터킷에 도착한 둘은 물보라 여관 주인, 피터 코핀이 소개한 트라이 포츠 여관으로 간다. 이슈메일은 검고 기괴하게 걸린 냄비 한 쌍을 보고 교수대가 떠올라 불안해 한다. 둘은 방을 잡고 조개 차우더를 먹는다. 요리는 훌륭했다. 그래서 대구 차우더까지 추가로 주문해서 먹었다. 이 여관에서는 작살을 방에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어, 퀴케그의 작살은 주인에게 맡겨야 했다. 다음날 아침요리도 조개와 대구 차우더 두 가지를 주문해 놓았다.

16장 배

퀴케그가 말하길, 그의 우상 요조(흑인 조각상)가 둘이 협력해서 승선할 배를 골라서는 안 된다고 일렀다고 했다. 배를 고르는 일은 요조 자신에게 맡기라 했다는 것이다. 다음날 이슈메일은 단식하는 퀴케그를 방에 두고 부둣가로 나와 3년짜리 항해를 떠날 배 세 척을 알아낸다. 데빌댐호, 티트비트호, 피쿼드호. (데빌뎀은 악마의 어머니라는 뜻, 티트비트는 맛 좋은 고기 한 점이란 뜻이다. 피쿼드호는 몰살당한 인디언 부족의 이름이다.) 이슈메일은 낡은 피쿼드호가 마음에 들었다. 한 늙은 선원을 만나 배에 태워달라고 하자, 그는 해적은 아니었냐고 빈정거렸다. 그는 피쿼드호의 공동 선주인 펠레그였다. 그는 이 배의 선장이 에이해브 선장이며 그는 다리 하나를 괴물 같은 고래에게 잃었다고 겁을 준다. 그래도 타고 싶다고 하자, 그를 서류가 있는 선실로 안내한다. 그를 뒤따르며 이곳 낸터킷에 많은 퀘이커 교도들의 잔혹하고 엄격한 특질을 설명한다. 이 배의 상당한 배당금을 받는 빌대드에게 데려간 펠레그. 빌대드는 성경을 읽고 있었다. 펠레그가 계약서를 꺼냈다. 포경업에서는 급료를 지급하지 않고 전체 수익에서 배당을 준다. 이슈메일은 275번 배당 정도를(전체 수익 중 275분의 1) 예상했는데 777번 배당을 제안하는 빌대드 선장이었다. 펠레그는 300번을 주겠다고 주장한다. 두 대주주가 싸운다. 펠레그는 끝내 배당 300번에 이슈메일의 서명을 받았고 이슈메일은 퀴케그를 데려와도 되겠냐고 물었다. 펠레그는 선선히 그러라고 한다. 이슈메일은 돌아가려다가 에이해브 선장이 궁금해 펠레그에게 만나게 해달라 요청하지만 만날 수 없을 거라는 답을 듣는다. 그리고 펠레그는 그의 이름이 왕의 이름이며 최고의 작살잡이라 추켜세웠다. 이슈메일이 악한 왕이었지 않느냐 되묻자, 펠레그는 절대 피쿼드호에서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경고했다. 그리고 지난번 항해에서 다리를 잃고 괴팍해졌지만 나아질 거라 했다. 이슈메일은 에이해브에게 연민과 경외감 비슷한 것을 느낀다.

[에이해브는 성서에 나오는 아합 왕의 영어식 표기다.]

모비 딕 - 파도가 쏟아지는 갑판에서 선원들이 밧줄을 당기고 있다.

 

 

17장 라마단

방으로 돌아간 이슈메일이 퀴케그를 아무리 불러도 인기척이 없었다. 열쇠구멍으로 안을 들여다 본다. 웬일인지 맡겨놓았던 작살이 보인다. 분명히 퀴케그는 안에 있는데 아무리 불러도 답이 없자 뇌졸중을 의심하고 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그런데 퀴케그는 얌전히 방 한가운데 요조를 정수리 위에 올려놓고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이슈메일이 아무리 설득하고 말을 건네도 미동도 않는 퀴케그였다. 그는 밤새 그렇게 있었고 동이 트자 드디어 일어섰다. 이슈메일은 종교에 대한 편견은 없었으나, 다른 사람을 해하거나 불편하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퀴케그에게 충고했다. 그는 외려 이슈메일을 복음주의라는 이단 신앙에 빠져서 헤매는 것이 무척 딱하는 듯이 잘난 척하며 걱정하고 연민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둘은 아침 식사 후, 피쿼드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18장 그의 표시

펠레그와 빌대드는 식인종은 개종했다는 증명이 있어야 배에 태울 수 있다며 퀴케그를 막아나섰다. 이슈메일은 제일회중교회라고 둘러댄다. 빌대드가 그를 그 교회 앞에서 본 적이 없다고 하자, 이슈메일은 퀴케그가 그 교회 집사이기도 하다고 주장하며 보편적 신앙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함께 손을 잡고 있다 주장한다. 펠레그는 그의 승선을 허락하며 작살을 던진 적이 있냐고 묻자, 퀴케그는 멋지게 작살을 던지는 시범을 보여준다. 퀴케그는 90번 배당을 받는다. 글을 모르는 그는 서류에 자신의 팔에 새긴 기이한 문양을, 펠레그 선장이 잘못 부르는 이름, 쿼호그 아래 똑같이 그려 넣었다. 빌대드가 퀴케그의 손을 잡고 회개시키려 하자, 펠레그는 그의 야성을 앗으려 하지 말라며 말린다. 빌대드는 사선을 넘나든 자네가 죽음과 심판을 생각하지 않았느냐 따지자 펠레그는 그런 위기에서 자신과 에이해브는 살 생각만 했다고 항변한다. 빌대드는 더 이상 대꾸하지 못하고 물러난다.

19장 예언자

퀴케그와 이슈메일이 피쿼드호에서 내려 부두를 벗어나고 있을 때 웬 초라한 행색의 얼금뱅이 낯선 사내가 다가와 피쿼드호에서 왔냐고 물었다. 그는 에이해브 선장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그가 일으킨 발작 따위를 주워섬겼다. 그의 이름은 일라이저라고 했다. 이슈메일은 깜짝 놀란다. 이슈메일은 불안감이 엄습함을 느낀다.

20장 출항 준비

출항준비로 피쿼드호는 며칠 분주했다. 험한 작업을 하는 포경선인 만큼 예비물품도 만만치 않게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준비기간 중에도 두 사람은 에이해브 선장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불만이었고 불안했지만, 기왕에 엎질러진 물인지라 이슈메일은 부러 그런 의심을 은폐하려는 심리상태에 빠졌다. 마침내 다음 날 배가 확실히 출항한다는 통보가 왔다. 이튿날 아침, 이슈메일과 퀴케그는 아주 일찍 길을 나선다.

21장 배에 타다

배로 향하는데 안개 너머 흐릿한 그림자가 몇이 배로 향한다. 먼저 도착한 선원이라 생각하는데, 두 사람의 어깨를 붙들고 끼어든 일라이저. 그는 최후의 심판 날이 오기 전까지는 보지 못하겠다며 인사하고 떠났다. 배에 올랐지만 앞서 본 선원으로 짐작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적막감마저 감도는 피쿼드호였다. 그들은 어디 갔을까 물었지만, 퀴케그는 이슈메일이 말한 선원들을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잠자던 선원에게 에이해브 선장에 관해 물어보려는데 갑판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선원은 스타벅이 일어났다면서 갑판으로 나간다. 둘도 따라 나섰다. 해가 뜨고 선원들도 삼삼오오 배에 오른다. 그래도 선장은 선실에 틀어박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22장 메리 크리스마스

항해가 시작되고 있는데 펠레그와 빌대드 선장이 갑판에서 계속 일을 지시했다. 에이해브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몸이 덜 회복되었다는 소식이다. 두 선장은 낸터킷에 내야 하는 수로안내인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 수로안내인까지 하는 것으로 의심받았다. 양묘기를 돌리다 손을 놓았던 이슈메일은 펠레그에게 발길질을 당한다. 펠레그는 욕설을 해대며 다른 선원들에게도 발길질하기 바빴다. 그렇게 어수선한 가운데도 빌대드는 계속해서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 크리스마스였다. 앞바다 멀리 나오자 동행하던 돛단배가 두 선장을 싣고 떠난다. 펠레그와 빌대드는 배에서 떨어지지 않은 발길을 떼기 위해 무척 애쓰는 모습이었다.

모비 딕 - 멀리 바다가 보이고 등대가 있다. 아래로 마을과 포경선이 보인다.

23장 바람이 불어가는 쪽 해안

피쿼드호의 키를 잡고 있는 사람은 벌킹턴이었다. 그는 얼마전 물보라 여관 주점에서 본 선원이다. 배에서 내린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바다로 나가는 그의 모습에 이슈메일은 어떤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본다. 그리고 이 장을 벌킹터의 묘비 없는 무덤이라 선언한다.

24장 변호

고래잡이는 도살자라고 천대 받는 직업이다. 그러나 전쟁에 비하자면 아무것도 아니다. 군대 사령관이야말로 가장 피비린내 나는 훈장을 단 도살자다. 아무리 용맹한 병사라도 고래를 보면 몸을 움츠릴 것이다. 포경업은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는 산업이다. 게다가 포경업은 개척자 역할도 해왔다. 탐험가들을 칭송하는 모험담은 기실 포경업을 하는 선원들에겐 흔한 일들일 뿐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또한 고래잡이들이 찾은 땅이다. 그들은 선교사와 상인들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고래는 신성한 물고기이고 고래잡이는 위대한 직업이다.

25장 덧붙이는 말

충성스러운 영국인들이여! 우리 고래잡이들이 그대들의 왕과 여왕의 대관식에 쓰이는 기름을 공급한다는 점을 기억하시라!

26장 기사와 종자1

스타벅은 호리호리하지만 강인해 보이는 피쿼드호의 일등항해사였다. 그는 침착했고 믿음직했다. 양심적이며 자연에 깊은 경외감을 품었고 그런 경외심으로 무지가 아닌 지성으로 미신에 끌리는 사내였다. 그에게는 젊은 아내와 아이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무모함을 억제했다. "고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녀석은 내 보트에 태우지 않겠다."고 스타벅은 자주 말했다. 스타벅은 용기를 꼭 필요한 물자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결코 용기를 낭비하지 않았다. 그의 용맹은 비이성적인 공포 등에 맞설 때는 강했지만, 엄청난 분노를 가슴에 품은 권력자의 위협 앞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27장 기사와 종자2

이등항해사 스터브는 태평스럽고 조용했으며 침착한 사람이었다. 그를 그렇게 태평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분명 담배 파이프였다. 그는 줄담배를 피워대는 골초였다. 삼등항해사 플래스크는 키가 작고 다부진 젊은이였다. 그는 고래에 무척 호전적이었다. 무지하고 무의식적인 대담함 때문에 플래스크는 고래 문제 관한 한 다소 장난스러운 사람이었다. 그의 별명은 왕대공이었다. 스타벅, 스터브, 플래스크는 피쿼드호의 포경 보트 세 척을 지휘했다. 에이해브 선장이 명령하면 이들 세 항해사가 각자 중대장이 되어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다. 각 항해사는 옛 기사처럼 보트 키잡이나 작살잡이를 대동한다. 스타벅은 퀴케그를 직접 자신의 종자로 선택했다. 스터브의 종자는 인디언인 타슈테고였고 플래스크의 종자는 195센티미터가 넘는 흑인 야만인 다구였다. 피쿼드호의 나머지 선원들은 미국의 다른 산업, 군대와 마찬가지로 미국태생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이는 멋진 일이다. 그리고 살아 돌아오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법정으로 나아가 세상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려 한다. 흑인 꼬마 핍, 그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핍의 이야기는 이후에 자세히 나온다.]

28장 에이해브

낸터킷을 떠난지 며칠이 지나도록 에이해브 선장은 갑판 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부두에서 만난 일라이저가 떠오르면서 불안해지는 이슈메일. 그러나 믿음직한 세 항해사 덕분에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배가 계속 남하해 추위를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된 어느 날, 이슈메일이 오전당직을 서기 위해 갑판에 올랐다가 고물 갑판에 서 있던 에이해브 선장을 발견한다. 음울해 보이는 분위기의 에이해브는 송곳으로 만든 구멍에 의족을 끼우고 꼿꼿이 서 있었다. 몸을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흉터, 향유고래의 턱뼈를 갈아서 만들었다는 의족, 요동치는 뱃머리를 보고도 두려움 없이 정면을 응시하는 시선에는 단호하고 굽힐 줄 모르는 고집이 담겨 있었고 압도적인 위엄이 있었다. 이후로 자주 갑판에 모습을 드러내는 에이해브였다.

모비 딕 - 에이해브 선장. 고집스러운 외모를 잘 표현한 듯하다. 외다리임도 알 수 있다.

29장 에이해브 등장, 뒤이어 스터브 등장

열대지방에 들어서자 낮과 밤이 모두 아름다웠다. 이즈음 에이해브는 한밤중에 자주 갑판에 올랐다. 스터브가 그런 소리가 시끄럽다고 선장에게 삼실을 뭉쳐서 고래 뼈 다리에 받침대로 달면 어떻겠냐고 말했다가 욕만 실컷 얻어먹는다. 그의 서슬에 저도 모르게 위축되어 물러난 스터브는 그런 자신이 기이했다.

30장 파이프

스터브를 내려보낸 뒤, 에이해브는 파이프를 물었다. 그러나 담배맛을 잃었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더는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고 중얼거리며 파이프를 바다에 던져버린다.

31장 매브 여왕

[매브 여왕은 아일랜드와 잉글랜드 민화에 나오는 요정으로 잠든 사람 각자에게 알맞은 꿈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스터브는 간밤에 에이해브의 의족에 걷어차이는 꿈을 꾸고는 그 이야기를 플래스크에게 해준다. 그때 에이해브는 고물쪽에서 돛대 꼭대기를 향해 흰 고래를 보면 폐가 찢어지도록 소리치라고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스터브는 플래스크에게 에이해브가 뭔가 피비린내 나는 일을 꾸미고 있는 것 같으니 마음의 준비를 해두라고 이른다.

32장 고래학

그린란드고래가 바다의 왕좌를 찬탈했다. 이제 그 자리는 향유고래의 것이 될 것이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첫째, 고래학이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학문이라는 것을 고래가 물고기인지 논란이 되고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리니네는 1766년에 '자연의 체계'에서 두 심실이 있는 온혈 심장, 허파, 움직이는 눈꺼풀, 속이 비어 있는 귀, 젖꼭지에서 모유를 분비하는 암컷의 몸에 삽입되는 수컷의 성기를 근거로 고래를 물고기에서 분리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저자는 옛날 방식대로 고래가 물고기라는 입장을 받아들인다. 둘째, 고래는 물을 내뿜고 수평 꼬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기준에 의거해 고래라고 이를 수 있는 것들을 향유고래, 참고래, 긴수염고래, 혹등고래, 멸치고래, 대왕고래 등등 종류별로 분류해 설명한다. 그리고 끝에 이르러, 미완의 상태로 남겨 후대에 맡긴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아아, 내게 시간과 체력과 자금과 인내를!" 이라는 우스개로 이 장을 마무리한다.

33장 작살잡이장

다른 배에는 없는 작살잡이라는 간부가 포경선에는 존재한다. 고래잡이 항해의 성공여부는 주로 작살잡이가 얼마나 업무를 잘 수행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선원들에게 동료처럼 취급된다. 그래도 작살잡이의 숙소는 간부들의 선실이 있는 뱃고물쪽에 있다. 포경선은 수익을 배당하는 구조기에 상선보다는 규율이 덜 엄격하다. 그러나 뒷갑판에서 엄격한 규율이 느슨해지는 법은 좀처럼 없다. 에이해브는 천박한 허세를 부리는 선장은 아니었으나 절대적이고 즉각적인 복종을 요구했다. 그의 머릿속에 잠재된 폭군기질은 잘 드러나지 않다가 배 위의 관행이라는 미명 아래 절대 권력으로 표출되었다. 하찮은 장식과 장치(관행)라 할지라도 극단적인 정치적 미신이 부여되면 거기에 커다란 미덕이 생겨나고, 그리하여 어떤 머저리가 권력을 잡기도 하는 것이다. 이슈메일의 상대는 늙은 고래잡이, 에이해브였다.

[난해한 수사가 많은 장이다. 결국 에이해브의 권위도 일종의 관행이 낳은 것으로 그것이 정당함과는 거리가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 국가나 정치권력, 종교적 권위에도 대입해 볼 수 있는 논리다.]

34장 선실 식탁

갑판과 다르게 에이해브와 항해사들의 식탁은 위계가 분명하고 엄격했다. 급사인 찐빵이 식사준비를 마치고 알려오면 에이해브가 스타벅을 부르며 선실로 향하고 스타벅은 스터브를, 스터브는 플래스크를 부르며 차례로 선실 식탁으로 향한다. 피쿼드호 최고위 식사자리가 이렇게 만들어지는데, 식사 시간은 조용하고 무겁다. 식사를 끝내는 순서는 정확히 직급의 역순이다. 그래서 플래스크는 삼등항해사로 진급한 후 배불리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이들의 식사가 끝나면 찐빵이 다시 작살잡이들을 위한 식탁을 차리는데, 이들의 식사는 선장의 식사와는 다르게 자유분방하고 거칠기까지하다. 이 야만인들은 식욕이 왕성해 종종 급사를 심하게 괴롭혔다. 이들은 선실에서 식사를 하고 명목상 거기에 거주하고 있지만 선실에 잘 들어가지 않았다. 에이해브가 도저히 가까이 할 수 없는 이방인 같았기 때문이다.

35장 돛대꼭대기

교대로 망을 보는데 이슈메일이 처음 망을 보는 날은 화창했다. 그의 생각에 최초로 돛대 꼭대기에 보초를 세운 것은 고대 이집트인이었다. 높은 곳의 위대한 인물들의 동상은 아래를 보지 못하고 아래의 부름에 대답도 할 수 없지만 돛대 위의 망꾼은 다르다. 공상을 즐기기 좋고 고민 거리도 없는 돛대 위 자리. 아쉬운 점은 좁고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이슈메일 자신은 공상과 명상에 빠지기 일쑤여서 좋은 망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공상하다가 돛대에서 떨어질 수도 있는 노릇. 몽상하는 범신론자(세상 만물을 관념의 소산으로 여기는 사람)들이여, 조심하라.

모비 딕 - 돛대 위 망루에 올라 고래를 찾는 선원

36장 뒷갑판

(에이해브 등장, 이어서 모두 등장)

파이프를 바다에 던져 버리고 얼마 후, 에이해브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갑판을 서성이다가 선실에 들어가기를 반복한다. 하루종일 그러더니 저녁 무렵, 스타벅에게 선원 모두를 고물로 집합시키라 명령했다. 에이해브는 16달러짜리 스페인 금화를 주돛대에 망치로 박아넣고 동전은 흰 고래를 발견하는 자의 것이라 선언한다. 이마가 주름지고 아가리가 구부러졌는데 대가리가 하얀 고래라는 에이해브의 설명을 들은 작살잡이들이 동요한다. 타슈테고가 그 놈은 '모비 딕'이라 말하자, 에이해브가 '모비 딕?'이라며 그놈을 아느냐 되묻는다. 다구는 물을 이상하게 뿜는 놈이라고 하고 퀴케그도 몸에 구부러진 작살이 여러게 박힌 놈이라고 말한다. 에이해브는 그놈이 모비 딕임을 확신했다. 스타벅이 그놈이 선장님의 다리를 앗아갔냐고 묻자, 에이해브는 맞다고 하면서 모비 딕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그리고 이 항해의 목적이 그 놈을 잡는 거라 선언한다. 모두 환호하지만 스타벅은 이번 항해가 선장의 복수를 위한 게 아니라 이윤을 위해서라며, 말도 못하는 짐승에게 복수는 가당치 않다고 따진다. 그러나 에이해브는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느끼는 강박을 설명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똑같은 사냥이라고 설득하려 한다. 스타벅이 말이 없자 묵인으로 받아들이는 에이해브. 선장은 구원을 비는 스타벅의 기도를 듣지 못했던 것이다. 선장은 기분좋게 술을 풀었다. 에이해브는 술잔을 돌리며 그 자리를 모비 딕 사냥을 맹약하는 자리로 만들어버렸다. 스타벅은 고개를 돌린 채 몸을 떨었다.

[작살잡이장에서 나타난 정치권력의 문제가 표면화된 장이다. 부당한 행위지만 이미 어떤 장치, 관습에 의해 권위나 권력을 획득한 자가 전횡하는 사태. 스타벅이 소심하게 저항해 보지만, 이미 전체주의적으로 변해 미신적인 미덕에 빠진 대중 앞에서는 무력해진다.]

37장 해질녘

(선실, 뱃고물 창가, 에이해브 홀로 앉아 밖을 내다보고 있다.)

에이해브의 상념을 일인칭시점으로 서술하는 장이다. 시련과 고통을 이겨내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저주와 같은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는 손을 흔들며 창가에서 사라진다.)

선원들을 설득하는 것이 그리 힘든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악마 같은 자이고, 미쳐버린 광기라 여긴다. 자신의 팔다리가 잘려 나갈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음을 상기하며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다리를 자른 놈의 몸을 잘라버릴 것이라 예언한다. 자신을 막을 수 없을 거라, 신들마저 조롱한다.

38장 황혼

(주돛대 옆, 스타벅이 기대어 서 있다.)

스타벅의 일인칭시점에서 서술하는 장. 저항하지 못한 자신을 한탄한다. 그러면서 에이해브가 자기보다 위에 있는 자에게 민주주의자처럼 굴겠지만, 아래에 있는 자에게는 폭군 행세를 한다고 비판한다. 반항하면서도 복종하고 증오하면서 동정하는 자신에게 자괴감을 느낀다. 스타벅은 흰 고래를 만나지 않기를 바란다.

(앞갑판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린다.)

뱃머리에서는 흥청이고 뱃고물에서는 적막이 흐르는 배를 보며 인생이 이런 것이라 느낀다. 전투태세를 갖춘 뱃머리가 음울한 에이해브를 끌고 가는 모습. 그 속에 자신이 있다. 스타벅은 자기 안의 공포와 인간의 감정으로 맞서 싸울 것을 다짐한다.

39장 첫 번째 야간 당직

(앞돛대 망루, 스터브가 혼자 아딧줄을 수선하고 있다.)

스터브는 스스로 흥을 돋웠다. 스타벅이 앞전 자신이 당한 것처럼 에이해브에게 당했다고 생각했다. 집에 있는 아내를 생각하며 흥얼거린다.

40장 한밤중, 앞갑판

[마치 뮤지컬 대본처럼 왁자하게 떠들고 마시며 춤추고 노래하는 선원들을 묘사한 장이다. 출신 나라 별 선원들, (종치기 소년), 다구 등이 등장하는데, 나름 대로 출신지 별 특질을 반영한 듯하다.]

왁자하게 떠들며 놀다가 돌풍이 몰아치자 분주해진다. 다구가 검다고 비웃는 스페인 선원과 싸움이 붙었다. 그것도 잠시, 뒷갑판에서 일을 지시하자 모두 흩어진다. 핍은 혼자 움츠리고 두려움 없는 저 선원들 속에서 자신을 지켜달라고 어둠 속 어디에 있을 크고 하얀 신에게 빌었다.

모비 딕 - 피쿼드호 선원들이 한바탕 신나게 놀고 있다.

 

 

41장 모비 딕

이슈메일도 그들과 같이 맹세했다. 에이해브의 원한이 자신의 것인 양 느껴졌던 것이다. 모비 딕이 고래잡이들에게 반격을 가하는 일이 되풀이 되면서 모비 딕에 대한 공포는 차곡차곡 쌓여갔고, 이 흰 고래에 관한 소문은 용맹한 사냥꾼들의 사기를 흔들어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포경업의 특성상 황당무계한 소문이 퍼지기 좋았다. 모비 딕에 관한 소문은 그렇게 온갖 무서운 이야기와 뒤섞였다. 그렇게 실제 모비 딕과 무관한 새로운 공포를 그 괴물에게 부여하게 되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냥꾼들은 모비 딕을 피하는 게 상책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이전의 심리적 문제도 있었다. 향유고래 그 자체에 대해 미신적인 공포가 퍼져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미신을 믿지 않고 모비 딕을 추격할 준비가 된 고래잡이들도 몇몇 있었다. 미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모비 딕이 공간을 초월해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생각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것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심층의 해류나 고래의 길은 알려진 바가 없었다. 태평양 최북단에서 잡힌 고래의 몸에서 그린란드 바다에서 박힌 작살의 날이 발견되기도 했던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모비 딕은 고래잡이들에게 불멸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특히 새하얗고 주름진 이마와 피라미드처럼 높이 솟은 하얀 혹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했다. 몸의 다른 부분도 같은 흰색으로 줄무늬와 얼룩, 대리석 무늬로 덮여 있어 수의를 감싸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마침내 모비 딕은 백경이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모비 딕이 자연스레 공포의 대상이 된 것은 남다른 덩치나 눈에 띄는 색쌀, 기형적인 아래턱이 아니라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지능적인 적개심 때문이다. 모비 딕을 추격하다가 이미 여러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 영악한 특성 때문에 모비 딕에게 팔다리를 잃었다는 것은 도저히 이성이 없는 무지한 짐승이 저지른 일로 생각되지 않았다. 이런 모비 딕에게 어떤 선장은 주변의 보트 세 척이 박살안고 노와 사람이 소용돌이에 한데 휘말려 허우적거리는 와중에, 단검을 움켜쥐고 달려들었으니, 그가 바로 에이해브였다. 바로 그 순간 에이해브는 다리를 잃었다. 그 후로 당연히 에이해브는 모비 딕에게 격렬한 복수심을 품게 된다. 에이해브는 모비 딕을 악의 근원으로 여겼으며 불구의 몸으로도 놈과 다시 대결하려는 것이다. 그의 편집증적인 복수심은 그의 위대한 지성까지 도구로 쓸 만큼 크고 깊어졌다. 그는 철저히 자신의 이런 편집증을 숨겼고 끝내 출항에 성공했다. '신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이 백발 노인은 저주를 퍼부으며 욥의 고래를 쫓아 세상을 돌아다니는 상징이 되었고, 그의 부하 선원들도 주로 배교자, 무뢰한, 식인종으로 이루어졌다. 스타벅은 미덕과 올바른 생각을 가졌지만 다른 이들의 지지를 받지 못해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스터브는 무관심하고 무모한 데다 늘 허허거리기만 했으며, 플래스크는 모든 면에서 평범하기만 해서 이들 가운데 정신적 지주가 될 만한 인물이 없었다.' (작은 따옴표 안은 원문 그대로 옮긴 것.) 왜 선원들은 에이해브를 전적으로 따르는가? 저항할 수 없는 물길일 뿐이다. 그리하여 이슈메일은 항해 내내 그 괴수가 무시무시한 악이라는 것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모비 딕 - 거대한 향유고래가 작살을 끌고 바다 아래로 헤엄쳐 들어가고 있다.

42장 고래의 흰색

이슈메일 자신에게 모비 딕은 어떤 존재인가? 이슈메일을 오싹하게 하는 것은 모비 딕이 흰색이라는 사실이었다. 흰색은 우월하고 고결함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흰색에는 포착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깃들어 있어 핏빛보다 더 큰 공포를 우리 영혼에 불러일으킨다. 포착하기 어려운 특성 탓에 본질적으로 무시무시한 대상과 결부시키면 그 공포는 배가된다. 북극곰과 백상아리의 무서움은 바로 송장같이 섬뜩한 흰색이다. 미국 서부 개척사와 인디언 전설에서 가장 유명한 것도 대초원의 백마에 관한 이야기다. 이렇듯 여러 사례에서 흰색은 가장 심오한 관념적 의미를 드러낼 때는 인간의 영혼에 독특한 환영을 불러내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당신은 말할 것이다. 흰색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백연 같은 장은 한 비겁한 영혼이 내건 백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슈메일, 그대는 우울증에 굴복하고 말았다고.' 그러나 자신의 적개심내지 공포는 거의 본능적인 것이라 강변했다. '흰색은 불확정성이 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흰색은 본질적으로 색이라기보다 가시적인 색채의 부재인 동시에 모든 색의 결합인 것은 아닐까?' '우리가 흰색을 꺼리는 것은 그것이 무색이면서도 모든 색이 응집된 무신론 같기 때문이 아닐까?' 흰색은 모든 대상을 공허한 빛깔로 만들고 말 것이다. 이 맹렬한 추격이 아직도 의아한가?

[왜 이슈메일이 에이해브의 결행에 동조하고 선원들과 함께 맹세했는지 스스로 고찰하는 장이다. 난해한 수사가 적지 않고 철학적 함의가 많아 꽤 어렵다. 하지만 삶을 허무하게 만드는 어떤 우울, 내적인 자기파괴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이슈메일에게 모비 딕은 어쩌면 자신에게 적대적인 세상의 응집체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화풀이 대상이래도 좋다. 아니면 에이헤브의 권력에 굴복한 자신을 합리화하는 자위행위, 변명으로 보아도 괜찮을 거 같다.]

43장 잘 들어봐!

달빛이 환한 밤, 선원들이 조심스레 양동이로 물을 나르고 있었다. 고물 쪽은 성역과도 같아 누구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런데 아치가 승강구 밑에서 기침소리를 듣는다. 다른 사람은 못 들었다고 하며 아치를 놀렸다. 그러나 아치는 분명히 아직 갑판에 얼씬도 하지 않은 어떤 놈이 배에 타고 있다고 확신한다.

44장 해도

에이해브는 매일밤 선실에서 자신만의 해도를 그리고 있었다. 그는 조수와 해류에 밝았다. 향유고래의 먹이가 다니는 길을 추측할 수 있었고 특정 위도에서 모비 딕을 사냥하기 적합한 시기를 떠올리면서 해도를 그려나갔다. 수많은 목격담과 이동로의 추적결과 모비 딕은 '적도 시기'에 그 해역에 주기적으로 나타났다. 흰 고래와의 사투는 대부분 그곳에서 벌어졌고 에이해브의 다리도 그곳에서 잃었다. 그렇다고 다른 데서 경계를 늦출 수도 없다. 그런데 피쿼드호가 낸터킷을 출발한 때는 적도 시기가 막 시작될 무렵. 시간을 맞춰 적도 부근의 태평양에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것은 에이해브가 365일이라는 시간의 여유를 가지기 위해서 내린 결정일지도 모른다. 우연히 마주칠지 누가 아는가. 에이해브는 탈진할 정도로 생생한 꿈을 꾸다가 그물 침대에서 뛰쳐나오곤 했다. 낮에 품었던 강렬한 열망이 꿈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보통 때와 다르게 수면 중에는 정신이 분리되어 광적으로 치열하게 복수하려는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탈출할 길을 모색한다. '그대는 프로메테우스가 되었고, 그대가 만들어낸 독수리가 그대의 심장을 영원히 파먹는구려.'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그였지만 내면에는 그것을 거부하는 양심이나 공포심이 남아 있는 것이다. 복수심과 이성의 충돌로 괴로워하는 에이해브의 심리다. 표면적으로는 복수심이 그를 지배하고 있지만 그에게도 책임감, 자기 생명의 유일성, 복수의 허무함 따위가 잠재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 이 영원한 심적 갈등을 프로메테우스의 형벌에 비유한 것.]

모비 딕 - 에이해브 선장이 해도를 그리고 있다. 그의 집요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림이다.

45장 진술서

고래의 습성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를 더 다루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불신을 해소하겠다. 작살을 맞고도 탈출에 성공한 고래가 몇 년 후 다시 같은 고래잡이에게 공격당해 죽는 경우가 실제로 많았다. 잡고 보면 동일인의 표시가 새겨진 작살이 박혀 있곤 하기 때문에 알 수 있다. 유명한 고래들은 고래잡이들도 슬쩍 아는 척만 할 뿐 모른 체 지나기도 한다. 그래도 지속적으로 포경선의 보트에 큰 피해를 입히는 고래는 용맹한 포경선 선장들의 조직적인 추격을 당한 끝에 죽임당했다. 이 선장들은 닻을 올릴 때마다 고래를 반드시 잡고 말겠다는 확고한 목적을 가졌다. 그럼에도 모비 딕의 진실을 알리기는 힘들다. 모비 딕을 꾸며낸 괴물이야기, 끔찍하고 용납 불가능한 우화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다음 두 가지 사항을 감안하기 바란다. 첫째, 포경업은 실제 위험이 많이 은폐되어 있다. 둘째, 향유고래는 고의로 큰 배에 구멍을 내거나 박살낼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다. 실제 에식스호를 난파시킨 고래, 낸터킷 배 유니온호를 침몰시킨 고래, 전함을 들이받은 고래 이야기 등, 실제 향유고래의 위험을 보여주는 사례가 많다. 영국 배 퓨지홀호 사건부터 6세기 동로마제국의 기록에 이르기까지 증거들은 수두룩하다.

[망망대해에서 특정한 고래를 추격하는 것, 그리고 향유고래가 포경선을 부술 만큼 강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는 장이다. 에이해브의 추적과 모비 딕에 의해 초래될 파국적 결말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46장 추측

실제 항해의 목적을 밝히고도 일상적인 포경어업선으로써 피쿼드호를 이끌어가는 에이해브의 속내는 어떤 것일까? 스타벅은 에이해브의 목적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에게는 일상적인 영향력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했다. 그것은 그에게 모비 딕을 향해 집중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또 아무리 맹세한 선원들이라 할지라도 마음은 언제든 바뀔 수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고 공허한 대상을 추격할 때는, 최후의 공격이 있기까지 그들을 건강하게 붙들어두는 일이 필요했다. 게다가 그들에게는 좀 더 평범하고 일상적인 식욕을 채워줄 게 필요하다 생각했다. 마치 십자군이 원정 도중에 강도짓과 소매치기를 저지른 것과 같이. 돈을 벌게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충동적으로 너무 이른 시기에 자신의 목적 - 모비 딕 추격 - 을 밝혔기에 배를 강탈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었다. 선원들이 무력으로 배의 지휘권을 강탈해도 도덕적, 법적 면책될 만한 일이었다. 그래서 에이해브는 피쿼드호의 본래 명목상의 목적에 충실했다.

47장 거적 짜기

퀴케그와 이슈메일은 보트 밧줄로 사용할 밧줄 거적을 짜고 있다. 배는 조용하고 무언가 몽환적인 분위기가 흘렀다. 날줄은 필연이자 운명처럼 느껴졌고 자신은 씨줄로 자신의 운명을 부지런히 짜넣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퀴케그가 충동적으로 무심하게 집어넣는 막대기는 우연이다. 그 세기에 따라 완성된 직물의 최종형태에 차이가 생긴다. 그때 게이헤드 출신의 타슈테고가 돛대 꼭대기 활대에서 고래를 발견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고래를 추격하며 선원들은 보트를 내릴 준비를 했다. 이 중대한 순간에 갑작스런 외침이 들려와 모든 선원의 시선이 에이해브에게로 쏠렸다. 선장은 허공에서 갑자기 생겨난 듯한 다섯 명의 검은 유령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거적의 씨줄과 날줄을 운명에 비유했다. 정체 모를 다섯 선원이 이슈메일이나 다른 선원들에게 난데없이 나타난 어떤 운명임을 암시한다.]

모비 딕 - 인디언 타슈테고가 망루에서 고래를 발견하고 소리를 지르고 있다.

48장 최초의 보트 출격

유령 같이 낯선 이들은 우현 후미에 달려 있는 선장의 보트를 내리기 위해 준비했다. 선장의 명령에 선원들도 세 대의 보트를 내렸다. 에이해브는 낯선 다섯과 다른 한 보트를 타고 고래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항해사들은 선원들을 독려해 노를 젓게 했다. 스터브가 저기 누런 놈들(낯선 다섯 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가까이 붙은 스타벅에게 묻자, 스타벅은 향유고래에 집중하라고 일렀다. 선원들은 이미 아치가 말하고 다닌 덕에 어느 정도 면역이 되어 있었는지 큰 동요는 보이지 않았다. 이슈메일은 낸터킷에서 새벽에 본 의문의 그림자들과 일라이저를 떠올렸다. 선장의 보트가 가장 빨랐다. 선장의 보트에 탄 낯선 선원들이 얼마나 힘이 센지 여실히 보여주는 일이었다. 선장의 보트가 멈추자 다른 보트들도 노질을 멈추고 바다를 살핀다. 한동안의 침묵을 이번에도 타슈테고가 깨뜨렸다. 다시 추격이 개시되었다. 스타벅이 고래 혹을 발견하고 퀴케그에게 작살 한 방을 먹이라 속삭였다. 순간 스콜, 고래, 작살이 모두 한데 뒤엉켰다. 보트는 물에 완전히 잠겼지만 부서진 곳은 거의 없었다. 원래 자리로 헤엄쳐 돌아왔지만 배에는 무릎까지 물이 차있었다. 다른 보트도 본선도 보이지 않았다. 밤이 되었다. 새벽에야 겨우 본선을 만날 수 있었다.

모비 딕 - 키작은 3등항해사 플래스크가 포경 보트에서 거구의 흑인, 다구의 어깨 위에서 고래를 찾고 있다.

49장 하이에나

이슈메일은 이런 일이 흔한 것인지, 스타벅의 판단이 옳았는지 다른 항해사들에게 물었다. 그들은 흔한 일이고 올바른 판단이라 입을 모았다. 그러니까 바다에서 스콜을 만나 배가 뒤집히고, 바다에서 야영을 하게 되는 것은 흔한 일이라는 것을 이슈메일은 깨달았다. 이슈메일은 유언장의 초안을 쓰기로 했다. 이슈메일은 유언장을 쓰고 무심결에 생각한다. ', 이제는 냉정하고 침착하게 죽음과 파멸 속으로 뛰어드는 거야. 그렇다면 악마여, 가장 뒤에 처진 놈을 잡아가라.'

50장 에이해브의 보트와 선원들, 페달라

선장이 위험한 고래잡이 보트에 오르는 것은 옳은 일일까? 공동선주들은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니 에이해브는 몰래 자기 보트에 탈 선원을 배에 태운 것이리라. 낯선 선원들에 대한 놀라움은 오래 가지 않았다. 포경선은 원래 세상의 온갖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었고 조난자를 구조하는 일도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리카락을 터번처럼 틀어 올린 페달라는 끝까지 신비에 싸인 인물로 남았다.

51장 유령의 물줄기

몇 날 몇 주 후, 어느 고요한 달밤, 은빛 물줄기 하나가 솟아올랐다. 페달라가 처음 발견했다. 피쿼드호에 활기가 돌며 추적이 시작되었다. 허탕이었다. 며칠 뒤, 그때와 같이 고요한 시간에 또 물줄기가 목격되었다. 추격하자 사라진다. 밤마다 그런 현상이 반복되었다. 그 물줄기는 마치 피쿼드호를 부르는 듯했다. 그 물줄기를 모비 딕이 뿜어낸 것이라 생각하는 선원이 적지 않았다. 따라서 공포도 뒤따랐다. 희망봉에 이르자 바다가 거칠어졌다. 그러나 여기서도 평온하고, 눈처럼 하얀 고독한 물줄기를 이따금씩 볼 수 있었다. 악천후와 싸우면서도 선원들은 말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에이해브는 선실에서조차 쉬지 않고 해도를 보다 앉은 채로 잠들었다.

[희망봉: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에 있는 곶. 대서양과 인도양이 이곳에서 만난다.]

52장 앨버트로스호

희망봉 동남쪽에서 앨버트로스라는 배 한 척이 나타났다.스쳐지나면서 피쿼드호 고물 쪽에서 에이해브가 흰 고래를 보았느냐고 물었지만 앨버트로스호에서 대답하려던 사람이 그만 나팔을 바다에 떨어뜨리고 만다. 이 일을 선원들은 불길하게 여겼다.

모비 딕 - 대양을 항해 중인 범선 저편으로 여러 갈래의 빛기둥이 쏟아지고 있다.

53장 포경선들의 만남, 갬

포경선들은 이국의 바다, 특히 공동 어장에서 조우했을 때 취하는 특별한 관습이 있다. 뒤에 떠나온 배에는 편지나 비교적 최근 소식이 담긴 신문 따위가 있을 수 있었고 앞서 조업했던 배는 어장의 최신 정보를 가지고 있다. 두 배가 다 떠나온지 오래되었다 해도 제3의 배에서 부탁받은 편지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포경 정보는 교환할 수 있었다. 같은 대상을 추격하는 데서 오는 독특한 유대감도 무시 못한다. 이는 국적을 넘어선다. 다른 업종의 배에서는 볼 수 없는 훌륭한 관습이 포경선에 있다. 이렇게 화창한 날 포경선들이 바다에서 만나면 '[GAM]'이라는 것을 한다. 두 척 이상의 포경선 사이에 이루어지는 사교적인 만남이다. 포경선끼리 만나면 큰 소리로 인사를 나눈 뒤, 양쪽 배의 선원들이 보트를 타고 서로의 배를 방문한다. 두 배의 선장은 한동안 한쪽 배에서, 일등항해사 두 명은 다른 쪽 배에서 환담을 나눈다.

54장 타운호호 이야기

(황금 여관에서 이야기한 형식대로)

[황금 여관 운운 지문은 타운호호 선원들에 의해 전해진 모비 딕에 관련한 이야기를 화자가 황금 여관이란 곳에서 스페인 친구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형식을 빌어 해주겠다는 것.]

희망봉과 그 일대 해역은 사통팔달이라 어느 곳보다 많은 여행자를 만나게 되는 곳이다. 피쿼드호는 앨버트로스호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타운호호와 마주쳤다. 이 배를 통해 선원들은 모비 딕에 관한 아주 확실한 소식을 듣는데, 이 이야기는 에이해브 선장이나 항해사들 귀에는 끝내 들어가지 않았다. 타운호호 선장도 모르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타운호호의 백인 선원 세 명끼리만 비밀로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중 한명이 카톨릭교회식으로 비밀 엄수 맹세를 받고 나서 타슈테고에게 말해주었다고 한다. 잠꼬대를 하다가 일부 이야기를 흘린 타슈테고는 그가 들은 이야기를 모두 토설해 낸다. 선원들은 크게 충격을 받았으나 이 문제와 관련, 이상한 미신에 휘둘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주돛대 뒤쪽으로는 절대 이 이야기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비밀을 굳게 지켰다.

2년여 전, 적도 바로 북쪽에 이른 타운호호는 선창에 원인 모를 물이 고인 것을 발견했다. 구멍은 못 찾고 물은 차오르는 상황이 며칠째 이어지자, 선장은 가까운 섬의 항구에 가기로 결정한다. 순항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호수 사람 스틸킬트가 부당한 대우에 보복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오대호 호수 동서 연안에는 기질이 아주 상반된 두 민족(백인과 인디언이다. 여기서 스틸킬트는 인디언임을 암시.)이 살고 있었다. 스틸킬트는 거기 출신. 오대호도 바다 못지 않아, 스틸킬트 또한 바닷가 출신 못지 않게 대담한 선원이었다. 여하튼 타운호호는 점점 침수가 심해져 항해사 래드니는 걱정이 많았다. 여러 부하를 거느린 자가 부하 중 하나가 자기보다 뛰어난 인물이면 그에게 억제할 수 없는 반감과 분노를 느끼게 되고 제거하려 하게 마련. 스틸킬트가 래드니에게 그런 부하였다. 래드니는 고집이 세고 사악했고 스틸킬트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스틸킬트도 그것을 알았다. 어느 날, 펌프질 후 쉬고 있는 스틸킬트에게 래드니는 갑판 청소와 돼지 오물까지 치우라고 시켰다. 스틸킬트는 자신의 일이 아니니 하지 않겠다고 했고 래드니는 명령을 거부하는 그를 계속 위협했다. 참다 못한 스틸킬트가 래드니의 아래턱을 날려버렸다. 스틸킬트는 두 운하 사람이 두둔했고 선장 등은 그를 뒷갑판으로 끌고 오라고 항해사들에게 지시했다. 스틸킬트 등은 앞갑판을 장악하고 나무통 서너 개로 바리케이드를 만들었다. 선장은 권총으로 위협했다. 스틸킬트는 처벌하지 않겠다 약속하면 농성을 풀고 업무에 복귀할 것이라며 버틴다. 그러나 선장은 어떤 보장도 약속하지 않고 그저 제자리로 돌아가라고만 외쳐댔다. 협상이 안 되자 선장은 모두 앞갑판 선실로 내려가라고 했고 스틸킬트는 동조자들에게 의견을 묻고 내려가기로 한다. 선장은 그들이 들어가자 선실입구를 닫고 열쇠를 채웠다. 그렇게 10명이 아래서 선실에 갇히고 갑판에는 중립을 지킨 20명 정도가 남았다. 며칠이 지나자 반란자들은 동요했고 점점 대열을 이탈해 업무에 복귀했다. 닷새째 되는 날엔 선실에 겨우 세 명이 남았다. 스틸킬트가 남은 두 동료에게 선상반란을 일으키자 주장했는데, 두 동료는 동의하면서 속으로는 배신을 계획했다. 두 동료는 잠든 스틸킬트를 포박해 선장 앞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나 셋 다 묶여서 매달린다. 선장의 매질이 시작되었다. 스틸킬트는 자신에게 매질한다면 죽여버리겠다 위협했다. 그러나 선장은 때리려고 폼을 잡는데 스틸킬트의 어떤 말을 듣고는 때리지 못하고 물러나 버렸다. 그리고 그를 풀어주게 했다. 하급 항해사들이 풀어주기 위해 가는 걸 래드니가 막아섰다. 래드니가 스틸킬트에게 매질을 했다. 스틸킬트는 래드니를 죽이려고 계획했지만, 하늘이 대신해 주었다. 동틀 무렵, 어떤 선원이 모비 딕을 발견한 것이다. 배에서 50미터도 안 되는 지근거리였다. 선원들은 보트를 내렸고 래드니도 창을 잡았다. 모비 딕은 래드니를 꽉 문 채 공중에 솟구치더니 깊이 잠수해 버렸다. 타운호호가 항구에 정박했을 때, 앞돛대 선원 대여섯 명만 제외하고 모든 선원이 스틸킬트를 따라 도주해버렸다. 보트로 타히티섬에 선원을 모집하러 가던 선장은 도중에 스틸킬트의 카누를 만났다. 스틸킬트는 그들을 억류시켜놓고 먼저 타히티로 가 프랑스로 떠나는 배에 동료들과 올랐다. 그렇게 호수 사람은 영영 타운호호의 영향력에서 벗어났다. 이후 선장은 선원을 모집해 겨우 항해를 시작할 수 있게 되던 터였다.

['타운호'란 옛날에 돛대 꼭대기에서 고래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 외치는 소리이며, 오늘날에도 고래잡이들이 유명한 갈라파고스거북을 잡을 때 이렇게 외친다.]

55장 말도 안 되는 고래 그림들

잘못된 고래의 그림을 보고 오해하지 않도록 오류를 지적할 필요가 있다. 고대 그리스, 이집트, 인도, 동서양, 종교를 떠나 엉터리로 고래를 묘사한 그림들이 많다. 비전문가들의 시도가 아니더라도 전문가들마저 터무니없는 그림을 그리고는 했다. 이런 과학적인 그림의 오류 원인은 대부분 죽어서 해안에 떠밀려온 고래를 보고 그렸기 때문일 것이다. 뼈를 보고 유추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고래의 지느러미뼈는 엄지가 없는 사람의 뼈와 닮았다. 그러나 이 뼈는 밖으로 드러나보이지 않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살아 있는 고래의 윤곽을 어느 정도 파악하기 위해서는 직접 포경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고래에게 죽을 각오도 해야 한다. 그러니 리바이던에 대한 궁금증을 지나치게 발동하지 말기 바란다.

56장 오류가 적은 고래 그림과 사실적인 고래잡이 그림

빌이 그린 향유고래 그림은 훌륭하다. 참고래의 윤곽을 가장 잘 묘사한 그림은 스코스비 책에 들어 있지만 크기가 너무 작다. 고래와 포경 현장을 가장 멋지게 재현한 그림은 가르느레라는 프랑스 화가의 유화를 목판에 새긴 두 점의 대형 판화다. 가르느레가 어떤 화가인지 잘 알지 못하지만 실제로 이 주제에 정통했거나 어느 노련한 고래잡이에게 제대로 배운 게 틀림없다. 프랑스인들은 참으로 생동감 있는 움직임을 그림에 잘 담아낸다. 포경업 경험은 영국인에 비해 10분의 1이 안 되고, 미국인에 비해서는 1,000분의 1도 안 되지만, 그들은 외려 고래잡이의 진정한 장면을 생생하게 그려 두 나라에 제공했다.

모비 딕 - 포경 보트가 고래를 사냥하고 있는 모습이 실감나게 표현된 삽화다.

57장 그림, 이빨, 나무, 철판, 돌, 산악, 별자리 등에 나타난 고래에 관해

런던 부둣가의 절름발이는 자신이 다리를 잃게 된 장면 하나를 그려서 들고 서 있다. 그림 속의 고래 세 마리는 템스강 강변의 와핑 지구에서 발간된 그 어떤 고래 그림 못지않게 훌륭하다. 태평양 전역과 낸터킷항, 뉴베드퍼드항, 새그항에서도 고래와 포경 현장을 생생하게 그린 스케치를 만나볼 수 있다. 향유고래 이빨이나 참고래 뼈로 만든 부인용 코르셋의 살대, 그밖에 고래잡이들이 바다에서 여가 시간에 거친 재료를 정성 들여 갂아낸 작고 독창적인 여러 발명품, 세공품에 그들이 직접 새겨 넣은 그림들이다. 선원들은 불가피하게 야만의 상태로 돌아간다. 야만인은 집에서 시간을 보낼 때 놀라울 정도로 끈기 있게 일한다.

58장 요각류

작고 누런 요각류는 참고래가 좋아하는 먹이다. 요각류가 몇 킬로 미터에 걸쳐 넘실거려 피쿼드호는 마치 밀밭을 헤치고 나아가는 것 같았다. 수많은 참고래가 나타나 만찬을 즐긴다. 평화로운 풍경이지만 실로 바다는 잔혹하다.

59장 오징어

자바섬을 향해 북동항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고요한 아침, 주돛대 꼭대기에 있던 다구의 눈에 유령 같은, 모비 딕으로 보이는 하얀 물체를 발견한다. 에이해브의 눈에도 든 흰 덩어리. 그는 바로 보트를 내리라 지시했다. 보트 네 대가 쫓았고 녀석은 곧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떠오르자, 길이와 폭이 200미터에 달하고 반짝이는 크림색의 거대하고 흐물흐물한 덩어리가 아닌가. 대형 오징어였다. 생김새 때문에 불길하게 여겼지만 선원들은 녀석이 향유고래의 유일한 먹이라고 믿고 있다. 폰토피단 주교가 말하는 거대한 바다 괴물 크라켄은 결국 이 오징어가 아닌가 싶었다.

60장 포경 밧줄

고래잡이에 원래 사용하는 밧줄은 질이 가장 좋은 대마로 만들며 보통 밧줄과 달리 타르를 흠뻑 먹이지 않고 살짝 스며들게 하는 정도로 마무리한다. 최근 들어 미국 포경업에서는 포경 밧줄의 재료로 마닐라삼이 대마를 완전히 대체했다. 튼튼하고 부드러우며 탄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포경밧줄의 두께는 겨우 1.5센티미터다. 그러나 실험에 따르면 51개의 가닥 하나하나가 50킬로그램의 무게를 지탱한다. 따라서 밧줄 전체는 3톤에 맞먹는 무게를 감당한다는 얘기다. 일반 향유고래 밧줄은 길이가 200패덤(360미터)이 넘는다. 포경 밧줄은 보트 고물 쪽에 있는 밧줄통에 나선형으로 감아둔다. 밧줄을 밧줄통에 감아넣을 때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밧줄이 엉키거나 꼬여 있으면 작살을 따라 밧줄이 풀려 나갈 때, 반드시 누군가의 팔이나 다리 또는 몸통을 낚아채기 때문이다. 아무리 주의해도 포경 밧줄이 쏜살같이 튀어나갈때 그 작은 보트 안에 앉아 있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인간은 누구나 포경 밧줄에 매여 살아간다. 모든 인간은 목에 밧줄을 두르고 태어난다. 하지만 고요하고 은밀하며 늘 우리 곁에 있던 삶의 위험을 깨닫게 되는 것은 언제나 갑자기 방향을 튼 죽음과 마주할 때다. 당신이 철학자라면, 포경 보트에 앉아 있다고 해서 작살이 아닌 부지깽이를 들고 저녁 난롯가에 앉아 있을 때보다 조금이라도 더 공포를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어쩌면 구차할 정도의 설명들은 활자 외에 다른 미디어매체가 없던 시절의 특징이 아닐까 한다. 이런 배치는 계속 이어지는데, 세밀화를 그리는 것과 비슷하다. 이 모든 것을 독자의 머릿속에 미리 그려넣어 두는 것이다. 뒤이어질 이야기의 전개, 장면 묘사에서 요긴하게 써먹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 하겠다. 뒤에 확인하겠지만 포경 밧줄은, 특히 작살에 달린 포경 밧줄은 본의 아니게 많은 선원들의 목숨을 위협한다.]

61장 스터브가 고래를 죽이다

괴물 오징어의 출현에 퀴케그는 향유고래를 보게 될 거라며 보트 뱃머리에서 작살을 갈았다. 다음날은 나른한 날이었다. 이슈메일은 앞돛대 당직을 서면서 졸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감긴 두 눈 아래에서 물방울이 솟구치는 것을 본다. 선원들이 보트를 내렸다. 잠수했던 고래가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스터브의 보트 앞에 솟구쳐 올랐다. 스터브는 고래를 추격하면서 보트의 앞자리에 앉아 연신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곧 타슈테고에게 작살을 던지라는 명령을 내렸다. 보트가 빠르게 끌려가며 포경 밧줄도 팽팽하게 당겨졌다. 고래가 속도를 마침내 낮추자 스터브가 밧줄을 감으라고 지시했다. 스터브는 고래를 향해 연속해서 창을 던졌다. 고래는 바닷물이 아닌 핏물 속에서 고통으로 몸부림쳤다. 요동이 다소 멈추자 스터브는 보트를 고래 가까이에 대게 했다. 스터브는 뱃머리 앞쪽으로 몸을 내밀어 길고 날카로운 창을 고래의 몸속에 깊이 박아 넣었다. 그리고 비틀어대면서 고래의 몸을 후벼 팠다. 마침내 그 창끝이 고래의 생명을 찾아 찔렀다. 고래가 요동치자 보트가 물러난다. 마침내 핏덩이가 섞인 숨을 토한 고래가 움직임을 멈췄다.

62장 작살 던지기

포경 보트에서 고래를 죽이는 임무를 맡은 사람이 임시 키잡이가 되고, 고래에 작살을 꽂는 작살잡이는 '작살잡이 노'라고 부르는 맨 앞의 노를 젓는다. 고래에게 등을 돌린 채 노를 젓고 소리를 질러대느라 녹초가 된 작살잡이에게 작살을 던지라는 명령이 떨어지는 것이다. 보통 작살 50개를 던졌을 때 고작 5개가 고래 몸에 제대로 박히기도 어렵다고 한다. 포경 항해에서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 작살잡이인데, 그를 혹사시키면 정작 필요할 때 그가 어떻게 힘을 발휘하겠는가? 게다가 작살이 명중하면 고래가 달아나기 시작하는데 이때 작살잡이와 보트장(창을 던질 사람. 항해사.)이 그 좁은 보트에서 자리를 바꾸어야 한다. 이것도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 이슈메일은 이런 관행이 불합리해 보였다. 보트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뱃머리에 앉아 있으면 될 일이었다. 그가 작살도 창도 던지면 되는 것이다.

[불합리하지만 관행이나 관습이라는 미명하에 지속되는 행위들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는 회의주의적인 시각으로 완고한 사회적 합의, 관행, 법 따위를 바라보지 않으면 진보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63장 작살받이

작살받이는 Y자 형의 독특한 형태를 가진 60센티미터쯤의 막대기로 뱃머리 근처 우현에 수직으로 꽂혀 있다. 작살 맨 끝의 나무 부분을 여기에 걸쳐두고, 작살 날은 약간 비스듬히 뱃고물 앞쪽으로 나가 있게 한다. 즉시 집어들고 던지기 좋게 두는 것이다. 보통 두 개의 작살을 얹어놓는데 각각 제1작살, 2작살이라 부른다. 실패를 줄이기 위한 장치인데 때로 예비 작살이 꽤 위험한 사고를 유발하기도 한다. 그래서 첫 번째 작살이 명중하면 두 번째 작살은 부러 바다에 던져 넣기도 한다. 그렇다고 날뛰는 고래에 끌려다니는 보트가 온전히 안전할 수는 없다. 끝이 이미 밧줄에 묶여 있는 작살이기 때문이다.

64장 스터브의 저녁 식사

보트 세 척이 고래를 끌었지만 겨우 조금씩 밖에 움직이지 못했다. 그만큼 컸다. 밤이 왔다. 본선에 가까이 다가가자 에이해브는 밤새 잘 간수하라는 통상적인 지시를 내리고서는 선실로 돌아가버렸다. 그는 이 고래 추격을 감독하는 동안엔 기민한 활력을 보였지만, 막상 고래가 죽자 그 내면에 막연한 불안과 초조와 절망이 엄습해 오는 듯 보였다. 모비 딕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이 대조적으로 떠오른 것이리라. 고래의 머리는 고물에 꼬리는 이물에 묶여 그 거대한 몸뚱이가 피쿼드호 본선에 바짝 붙인 채 매달렸다. 스터브는 승리에 도취해 흥분해 있었다. 스타벅은 그에게 갑판 업무처리를 한동안 위임해 주었다. 스터브는 스테이크다, 라며 다구에게 꼬리 한 조각만 잘라오라 시켰다. 스터브는 고래고기를 지나치리만큼 좋아했다. 그날 밤 자정무렵, 고래고기로 향연을 벌인 자는 스터브만이 아니었다. 죽은 고래에 달라붙은 수천 마리의 상어들도 있었다. 스터브는 상어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지만 요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못 참고 잠들었던 늙은 흑인 요리사를 굳이 불러 지청구했다. 그러다가 상어를 조용히 시키라고 했다. 요리사는 상어들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설교를 시작한다. 그렇게 계속 늙은 흑인 요리사를 놀리고 조롱하는 스터브였다. 요리사는 차라리 스터브가 고래에게 먹혀버렸으면 좋겠다고 씨우적거리며 그물 침대로 돌아갔다.

65장 고래고기 요리

고래고기 요리의 역사에 대해 서술한다. 고래는 바다의 일등급 황소인데 너무 기름기가 많아 우아한 음식이 되기 어렵다. 하지만 고래의 뇌는 특별한 음식이다. 식문화로 문명과 야만을 구분짓는 것은 어리석은 위선이라 비판한다. '다가오는 기근에 대비해 말라빠진 선교사의 시신에 소금을 쳐서 지하실에 보관한 피지족이, 거위를 땅바닥에 못박아놓고 그 간을 비대하게 만든 다음 요리해서 '파테드푸아그라'라는 그럴 듯한 이름을 붙여서 먹는 문명화되고 개화된 미식가들보다 최후의 심판 날에 좀 덜한 벌을 받게 될 것이다.'

[허먼 멜빌은 식인종은 죽은 사람을 먹지만, 미국 백인들은 산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노예제를 비판하기도 했다.]

66장 상어 대학살

퀴케그와 앞갑판 선원 한 명이 기다란 고래 삽(고래 절단용 삽. 날카롭다.)으로 상어의 대가리를 내리쳐 죽이기 시작했다. 퀴케그가 껍질을 벗기기 위해 죽은 상어를 갑판 위로 끌어올린 다음, 흉측한 아가리를 다물게 하려다가 아가리가 갑자기 덫처럼 철커덕 닫히는 바람에 하마터면 손이 잘릴 뻔한다. 퀴케그는 "피지 신이든 낸터킷 신이든 간에, 저 상어를 만든 신은 틀림없이 빌어먹을 인디언일 거다."

67장 고래 해체 작업

토요일 밤이었지만 피쿼드호는 도살장, 선원들은 푸주한으로 변신했다. 돛에 해체용 도르래를 설치하고 고래의 지방부터 벗겨낸다. 배가 기우뚱한다. 담요라 부르는 기다란 지방덩어리는 승강구로 내려 지방 보관실에 둘둘 말아서 보관하게 된다.

모비 딕 - 거대한 고래를 해체하고 있는 모습이다.

68장 담요

문제는 고래 가죽이란 무엇이며 어느 부위를 가리키는가 하는 것이다. 고래 지방층은 단단하고 밀도 높은 쇠고기와 비슷하지만 그보다 질기고 탄력 있으며 두께는 20센티미터부터 40센티미터에 이른다. 다른 동물의 가죽이 그렇다고 하면 다소 황당할 것이다. 하지만 반론을 제기하기란 불가능한 것이 고래의 몸에서 지방층을 제외하고 달리 피부층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가죽은 대형 향유고래의 경우 100통이나 짜낼 수 있을 만큼의 기름을 머금고 있다. 그것도 양이나 무게로 볼 때 4분의 3정도다. 그 정도가 무려 10톤이나 나간다. 고래는 실제 이런 것을 담요, 차라리 인디언 판초처럼 머리 위로 덮어써서 발밑까지 덮고 있다. 고래는 인간과 같은 온혈동물이다. 그럼에도 이처럼 따뜻한 담요를 두르고 있기 때문에 고래는 어떤 날씨, 어떤 바다, 어떤 시기, 어떤 조류에서도 아늑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이다. 인간들이여! 고래를 찬양하고 본받으라. 얼음 속에서 따뜻함을 유지하라. 사시사철 그대만의 체온을 유지하라. 이러한 미덕을 가르친다는 것은 얼마나 쉽고도 허망한지.

69장 장례식

머리가 잘리고 가죽이 벗겨진 고래의 하얀 몸을 이제 떠내려 보낸다. 새들과 상어 떼가 모여들어 멀어질수록 무시무시한 소음이 더욱 커져만 갔다.

모비 딕 - 해체 작업이 끝난 고래를 떠내려 보내면 새들과 상어떼가 몰려든다. 위대한 인물이 죽으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 듯이.

70장 스핑크스

고래의 몸을 완전히 벗기기 전에 단두 작업부터 한다. 잘라낸 머리는 우선 고물 쪽으로 늘어뜨려 밧줄로 묶어놓은 다음, 몸통의 가죽을 벗기는 작업에 들어간다. 작은 고래일 경우에 머리를 갑판 위로 끌어올려 신중하게 처리하지만 덩치가 아주 큰 고래일 경우 그렇게 하지 못한다. 향유고래의 머리는 몸 전체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기 때문에 포경선의 도르래가 아무리 크더라도 그처럼 무거운 짐을 완전히 들어 올리기는 어렵다. 피쿼드호 선원들은 고래 머리를 뱃전에 대고 물 위로 반만 끌어올린 채 매달아 물의 부력이 머리의 무게를 상당 부분 떠받칠 수 있게 작업해 놓았지만 무게가 무거워 배가 기우뚱해 있었다. 작업이 끝난 갑판에는 정적만 감돌았다. 매달려 있는 머리는 사막에 우뚝 선 스핑크스처럼 보였다. 에이해브는 혼자서 중얼거린다. , 고래 머리여! 너는 여러 행성을 쪼개고 아브라함을 믿음 없는 자로 만들 만한 일들을 무수히 보았으면서도 아무 말이 없구나! 그때 주돛대 꼭대기에서 멀리 배가 간다고 알려왔다.

71장 제로보암호 이야기

두 배는 서로 신호기를 내보였다. 그 배는 낸터킷 선적의 제로보암호였다. 선장과 선원들이 보트를 내려 피쿼드호에 다가왔으나 악성 점염병이 퍼져 있다는 이유로 제로보암호의 메이휴 선장은 피쿼드호에 극구 승선은 하지 않았다. 제로보암호 보트에서 노를 젓는 사람 중에 자신을 대천사 가브리엘이라며 선원들을 선동한 자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영향력으로 선장과 협상하였고 배에서 일정 권위를 누리고 있었다. 에이해브는 메이휴 선장에게 흰 고래, 모비 딕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가브리엘이 구멍이 나서 가라앉는 그대의 포경 보트를 생각하라! 면서 끼어들었다. 메이휴의 말에 의하면 제로보암호에도 모비 딕이 일으킨 참사 소식이 전해졌고 가브리엘은 절대 공격하면 안 된다고 선장에게 엄숙히 경고했다. 그러나 한두 해 뒤에 돛대 꼭대기에서 모비 딕을 발견했을 때, 일등항해사 메이시는 그 괴물과 대결하고 싶은 욕구로 불타올랐다. 그는 작살 하나 꽂는 데 성공했고 가브리엘은 주돛대 꼭대기에 올라가 한 팔을 공중에 미친 듯이 휘두르면서 자신의 신을 공격하는 불경한 자에게 곧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예언을 큰소리로 퍼부었다. 하얀 그림자가 솟구쳤고 메이시만 약 50여 미터 날아가 물속에 처박혔다. 이 사건으로 대천사는 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야기를 마친 메이휴 선장에게 에이해브가 모비 딕에 대해 질문을 해댔고, 메이휴가 모비 딕을 사냥할 생각이냐고 묻자, 에이해브는 '물론이오.'라고 답했다. 그러자 가브리엘이 벌떡 일어나 저주를 퍼붓는다. 에이해브는 마침 제로보암호로 보내는 편지가 생각났고 스타벅을 시켜 편지를 가져오게 했다. '해리 메이시.' , 이 편지는 모비 딕에게 죽은 메이시 항해사에게 그의 아내가 보낸 편지였다. 메이휴는 한숨을 쉬며 편지를 달라고 했지만 가브리엘은 에이해브에게 보관하라고 했다. "당신도 곧 그 길로 갈 테니."라며. 스타벅이 편지를 전했지만 가브리엘이 다시 던져 편지는 에이해브의 발밑으로 다시 날라오고 말았다.

모비 딕 - 제로보암호 메이시 항해사가 모비 딕의 공격으로 튕겨져 날아가고 있다.

72장 원숭이 밧줄

고래를 해체하는 동안 선원들은 정말 바쁘다. 작살잡이는 고래의 지방층을 벗기는 작업이 완료될 때까지 고래 등에 머물러야 하는 경우가 많다. 퀴케그는 그래서 거대한 고래가 쳇바퀴 돌아가듯 몸이 돌아갈 때마다 반은 고래 위에서, 반은 물속에 잠긴 채 버둥거리며 작업을 해야 한다. 이슈메일은 그를 밧줄로 붙들고 있었다. 포경업계에서 원숭이 밧줄이라고 부르는 그것은 퀴케그가 허리에 두른 튼튼한 범포 띠에 연결되었다. 만약 불쌍한 퀴케그가 물속에 추락해 떠오르지 않는다면, 관례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 이슈메일도 밧줄을 자르지 않고 그를 따라 끌려들어가야 했다. 이슈메일은 상대방의 실수나 불운으로 아무런 잘못도 없는 자신이 부당하게 참사와 죽음에 끌려 들어갈 수 있음을 깨달았다. 신의 섭리가 공명정대하게 작동했다면 이처럼 엄청난 불의를 허용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곧 이슈메일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이 지구상에서 숨 쉬며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처지와 다를 바 없음을 깨닫는다. 다만 대부분의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한 사람이 아니라 다수와 샴쌍둥이처럼 연결되어 있을 뿐. 거래 은행이 파산한다면 당신도 망한다. 아무리 애써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밧줄의 한쪽 끝뿐이라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퀴케그는 물에 빠질 위험에만 처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상어들도 여전히 득실댔다. 이슈메일은 유난히 난폭해 보이는 상어가 퀴케그 가까이 있으면 원숭이 밧줄을 당겼다. 타슈테고와 다구가 뱃전 너머로 내린 발판에 올라서서 상어를 닥치는 대로 죽였다. 이런 보호 조치는 사심 없이 선의에서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휘두르는 고래 삽에 퀴케그의 다리가 날라갈 수도 있었다. 퀴케그는 필시 그의 운명을 그저 요조에게 기도하고 있었을 것이다. 작업을 마치고 올라온 퀴케그에게 사환이 생강차를 내밀었다. 스터브가 생강차를 확인하고 사환(찐빵)을 야단쳤다. 그러자 사환은 작살잡이들에게 절대로 술을 주지 말라고 한 것은 채리티 아주머니라고 했다. 생강차만 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스타벅은 스터브에게 다시는 그 아이를 때리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스타벅은 스터브를 사환과 내려보냈다. 스터브가 다시 올라왔을 때, 그의 손에는 술이 들려 있었다. 다른 손에 들고 온 차통은 바다에 던져졌다.

[원숭이 밧줄이란 작업줄을 통해 실제 우리 사회의 얽히고 설킨 관계를 설명한다. 이미 자신들이 에이해브라는 위험한 사람과 운명 공동체임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73장 스터브와 플래스크, 참고래를 죽이고 그자에 관해 대화하다

피쿼드호는 노란 요각류 떼가 가끔 떠다니는 해역에 접어들었다. 참고래가 있다는 표식이었다. 원래 참고래는 목표가 아니기에 참고래를 잡으라는 명령에 피쿼드호 선원들은 놀랐다. 스터브와 플래스크가 이끄는 보트 두 척이 참고래 추격에 나섰다. 두 척의 보트를 매단 채로 종횡무진하는 참고래. 피쿼드호 주위를 빙빙 돌면서 싸움이 계속되었고 향유고래 사체 주위를 맴돌던 상어 떼가 새로 흘러나온 피 냄새를 맡고 달려들었다. 사냥이 끝나고 참고래 사냥을 시킨 저의를 궁금해 하는 스터브에게 플래스크는 페달라가 향유고래 머리를 우현에 매달고 참고래 머리를 좌현에 매단 배는 절대 뒤집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전한다. 둘은 페달라가 주술을 거는 배가 을씬년스러웠고, 스터브는 페달라가 악마라며, 기회가 된다면 페달라를 바다에 밀어버리고 싶다 한다. 스터브는 모비 딕을 잡고싶어하는 에이해브에게 접근한 악마가 페달라라고 주장했다. 그가 악마라면 바다에 처넣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 되묻는 플래스크. 그러나 스터브는 흠씬 패주기라도 해야 함장실을 못 드나들 거라고 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두 보트는 본선에 닿았다. 본선에서는 고래를 좌현으로 끌고 가라고 외쳤다. 플래스크의 말은 사실로 판명되었다. 이제 피쿼드호는 두 머리가 균형을 이루며 용골이 똑바로 섰다. '한 손에 로크의 머리를 들면 그쪽으로 기울어지지만, 다른 한 손에 칸트의 머리를 들면 원래 위치로 돌아가게 된다.(로크는 경험론을, 칸트는 관념론을 가리킨다.)' 그러나 무게 때문에 곤란하긴 마찬가지였다. 무거운 머리들을 모두 배 밖으로 던져버리면 배가 물 위에 가볍게 똑바로 뜰 수 있는데.

74장 향유고래의 머리 - 비교 검토

인간이 정식으로 사냥하는 고래는 향유고래와 참고래 딱 두 종류뿐이다. 향유고래의 머리는 수학적 대칭이 뚜렷이 드러나는 반면, 참고래의 머리는 대칭이 보이지 않는다. 두 고래의 머리에서 가장 유사한 부분이자 중요한 기관인 눈과 귀를 살펴보자. 머리 훨씬 뒤쪽과 아래쪽 고래 턱 부근을 자세히 살펴보면 속눈썹이 없는 눈을 발견할 수 있다. 어린 망아지의 눈과 비슷한 그 눈은 거대한 머리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작다. 눈의 위치로 보아 고래는 바로 뒤나 앞에 있는 물체를 전혀 볼 수 없을 것이다. 고래는 전방 시야가 좌우로 30도 정도이고, 뒤로도 그 정도 밖에 보지 못한다. 시각에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귀 또한 특이하다. 고래의 귀는 찾기 어렵다. 귓바퀴라는 것이 전혀 없고 귓구멍은 깃촉 하나 꽂아 넣기도 어려울 정도로 작기 때문이다. 귀는 눈에서 약간 떨어진 뒤쪽에 있다. 향유고래의 귀는 바깥쪽으로 뚫려 있는 반면, 참고래의 귀는 평평한 막으로 덮여 있는 차이가 있다. 입 안은 혓바닥에서 입천장까지 신부의 드레스처럼 하얗게 반짝거리는 막으로 덮여 있다. 아래턱은 흉흉하다. 거대한 코담뱃갑의 좁고 기다란 뚜껑처럼 생겼고 위쪽에 경첩이 달린 형태다. 가지런히 늘어선 이빨은 무서운 내리닫이 쇠살문과 닮았다. 이 아래턱은 숙련된 기술자라면 쉽게 해체하여 갑판 위에 올린다. 상앗빛 이빨을 뽑아내고 단단한 흰 고래수염을 떼어낸다. 이 고래수염으로 지팡이, 우산대, 승마용 채찍 손잡이 등 온갖 진귀한 물건을 만들어낸다. 퀴케그, 다구, 타슈테고와 같이 숙련된 사람들이 이빨 뽑기 작업에 착수했다. 고래 이빨은 모두 합쳐 42개 정도 된다. 늙은 고래일 경우에도 이빨이 많이 닳아는 있되, 썩어 있지는 않았다. 턱은 나중에 널빤지처럼 톱으로 켜서 집 지을 때 쓰는 들보처럼 쌓아둔다.

75장 참고래의 머리 - 비교 검토

향유고래의 머리는 로마 시대의 전차와 비숫하다. 한편 참고래의 머리는 갤리선과 비슷하다. 머리 꼭대기에 서서 'f'자 모양을 한 두 개의 분기공을 보면 머리 전체가 커대한 콘트라베이스처럼 보일 것이다. 그 덩어리의 꼭대기에 달린 닭 볏 같기도 하고 빗 같기도 한 괴상한 것을 보면 가지가 갈라지는 곳에 새가 둥지를 튼 거대한 참나무 줄기로 보일 것이다. 축 처진 아랫입술은 심술과 시무룩함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6미터 길이에 1.5미터 두께의 심술과 시무룩함은 2,000리터 이상의 기름을 제공한다. 입천장 높이는 3미터가 넘고 꽤 날카로운 각도를 이루며 앞으로 내달린다. 고래 수염은 고래의 정수리 혹은 왕관 부근의 뼈에 연결되어, 내리닫이 창살문을 이루고 있다. 고래수염의 가장자리에는 털투성이 섬유가 달려 있어 참고래가 먹이를 먹을 때 입을 벌린 채 요각류 떼 사이를 지나면 물은 수염 사이로 빠져나가고, 작은 물고기는 그 복잡한 구조 속에 걸려 입안에 남게 된다. 이 고래수염은 숙녀들의 코르셋 살대나 그 밖의 단단한 보강재로 쓰이고 있다. 부드러운 혀는 찢어지기 쉬운 기름 덩어리다. 향유고래의 머리와 참고래의 머리는 전혀 다르다. 요약해보자면, 참고래의 머리에는 그리 대단한 기름샘이 없고, 상앗빛 이빨도 없으며, 길쭉한 아래턱도 없다. 한편 향유고래의 머리에는 창살문 같은 고래수염이 없고, 거대한 아랫입술도 없으며, 혀라고 할 만한 것도 없다. 또 참고래는 분수공이 두 개이지만 향유고래는 하나뿐이다. '저기 향유고래의 표정을 잘 살펴보았는가? 죽었을 때의 표정과 똑같다. 이마에 새겨진 긴 주름살 몇 개가 지금은 다소 희미해졌을 뿐이다. 향유고래의 넓은 이마에는 대평원의 평온함이 가득한 것 같다. 평온함은 죽음에 대한 무심함에서 생겨난 것이리라. 하지만 참고래 머리의 표정을 보라. 어쩌다가 포경선의 뱃전에 눌려 턱을 꽉 감싸게 된 저 놀라운 아랫입술을 보라. 머리는 죽음에 직면했을 때 엄청난 결단을 내린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나는 참고래가 스토아철학자였고, 향유고래는 플라톤주의자였다가 말년에 스피노자를 받아들인 철학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73장에서 언급한 로크의 경험론과 칸트의 관념론 비유의 연장. 참고래를 경험론자로 본다면 향유고래는 관념론자다. 스피노자는 자연이 곧 신이라는 범신론 입장을 취했다. 말년에 스피노자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저 멀리 있던 신을 믿다가 세상의 모든 것이 신이라고 믿게 되었음을 뜻한다.]

76장 공성퇴

향유고래의 머리에 얼마나 강력한 공성퇴의 힘이 실릴 수 있는지 살펴본다. 향유고래 머리의 앞부분은 단 하나의 기관이나 이렇다 할 만큼 돌출된 부분이 없는 밋밋한 벽이다. 게다가 머리 앞면의 맨 아래쪽에서 뒤로 기울어진 부분에서만 뼈의 흔적을 희미하게 볼 수 있고, 이마에서 6미터는 내려가야 비로소 온전한 두개골에 이른다. 그러므로 뼈 없는 이 거대한 덩어리는 하나의 살 덩어리인 셈이다. 그 내용물은 대부분 향기 나는 기름으로 구성되어 있다. 향유고래의 이미는 말발굽으로 다져진 것처럼 단단하다. 어떤 감각도 없을 것 같다. 더해서 어떤 이유에서인지 강한 부력으로 머리부터 솟아오른다. 향유고래의 머리는 어마어마하게 강력하다.

[향유고래의 머리가 강력한 공성퇴임을 해부학적으로 증명한다. 향유고래가 커다란 배 또한 가라앉힐 수 있음을 암시한다.]

77장 커다란 하이델베르크 술통

이제 고래의 기름통에서 기름을 퍼낼 때다. 향유고래의 머리를 아래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보면 아래쪽은 두개골과 턱을 이루는 골격이고 위쪽은 뼈가 전혀 없는 기름덩어리다. 위쪽 부분의 중간을 다시 수평으로 나눈다. 아랫부분을 지방조직이라고 부르는데 기름으로 가득한 거대한 벌집 모양을 하고 있다. 기름통이라고 부르는 윗부분은 커다란 하이델베르크 술통과 같다. 하이델베르크 술통을 최고급 포도주로 채우듯이, 향유고래의 기름통에도 가장 귀하고 값비싼 기름, 즉 경뇌유가 저장되어 있다. 고래가 살아 있을 때는 몸속에서 액체 상태를 유지하지만, 죽은 뒤에는 공기에 노출되면서 금세 굳어버리는데 막 얼기 시작한 얼음처럼 아름다운 결정을 만들어 뻗어가기 시작한다. 고래의 기름통은 8미터가 넘고 큰 고래의 경우 경뇌유가 약 2,000리터 나온다. 귀한 만큼 보관하는 통도 최상급으로 제작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유실도 많이 되는 편이다.

78장 기름통과 들통

타슈테고는 주돛대의 아래 활대까지 민첩하게 가는데, 공중에 매달려 있는 고래기름통 바로 위 지점이다. 그는 '고패'라고 하는 가벼운 도르래를 하나 들고 있다. 손잡이가 짧고 예리한 삽을 들고 파고 들어갈 위치를 잡는다. 탐사 작업이 끝나면 우물의 두레박과 비슷하게 생긴, 쇠를 댄 단단한 들통을 고패의 밧줄 한쪽 끝에 매단다. 밧줄의 다른 한쪽 끝은 갑판을 가로질러 가서 저편의 민첩한 두세 명의 선원이 붙들고 있다. 이제 그들은 인디언의 손이 닿는 위치까지 들통을 들어 올려주고, 또 다른 선원이 그에게 아주 기다란 장대를 건넨다. 타슈테고는 이 장대를 들통 속에 넣어 들통이 고래의 기름통에 완전히 잠길 때까지 내리누른다. 그런 다음 고패 쪽에 있는 선원들에게 소리를 질러 알리면, 들통은 위로 올라온다. 들통의 기름은 보관 통에 붓고 빈 들통은 다시 들려 올라온다. 고래 머리의 기름을 다 퍼낼 때까지 같은 작업이 반복된다. 나중에는 타슈테고의 장대가 6미터 아래까지 내려갔다. 같은 작업을 아흔 번째인가 할 때, 타슈테고가 하이델베르크의 술통으로 곤두박질쳤고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구가 들통에 발을 넣고 그 자리로 올라갔다. 다구가 고래 머리 위에서 커다란 절단용 도르래에 엉켜 있는 고패의 밧줄을 풀고 있던 그 순간, 고래 머리에 걸려 있던 두 개의 거대한 갈고리 가운데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고래 머리가 흔들리면서 배도 기우뚱거렸다. 다구에게 내려오라고 선원들이 소리쳤으나 다구는 엉킨 밧줄을 푼 다음, 우물 속으로 들통을 내려뜨렸다. 스터브가 소용 없는 일이라며 만류했다. 그 순간 거대한 고래 머리가 바다로 떨어졌다. 다구는 고패에 간신이 매달려 있었지만 타슈테고는 이제 기름통에 생매장된 채로 바다에 가라앉고 있던 것이다. 수납용 칼을 손에 든 알몸의 퀴케그가 물에 뛰어들었다. 다들 우르르 뱃전으로 몰려갔다. 다구가 먼저 발견하고 환호성을 지른다. 퀴케그가 타슈테고를 구했지만 타슈테고는 좀처럼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고, 퀴케그도 안색이 나빴다. 퀴케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고래 머리 밑바닥 근처를 옆으로 수차례 찔러 큰 구멍을 낸 다음 손으로 더듬어서 타슈테고를 꺼냈다는 것이다. '만약 타슈테고가 고래 머릿속에서 죽었더라면 값비싼 죽음이 되었을 것이다. 가장 희고 가장 우아한 향유 속에서 질식사하여 고래 몸 안의 가장 은밀하고 신성한 내실을 관이자 영구차이자 무덤으로 삼았을 테니 말이다. 이보다 더 감미로운 죽음이 있다면, 지금으로서는 오하이오의 어느 벌꿀 채집자의 죽음이 생각난다. 그는 속이 빈 나무의 벌어진 틈으로 꿀을 찾다가 그 안에 엄청난 양의 꿀이 들어찬 것을 발견하고는 몸을 너무 기울이다가 그만 꿀에 빨려 들어갔고, 그 상태로 방부 처리된 채 죽고 말았다. 이처럼 꿀이 가득한 플라톤의 머릿속에 빠져 거기서 달콤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또 얼마나 되겠는가?'

[꿀이 가득한 플라톤의 머리란 그의 관념론을 말한다. 방부 처리는 플라톤이 가르치는 영혼 불멸설과 대구를 이룬다.]

모비 딕 - 타슈테고가 고래 머리의 기름통에서 기름을 퍼내고 있다.
 

79장 대평원

인상학적으로 향유고래는 이례적인 동물이다. 고래에게는 코가 없다. 그러나 위풍당당하고 숭고하기까지 하다. 대부분의 경우 이마는 한 조각 땅에 불과할 때가 많다. 그러나 향유고래의 경우 드높고 막강한 신적 위엄이 태아날 때부터 이마에 깃들어 있는 듯하다. 얼굴이 없기 때문이다. 그 이마는 보트와 배와 인간의 운명을 말없이 끌어내린다. 향유고래의 이미에 새겨진 경외로운 칼데아 문자를 누가 읽어내겠는가?

80장 고래의 뇌

향유고래가 인상학적으로 하나의 스핑크스라면, 골상학자에게 뇌는 면적을 구할 수 없는 기하학적 원으로 보인다. 다 자란 고래의 두개골 길이는 적어도 6미터나 된다. 향유고래의 뇌는 드러난 이마에서 약 6미터 아래에 위치한다. 향유고래의 뇌는 주먹 하나 크기밖에 되지 않는다. 고래의 두개골은 인간의 것과 무척 닮았다. 몸에 비해 놀랍도록 작은 뇌의 크기는 상대적으로 놀날 만큼 굵은 척수의 크기로 상쇄되고도 남는다. 위엄 있는 혹은 거대한 척추골 위에 솟아 있고, 따라서 척추골이 바깥쪽으로 불룩하게 튀어나온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 높은 혹이야말로 향유고래의 굳센 기질,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기관이라 부르고 싶다. 이 거대한 괴물이 어떤 불굴의 의지를 가졌는지는 이제 곧 알게 될 것이다.

81장 피쿼드호, 융프라우호를 만나다

드디어 운명의 날이 찾아왔다. 데릭 데 데어 선장이 지휘하는 브레멘 선적의 융프라우(처녀)호를 만났다. 그는 피쿼드호를 만나자마자 초조하게 이편으로 보트를 갖다댔다. 그는 손에 급유기를 들고 다가왔다. 에이해브는 그가 갑판에 오르자, 바로 모비 딕에 대해 물었다. 이 독일인은 서툰 영어로 전혀 모른다고 하고 어둠을 밝힐 기름이 없다며 기름을 구걸했다. 데릭은 기름을 받고 떠났다. 그의 보트가 자기 배에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두 배에서 동시에 고래를 발견했다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는 급유기를 올려놓지도 않은 채로 고래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고래가 나타난 방향이 바람이 불어오는 쪽이라 독일 보트는 피쿼드호의 보트를 크게 앞질렀다. 여덟 마리로 이루어진 보통 규모의 고래 떼였다. 고래 무리보다 몇 길이나 떨어진 곳에 늙은 고래 한 마리가 힘겹게 따라가고 있다. 무리에 속한 고래는 아닌 것으로 보였는데, 속도도 느리고 누르스름한 딱지가 온몸을 뒤덮고 있어 아파 보였다. 독일 보트도, 피쿼드호의 보트도 이 고래를 노렸다. 피쿼드호 선원들의 보트도 바짝 따라붙었는데, 유일한 걱정은 데릭이 먼저 그 고래에 작살을 꽂는 것이었다. 데릭이 급유기를 흔들며 조롱하자 스타벅 등이 화가나 욕설을 내뱉었다. 데릭의 보트와 비슷하게 달리게 된 세 대의 피쿼드호 포경 보트. 무시무시하면서도 가련하고 또 광포한 광경이었다. 선수를 빼앗기기 싫었던 데릭이 먼 거리에서 작살을 던져보기로 했다. 데릭의 작살잡이가 일어서자, 동시에 퀴케그, 타슈테고, 다구가 본능적으로 벌떡 일어나 대각선으로 늘어서서 작살을 겨누었다. 낸터킷 작살들은 독일 작살잡이의 머리 위로 날아가 고래의 몸에 박혔다. 놀란 고래가 저항하면서 보트끼리 부딪치고 엉켰다. 그 바람에 데릭 선장과 작살잡이가 바다에 내동댕이쳐졌다. 스터브가 물에 빠진 둘을 조롱했다. 그런데 세 개의 작살이 꽂힌 고래가 갑자기 잠수하기 시작했다. 보트 세 척의 뱃머리가 수면에 거의 닿았고 고물은 공중에 높이 들렸다. 버티기에 들어갔다. 진동이 오자 스타벅이 준비하라고 외쳤다. 밧줄을 당겼다. 고래의 눈이 있었던 지점에 앞을 보지 못하게 된 안구가 튀어나와 있어 보기에도 처참했지만 연민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고래는 인간의 즐거운 결혼식과 그밖의 행사를 밝혀주고, 조건 없이 사랑을 베풀라고 설교하는 엄숙한 교회를 비춰줄 기름을 제공하기 위해 죽어주고 살해당해야만 했다. 자신이 흘린 피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고래는 마침내 옆구리 아래쪽에 튀어나온, 작은 통만한 크기의 변색된 혹 덩어리를 드러냈다. 플래스크가 찔러보려 하자, 스타벅은 그럴 필요 없다고 말렸지만 늦었다. 창으로 찌른 순간 참혹한 상처에서 피고름이 흘러나왔고, 고통에 고래는 분수공에서 걸쭉한 피를 뿜으며 사납게 보트로 달려들었다. 플래스크의 보트를 뒤집고 뱃머리를 망가뜨렸다. 그리고 고래는 숨을 거둔다. 본선에 매달고 삽으로 고래를 자르기 시작하자마자 앞서 말한 혹 아래쪽 부위에 녹슨 작살이 통째로 박혀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 상처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는 돌로 된 창촉이 발견되었다.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기 훨씬 오래전 어느 북서부의 인디언이 던진 것일까? 그러나 발굴은 중단되었다. 고래 사체가 계속 바닷속으로 가라앉으려 하면서 배가 전례 없이 기울어졌기 때문이었다. 스타벅은 마지막까지 고래 사체에 매달려 배가 뒤집힐지도 모르는 순간까지 버텼다. 결국 고래를 떼어버리라는 명령이 떨어졌으나 꼬리를 매단 쇠줄과 밧줄을 고정시킨 늑재 연장부에 가해진 압력이 너무 커서 풀 수가 없었다. 끝내 도끼로 쇠사슬을 퀴케그가 내리쳐서 끊어냈다. 배는 바로 섰고, 고래의 사체는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죽은 지 얼마 안 되는 향유고래가 이렇게 가라앉는 것은 아주 기이한 일이다. 향유고래는 다른 종들에 비해 이런 사고가 훨씬 적은 편이다. 미숙한 융프라우호는 긴수염고래의 물줄기를 향유고래의 것으로 착각하고 다시 보트를 내리고 있었다. 긴수염고래는 빨라서 잡지 못하는 고래다.

[오래된 상처를 안고 있는 이 아픈 고래는 어쩌면 포경업이 상징하는, 인간의 자연에 대한 공격, 파괴를 의미하는지도.....]

82장 포경업의 명예와 영광

고래잡이는 위대한 영광과 오랜 전통에 감동적인 산업이다. 처음 우리는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무기를 들었을 뿐, 사람들의 등잔에 기름을 채워주기 위해 고래 사냥에 나선 것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안드로메다 공주가 리바이던의 공격을 받는 순간, 고래잡이들의 왕자인 페르세우스가 용감하게 작살을 던져 괴물을 죽이고 공주를 구해낸 다음 결혼까지 했다. 비슷한 이야기로 성 조지와 용 이야기도 있다. 우리는 용이 실은 고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헤라클레스도 고래잡이 무리의 일원으로 간주할 수 있다. 두 개의 학설이 대립하는 일이 있는데, 하나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와 고래 이야기가 그보다 더 오래된 히브리의 요나와 고래 이야기에서 나왔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그 반대의 주장이다. 어느 쪽이 먼저이든 두 이야기가 아주 유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예언자 요나 또한 고래잡이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아직도 총대장은 소개되지도 않았다. 고대 왕들의 선조가 신이었던 것처럼 우리 기사단의 선조도 다름 아닌 위대한 신들이었다. 힌두교의 삼신 가운데 하나인 무시무시한 비슈누야말로 우리의 군주라고 말하는 '샤스트라'에서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비슈누는 지상에 열 가지 화신으로 등장하는데, 가장 먼저 고래로 환생하여 고래를 영원히 성별했다. 브라흐마가 세상을 해체 했다가 재창조하는 일을 되풀이하는데, 한번은 비슈누를 낳아 그 일을 맡기기로 한다. 하지만 비슈누가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먼저 신비로운 경전 '베다'를 정독해야 했고, '베다'는 바다 밑바닥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고래로 현신했다는 것이다. 고래잡이 클럽만이 페르세우스, 성 조지, 헤라클레스, 요나, 비슈누를 내세울 수 있다.

83장 역사적으로 고찰해본 요나

오늘날 일부 낸터킷 사람들은 요나와 고래에 대한 이 역사적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헤라클레스와 고래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의심은 전설의 진실성을 조금도 훼손하지 못했다. 새그항의 어느 늙은 고래잡이가 히브리의 요나 이야기에 의문을 제기한 주된 이유는, 첫째 고래 목구멍이 아주 좁다, 둘째 고래가 요나를 삼켰으면 위액에 녹았을 것이다. 셋째, 요나가 지중해에서 삼켜졌는데, 니베네에서 사흘 거리인 곳에서 고래 밖으로 토해졌다는 것인데, 니네베는 가장 가까운 지중해 해안에서도 사흘 안에 갈 수가 없는 곳이란 점. 그러나 성서학자들의 반론에 의하면 먼저 목구멍 문제. 고래의 입안 어딘가 잠시 머물렀다고 생각하면 해결된다. 참고래의 입안은 넓다. 위액과 관련해서는 죽은 고래의 몸속에 잠시 피신했다거나, 요나를 구한 뱃머리 장식이 고래라거나 하는 것 따위로 해석이 가능하다. 세 번째 문제에도 답은 있다. 고래가 요나를 데리고 희망봉을 돌았을 수도 있지 않은가? 지중해 이 끝에서 저 끝을 다 지나고 페르시아만과 홍해를 지나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프리카 대륙을 단 사흘 만에 돈다면 말이다. 새그항 노인의 주장은 그가 어리석을 정도로 이성을 과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난받을 만한 일이다. 어리석고 불경한 자부심의 소치이며, 성직자에 대해 가증스럽고 악의에 찬 반항심만 보여줄 뿐이다.

[근거라고 할 수 없는 것들로 히브리의 요나 이야기를 정당화한다. 이로써 외려 요나서가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인지 증명한다. 이 장을 읽으며 필자는 정말 많이 웃었다.(모비 딕은 우리 정서로 웃을 만한 내용이 거의 없다. 귀한 경험이었다.)]

모비 딕 - 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요나의 이야기. 고래 뱃속에서 걸어나오고 있다.

84장 창 던지기

고래잡이 보트를 더 빠르게 나가게 하기 위해 보트 밑바닥에 기름칠을 하곤 한다. 이런 작업은 유익하다. 기름과 물은 상극인 데다 미끄러운 기름이 바다 위에서 잘 미끄러지도록 해주니까. 융프라우호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아침, 퀴케그는 평소보다 신경 써서 보트 밑바닥에 기름칠을 했다. 어떤 특별한 예감이 있었던 것인지 사건이 바로 일어났다. 정오 무렵 고래들이 나타난 것이다. 스터브의 보트가 가장 빨라, 타슈테고가 작살 하나를 꽂았는데 맞은 고래가 수평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곧 작살이 빠질 위기였지만 고래가 너무나 맹렬하고 빠르게 헤엄치고 있어 옆구리에 보트를 갖다댈 수가 없었다. 위기 시에 보여주는 노련한 고래잡이의 창던지기는 그야말로 예술적이다. 강철과 목재 부분을 합친 창의 전체 길이는 3미터가 넘는다. 창 자루는 작살 자루보다 가늘고, 좀 더 가벼운 재료인 소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회수용 밧줄도 달려 있다. 스터브가 멋지게 고래에 창을 명중시켰다. 스터브가 동료들에게 농담을 던지면서 던진 창을 회수하고 던지기를 수 회. 끝내 고래는 죽는다.

85장 분수

지난 6,000년 동안(그 이전에 몇백만 년이 흘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거대한 고래들은 온 세상의 바다에서 물을 뿜어왔다. 하지만 이 시간(18501216일 오후 11515)까지 그 물줄기가 정말로 물인지 아니면 수증기일 뿐인지 하는 의문이 여전히 남아 있다. 고래는 허파로 숨을 쉬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한다. 입은 늘 물 속에 잠겨있어 숨 쉬는 데 도움이 안 된다. 고래는 머리 꼭대기에 있는 분수공을 통해서만 숨을 쉰다. 고래는 주기적으로 수면의 위아래를 오가며 물속에서 한 시간 이상 숨 한 번 쉬지 않고 있을 수 있다. 이는 갈비뼈 사이와 척추 양 끝에 국수가닥같이 복잡하게 얽힌 혈관에 산소를 머금은 혈액을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 고래가 충분히 호흡하지 않았는데 공격을 받으면 일정량의 호흡을 채우기 위해 반드시 다시 물 위로 올라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주기적으로 물 위에 올라와야 하므로 고래는 치명적인 추격의 위험에 노출된다. 그러니 고래잡이들이여, 그대들의 승리는 기술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고래의 생리적 필요 때문이다. 인간의 한 호흡은 두세 번의 맥박밖에 지탱 못하지만 고래는 평생의 7분의 1, 말하자면 일주일 동안 일요일에만 숨을 쉬면 된다. 고래가 내뿜는 것에 물이 섞여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왜 고래에게 후각기관이 없는지 설명이 된다. 향유고래가 물을 내뿜는 관은 머리 윗부분 바로 아래에서 한쪽으로 조금 치우친 채 수평으로 몇 미터 가량 뻗어 있다. 향유고래의 입이 물을 뿜어내는 관과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의 목적이 분수공으로 물을 배출하기 위한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내뿜는 것이 그래서 물인지 수증기인지 알고 있지 않냐고 말할 수 있는데, 진정으로 모른다. 확인할 만큼 가까이 갈 때는 보통 고래가 사납게 몸부림칠 때이기 때문이다. 고래가 내뿜은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너무 호기심을 갖는 것은 그리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 가까이서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물줄기 주변의 자욱한 물보라에 조금만 닿아도 피부가 화끈거리고 불에 덴 것처럼 쓰릴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래잡이들은 고래가 뿜어내는 것에 독이 있다고 생각해 가능하면 피하려고 한다. 눈에 직접 맞으면 실명한다고도 하는데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가설만 세우자면, 고래가 내뿜는 것은 안개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이 향유고래처럼 위엄과 숭고함을 가진 존재에게 알맞다. 깊은 사색에 잠긴 위대한 존재의 머리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과 같다. '지상의 모든 것에 대한 의심, 그리고 천상의 어떤 것에 대한 직관, 이 두 가지를 겸비하면 신자도 불신자도 되지 않고, 다만 양쪽을 공평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된다.'

86장 꼬리

덩치가 가장 큰 향유고래의 경우, 꼬리는 몸통이 점점 가늘어지다가 인간의 허리둘레 비슷해지는 부분에서 시작하며, 윗부분의 넓이만 해도 4.5제곱미터는 너끈히 된다. 둥글고 탄탄한 꼬리의 밑동에서 넓고 단단하며 평평한 손바닥 같은 꼬리가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그 두께가 차츰 얇아져 끄트머리 두께는 2~3센티미터도 되지 않는다. 다 자란 고래의 경우 최대한 꼬리를 펼치면 6미터는 가뿐히 넘긴다. 꼬리의 힘줄을 절단해 보면 상중하의 세 층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런 삼중 구조가 꼬리에 큰 힘을 부여한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듯이 고래의 몸 전체가 근육 섬유의 씨줄과 날줄로 짜여 있고 이것이 허리 양쪽을 지나 꼬리까지 이어져 꼬리의 힘을 더욱 강화한다. 꼬리의 동작이 지닌 아찔한 아름다움은 이런 힘에서 나온다. 당당한 아름다움을 지닌 모든 것이 풍기는 매력은 힘과 관련이 깊다. 헤라클레스, 미켈란젤로의 그림 등. 고래 꼬리에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지느러미로 사용하는 동작, 전투에서 철퇴로 사용하는 동작, 청소하듯 물을 쓸어내는 동작, 수면을 내리치는 동작, 높이 치켜드는 동작 등 다섯 가지 특유의 동작이 있다. 고래 꼬리는 꿈틀거리지 않는다. 몸통 밑으로 두루마리처럼 말았다가 재빨리 뒤로 펼치면서 헤엄친다. 향유고래는 다른 고래와 싸울 때는 머리와 아가리만 무기로 쓰고, 인간과 싸울 때는 마치 경멸하듯이 주로 꼬리만 사용한다. 보트를 공격할 때는 꼬리를 재빨리 말았다가 펼 때 생기는 반동으로 타격한다. 이 타격이 허공에서 날라온다면 피하는 것만이 상책이나 물속에서 온다면 큰 충격은 아니다. 부드럽게 좌우로 흔드는 고래의 꼬리는 코끼리의 코에 비유할 만하다. 바다에서 고래는 넓은 꼬리를 공중에 홱 들어 올렸다가 수면을 세게 내리치면서 논다. 엄청난 파장이 수 킬로미터나 퍼져 나간다. 고래가 깊은 물속에 완전히 들어가려고 할 때는 적어도 10미터 정도 되는 몸통과 함께 꼬리 전체를 공중에 수직으로 치켜올린 다음, 잠시 부르르 떨다가 아래로 쑥 내려가 시야에서 사라진다. 단테 같은 기분이라면 악마로 보일 것이고, 이사야 같은 기분이라면 대천사로 보일 것이다. 고래의 신비로운 행동은 그 의미를 알 수가 없다. 고래의 꼬리도 알지 못하는데 얼굴은 어찌 알랴.

87장 무적함대

말레이반도의 연장선 위에 수마트라, 자바, 발리, 티모르 같은 섬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그 중, 수마트라섬과 자바섬을 가르 순다해협은 서방에서 중국으로 가는 관문이다. 오늘날에도 이 해역에서는 이따금 해적이 출몰해 약탈을 일삼곤 한다. 이제 피쿼드호는 순풍을 받으며 순다해협에 접근하고 있었다. 에이해브는 자바해로 들어간 다음 북쪽 바다로 갔다가 필리핀 근해를 지나 고래잡이 철에 맞추어 일본의 앞바다에 도착할 계획이었다. 세계의 유명한 향유고래 어장을 거의 빠짐없이 훑은 다음, 태평양의 적도 선상에 들어서는 항로다. 그는 태평양에서는 기필코 모비 딕과 한판 붙어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태평양은 모비 딕이 가장 자주 출몰하는 곳이었고 시기적으로도 타당한 추론이었다. 하늘의 태양처럼 에이해브도 보급이 필요 없었다. 포경선에는 몇 년 동안 마실 물이 실려 있다. 순다해협 근처의 자바섬 서쪽 해안에서 향유고래가 많이 잡히면서 최적의 사냥지라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미리 말해 둘 것은 향유고래는 사대양 전역에서 추격을 받아왔기 때문에 예전처럼 작은 무리를 짓지 않고 큰 무리를 지어 다녔다. 고래들이 한데 모여 무적함대를 이루고 있으니 요즘에는 최고의 어장에서도 몇 주 몇 달이 지나도록 단 하나의 물줄기도 보지 못하다가 갑자기 수천 개에 달하는 물줄기의 인사를 받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뱃머리 양쪽으로 3~5킬로미터 되는 거리에서 수평선의 절반을 차지하는 거대한 반원을 그리며 사슬처럼 이어진 고래의 물줄기가 한낮의 햇빛에 반짝이며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참고래가 수직으로 내뿜는 두 개의 물줄기는 꼭대기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축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처럼 아래로 떨어지지만 향유고래는 앞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한 개의 물줄기만 내뿜는다. 하얀 안개가 자욱한 덤불숲처럼 솟아오르다가 바람이 불어가는 쪽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여하튼 이 고래함대가 비좁은 해협을 빠르게 빠져나가려고 서두르고 있었다. 피쿼드호는 이들을 뒤쫓았다. 그때 갑자기 타슈테고가 뱃고물 쪽을 보라고 소리쳤다. 뒤쪽에 또 다른 무리가 나타났다. 에이해브는 돛대를 물로 적시게 했다. 말레이 해적이었다. 에이해브는 지금 배가 지나는 좁은 문이 복수로 가는 통로이며 자신이 지금 치명적인 종말을 향해 그 문을 지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모비 딕 - 솟구쳐 오르는 고래를 향해 한 작살잡이가 작살을 던지기 위한 동작을 취하고 있다.

 

해적은 따돌렸으나 고래도 멀어진 상태였다. 그런데 이번엔 고래들이 우왕좌왕 겁을 먹었다. 세 척의 보트는 즉시 흩어져 각자 무리 바깥에 홀로 떨어져 있는 고래를 노렸다. 퀴케그의 작살에 맞은 고래가 고래 무리 안으로 도망쳤다.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다. 앞을 가로지르는 고래를 살짝 피하기도 하고 머리 위로 떨어지는 꼬리를 간신히 피하며 앞으로 달렸다. 스타벅은 창을 들고 뱃머리에서 길을 트기 위해 앞을 가로막는 고래를 닥치는 대로 찔러대기 바빴다. 스타벅의 보트는 고래 무리의 중심부에 들어섰다. 그곳은 태풍의 눈처럼 고요했다. 고래들은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고래 무리가 차지한 해역은 적어도 3~5제곱킬로미터는 되었다. 그 안으로 작은 새끼 고래가 멋도 모르고 보트에 다가오기도 했다. 이들은 개처럼 친근하게 다가와 몸을 갖다 댔고 킁킁거렸다. 퀴케그는 녀석들의 이마를 쓰다듬었고, 스타벅은 창으로 등을 긁어주었다. 이때 이슈메일은 더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된다.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는 어미 고래들과 거대한 허리둘레로 보아 곧 어미가 될 것으로 보이는 고래들이 물로 이루어진 둥근 천장 아래에 떠 있는 광경이었다. 새끼들 가운데 한 마리는 몇 가지 기이한 특징으로 보아 태어난 지 하루도 안 된 것 같았으나 4미터가 넘고 허리둘레는 2미터에 달했다. 퀴케그가 두 마리가 밧줄에 걸렸다고 외쳤다. 그것은 어미 고래의 탯줄이 길게 똬리를 튼 모습이었다. 어린 새끼가 아직 탯줄로 어미와 연결된 모습이었다.(탯줄과 함께 떠오르는 고래를 퀴케그가 잘못 본 것이다.) 우리는 바다 깊은 곳에서 젊은 고래들이 사랑을 나누는 모습도 보았다. 공포와 혼란에 빠진 고래들에게 몇 겹이나 둘러싸여 있는 바다 위 호수에 있는 이 신비한 고래들은 아무런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평화로운 일상에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슈메일 역시 고요한 평온을 즐길 수 있었다. 다른 보트들은 열심히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유난히 힘이 세고 민첩한 고래에게 작살을 꽂았을 때는 그 움직임을 둔화시키기 위해 꼬리의 힘줄을 자른다. 보통 자루가 짧은 고래 삽을 던져 처리한다. 한 고래가 이렇게 당했는데, 삽에 달린 밧줄이 꼬리 부근의 작살 밧줄과 뒤엉키면서 고래 삽이 몸에서 뽑혀버렸다.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녀석은 유연한 꼬리와 날카로운 고래 삽을 마구 휘둘러 동료들을 상처 입히거나 죽이며 바다를 휘젓고 다녔다. 이 사태로 고래들이 중심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보트는 고래들 사이에 끼다시피 했다. 겨우 빠져나온다. 다시 대열을 정비한 고래들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번 추격의 결과는 '고래가 많을수록 잡는 것은 적다'를 증명한 사건이었다. 당김나무에 걸린 고래 중에 잡힌 고래는 한 마리뿐이었다. 나중에 피쿼드호가 아닌 다른 포경선에 잡히고 만다.

88장 학교와 교장

스무 마리에서 쉰 마리 정도의 소규모 고래 무리는 종종 목격된다. 이런 무리를 가리켜 '학교'라고 부른다. 학교는 보통 암컷으로 구성된 무리와 젊고 힘 좋은 수컷, 흔히 황소라고 부르는 무리, 두 종류다. 암컷들의 학교에는 완전히 자랐으나 늙지 않은 수컷 고래 한 마리가 호위 기사처럼 따라다닌다. 사실 다른 암컷들은 이 신사의 후궁들이다. 후궁들은 완전히 자린 뒤에도 수컷 고래의 3분의 1 정도밖에 안 된다. 군주 고래는 다른 수컷 고래의 접근을 막는다. 그러나 다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래들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여자를 두고 하나가 죽어 나갈 때까지 결투를 벌이곤 한다. 많은 고래들이 사랑의 결투에서 생긴 상처를 가지고 있다. 고래잡이들은 주변에 다른 고래가 있을 경우 이런 군주 고래는 여간해서 쫓지 않는데 이런 고래는 정력을 탕진한 나머지 몸에 지방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낳은 자식에 대해 군주 고래는 거의 무관심하다. 그러다 이런 고래가 나이가 들면 무언가 깨달은 노인처럼 후궁들을 모두 내보낸 후, 홀로 여러 바다를 돌아다닌다. 그러다가 젊은 고래를 만나면 자신과 같이 욕정의 과오를 범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고래잡이들은 이 군주 고래를 교장이라 부른다. 그런 별명을 붙여준 사람은 비도크의 회고록을 읽은 것이 분명할 것이다. 외톨이 고래를 보면 거의 대부분 늙은 고래다. 젊고 활기찬 수컷 고래들로만 이루어진 학교는 후궁 학교와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이들은 호전적이며 위험한 상태다. 무모하고 거친 방식으로 온 세상의 바다를 휘젓고 다닌다. 하지만 그들도 몸집이 성인의 4분의 3쯤 자랐을 때, 각자 흩어져 자신들의 후궁을 찾아 떠난다. 또다른 차이 하나는 젊은 수컷들 무리 중 하나가 작살을 맞았다면 녀석들의 동료들은 녀석을 버리고 달아나버리는데, 후궁 학교의 학생 하나가 그런 일을 당하면 무리는 그를 걱정해 주변을 맴돌고, 때로 함께 희생될 때까지 곁을 지키기도 하는 것이다.

[비도크 회고록(1828): 프랑수아즈 비도크의 저작으로 추정되는 책. 프랑스의 유명한 형사로 나폴레옹 치하에서 보안 경찰국을 창설했으며, 퇴사 후 사설 탐정 학교를 차려 교장에 취임했다. 회고록에는 그가 탐정 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을 유혹하여 농락한 사건을 기술하고 있다.]

89장 잡힌 고래와 놓친 고래

표지기는 포경업계의 중요한 상징이자 기호다. 여러 척의 포경선이 함께 항해할 경우, 어떤 배의 작살을 맞고 달아나던 고래가 결국 다른 배의 공격을 받고 잡히는 일이 빈번하게 된다. 1. 잡힌 고래는 잡은 자의 것이다. 2. 놓친 고래는 먼저 잡은 자가 임자다. 미국의 고래잡이들 사이의 불문률이다. 이 훌륭한 법규는 너무 단순해서 방대한 주석이 필요해지는 단점이 있다. 첫째 잡힌 고래란, 배나 보트와 무엇으로든, 돛대, , 밧줄, 전선, 심지어 거미줄을 통해서라도 연결되어 있으면 잡힌 고래로 친다. 마찬가지로 표지기나 그밖의 소유권을 나타내는 공인된 상징물을 달고 있을 경우, 그 표지기를 단 당사자가 언제라도 고래를 뱃전에 끌어올릴 능력이 있고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한 그 고래는 사실장 잡힌 것이다. 50년 전 영국에서 횡령당한 고래를 되찾겠다는 기이한 소송이 벌어졌다. 원고측은 고래에 작살을 던지는 데는 성공했지만 위험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밧줄과 보트까지 포기해야 했는데, 피고측이 이 달아난 고래를 원고 측이 보는 앞에서 가로챘다. 원고 측의 항의를 피고 측 선장이 조롱했고 포획 당시 고래에 부착되어 있던 원고 측의 작살과 밧줄, 보트 등도 모두 잡은 자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명한 재판관은 보트는 원고 측에 돌려주어야 하지만 고래와 작살과 밧줄은 피고 측의 것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고래는 최종적으로 놓친 고래였으며, 작살과 밧줄은 고래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후에 고래를 잡은 자는 그 모든 것의 소유를 주장할 수 있다. 피고 측은 달아난 이후의 고래를 잡았으므로 그 모든 것은 피고 측의 것이 되는 것이다.

'잡힌 고래''놓친 고래'에 적용되는 원칙은 인간 사회에 있는 모든 법률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소유가 법의 절반'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어떻게 얻었느냐 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일단 수중에 들어온 물건은 법적으로 절반은 차지한 것이다. 더 나아가 소유는 법의 전부가 되는 경우도 많다. 러시아 농노나 공화국 노예의 근육과 영혼이 '잡힌 고래'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과부의 마지막 동전 한 닢이 탐욕스러운 지주에게 '잡힌 고래'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아직 죄가 발각되지 않은 악당의 대저택, 표지기 대신에 문패가 달린 저 큰 집도, 파산자가 굶어죽지 않기 위해 돈을 빌리러 왔을 때, 고리대금업자 모르드개가 무지막지하게 떼는 선이자가, 영혼을 구제한다는 대주교가 등골 빠지게 일하는 수십만 노동자들(대주교의 도움 없이도 천국행이 확실한 사람들)의 얼마 되지 않는 빵과 치즈에서 뜯어낸 10만 파운드가, 저 가공할 작살잡이 존 불에게 아일랜드가(존 불은 영국을 가리킨다), 저 사도 같은 창잡이 조나단 형제(미국)에게 텍사스는 '잡힌 고래'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잡힌 고래'의 원칙이 꽤 폭넓게 적용된다면, 그와 비슷한 '놓친 고래'의 원칙은 더 넓게 적용된다. 국제적으로, 보편적으로. 1492년에 콜럼버스가 왕과 왕비를 위해 표지글 꽂듯이 아메리카에 스페인 깃발을 꽂을 때, 아메리카는 '놓친 고래'가 아니겠는가? 폴란드는 러시아 황제에게, 그리스는 터키에게, 인도는 영국에게, 멕시코는 미국에게 모두 '놓친 고래'. 인권이나 세계의 자유도 '놓친 고래'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모든 인간의 생각이나 마음이, 인간의 종교적 신념의 원칙이라는 것도, 번드레한 말을 몰래 가져다 써먹는 달변가에게 진실한 사상도, 이 거대한 지구 자체도 '놓친 고래'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독자여, 당신도 '놓친 고래'이자 '잡힌 고래'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자본주의적 소유방식, 영국과 미국의 식민주의, 팽창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중심 서사의 전개와 연관도는 높지 않지만 허먼 멜빌의 비판정신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장이다. 우리는 누군가, 그리고 무엇인가를 향해 작살을 던지는 작살잡이이자, 또 우리를 조종하고 가지려는 누군가에게 노림 당하는 한 마리 고래이다. 소유와 금권 만능의 시대, 잡고 잡히고, 놓치고 놓여나는 이외의 관계는 사회적인 법률이나 시스템이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 위안을 얻고 행복을 느끼는 것은 그런 것 밖의 것이니....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회적 재원, 관계를 소유와 피소유에 쏟아붓고 있는 것인가. 인류는 소유에 잡힌 고래이고 인간적인 유대, 행복은 멀리 놓친 고래가 아닐런지.]

90장 머리냐꼬리냐

"고래는 왕이 머리를, 왕비는 꼬리를 가진다면 진실로 충분하다." - 브랙턴, [영국의 법률과 관습] 33.

인용문은 영국의 법률 책에서 가져온 라틴어 문장이다. 이 법률은 다소 수정된 형태로 오늘날까지 영국에서 시행되고 있다. 이 법률이 여러 면에서 '잡힌 고래''놓친 고래'의 일반 원칙을 기이하게 변형시키고 있기에 한 장을 할애에 다룬다. 이 법률이 여전히 시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기이한 사례로 지난 2년 사이에 일어난 한 사건을 소개한다. 정직한 고래잡이 몇 명이 어느 항구 도시에서 고래를 힘들게 잡아 뭍으로 끌어올렸다. 그때 아주 박식하고 고귀하며 자비로운 기독교인 신사가 나타나 그들에게서 고래의 압수를 선언했다. '총감'의 소유라는 것이다. 고래잡이들이 딱한 사정을 이야기해도 그는 고래가 그분의 것이라는 말만 반복한다. 결국 고래는 압수되어 팔렸고 대금은 웰링턴 공작 나리가 챙겼다. 정직한 목사가 과하다는 편지를 썼지만, 공작은 이미 헤아려서 돈을 받았으니 간섭을 삼가라는 답장을 보냈다. 대체 어떤 권리로 그들에게서 이것을 빼앗을 수 있었는지? 영국왕실은 철갑상어에 대해서도 고래와 같이 처분하는데, 왕이 머리, 여왕이 꼬리를 가지면 맞을 것 같다.

[인간을 유혹하는 인어를 왕비, 공격하는 머리를 왕에 비유한 것]

91장 피쿼드호, 로즈버드호를 만나다

"용연향을 찾아 이 리바이던의 배 속을 샅샅이 뒤졌지만, 견딜 수 없는 악취에 탐색은 허사가 되고 말았다." - 토머스 브라운 경, '통속적 오류'(1646)

앞 장의 포경 1~2주 뒤, 여러 명이 악취를 맡았다. 안개가 걷히자 프랑스 깃발이 걸린 배에 '시든 고래'라고 부르는 바다에서 평온하게 죽어 표류하던 고래가 매달려 있었다. 지독한 악취는 거기서 나는 것이었다. 가까이 가보니 처음 본 것보다 상태가 더 심한 고래도 매달려 있었다. '시든 고래'는 피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노련한 고래잡이들은 이런 고래를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에 알게 될 것이다. 피쿼드호는 낯선 배에 아주 가까이 댔다. 스터브는 두 고래 중 한 마리의 꼬리에 자신의 고래 삽이 엉켜있는 것을 보았다. 마구 비난하던 스터브는 용연향을 떠올리고 뒷갑판으로 향했다. 스터브는 보트를 내려 낯선 배를 향해 갔다. 뱃머리 윗부분에 장미 줄기 같은 것이 조각되어 있었다. 머리판에는 부통 드 로즈(장미 봉오리)라고 적혀 있었다. 향기로운 배의 낭만적 이름. 스터브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찾아서 모비 딕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재빨리 돌아온 스터브는 에이해브에게 사실을 보고했다. 에이해브는 선실로 돌아가버렸고 스터브는 다시 프랑스 배로 돌아왔다. 그 배의 선원들도 썩은 고래에 매달려 작업하느라 짜증이 난 참이었다. 배의 선장이 향수를 만들던 초짜라고 했다. 스터브가 그 배에 올랐다. 대화를 나눠보자 그들이 용연향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것을 스터브는 알아차렸다. 마침내 스터브는 영어를 할 줄 아는 건지섬 출신 선원과 프랑스 배 선장을 골려줄 작은 계략을 세워냈다. 스터브는 나오는 대로 지껄이고 통역을 빙자한 건지섬 사내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선장에게 하는 것이 계략의 요체였다. 건지섬 사내는 시든 고래 때문에 열병에 걸려 사망한 이야기를 스터브가 한 것처럼 꾸몄다. 선장은 놀라 시든 고래를 바다에 버리라고 지시했다. 배와 떼어준다며 스터브는 시든 고래를 예인했다. 프랑스 배가 멀어지고 스터브는 날카로운 보트 삽으로 옆지느러미 조금 뒤쪽에 구멍을 팠다. 스터브가 찾아낸 것은 진한 향의 윈저 비누 같기도 하고 오래된 치즈 같기도 한 것이었다. 여러 번 꺼냈다. 이것이 용연향이다. 어느 약국에 가져가도 30그램에 금화 1기는 쳐주는 귀한 것이었다. 스터브는 그것을 여섯 웅큼 꺼냈다. 어쩔 수 없이 버린 양은 그보다 더 많았다. 에이해브가 그만하고 배로 돌아오지 않으면 버려두고 가겠다고 으름짱을 놓았던 것이다.

모비 딕 - 시든 고래를 싣고 악취를 풍기며 나타난 로즈버드호.

92장 용연향

용연향은 오로지 바다에서만 발견되는데, 향수나 방취제, 고급 양초, 머리 분이나 미리 기름 등에 사용된다. 고래가 소화불량에 걸리는 원인이 용연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용연향이 소화불량의 결과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스터브가 가져온 용연향에서 방부처리된 작은 오징어 뼛조각이 나오기도 했다. 더없이 향기로운 용연향이 그처럼 부패한 고래 내장에서 발견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모든 고래가 항상 악취를 풍긴다는 비방에 반박하고 싶다. 그런 낙인은 2세기 전 런던에 처음 도착한 그린란드 포경선에 비롯된 것이라 확신한다. 이 포경선들은 기름을 짜지 않고 신선한 고래 지방을 작은 조각으로 잘라서 보관한다. 그러니 냄새가 진동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고래잡이들에 대한 악의적 비난이 예전에 그린란드 해안에 슈메렌부르그 혹은 스메렌베르크라는 네덜란드 마을이 들어선 바람에 생긴 것은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이 마을은 네덜란드 포경선이 기름을 짜기 위해 세워졌다. 기름을 짜는 작업이 한창일 때는 냄새가 보통 고약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남태평양의 향유고래 포경선은 다르다. 4년 정도 항해를 하면 선창에 기름이 가득 찬다. 그런데 정작 기름을 끓여내는 작업은 50일밖에 걸리지 않고, 고래기름은 통에 잘 넣어두면 냄새가 나지 않는다. 사실 고래는 죽었든 살았든 잘만 다루면 결코 나쁜 냄새가 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활달한 고래는 향기로운 냄새를 풍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향유고래가 수면 위로 꼬리를 휘저으면 향기가 진동한다. 향기 나는 몰약을 뿌리고 알렉산드로스대왕에게 경의를 표했다는 저 유명한 코끼리에 비유해야 하지 않겠는가?

93장 버림받은 자

포경선의 모든 선원이 보트에 타는 것은 아니다. 배 지킴이라고 부르는 몇몇 선원들은 보트가 고래를 추격하는 동안 본선을 지키며 관리한다. 대부분 보트 승선인원 못지 않게 강인하지만, 선원들 중 지나치게 허약하거나 어눌하거나 소심한 사람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가 배 지킴이가 된다. 피쿼드호에서는 흑인 소년 피핀, 줄여서 일명 핍이 그런 경우였다. 불쌍한 핍! 찐빵과 둘은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하지만 불운한 찐빵은 천성이 아둔하고 맹한 반면, 핍은 마음이 지나치게 여리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총명하고 흑인 특유의 유쾌함, 친절함, 명랑성을 가지고 있었다. 용연향 사건 때 스터브의 보트 맨 뒤에 앉은 노잡이가 손을 삐어서 당분간 그 자리에 핍이 타게 되었다. 핍이 두 번재 하선 때, 하필 핍이 탄 자리 밑을 고래가 쾅쾅 부딪혔는데, 핍이 깜짝 놀라 노를 쥔 채 보트에서 뛰어내리고 말았다. 그때 근처에 늘어져 있던 고래 밧줄이 가슴에 부딪혔고, 온몸을 휘감아버렸다. 상처 입은 고래가 맹렬히 달아났고 타슈테고는 아쉬워하며 밧줄을 잘라야 했다. 그리하여 불쌍한 핍은 정신이 들자마자 화난 선원들의 온갖 고함과 저주 세례를 받아야 했다. 스터브는 욕설이 사그라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분명하고 사무적으로, 그러면서도 얼마간의 유머를 잃지 않고 핍을 공식적으로 나무랐다. 그리고 결론을 내리길, ", 보트에서 절대 뛰어내리지마. 너 같은 놈 때문에 고래를 놓칠 수는 없어. 고래를 팔면 앨라배마에서 쳐주는 네 몸값의 서른 배는 더 벌수 있어."라고 말을 마친다. 결국 동료를 사랑하기는 하지만 포경선 선원들은 돈벌이를 추구하는 동물이므로 자비심을 베풀기 힘들 때가 아주 많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핍은 또 보트에서 뛰어내렸다. 이번엔 밧줄에 휘감기지는 않았지만, 바다에서 버림받았다. 3분도 안 되어 핍과 스터브 사이에 1킬로미터가 훌쩍 넘는 망망한 바다가 놓였다. 그 외로움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잔잔한 망망대해에서 선원들이 헤엄치며 멱 감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그들은 뱃전에 바짝 붙어서 주변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스터브는 핍을 버릴 생각이 아니었다. 뒤에서 보트 두 대가 따라오고 있었으므로 핍을 구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뒤따라오던 보트들은 핍을 보지 못했고, 갑자기 한쪽 편에 나타난 고래들을 쫓느라 방향까지 틀어버렸다. 모두 멀어졌을 때 본선이 나타나 그를 구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하지만 이후로 핍은 바보가 되어 갑판을 서성였다. 바다는 그의 유한한 육체만 물 위에 띄웠고 영원한 영혼은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혔다. 핍은 망상 같은 것을 중얼거렸고, 선원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스터브를 너무 탓하지 말기를 바란다. 포경업에서는 흔한 일이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94장 손으로 쥐어짜기

이처럼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스터브의 고래는 곧 피쿼드호의 뱃전에 매달렸다. 모든 절차가 순조로웠다. 경뇌유가 굳기 시작했다. 기름이 이상한 덩어리 형태로 굳어진 것들은 쥐어짜서 다시 액체로 만들어야 했다. 향기롭고 번지르르한 임무였다. 얼마나 피부를 깨끗하고 부드럽고 기분까지 좋게 해주는지! 그 순간 우리의 끔찍한 맹세 따위는 모두 잊어버린 채 이슈메일은 뭔가 형언할 수 없는 경뇌유에 손과 마음을 모두 씻었다. 오전 내내 기름을 쥐어짰다. 동료의 손을 쥐어짜기도 했다. ! 나의 소중한 동료들이여, 왜 우리가 서로를 모질게 대하고 사소한 악의나 질투를 계속 품고 있어야 하는가! 오래도록 반복된 경험을 통해 인간은 어떤 경우에든 자기가 얻을 수 있는 행복에 대한 기준을 낮추거나 적어도 바꿔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행복은 지성이나 환상 속이 아니라 아내나 연인, 침대, 탁자, 말안장, 난롯가, 전원 등에 있다. '백마'는 고래의 굳은 근육 덩어리를 이르는데, 어느 정도 기름이 들어 있기는 하다. '자두 푸딩'은 지방층 담요 여기저기 붙어 있는 살점을 가리킨다. 먹음직스러운 색깔이라 먹어보았는데 정말 맛도 좋다. '진창'이라 고래잡이들이 명명한 찐득거리는 점액성 물질은 경뇌유를 짜서 다른 통으로 옮긴 다음 경뇌유 통에서 주로 볼 수 있다. 고래 머리 기름통을 둘러싼 아주 얇은 내막이 찢어졌다가 엉겨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찌꺼기'는 참고래잡이들이 사용하는 용어지만, 때로는 향유고래잡이들도 우연히 사용할 때가 있다. 그린란드고래나 참고래의 등에서 벗겨낸 검고 끈적한 물질로, 이 저급한 고래를 사냥하는 저 열등한 영혼들의 갑판을 뒤덮고 있다. '집게'는 가늘어지는 고래 꼬리 부이에서 잘라낸 짧고 단단한 힘줄 조각을 말한다. 지방 보관실은 '담요'조각들을 저장하는 곳이다. 이 지방층을 자를 때가 되면, 이 보관실은 신참들에게 공포의 현장이 된다. 여기서 미끌거리는 담요를 맨발로 밟고 날카로운 삽으로 자르는데 자신이나 조수들의 발가락을 자른들 크게 놀랄 일도 아니었다. 지방 보관실의 고참 선원들 중에는 발가락이 없는 사람이 흔했다.

95장 사제복

이상한 원뿔 모양 물체의 길이는 켄터키 사람의 키보다 더 길고, 바닥의 지름은 30센티미터에 가까우며, 색깔은 퀴케그의 흑단 우상인 요조처럼 새카맣다.(고래의 음경을 이른다.) 고래를 잘게 써는 선원이 그 큰 놈을 앞갑판 위에 내려놓고 아프리카 사냥꾼이 큰 뱀의 껍질을 벗기듯이 시커먼 가죽을 원통형으로 벗겨내기 시작한다. 벗긴 가죽은 골고루 건조시킨다. 잠시 후 그것을 걷어서 뽀족한 끝부분을 1미터 가량 잘라내고, 다른 쪽 끄트머리에 팔을 집어넣을 구멍 두 개를 낸 다음, 그것을 통째로 뒤집어쓴다. 고래를 잘게 써는 선원은 이제 자신이 받은 소명에 어울리는 옷차림이 되었다. 그 소명이란 고래 몸에서 잘라낸 기름 덩어리들을 솥에 넣을 수 있도록 잘게 써는 것이다. 사제복 같은 검은 옷을 입었겠다, 눈에 잘 띄는 설교단에 올라갔겠다, '성경' 책장에 열중하고 있겠다, 이만하면 고래를 잘게 써는 이 선원이야말로 대주교 후보감이요, 교황의 친구가 아니겠는가?

[성경 책장처럼! 성경 책장처럼! 이라고 항해사들은 고래를 써는 선원에게 이렇게 외쳐댄다. 작업할 때 조심하되, 기름 덩어리를 최대한 잘게 썰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야 끓는 속도가 빨라지고 기름 양도 크게 늘어나는 데다 질도 좋아진다.]

96장 기름 짜는 솥

미국 포경선의 특징으로 뱃전에 매단 보트 외에 정유용 화덕이 있다. 벌판에 벽돌 가마를 갑판에 옮겨놓은 꼴이다. 이것은 갑판에서 가장 넓은 앞돛대와 주돛대 사이에 위치한다. 솥은 평소에 광이 나도록 닦아서 관리한다. 야간 당직자들이 가끔 들어가 눈을 붙이기도 할 만큼 컸다. 기름 솥 앞의 방화 판을 떼어내면 그쪽 면의 벽돌 구조가 드러나고, 쇠로 만든 아궁이 입구 두 개가 솥 밑으로 바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아궁이 입구에는 무거운 쇠문이 달려 있다. 엄청난 불기운이 갑판에 전달되지 않는 것은 이 구조물 바닥 전체에 얕은 저수조가 있기 때문이다. 이 저수조의 물은 매우 빠르게 증발하기 때문에 뒤쪽에 연결된 파이프로 물을 계속 보충해 주어야 한다. 이번 항해에서 피쿼드호가 기름 솥 작업에 처음 시동을 건 것은 밤 아홉 시 무렵이었다. 스터브가 감독을 맡았다. 불을 붙이는 것은 쉽다. 항해 내내 목수가 대팻밥을 아궁이 속에 넣어두었기 때문이다. 포경선은 항해 중 처음으로 기름 솥에 불을 땔 때 외에는 장작을 쓰지 않는다. 고래기름을 짜고 나면 남는 바삭바삭한 찌꺼기로 불을 땐다. 이 찌꺼기를 태우면 연기가 지독하다. 고약한 힌두교 냄새가 나는데, 인도의 화장터에서 시신을 태울 때 나는 냄새와 비슷하다. 자정 무렵 기름 솥 작업이 전면 가동되기 시작했다. 그을린 연기 구멍에서 이따금 날름거리는 강렬한 불길이 어둠을 핥았다. 두껑 위에 올라선 이교도 작살잡이들이 끝이 갈라진 거대한 쇠막대기로 쉭쉭거리는 지방 덩어리를 펄펄 끓는 솥에 던져넣기도 하고, 불을 쑤석이기도 했다. 연기와 땀으로 지저분한 그들의 황갈색 얼굴과 덥수룩한 수염, 그것과 대조를 이루며 야만적으로 번들거리느 하얀 이빨 등 모든 것이 변덕스러운 불길에 비치며 괴이한 모습을 드러낸다. 이슈메일은 키를 잡고 이 괴이한 광경을 보노라니, 불길을 두고 뛰노는 악마 같은 형상들이 영혼 속에 자리 잡고 들어앉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에는 특히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선 채로 잠시 졸다가 깬 순간,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고래 턱뼈로 만든 키 손잡이가 기대고 있던 자기 옆구리를 탁 하고 쳤다. 나침반은 보이지 않고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그 순간 자신을 태우고 빠르게 돌진하는 이것이 무엇이든 간에, 앞에 있는 어떤 항구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뒤에 있는 모든 항구로부터 달아나고 있다는 생각이 얼핏 스친 것이다. 냉혹감, 당혹감이 엄습했다. 충동적으로 키 손잡이를 움켜잡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키가 마법에 걸린 듯 뒤집혀 있다는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아아! 잠시 조는 사이에 뱃머리와 나침반을 등지고 고물을 향해 서 있었던 것이다. 얼른 돌아서서 배가 바람 속으로 날아올라 뒤집힐지도 모르는 위기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다. 불을 정면에서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말라. 키를 잡은 채 꿈꾸지 말라. 나침반을 등지지 말라. 키가 전해주는 최초의 신호를 무시하지 말라. 인간이 피운 붉은빛은 모든 사물을 기괴하게 만드니 그 불을 믿지 말라. 내일이 오면 자연의 햇빛 속에서 하늘이 밝게 빛날 것이다. 태양만이 유일하게 참된 등불이고, 나머지는 모두 가짜다! 태양은 사막과 무수한 슬픔도 감추지 않고 비춘다. 이 지구의 어두운 면이자 지표면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바다도 감추지 않고 비춘다. 그러므로 내면에 슬픔보다 기쁨이 더 많은 사람이 진정한 인간일 리 없다. 그러니 한순간이나마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불길에 내맡기지 말라. 슬픔인 지혜가 있으나 광기인 슬픔도 있다. '어떤 영혼 속에는 캐츠킬산맥의 독수리가 살고 있어 아주 깊은 골짜기로 급강하했다가 다시 하늘 높이 솟아올라 햇빛 찬란한 창공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설령 그 독수리가 영원히 골짜기 안에서만 날아다니더라도 그 골짜기는 산맥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독수리는 산에서 가장 낮은 곳을 날 때조차 평지에서 높이 날아오른 다른 새들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

모비 딕 - 배 위의 화덕에서 정유작업 중인 선원들
 

97장 등잔

정유용 화덕 근처에 있다가 선원들이 자고 있는 앞갑판으로 내려가보면, 성인으로 추앙된 왕과 섭정들의 불 켜진 능묘에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지도 모른다. 두건으로 가린 그들의 눈 위에서 수십 개의 등불이 타오르고 있다. 상선의 경우 어둠 속에서 옷을 입고, 어둠 속에서 밥을 먹고,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침상을 찾아가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다. 하지만 포경선은 불을 밝혀줄 원료를 찾아다니는 자들이므로 빛 속에서 잔다. 어두운 밤에도 검은 선체는 빛으로 가득 차 있다. 고래잡이가 등잔을 들고 맥주 따르듯 기름을 마음껏 채우는 모습을 보라. 게다가 그 기름은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기름이다. 고래잡이는 신선함과 순수함을 확신할 수 있는 기름을 찾아 사냥에 나선다.

98장 채우기와 치우기

이제는 기름을 통으로 옮긴 뒤 선창에 넣어 보관하는 절차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려 한다. 고래기름은 펀치처럼 아직 따뜻할 때 1,000리터짜리 통에 부어지는데, 한밤 중 바다에서 배가 이리저리 흔들리면 거대한 통들이 뒹굴고 곤두박질치며, 때로는 여기저기서 산사태라도 난 것처럼 미끄러운 갑판 위를 위태롭게 굴러다닌다. 결국 최대한 많은 선원들이 통을 붙들고 망치질하여 쇠고리로 단단히 고정시킨다. 마침내 기름이 다 채워지고 완전히 냉각되면, 커다란 선창 입구가 열리고 포경선의 배 속이 드러난다. 통들은 그곳에 수납되고 선창은 다시 밀폐된다. 향유고래잡이에서는 이것이 모든 작업 중에서 가장 놀라운 작업일 것이다. 도살장을 방불케하다가 양조 마당처럼 녹슨 커다란 통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그을음이 잔뜩 끼고 선원들은 온몸이 기름투성이가 되어 갑판을 돌아다닌다. 하지만 하루나 이틀이 지난 후 같은 배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깔끔하기 이를데 없는 조용한 배가 된다. 정제되지 않은 고래기름은 특별한 세정력이 있다. 게다가 고래 조각을 태운 재로는 강력한 잿물을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선원들은 물통과 걸레를 가지고 배를 다시 깨끗한 상태로 되돌려놓는다. 아래쪽 삭구에 묻은 검댕은 솔로 털어낸다. 수많은 도구들은 잘 씻어서 제자리에 둔다. 선원들은 이제 씻으러 간다. 깔끔한 신사가 된 선원들이 깨끗한 배 위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 깔끔한 모습에 고래를 잡는 이야기는 어울리지 않아 보일 정도다. 그러나 세 개의 돛대 꼭대기에는 망꾼들이 더 많은 고래를 찾는 데 열중하고 있다. 고래가 잡히면 오래된 참나무 장비들은 어김없이 더러워질 것이고, 그들은 때로 밤잠도 잊은 채 고된 노동을 96시간 계속해야 한다. 또 적도에서 온종일 노를 저어 손목이 부은 채로 쉴 새도 없이 거대한 쇠사슬을 운반하고, 무거운 양묘기를 감아올리고, 고래를 잘라서 올려야 한다. 그사이 그들은 적도의 태양에 그을리고, 적도의 기름 솥에 훈증된다. 이 모든 일이 끝나면 다시 마지막 힘을 다해 배 전체를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한 낙농장처럼 만든다. 하지만 이들이 깔끔하게 하고 갑판에 올라가려는데 '저기 고래가 물을 뿜는다!'라는 외침에 다시 다른 고래와 싸우러 다급히 달려나가 똑같은 일을 반복한 것이 몇 번이던가! 사람 잡는 일이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이다.

99장 스페인 금화

에이해브는 특히 우울한 기분에 잠겨 뒷갑판을 오갈 때면 방향을 바꿀 때마다 멈추어 서서 그 앞에 있는 것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나침반을 볼 때 그의 눈빛은 목표물을 겨누는 창과 같았다. 주돛대 앞으로 가서는 거기에 못 박혀 있는 금화를 들여다보았다. 그 시선에는 간절한 열망이 어린다. 어느 날 에이해브는 그 금화의 기이한 무늬와 글자에 마음이 끌렸다. 아무리 제멋대로 구는 선원일지라도 그 금화를 흰 고래, 모비 딕의 부적으로 귀하게 여겨 늘 제자리를 지켰다. 남아메리카의 이 고귀한 금화에는 야자수와 알파카, 화산, 태양, , 황도, 풍요의 뿔, 나부끼는 깃발 등이 화려하게 새겨져 있었다. 둥그런 가장자리에는 에콰도르공화국: 키토, 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에이해브는 이 그림들에 자신을 투영해 고난을 해쳐나가는 굳건함의 상징으로 여겼다. 그러나 스타벅은 신앙적 해석에 불안한 마음을 드러낸다. 스터브는 그림들을 익살스럽게 해석하며 명랑함을 찬양했다. 플래스크는 금화가 시가 960개비라며 고래를 찾겠다고 돛대를 오른다. 맨섬의 노인은 모비 딕을 마주할 날짜를 점쳤다. 퀴케그는 제 몸의 문신과 동전의 무늬들을 힐끔거릴 뿐이었다. 페달라는 손짓하고 절만 하고 가버린다. 핍은 나는 본다. 너는 본다. 그는 본다. 우리는 본다. 너희는 본다. 그들은 본다, 같은 괴상한 말을 남긴다. 핍은 금화를 이 배의 배꼽이라 칭하고 다들 배꼽을 못 뽑아서 난리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더욱 불길한 말을 뇌까린다.

100장 다리와 팔-낸터킷의 피쿼드호, 런던의 새뮤얼엔더비호를 만나다

에이해브는 영국 깃발을 달고 스쳐가는 배를 향해 흰 고래를 보았냐고 물었다. 상대측 배의 선장이 옷자락 속에 가려져 있던 향유고래의 뼈로 만든 흰 팔을 들어 올렸다. 에이해브는 건너가기 위해 보트를 내리라 명했다. 에이해브가 잠시 망각한 것은 상대의 배가 피쿼드호가 아니었던 것이다. 외다리가 오르기에 너무 어려웠다. 참담함에 에이해브는 다시 모비 딕을 향한 증오를 불태운다. 영국 배의 이름은 새뮤얼엔더비호였다. 선장이 명령해 도르래를 내렸다. 영국 배 선장은 고래 뼈 팔로 동쪽을 가리키며 모비 딕을 저기 적도에서 보았다고 알렸다. 지난번 고래잡이 철에 보았다는 것이다. 그도 그때 팔을 잃었다고 했다. 그토록 크고 당당한 놈은 처음 보았다고 했다. 부머 선장은 모비 딕의 몸에 꽂힌 작살에 걸려 팔이 길게 찢어졌다. 그의 주치의 벙거가 선장의 말을 받았다. 선장의 상처는 더운 날씨에 계속 악화되었고 절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상처를 입은 후에야 그 흰 고래가 모비 딕인 것을 알았다고 했다. 그 후에 만났냐는 에이해브의 질문에 영국 배 선장은 두 번 만났다고 했다. 부머 선장은 잡을 생각은 안 했다고 했다. 에이해브는 어디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는지 물었다. 그들은 모비 딕을 사냥하려는 에이해브를 무모하고 어리석게 여겼지만 모비 딕의 마지막 목격지와 방향만 확인한 에이해브는 바로 하선했다.

101장 술병

그 영국 배는 런던에서 출항했고, 배 이름은 새뮤얼 엔더비에서 딴 것이다. 유명한 포경 회사 '엔더비 앤드 선스'사의 창립자다. 이 포경 회사는 유구한 역사를 지녔다. 1775년에 영국에서 향유고래를 사냥하는 배를 최초로 띄운 회사이기도 하다. 물론 그보다 수십 년 앞서(1726) 미국의 낸터킷과 비니어드의 용감한 코핀 가문과 메이시 가문이 대규모 선단을 띄워 고래 사냥에 나섰지만, 그 무대는 북대서양과 남대서양에 국한되었다. 그럼에도 낸터킷 사람들이 인류 최초로 강철 작살을 거대한 향유고래에게 던졌으며, 이후로 반세기 동안 그들만이 그렇게 했다. 1778년에는 아멜리아호가 엔더비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대담하게도 혼곶을 골아 저 넓은 남태평양에 세계 최초로 포경 보트를 내렸다. 태평양에 광대한 향유고래 어장이 문을 연 것이다. 영국 정부까지 나서서 어장개척을 지원하기 위해 슬루프형 포함인 래틀러호를 파견했다. 엔더비사는 1819, 자신들만의 포경 어장 탐색선, 사이렌호 준비하여 일본 해역으로 시험 항해를 보냈다. 사이렌호는 임무를 잘 수행했는데, 그리하여 일본의 광대한 포경 어장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이 항해를 지휘한 사람은 낸터킷 출신의 코핀 선장이었다. 그의 이름을 딴 배는 아주 빠른 범선인 데다가 우수해 명성이 높았다. 예전, 이슈메일은 파타고니아 연안 어디선가 그 배에 올라타 앞갑판 선원들과 진탕 술을 마신 적이 있다. 에이해브가 그 배에 오르고 한참 뒤에 이루어진 그날을 떠올리면 그들의 진심어린 환대가 떠오른다. 양쪽 선원들은 한 시간에 40리터 가까이 술을 마셔댔다. 그때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어와 방문객 포함 모든 선원들이 큰돛을 말아올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너무 취한 선원들은 밧줄에 높이 매달린 채 속수무책으로 이리저리 흔들리고 말았다. 그런데 이렇게 영국 포경선들이 손님을 환대하기로 유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영국인은 네덜란드인가 질랜드인, 덴마크인보다 나중에 포경업을 시작했다. 리바이던의 역사를 연구하다가 우연히 오래된 네덜란드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이 책에 네덜란드 포경선 180척의 식량 창고에 들어가는 상세한 물품 목록을 발견한다. 북극해의 고래잡이는 길어야 석 달이다. 포경선 한 척당 서른 명이 탔다고 치면 포경선단에 탄 네덜란드 선원들은 5,400명에 이른다. 따라서 선원 한 명당 12주 동안 맥주 2배럴을 마실 수 있는 셈이고 이와는 별개로 550앵커의 진도 공평하게 배분된다. 그 정도로 진과 맥주를 마셔댔다면 작살잡이들은 상당히 취했을 것 같은데, 제대로 작살을 날렸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실제로 사냥을 잘했다. 이것은 맥주가 잘 받는 북극 지방이기에 가능한 일. 남양 어장에서 그렇게 마셨다가는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2~3세기 전에 네덜란드 고래잡이들이 미식가였으며, 영국 고래잡이들이 이 훌륭한 본보기를 열심히 따랐다는 것을 이제 이해하시리라. 빈 배로 항해하며 특별히 좋은 것을 얻지 못한다고 해도, 최소한 좋은 식사라도 하자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102장 아르사시드군도의 나무 그늘

이슈메일 자신이 어떻게 고래에 대해 해부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지식을 얻었는가? 이슈메일은 운 좋게 작은 고래를 해부할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 완전히 성장한 고래의 거대한 골격에 대해 그나마 정학히 알고 있는 것은 아르사시드군도에 속한 트랑크섬의 왕이었던 내 친구 트랑코 덕분이다. 수년 전에 무역선 '알제 태수'호를 타고 트랑크섬에 갔을 때, 왕의 초청으로 푸펠라에 있는 그의 한적한 야자나무 별장에서 며칠 휴가를 보낼 수 있었다. 그의 수집품 중에는 거대한 향유고래도 있었다. 폭풍우에 밀려온 죽은 고래였는데, 육탈하고 뼈들이 햇볕에 바짝 마르자, 그 뼈대는 푸펠라 골짝기로 옮겨졌다. 고래의 갈빗대에는 전리품이 걸려 있었고, 등뼈에는 기이한 상형문자로 아르사시드의 연대기가 기록되어 있었다. 두개골에는 사제들이 계속해서 향불을 피워놓았다. 아르사시드군도의 푸른 숲에 거대하고 신성한 흰 뼈가 누워 있다. 삶이 죽음을 감싸고, 죽음이 창살이 되어 삶을 지탱한다. 이슈메일은 트랑코 왕과 함께 제단이 된 두개골을 직접 보았다. 이슈메일은 치수를 측량했다. 귀중한 통계 수치를 이슈메일은 오른팔에 문신해 두었다. 거친 방랑 생활을 하던 시절에 보존할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던 탓이다.

모비 딕 - 아르사시드군도에 떠내려온 거대한 향유고래 사체

103장 고래의 뼈대 측량

몸 길이가 18미터인 초대형 그린란드고래의 무게는 70톤 정도 된다. 몸길이가 25~27미터 정도 되고 몸통 둘레가 12미터 가까이 되는 초대형 향유고래의 무게는 최소한 90톤은 나간다. 13명의 몸무게를 1톤이라고 볼 때, 이 고래 한 마리가 1,100명이 사는 마을의 주민보다 훨씬 무거운 셈이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고래를 조금이라도 움직이게 하려면 황소의 두뇌 같은 것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나? 트랑크섬에 있는 향유고래의 전체 길이는 22미터였다. 살을 입혀서 생각해 보면 27미터는 되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고래의 뼈대는 살아 있는 몸뚱이아 비교해서 길이가 약 5분의 1정도로 줄어들기 때문. 전체 길이 22미터에서 두개골과 턱뼈가 약 7미터를 차지하고 나머지 15미터는 등뼈가 차지한다. 이 등뼈의 약 3분의 1에 갈빗대가 붙어 있다. 이 모습은 마치 거대한 배의 앙상한 선체와 매우 비슷하다. 갈비뼈는 양쪽에 각각 10개씩 있다. 목 부분에서 시작하는 첫 번째 갈비뼈는 길이가 거의 1,8미터였다. 갈수록 차츰 길어지는데, 가운데 갈비뼈인 다섯 번째에 이르러서는 2.5미터가 조금 넘었다. 그다음 뒤쪽으로 갈수록 짧아져서 마지막 갈비뼈는 1.5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두께는 길이와 비례했다. 가운데 갈비뼈가 가장 둥글게 휘어져 있었다. 아르사시드군도의 일부 지역에서는 작은 시내 위에 보행자용 다리를 놓을 때 이 갈비뼈를 들보로 쓴다. 이 갈비뼈를 살펴보면 고래의 뼈대는 결코 고래의 형체를 유지하는 지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트랑크섬 향유고래의 갈비뼈 중에 가장 긴 가운데 뼈는 살아 있는 고래의 가장 두꺼운 몸통 속에 자리한 것이었다. 고래가 살아 있었을 때 가장 두꺼운 부위는 두께가 5미터 가까이 되었을 텐데, 그 부분을 떠받치는 갈비뼈는 길이가 겨우 2.5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이 앙상한 뼈대만 보고 이 경이로운 고래의 온전한 모습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헛되고 어리석은 일이다. 오직 절박한 위험 속에서만, 성난 고래의 꼬리가 만들어낸 소용돌이 속에서만, 그리고 한없이 드넓은 바다 한가운데에서만 우리는 비로소 살아 숨 쉬는 고래의 온전한 모습을 실감나게 파악할 수 있다. 척추뼈는 모두 합쳐 40개 정도인데, 뼈대만 남은 상태에서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가장 큰 척추뼈는 너비가 90센티미터 미만이고, 두께는 1.2미터가 넘는다. 꼬리 쪽으로 갈수록 가늘어져 가장 작은 것은 너비가 겨우 5센티미터밖에 되지 않아 하얀 당구공처럼 보인다. 이보다 더 작은 것은 사제의 자식이 훔쳐 가서 잃어버렸다고 한다.

104장 화석 고래

고래의 몸속에 들어 있는 거대한 창자만 생각해보자. 지금까지 발견된 모든 화석 고래들은 현재 지표층이 형성되기 바로 전의 제3기층에서 나오고 있다. 오늘날 알려진 고래종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없지만, 전반적으로 충분히 유사하기 때문에 고래의 화석으로 취급한다. 모든 고래 유골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1842년 앨라배마주 크레이 판사의 농장에서 발견된 멸종 괴물의 거대한 뼈대로 그 형태가 거의 온전히 남아 있었다. 거대한 공룡의 화석이라 생각했는데, 영국의 해부학자 오언에게 표본을 보낸 결과, 실은 멸종된 고래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오언은 그 괴물에게 제우글로돈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거대한 리바이던의 뼈대, 두개골, 엄니, 턱뼈, 갈비뼈, 그리고 척추 사이에 서서 보면, 이 모든 것이 현존하는 바다 괴물과 부분적으로 비슷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들의 먼 조상인 선사시대의 리바이던과도 닮았음을 알게 된다. 거기에 설 때면 홍수에 휩쓸려 시간이란 것이 존재한다고 할 수 없는 놀라운 시대로 돌아간다. 피조물의 왕이었던 고래는 오늘날 안데스산맥과 히말라야산맥의 능선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누가 리바이던과 같은 혈통을 자랑할 수 있을까? 에이해브의 작살은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보다 더 오랜 혈통의 피를 흘리게 한 것이다. 모세 이전에 존재했던 두려움의 대상. 고래는 시간에 앞서 존재했고, 모든 인간의 시대가 끝난 후에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이 리바이어던은 아담 이전에 존재했던 흔적을 자연의 연판에 남겼고, 자신의 태곳적 흉상을 석회석과 이회암에 남겼을 뿐 아니라, 그 자체가 화석이라고 할 수 있는 고대 이집트의 석판에도 지느러미 자국을 뚜렷이 남겨놓았다. 50년 전 덴다라 대사원의 석실에서 화강암 천장에 새겨진 별자리 그림이 발견되었다. 녀석은 솔로몬 왕이 태어나기 수세기 전부터 이미 그 별자리 그림 속을 헤엄치고 있었다. 옛 바르바리 지방을 여행한 요하네스 레오가 기록했듯이, 노아의 대홍수 이후에도 고래 뼈가 실제로 발견된 것이다. "그들은.... 서까래와 대들보에 고래 뼈를 사용했다. 가끔 거대한 고래들이 죽은 채 해안에 떠밀려오기 때문이다. 갈비뼈는 내가 그것을 직접 보기 100년 전부터 거기에 놓여 있었다. 그곳의 역사가들은 무함마드의 탄생을 예언한 예언자가 이 신전 출신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일부 역사가들은 고래가 예언자 요나를 토해낸 곳이 이 신전의 토대 근처였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기도 한다." 이 아프리카 고래 신전에 독자를 남겨두고 떠난다. 그대가 낸터킷 출신에 고래잡이라면 그곳에서 조용히 예배드리게 될 것이다.

105장 고래의 크기는 줄어들고 있는가? 고래는 멸종할 것인가?

고래가 긴 세월 동안 작아진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조사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오늘날의 고래가 제3기층에서 화석으로 발견되는 고래보다 덩치가 클 뿐만 아니라, 같은 3기층일지라도 후기의 지층에 속한 고래가 전기의 지층에 속한 고래보다 더 컸다. 그런데 아담 시대 이후로는 크기가 줄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또 다른 질문이 아직 남아 있다. 지금 포경선들이 온 세상의 은밀한 구석구석까지 다 살피면서 포획하고 있는데, 과연 리바이어던이 이처럼 광범위한 추격과 무자비한 포획을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혹이 난 고래 떼를 역시 혹이 난 버팔로 떼와 한번 비교해보자. 40년 전만 해도 버팔로는 일리노이주나 미주리주의 대초원에서 수만 마리씩 무리를 지어 다녔다. 하지만 지금 그곳은 번화한 도시가 되었고 소유자들이 생겼다. 이렇게 비교해 보면 고래가 얼마 안 있어 멸종할 수밖에 없다는 불가피한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하지만 고래 사냥은 버팔로 사냥과는 성격이 매우 다르므로 리바이어던에게 그런 불명예스러운 종말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선원 40명을 태운 포경선 한 척이 48개월 동안 항해하면서 향유고래 40마리 분량의 기름을 가지고 귀항할 수 있다면 상당히 성공한 항해다. 그러나 말을 타고 버팔로 사냥을 나갔더라면, 40마리가 아니라 4만 마리의 버팔로를 죽였을 것이다. 이 사실을 통계로 제시할 수도 있다. 작은 무리가 거대한 무리가 되어 작은 무리가 눈에 자주 띄지 않을 뿐이다. 긴수염고래는 인간의 힘으로 뚫기 어려운 견고한 요새를 두 군데 가지고 있다. 극지가 그곳이다. 향유고래가 한 마리 잡힐 때 긴수염고래는 50마리 비율로 잡히기 때문에, 포경선 앞갑판의 일부 철학자들은 이 같은 남획으로 이미 상당한 고래 무리가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고 보았다. 지난 몇 년 동안 미국 북서부 해안에서 연간 포획한 긴수염고래 개체 수만 13천 마리에 이른다. 그래도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이런 사실도 앞으로 고래가 멸종할 것이라는 주장을 그리 뒷받침해주지 못한다. 시암 왕이 한번 사냥을 나가면 코끼리 4,000마리를 잡았고, 지난 수천 년 동안 어마어마하게 포획했으나 여전히 코끼리는 번성하고 있다. 그러니 바다의 고래가 인간의 사냥을 이겨내고 살아남았을 가능성을 의심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본다. 고래는 모든 대륙을 다 합친 것보다 두 배는 더 넓은 초원을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래는 수명이 아주 길어서 100세가 넘도록 살기 때문에 개체수가 축적된다. 이 모든 점을 감안할 때, 고래라는 종은 불멸이라고 보아야 한다. 노아의 대홍수 때도 고래는 노아의 방주 따위는 우습게 보았다. 세계가 다시 홍수에 잠긴다 해도 고래는 여전히 살아남아 적도 해류의 가장 높은 물마루 위로 머리를 쳐들고 물줄기를 내뿜을 것이다.

106장 에이해브의 다리

새뮤얼엔더비호를 서둘러 떠나다가 보트에 너무 힘차게 내려서는 바람에 에이해브의 고래 뼈 다리가 거의 쪼개질 뻔했다. 그가 무모한 광기에 빠져 있는 것 같아도 그의 몸을 받쳐주는 죽은 고래 뼈의 상태에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다. 피쿼드호가 낸터킷을 출항하기 며칠 전날 밤, 고래 뼈 다리가 빠지면서 창처럼 그의 사타구니를 세게 찌른 일이 있었다. 부상이 다 낫기까지 그는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 모든 불행한 사건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동류를 낳는다. 기쁨과 슬픔 사이에는 여전히 불평등이 존재하는 듯하다. 에이해브가 생각하기에, 이 세상에서 아무리 큰 행복을 누리더라도 거기에는 알 수 없는 하찮음이 어른거리지만, 마음속 모든 슬픔의 밑바닥에는 신비로운 의미가 숨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 슬픔에 대천사의 장엄함마저 깃들어 있다고 보았다. 에이해브가 항해 초기 은둔했던 이유는 분명해졌다. 그 불운한 사고 때문이었다. 에이해브는 목수를 불러 새 다리를 만들라고 지시하고 항해사들에게 지금까지 모아둔 향유고래 턱뼈의 샛기둥과 들보 중 가장 단단하고 결이 고운 것을 고를 수 있게 하라고 했다. 목수는 당장 제작에 착수했다.

107장 목수

포경선 같은 원양어선의 목수들이 그렇듯이 그도 목수 일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일들을 잘해내는 노련한 사람이었다. 그는 3~4년 동안 먼 바다를 항해하는 대형 선박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기 마련인 수천 가지의 긴급한 기계 고장도 척척 해결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이런 다양한 작업을 하는 주요 무대는 바이스 작업대로 고래가 뱃전에 매달려 있을 때를 제외하고, 이 작업대는 늘 기름 솥 뒤에 길게 가로놓인 채 고정되어 있었다. 노에 문양을 새기는 것부터 통증을 완화시키는 로션을 만들거나 귀 뚫기, 이 뽑는 것까지 해내는 만능이 목수였다. 이처럼 여러 분야에 재주가 뛰어나다고 그의 내면 또한 지성이 활발하게 작동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았다. 그의 두드러진 특성으로 비인격적인 둔감함을 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현세에서든 내세에서든 아무런 계획 없이 살아갔다. 그는 그저 귀먹고 말 못하는 사람처럼 무감각하게 기계적인 과정을 따르며 행동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도 사람이기에 늘 무언가 중얼거리며 일했는데, 어쩌면 그의 몸은 초소이고, 거기서 보초를 서는 영혼이 잠들지 않고 깨어 있기 위해 늘 혼잣말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108장 에이해브와 목수

갑판 - 첫 번째 야간 당직

(목수는 바이스 작업대 앞에서 부지런히 의족을 만들고 있다.)

연신 재채기를 하면서 투덜거리거나 혼잣말을 해대며 의족을 만드는데 누군가 오는 인기척을 느낀다.

에이해브 (걸어온다)

목수가 치수를 잰다. 대장장이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 에이해브가 묻자, 목수는 죄는 나사를 만들고 있다고 답한다. 에이해브는 이상한 소리를 한다. 신화적인 이야기, 성서 이야기. 그리고 목수에게 오래전에 잃어버린 살과 피로 된 내 다리가 생각나지 않게 만들 수 있느냐 물었다. 목수는 팔다리를 잃어도 옛날의 감각을 완전히 잃는 것은 아니어서 가끔 쿡쿡 쑤신다고 하던데 선장도 그러냐고 되물었다. 에이해브는 그렇다고 한다. 이어, 오래전에 다리를 잃어버렸는데도 그때의 고통을 여전히 느낀다면, 목수 자네 또한 육신이 사라져도 영원히 지옥불의 고통을 느낄 수 있지 않겠냐고 물었다. 목수는 치수를 다시 계산해봐야겠다며 말머리를 돌렸다. 에이해브는 한 시간이면 다리가 완성된다는 말을 듣고 돌아서면서 투덜거렸다. , 인생이여! 그리스 신처럼 당당한 내가 똑바로 서 있기 위해 이 바보가 만든 의족에 의지해야 한다니!

목수 (일을 다시 시작한다)

혼잣말로 선장은 괴짜라고 스터브에게 들었다 중얼거렸다. 이 다리는 선장과 잠자리를 함께 하는 사이. 고래 턱뼈로 만든 막대기가 마누라라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다리를 가지고 평생을 써먹어. 두 다리를 아끼며 써먹기 때문이야. 그런데 에이해브 이 사람은 두 다리를 마구 부려먹었어. 다리 하나는 함부로 써서 죽어버렸고, 나머지 한 다리는 평생 절뚝이면서 고래 뼈 다리를 닳아 없어지게 하고 있잖아.

다리를 다 만든 목수는 선장이 위도 계산할 때 사용할 작은 타원형 석판도 생각이 났는지 다시 일을 시작한다.

모비 딕 - 갑판에서 밧줄을 감고 있는 선원

109장 선장실의 에이해브와 스타벅

다음 날 아침, 뱃바닥에 고인 물을 퍼내고 있던 선원들은 물에 상당한 양의 기름이 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기름통이 새고 있음을 알았다. 스타벅이 선장실에 보고하기 위해 갔다. 에이해브는 피쿼드호가 항해 중인 대만과 바시제도의 해도와 일본 열도의 해도를 펼쳐놓고 있었다. 문간에 발소리가 들리자, 선장은 돌아보지도 않고 꺼지라고 소리쳤다. 스타벅이 상황을 이야기하자, 에이해브는 그까짓 낡은 쇠테를 수리하겠다고 여기서 일주일이나 머물러야 한다는 말이냐고 되물었다. 스타벅은 지난 항해의 성과를 지키려면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에이해브는 맞장구치면서 우리가 그걸 얻는다면 말이야, 라는 단서를 붙였다. 스타벅은 선창의 기름을 말하고 있는 거라 명토박았다. 그러자 에이해브는 그런 건 생각지도 않았다고 다시 꺼지라고, 그냥 새게 두라고 했다. 자신이 제일 많이 새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새는 구멍을 막겠다고 멈추지 않아." 그리고 도르래로 기름통을 올릴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 스타벅은 선주들을 들먹였다. 그러나 에이해브는 듣지 않았다. 스타벅이 선장실 안으로 더 들어왔다. "저보다 나은 사람이라면, 자기보다 젊고 행복한 사람에게 화부터 내고 보는 당신을 참고 넘어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에이해브는 장전된 머스킷총을 스타벅에게 겨누었다. "이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 한 분이고, 피쿼드호의 주인도 선장 한 명뿐이다. 갑판으로 올라가!" 스타벅은 침착하게 물러나며 그에게 말했다. "선장님은 저를 모욕한 것이 아니라 화나게 했습니다. 그렇다고 저를 조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웃으실지 모르겠지만, 에이해브는 에이해브를 조심해야 합니다. 영감님, 자신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에이해브는 선장실에서 홀로 스타벅의 말을 곱씹다가 갑판으로 올라갔다. 스타벅에게 좋은 친구라 치하한 다음, 도르래를 달게 했다. 에이해브가 스타벅에게 왜 이렇게 행동했는지 정확히 알 길은 없다. 어쩌면 마음속에 정직함이 섬광처럼 빛났을지도 모른다.

110장 관에 누운 퀴케그

맨 밑에 있던 통들은 너무 오래되고 부식된 데다가 잡초까지 덮여 있었다. 다 꺼내자 아래는 비어 가볍고 갑판은 무거워져 배가 심하게 불안정해졌다. 이 무렵 퀴케그는 열병에 걸려 임종이 가까이 온 것처럼 보였다. 작살잡이는 평소 선창 관리인 노릇도 해야 했다. 퀴케그는 선창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을 냈는데도 오한이 들었고, 결국 열병에 걸리고 말았다. 며칠 간 끙끙 앓다가 마침내 죽음의 문턱에 다가갔다. 그의 눈에 묘하게 부드러운 광채가 어렸다. 그는 열병에 시달리면서도 온화하면서 진지한 눈으로 이슈메일을 바라보았다. 이슈메일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경외심에 사로잡혔다.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신비한 그림자에는 죽음을 앞둔 어떤 칼데아인이나 그리스인도 품지 못했을 고귀하고 성스러운 생각이 어려 있었다. 그도 자신의 최후를 예감했는지 카누를 관으로 써달라 부탁했다. 이런 부탁이 갑판에 알려져 목수에게 퀴케그의 소원을 들어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목수는 지시를 받자마자 줄자를 챙겨 퀴케그의 치수를 아주 정확히 쟀다. 그의 몸에 분필로 일정하게 표시를 하기까지 했다. 다 만든 목수가 관을 어깨에 둘러매고 앞갑판으로 가서 선원들에게 관을 사용할 준비가 되었느냐고 물었다. 선원들은 화를 내는 듯, 장난을 치는 듯 소리를 지르며 관을 내몰기 시작했다. 소란을 들은 퀴케그는 당장 관을 안으로 들이라 요구했다. 퀴케그는 작살 날과 자신의 노를 함께 관에 넣어달라 부탁했다. 신선한 물 등 퀴케그가 요구한 것들이 다 들어차자 직접 누워보기 위해 그가 자신의 관으로 들어갔다. 관 속에 누워 있다가 그는 작은 신 요조를 가져와달라 부탁했다. 뚜껑까지 덮어보고는 나왔다. 핍이 흐느끼며 다가왔다. "불쌍한 방랑자여! 해류가 당신을 연꽃 가득한 안틸레스제도로 데려다 준다면, 그곳에서 실종된 핍이란 아이를 찾아주세요. 그리고 위로해 주세요. 탬버린을 놓고 갔잖아요. 퀴케그, 이제 죽어요! 탬버린을 쳐줄게요." 스타벅은 현창으로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못 배우고 무식한 사람들이 고열에 시달리면서 자기도 모르게 고대 언어로 말을 했다지. 조사해보니, 까마득히 잊어버린 어린 시절에 어떤 고명한 학자들이 고대 언어로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는 거야. 그래서 나는 불쌍한 핍이 미쳐서 늘어놓는 저 이상하고도 다정한 말들이 천국에 우리 모두의 집이 있다는 신성한 증거라고 믿고 싶어. 천국이 아니라면 어디서 저런 말을 배웠겠어?" 핍은 또 소리치기 시작했다. 퀴케그는 싸우다 죽었음으로 장군으로 받들고, 핍은 도망치다 죽었으니, 달아난 놈이라고 겁쟁이라고 말하라는 것이다. 핍은 끌려나갔다. 모든 죽을 준비를 마친 퀴케그가 갑자기 기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생사의 고비에 선 순간, 육지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자그마한 의무가 생각나 죽음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고 퀴케그가 말했다. 야만인과 문명인 사이에는 이런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병든 문명인이 회복하는 데 6개월이 걸린다면, 병든 야만인은 하루 만에 반쯤은 회복하는 것이다. 며칠 쉰 퀴케그는 이제 다시 싸울 준비가 되었다고 소리쳤다. 자신을 위해 만든 관은 사물함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관 뚜껑에 각종 기괴한 무늬와 그림을 새겨 넣었다. 자기 나름의 거친 방식으로 몸에 새겨진 문신을 관 뚜껑 위에 똑같이 옮겨놓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 문신은 고향 섬의 예언자이자 현자가 새겨준 것이었다. 예언자는 퀴케그의 몸에 하늘과 땅의 완전한 이치를 상형문자 같은 표시로 새기며 진리에 도달하는 기술에 관한 신비로운 논문을 썼다. 하지만 그 신비는 퀴케그 자신조차 해독할 수 없는 것이었고, 따라서 그것이 새겨진 살아 있는 양피지와 함께 썩어 없어져 끝내 풀리지 못할 운명이었다. 어느 날 아침, 에이해브가 불쌍한 퀴케그를 살펴보다가 돌아서며 ", 신들은 악마처럼 사람을 애태우며 괴롭히는구나!"라고 거칠게 탄식한 것은 분명 이런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111장 태평양

남태평양에 진입했다. '이곳에는 수백만의 그늘과 그림자가 뒤섞여 있고, 꿈과 몽상과 명상이 잠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명과 영혼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이 누워서 여전히 꿈꾸며 침대에서 잠자는 사람들처럼 몸을 뒤척인다. 파도가 끝없이 넘실거리는 것은 그것들이 쉬지 못하고 뒤척거리기 때문이다.' 태평양의 영원한 파도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자는 유혹하는 신에게 순종하며 목신(牧神: , 사냥, 목축을 맡아보는 신)에게 고개를 조아리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것에 에이해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가증스러운 흰 고래가 지금도 저 바다 어딘가를 헤엄치고 있을 터였다. 마침내 거의 마지막인 바다에 들어서서 일본 어장을 향해 나아가면서 노선장의 목적은 더욱 뚜렷해졌다. 그가 잠들어 있을 때조차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천장이 둥근 선체에 울려 퍼졌다. "보트를 뒤로 빼라! 흰 고래가 걸쭉한 피를 토한다!"

112장 대장장이

대장장이 퍼스는 에이해브의 다리를 만드는 일이 끝나고도 이동식 용광로를 다시 선창이 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선원들은 도구 수선이나 필요한 것을 만들어 달라고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는 중얼거리지도, 초조해 하지도, 볼멘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의 걸음걸이는 고통이 희미하게 느껴지는 갈지자걸음이었다. 궁금한 선원들이 집요하게 묻자, 그는 마침내 사연을 털어놓는다.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어느 추운 겨울밤, 그는 떳떳하지 못한 이유로 한밤중에 두 시골 마을을 연결하는 길을 달려가다가 몸에 마비 증세를 느끼고 다 쓰러져가는 어느 헛간으로 피신했다. 그는 두 다리의 발가락 모두를 잃고 말았다. 이 고백을 시작으로 그의 인생에서 기쁨에 해당하는 네 개의 막이 이어졌고, 그다음에는 아직 파국에 이르지 않은 길고 긴 슬품의 제5막이 올랐다. 예순이 가까운 나이에 파멸이라 부르는 것을 때 늦게 맞이한다. 그는 명성 있는 장인이어서 일거리도 많았다. 정원이 딸린 집, 딸처럼 젊고 사랑스러운 아내와 건강한 자녀 셋을 두었다. 어느 날 무자비한 강도가 들어 그 모든 것을 앗아갔다. 더욱 참담한 것은 그런 강도를 부지불식간에 집으로 끌어들인 자가 대장장이 자신이었다는 사실이다. 강도는 바로 악마의 술병이었다. 죽음은 왜 제때 나타나지 않는가? 늙은 대장장이를 데려갔더라면 젊은 과부는 감미로운 슬픔에 잠겼을 것이고 아이들 또한 훌륭항 아버지를 꿈속에 만났을 것이며, 모두가 근심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재산을 물려받았으리라. 하지만 죽음은 씩씩거리는 매일의 노동으로 가족의 생계를 홀로 책임지는 강직한 가장을 꺾어버리면서, 백해무익한 노인은 생명이 흉측하게 썩어 들어가게 두었다. 망치질 소리는 갈수록 뜸해지고 희미해졌다. 풀무는 멈추고 용광로에는 재만 가득했다. 어머니와 아이들은 차례로 세상을 떴다. 이런 인생이라면 죽음이 가장 바람직한 결말일 것이다. 죽음을 갈망하면서도 내면에서 아직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을 주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바다가 제격이다.

113장 용광로

일하고 있는 대장장이 퍼스에게 에이해브가 다가왔다. 에이해브가 불똥 속에 살면서도 데지 않는다고 퍼스에게 말하자, 퍼스는 이미 그슬리는 단계는 지났다고 답한다. 에이해브는 대장장이에게 너는 미쳤어야 한다, 미치지 않고 어떻게 그런 고통을 견디는가? 궁금해 했다. 그리고 무얼 만드는가 물었다. 퍼스가 헌 창끝을 용접하고 있다 말하자, 에이해브는 금이 가거나 찌그러진 것은 무엇이든 매끄럽게 만들 수 있는가 물었다. 퍼스가 그렇다고 하며 딱 하나만 빼고요, 라고 답했다. 에이해브가 이마의 주름을 펴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퍼스는 그게 자신이 말한 딱 하나라 답한다. 에이해브는 경주마의 편자에 사용된 쇠못들을 퍼스에게 내밀며 작살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퍼스가 좋은 재료라 칭찬했다. 에이해브는 우선 작살 자루로 사용할 쇠줄 열두 가닥을 만든 다음, 그걸 밧줄로 한데 모으고 비틀어 망치질하라 명하고 풀무질까지 직접 했다. 퍼스가 열두 가닥의 쇠줄을 용접하려고 할 때, 그 일은 자신이 하겠다며 에이해브가 나섰다. 퍼스는 이 작살을 모비 딕에게 쓸 것인지 물었다. 에이해브는 흰 악마에게 쓸 거라고 하며 이번엔 면도날을 내밀며 칼날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주저하는 퍼스에게 에이해브는 모비 딕을 잡기 전엔 면도도 하지 않을 것이며 밥도 먹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을 거라고 선언했다. 화살 모양으로 만들어진 칼날을 쇠자루에 용접하자 작살 끄터머리가 뾰족해졌다. 대장장이는 칼날을 담금질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용광로에 집어넣을 준비를 하면서 에이해브에게 물통을 가져다달라고 소리쳤다. 에이해브는 물로는 안 된다고, 타슈테고, 퀴케그, 다구를 불러 칼날을 담금질할 피를 내어달라 한다. 검은 얼굴의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여 이교도의 살은 세 번 찔렸고, 모비 딕에게 박힐 칼날은 담금질을 마쳤다. "주의 이름이 아니라 악마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에이해브는 미친 듯이 소리쳤다. 에이해브는 작살대에 히코리나무 막대를 이어 작살을 완성한다. 에이해브가 그 무기를 들고 우울하게 갑판 위를 걸어가자 텅텅거리는 소리가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핍의 비열한 웃음 소리가 어떤 비극을 조롱하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114장 황금빛 바다

일본 어장에 다다른 피쿼드호는 맹렬하게 고래 사냥에 나섰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부드럽고 느리게 일렁이는 물결 위를 온종일 떠다닐 때면 우리는 바다의 거친 속살을 가끔 외면하게 된다. 이럴 때 포경 보트의 방랑자는 바다에 깊은 신뢰를 보내고 육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잠시나마 위안을 주는 풍경에 에이해브도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이 신비한 황금 열쇠가 그의 마음속에 있는 은밀한 황금 금고를 연 것처럼 보였더라도, 그의 숨결이 닿는 순간 그 보물의 빛은 흐려지고 만다. ".... 복잡한 인생의 실타래는 씨줄과 날줄로 엮이는 법! 평온함의 실과 폭풍우의 실이 서로 교차하나니 모든 평온함에는 폭풍이 찾아든다. 인생에 후퇴 없이 꾸준한 전진이라는 것은 없다. .... 유년기의 무의식적인 행동과 소년기의 맹신, 청년기의 의심을 지나고 회의와 불신의 단계를 거쳐 마침내 '만약에'를 곰곰이 따져보는 성년기에 들어섰다고 해서 안식하는 것이 아니라..... 다 거치고 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영원히 되풀이하게 된다. 더 이상 닻을 올리지 않아도 되는 마지막 항구는 어디에 있는가?......." 같은 날 보트 뱃전에서 황금빛 바다를 아득히 바라보던 스타벅은 낮게 중얼거렸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사랑스러움이야..... 내게 두 겹 이빨을 가진 그대의 상어에 대해 말하지 말라.... 믿음으로 사실을 밀어내고, 상상으로 기억을 밀어내라. 나는 깊은 바닷속을 내려다보며 그것을 믿노라." 스터브는 그 황금빛 속에서 뛰어올랐다. " .... 맹세하노니 스터브는 언제나 유쾌한 자였노라!"

115장 피쿼드호, 배철러호를 만나다

에이해브의 작살이 제작되고 나서 몇 주 후, 피쿼드호는 낸터킷 배인 배철러(총각)호를 만난다. 만선한 이 배는 곧 뱃머리를 고향으로 돌릴 터라, 다른 배들 사이를 즐겁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배철러호는 이번 항해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선장실과 간부 선원들의 선실까지 통들이 들어찼다. 이들은 신나게 춤추며 놀고 있었다. 두 배가 교차할 때, 한 배는 지난 일들에 대한 기쁨이 가득하고 다른 한 배는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한 불길한 조짐이 가득했는데, 두 선장 또한 극명히 대조되는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자신의 배로 오라고 유쾌하게 부르는 배철러호의 선장을 향해 이를 악문 에이해브는 모비 딕을 보았는지 되물었다. 배철러호 선장은 못 보았다면서 그런 모비 딕을 믿지 않는다 했다. 재차 승선을 권하는 상대를 뿌린친 에이해브. 그리하여 한 배는 순풍을 받으며 즐겁게 나아가고, 다른 배는 고집스럽게 역풍을 상대하며 나아갔다. 멀어진 배철러호를 바라보던 에이해브는 호주머니에서 낸터킷 해변의 모래가 든 작은 유리병을 꺼내 멀어지는 배와 번갈아 바라보았다.

116장 죽어가는 고래

유쾌한 배철러호를 만난 그 다음 날, 피쿼드호는 고래를 네 마리나 잡았다. 그 중 한 마리는 에이해브가 직접 잡았다. 곧 이전보다 더 침울해진 에이해브는 조용해진 보트에 앉아서 죽어가는 모든 향유고래가 보여주는 기이한 광경, 즉 머리를 태양 쪽으로 돌리고 숨을 거두는 모습에 이전에 알지 못했던 경이로움을 느낀다.

117장 고래 불침번

잡은 네 마리 중 한 마리는 다음 날 오전이 되어야 작업이 가능해 에이해브의 보트가 밤새 보초를 서야 했다. 장대 끝에 등불을 매단 표시 장대가 죽은 고래의 분수공에 수직으로 꽂혔다. 보트에서 다 잠든 듯했으나 파시교도는 아니었다. 흠칫 놀라며 선잠에서 깬 에이해브가 또 그 꿈을 꾸었다고 말하자, 파시교도는 영구차든, 관이든 선장님 것일 리 없다고 했다. 그러자 에이해브는 바다에서 죽은 자가 관에 들어갈 일은 없다, 라고 답한다. 파시교도는 어떤 일이 있어도 에이해브의 수로 안내인으로서 선장보다 앞장설 것이라 맹세했다. 에이해브는 모비 딕을 죽이고 살아남겠다 다짐한다. 파시교도는 다른 맹세를 하나 더 요구했다. 삼밧줄 만이 당신을 죽일 수 있다고 맹세하라는 것이다. "교수형을 말하는 거로군. 하지만 나는 지상에서나 바다에서나 불멸의 존재야." 새벽이 되고 고래를 뱃전으로 끌고 왔다.

118장 사분의

적도에서 고래를 잡는 철이 다가왔다. 적도로 향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일본 해역의 해는 때로 너무 찬란하게 빛난다. 에이해브는 색유리가 끼워진 사분의로 관찰했다. 에이해브는 곧 정확한 배의 위치를 계산해 냈다. 그리고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항로 표시자여! ... 거대한 수로 안내자여! 그대는 진실로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말해주는구나. 그런데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약간의 힌트라도 줄 수 없겠는가?... 모비 딕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에이해브는 신경질적으로 사분의에 짜증을 냈다. 결국 소중한, 찾는 무엇이 어디 있는지는 전혀 알려주지 못하는 기계에 대한 지청구였다. "인간의 시선은 원래 이지구의 수평선과 나란하게 되어 있다. 신이 인간으로 하여금 창공만 쳐다보기를 바랐다면 눈이 정수리에 달렸을 것이다. 빌어먹을, 너 사분의여!" 에이해브는 사분의를 갑판에 내던졌다. 그리고 마구 짓밟았다. 그 모습을 보던 파시교도의 얼굴에는 에이해브에 대해서는 조롱 어린 승리감이, 자신에 대해서는 운명적인 절망감이 스쳐 지나갔다. 에이해브는 이어 배를 움직이라고 지시한다. 스타벅은 뱃머리 부늑재 사이에 서서 이 광경을 다 지켜보았다. "석탄불도 끝내 사그라든다. 불같이 타오르는 그대의 생명도 결국에는 한줌의 재가 되고 말 것이오!" 스터브가 맞다고 대꾸했다. "하지만 석탄재가 남는 겁니다, 스타벅 항해사님."

모비 딕 - 포경 보트에 앉아서 사분의로 관측 중인 에이해브 선장.

119장 양초

일본 해역에서 피쿼드호는 모든 폭풍 중에서도 가장 난폭한 태풍을 만난다. 스타벅은 뒷갑판에 서서 배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스터브와 플래스크는 보트를 더 높이 끌어 올려 단단히 붙들어 매도록 선원들을 지휘했다. 그러나 에이해브의 보트는 고물 쪽 바닥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말았다. 스타벅이 스터브에게 배가 돌풍이 불어오는 동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알려준다. 바로 에이해브가 모비 딕을 쫓는 방향이며, 오늘 정오에 그가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도. "그런데 에이해브 보트 구멍이 어디에 뚫려 있나? 고물의 상판이야. 선장이 늘 서 있던 곳이지." 갑자가 어둠속에서 에이해브가 나타났다. 스타벅이 에이해브의 앞길을 비추는 번갯불을 보고 갑자기 경각심이 들었는지, 피뢰침을 빨리 밖으로 던지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에이해브가 그러지 못하게 했다. 정당하게 싸우자는 거였다. 세 개의 돛대 꼭대기에 달린 세 개의 피뢰침에는 끝이 뾰족한 하얀 불꽃 세 개가 타오르고 있었다. 선원들은 공포에 질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불꽃이 꺼지고 배 위의 풍경도 흐릿해지자 스타벅이 앞으로 나가다가 스터브와 부딪혔다. 스터브는 우리 돛대 세 개가 고래기름으로 타오르는 세 개의 양초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주돛대 아래, 스페인 금화 아래에서 파시교도가 에이해브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에이해브는 흰 불꽃이 모비 딕에게 가는 길을 비춰주고 있다면서 그 맥박을 느끼겠노라, 주돛대의 피뢰침 고리를 가져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런 다음 에이해브는 왼손으로 피뢰침 고리를 단단히 쥐고 돌아서서 발을 파시교도의 등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모비 딕에게 향하는 자신을 방해하지 말라고 따지듯 외쳐댄다. 스타벅이 선장을 불렀다. 에이해브의 보트에 있던 그의 작살 칼날에서 끝이 갈라진 창백한 불꽃이 길게 솟아올랐던 것이다. 스타벅이 이 항해는 신이 반대한다며 방향을 돌려 이 바람을 타고 집으로 가자고 외쳤다. 스타벅의 생각은 모든 선원들의 생각이었다. 선원들이 돛대도 없는 돛대 밧줄로 달려며 어수선해졌다. 에이해브는 피뢰침 고리를 바다로 던져버리고 불꽃이 붙은 작살을 움켜쥐고는 횃불처럼 휘두르면서 맨 처음 밧줄을 푸는 자는 작살 맛을 보게 될 거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모두 얼어붙어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에이해브는 선원들에게 모비 딕을 잡겠다 맹세한 일을 상기시키며 큰 숨을 불어 작살 끝의 불꽃을 꺼버렸다. 선원들이 달아났다.

[운명에 저항하는 강인한 에이해브의 의지가 돋보인 장이었다.]

120장 첫 번째 야간 당직이 끝날 무렵의 갑판

에이해브가 키 옆에 서 있고, 스타벅이 그에게 다가간다. 스타벅이 느슨해지고 꼬인 밧줄 때문에 돛을 내릴까 묻자 내리지 못하게 한다. 닻이 내려져 있으니 갑판으로 올릴까라고 묻는 말에도 올리지 마라고 한다. 그리고 돛대와 용골을 살피라고 지시했다.

121장 한밤중-앞갑판의 뱃전

(스터브와 플래스크가 뱃전에 올라 거기에 매달려 있는 닻을 밧줄로 더 동여매고 있다.)

플래스크가 스터브에게 에이해브가 타는 배는 뒤에는 화약통을 싣고 앞에는 성냥 상자를 실은 것과 같으니 보혐료를 더 내야 한다고 말했지 않냐며, 왜 말을 바꾸냐고 따졌다. 스터브는 물보라가 날리는데 성냥에 불을 붙일 수 없다며 눙치고 들었다. "피뢰침을 달고 다니는 배는 100척에 한 척도 안 돼. 그때 에이해브는, 그래 우리 모두는 현재 바다를 항해하는 1만 척 배의 선원들보다 더 위험했던 것은 아니라고 나는 보네.... 플래스크,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없나?" 둘은 닻을 다시는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칭칭 묶었다.

[다시 항구에 들거나 정박할 일이 없을 피쿼드호의 운명을 암시한 듯.]

122장 한밤중의 돛대 꼭대기-청둥과 번개

(주돛대의 중간 활대에 타슈테고가 새 밧줄을 감고 있다.)

타슈테고는 천둥아, 그만 좀 울려라, 럼주가 필요하다고 중얼거렸다.

123장 머스킷총

키잡이는 피쿼드호가 충격을 받을 때마다 나침반의 바늘이 문자반 위에서 아주 빠르게 회전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동요하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자정이 지나고 몇 시간 후, 태풍이 잦아들었다. 누더기를 떼낸 자리에 새 돛을 매달아 접어 올리고, 폭풍 때 사용하는 튼튼한 돛을 배 뒤쪽에 달았다. 에이해브는 배가 동남동으로 향하게 지시했다. 좋은 징조인지 역풍이 순풍이 되었다. 이전까지 있었던 불길한 징조를 말끔히 씻어내는 것 같았다. 스타벅은 활대를 불어오는 바람에 맞추어 조정하고는 에이해브에게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갔다. 선장실을 노크하기 전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그 앞에 잠시 멈추어 섰다. 선반에는 장전된 머스킷총 몇 자루가 앞 벽에 기대선 채 번쩍이고 있었다. 스타벅은 정직하고 정의로운 사람이지만 총을 본 순간 마음속에서 사악한 생각이 튀어나왔다. "나는 선장에게 순풍을 보고하러 왔어. 그런데 무엇을 위한 순풍이지? 죽음과 파멸을 위한 순풍? 그것은 모디 딕을 위한 순풍이야.... 그가 저 총을 내게 겨누었지... 그래, 그는 다른 선원들도 모두 기꺼이 죽일 수 있는 자야. 폭풍이 아무리 불어도 활대를 내리지 않겠다고? 사분의도 내동댕이치지 않았나? .... 이 살벌한 태풍 속에서 피뢰침 따위는 필요 없다고? ..... 만약 이 배가 어떤 치명적인 피해라도 입는다면 그는 서른 명 이상의 선원들을 고의로 죽인 살인자가 되고 말 거야.... 당장 그를 처치해버리면 그런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겠네.... 합리적인 방법은 없을까? .... 포로로 잡아으면 얼마나 끔찍하게 굴 것인지. 가장 가까운 육지가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고, 근처에 있는 일본은 문호를 열지 않아 들어갈 수 없어. 나는 망망대해에 혼자 서 있고, 나와 법 사이에는 두 개의 바다와 하나의 대륙이 가로놓여 있군..... 하늘이 미래의 살인자 영감의 잠자리에 벼락을 쳐서 태워버리면 하늘은 살인자가 되는 것일까? 나도 살인자가 되는 것일까?.... 방아쇠만 한번 잡아당기면 스타벅은 살아 돌아가서 아내와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어. , 메리! 아들아, 아들아..... 만약 영감이 죽지 않고 눈을 뜬다면, 이 스타벅의 시신이 일주일 후 다른 선원들과 함께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닷속으로 가라앉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위대한 신이시여, 당신은 어디 계십니까? 제가 해치워야 할까요?...... 선장님, 바람이 잦아들고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모두 물러서라! 오 모비 딕, 마침내 네놈의 심장을 움켜쥐는구나!" 스타벅의 목소리가 에이해브의 가위 눌린 꿈속에서 그로 하여금 말하게 만들었는지 고통스럽게 뒤척이던 영감의 입에서 불쑥 이런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때까지 선실을 겨누고 있던 머스킷총이 덜덜 떨리며 문에 부딪혔다. 그는 돌아서서 그 죽음의 총신을 선반에 되돌려 놓고 그 자리를 떠났다. 스타벅은 보고 임무를 스터브에게 넘긴다.

모비 딕 - 태풍에 너덜너덜해진 돛대를 새로 갈고 있는 모습.

124장 나침반 바늘

다음 날 아침, 아직 완전히 진정되지 않은 파도가 피쿼드호를 밀어주었다. 에이해브는 선원들과 뚝 떨어져 서 있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키잡이에게 가서는 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물었다. 키잡이가 동남동이라 답하자 에이해브는 그를 치며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외쳤다. "아침, 태양이 배 뒤에 있는데?" 그 말에 선원들 모두가 깜짝 놀랐다. 나침함을 들어다보니 두 개의 나침반이 분명 동쪽을 가리키고 있다. 최초의 불안이 선원들 사이에 퍼져 나가기 전에 노선장은 짐짓 웃으며 소리쳤다. "스타벅 항해사, 간밤에 쳤던 천둥이 나침반 바늘을 돌려놓은 거야. 자네도 분명 이런 일을 들어보았을 거야." 그러자 스타벅은 들어는 봤는데 겪기는 처음이라 답했다. 이런 일은 흔한 일이었다. 놀랄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천연자석은 모든 기능을 잃고, 이렇게 한번 손상된 나침반 바늘은 원래 대로 복구되지 않는다. 나침함의 나침반이 고장나면, 배 안에 있는 다른 모든 나침반도 똑같은 운명에 처한다. 에이해브는 항로를 변경하라고 큰 소리로 명령했다. 피쿼드호는 다시 한번 뱃머리를 역풍 쪽으로 돌렸다. 에이해브는 스타벅에게 손잡이 없는 창과 망치, 가장 작은 돛 뛔매는 바늘을 가져오게 했다. 그에게는 목적이 있었다. 이런 일에 노련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선원들의 사기를 북돋으려는 것이었다. 그는 망치로 바늘을 두드려 자성을 띄게 만들더니 삼실로 묶어 나침반 바늘로 쓰기 위해 나침함에 매달았다.

125장 측정기와 측정줄

에이해브는 너무 사용하지 않아 낡아빠진 측정기를 바다에 던지도록 했다. 사분의를 박살내고 측정기와 측정줄을 사용하겠노라 호언장담한 일이 떠올랐던 것이다. 얼레를 잡은 맨섬 노인이 밧불이 삭아서 쓸 수 없을 거라는 의견을 에이해브에게 전했다. 그러나 역시 쇠 귀에 경 읽기. 측정기는 바다에 던져졌고, 너울거리는 파도에 오르내리는 측정기 탓에 맨섬 노인은 비칠거렸다. 역시 측정기는 사라져버린다. "내가 사분의를 박살내고 천둥이 나침반 바늘을 돌려놓더니 이제는 미친 바다가 측정기를 떼어 갔네." 이렇게 말한 에이해브는 목수에게 측정기를 만들라 전하고, 밧줄은 수선하라 시켰다. 밧줄을 끌어올리는데 핍이 도와준다. 맨섬 노인이 핍에게 도와주는 거냐고 묻자, 핍은 핍이 포경 보트에서 뛰어내려 실종되었다고 답한다. "어부 아저씨, 지금 끌어올리는 게 핍인지 어디 한번 봅시다. 음 세게 잡아 당기네요. 핍이 저 끝에 매달려 있나 봐요. 타히티 아저씨, 흔들어서 떼어버리세요. 겁쟁이를 배에 끌어 올리지 마세요." 핍의 말에 맨섬 노인은 버럭 화를 내었다. 그를 쫓아내려 하자, 에이해브가 나타나 그러지 못하게 했다. "얘야, 핍이 어디 있다고?" 그러자 핍은 "저기 배 뒤쪽, 저길 좀 보세요!" 에이해브는 핍에게 너는 누구냐고 묻는다. 핍은 선실의 급사라고 하면서 예의 괴상한 소리를 해대는 것이다. 에이해브는 핍을 데리고 자기 선실로 갔다. 핍이 에이해브의 손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쓰다듬었다. ", 불쌍한 핍이 이렇게 부드러운 것을 만져보았더라면 실종되지 않았을 텐데! 제가 보기에 이것은 연약한 사람들을 위한 난간줄 같아요. 퍼스 영감을 불러 이 검은 손과 하얀 손을 용접해 달라고 하세요." "보라! 신은 선하고 인간은 악하다고 믿는 자들이여! 전지한 신이 왜 고통받는 인간은 망각하고 있는가? 인간은 비록 바보 같고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마음만은 사랑과 감사처럼 달콤한 것들로 가득하다. 이리 오렴! 황제의 손을 잡는 것보다 너의 검은 손을 잡고 너를 이끄는 것이 훨씬 더 자랑스럽구나!" 맨섬의 노인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는 "하나는 힘이 너무 세서 미쳤고, 하나는 너무 약해서 미쳤네."라고 중얼거렸다.

126장 구명부표

피쿼드호는 이제 에이해브가 만든 수평 자석에 의지해 남동쪽으로 진로를 잡고 오로지 선장의 측정기와 측정줄에 따라 판단하며 적도를 향해 나아갔다. 적도 어장의 외곽 가까이 이르러, 플래스크가 이끄는 팀에서 당직을 서고 있던 밤, 작은 바위섬들을 지날 때, 몹시 거칠고 이상한 울음소리가 들려와 선원들이 깜짝 놀란다. 새벽에 갑판에 올라온 에이해브는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플래스크의 보고에 에이해브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바위섬들이 바다표범의 서식지였던 것이다. 설명을 들은 일부 선원들은 오히려 더 불안해했는데, 바다표범과 관련해 미신을 가지고 있어서였다. 선원 한 명이 잠이 덜 깬 것인지 망루에서 떨어졌다. 구명부표가 던져졌는데, 선원은 보이지 않았고 오랫동안 햇볕을 받은 통이 쪼그라들면서 구명부표도 가라앉고 말았다. 선원들은 그 사고를 불길한 징조로 여기며 비통해 하지는 않았다. 예고된 불행의 실현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구명부표 만드는 일을 감독하라는 지시가 스타벅에게 떨어졌다. 그러나 가벼운 통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퀴케그가 자신의 관을 쓰자고 제안했다. 목수가 관을 구명부표로 쓰는 게 찜찜했는지, 하나하나 스타벅에게 물어본다. 스타벅이 짜증을 내고 가버리자 목수는 투덜거렸다. 수선 따위는 자기 일이 아니라는 거였다. "꼬랑지에 관이라! 묘지에 쓰는 걸 달고 항해를 하겠다니!.... 30명이라 치고, 매듭지은 1미터 길이의 구명줄 30개를 각각 터번처럼 감아서 관 주위에 매달아놓자. 만약 배가 침몰한다면 30명의 선원들이 단 하나의 관에 필사적으로 달려들겠군....."

[운명이나 신적의지를 거부한, 혹은 스스로 신이 되어버 에이해브를 상징하는 듯.]

127장 갑판

갑판에 나온 에이해브는 목수가 관으로 구명부표를 만드는 모습을 발견한다. 에이해브는 그에게 늙다리 악당이라고 한다. 다리도 만들고 그 다리를 집어넣을 관도 만들고, 그 다음에는 그 관으로 구명부표를 만들어 다리를 꺼내주니 말이야, 라고. 그러자 목수는 그저 시키는 대로 할 뿐이라 답한다. 에이해브는 빨리 하고 치워버리라 했다. 목수는 에이해브의 몸 가운데 적도 같은 것이 지나고 있다고 중얼거렸다. 늘 뜨겁다고. 에이해브도 혼잣말을 했다. "어쩌다 보니 음울한 죽음의 상징이 절박한 위험에 빠진 생명에게 구조와 희망의 표징이 되었구나! .... 영적인 의미로 보자면 관은 결국 영원한 생명을 위한 기구가 아닌가!.... 나는 지구의 어두운 측면으로 너무 깊이 파고 들었어. 그래서 반대편, 밝은 측면이 내게는 어스름하게만 보일 뿐이야."

128장 피쿼드호, 레이철호를 만나다

다음 날 레이철이라는 이름의 대형 선박과 마주쳤다. 배는 생기가 전혀 없었다. 에이해브는 모비 딕을 보았는지부터 물었다. 그러자 "보았소. 바로 어제. 혹시 표류하는 포경 보트를 보았소?"라고 레이철호에서 되묻는다. 상대편 선장이 갑판에 뛰어 올라왔다. 에이해브는 그가 안면이 있는 낸터킷 사람임을 알아보고도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그 고래는 어디 있었소? 안 죽였지, 안 죽였어!" "그놈의 상태는 어떠했소?" 에이해브가 다가가며 소리쳤다. 그 전날 오후 늦게 낯선 배의 포경 보트 세 척이 한 무리의 고래 떼를 추격하면서 본선에서 6~8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간 모양이었다. 그때 모비 딕이 반대편에서 나타났다. 예비 보트인 네 번째 보트가 즉시 내려져 추격에 합류했다. 날쌘 이 보트는 힘껏 달려가 모비 딕의 등에 작살을 꽂는 데 성공한 듯했다. 흰 물보라가 반짝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작살 맞은 고래가 보트를 무한정 끌어당기며 멀리 도망쳤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모든 보트에게 돌아오라는 표시기가 돛대에 걸렸다. 어두워졌기 때문이었다. 세 척의 보트 선원들이 올라오자 레이철호는 돛이란 돛은 다 달고 실종된 배를 찾으러 나섰다. 찾을 수 없었다. 레이철호 선장은 피쿼드호가 수색 작업에 동참해 주기를 바랐다. 선장의 아들이 그 보트에 타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은 불과 열두 살의 소년이었다. 에이해브는 어떤 충격에도 끄떡하지 않는 모루처럼 그대로 서 있었다. 그는 스타벅에게 시켜 3분 이내에 손님들을 모두 하선시키도록 했다. 두 배의 항로가 갈렸다. 레이철호는 이리저리 사라진 보트를 찾기 위해 횡보했다. 그 배의 돛대와 활대에는 선원들이 빽빽이 매달려 있었다. 그 배는 바로 자식을 잃고 울고 있는 레이첼(성경에 나오는 인물 라헬을 가리킨다.)이었다.

129장 선실

에이해브가 갑판에 오르려 하자 핍이 따라나선다. 에이해브는 핍에게 선실에 있으라고 타이른다. "네게는 내 병을 치유해주는 뭔가가 있단다. 독은 독으로 제거하는 법이지. 이번 추격에서는 이 병이 내가 가장 바라는 건강이란다." 핍은 싫다며 그의 다리가 되겠다고 졸랐다. 스터브가 자신을 버렸지만 자신은 에이해브를 버리지 않겠다고 함께 가려 했다. 그러나 에이해브는 핍을 떼어놓고 축복을 빈다. 혼자 남은 핍이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에이해브의 발씨 소리를 들으며 그의 명령에 따라 선실을 지키리라 맹세한다.

130장 모자

에이해브가 큰 부상을 입었던 현장에 아주 가까이 왔다. 실제 모비 딕과 마주친 포경선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모비 딕은 자신이 해를 끼친 사냥꾼이든,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냥꾼이든 가리지 않고 물어뜯는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이제 그의 눈은 광기로 번쩍였다. 선원들은 노선장의 독재자 같은 시선을 의식하면서 기계처럼 무감각하게 갑판 위를 오갔다. 그러나 은밀한 시간, 파시교도(페달라)의 시선이 에이해브에게 두려움을 일으키거나, 적어도 다소 거친 방식으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깡마른 페달라는 밤이 되어도 잠을 자지 않았고 갑판 아래로 내려가는 법이 없었다. 이제 선원들은 밤이든 낮이든 갑판에 나오면 에이해브를 볼 수 있었다. 그는 눈을 가릴 정도로 모자를 깊이 눌러썼다. 선원들은 그래서 그의 눈을 볼 수가 없었다. 그는 더 이상 갑판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밖에서 식사했고 두 끼만 먹었다. 선장의 생활은 갑판에서 망보는 데 집중되었고, 파시교도의 신비한 감시도 선장 못지않게 집요했으나, 두 사람은 아주 가끔 사소한 일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서로 말을 걸지 않았다. 에이해브는 승강구 옆에, 파시교도는 주돛대 옆에 서서 서로를 계속 응시했다. 선장은 파시교도에게서 자신이 드리운 그림자를 보고, 파시교도는 선장에게서 자신이 내버린 실체를 보는 것 같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폭군이 두 사람을 몰고 있는 것만 같았다. 레이철호를 만나고 사나흘이 지나도록 고래의 물줄기는 보이지 않았다. 에이해브는 이교도 작살잡이들을 제외한 모든 선원들의 성실성을 의심하는 것 같았다. 그는 손수 밧줄을 엮어 새집 같은 바구니를 만들고, 주돛대 꼭대기에 도르래를 매달게 한 다음 바구니에 연결한 밧줄을 걸었다. 그리고 스타벅에게 밧줄을 당기게 했다. 이제 에이해브는 그 까마득한 높이에서 한 손으로 주돛대 꼭대기에 매달려 주변의 바다를 사방으로 살필 수 있게 되었다. 스타벅에게는 마지막에 밧줄을 밧줄걸이에 잡아매고, 계속 근처에 있으라 지시해 두었다. 복잡하게 이어진 밧줄들 사이에서 정확히 분간해야 했고, 단단하게 묶었다 해도 조금씩 풀리기 때문이었다. 이상한 점은 그 일을 스타벅에게 맡긴 것이었다. 스타벅은 조금이나마 단호하게 자신에게 맞섰던 사람이다. 선장은 다른 일이었다면 믿지 않았을 사람에게 자신의 목숨은 기꺼이 맡긴 것이다. 에이해브가 높은 곳에 올라간 지 10분도 안 되어, 붉은 부리를 가진 사나운 도둑갈매기가 나타나 머리 위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빙빙 돌며 비명 같은 소리를 질러댔다. 녀석은 이 근방에서 돛대 꼭대기에 오른 망꾼 가까이에 날아들어 성가시게 하는 새였다. 시칠리아 출신 선원이 소리쳤다. "선장님, 모자요, 모자!" 도둑갈매기는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르며 전리품을 낚아채 하늘 높이 날아가버렸다. 전설에 따르면 독수리가 타르퀴니우스의 머리 위를 세 차례 맴돌더니 그의 모자를 낚아채 갔다가 다시 날아와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그의 아내는 이 일이 그가 왕이 될 징조라 여겼다. 그러나 에이해브의 모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뱃머리 쪽 하늘로 높이 날아가더니 사라졌는데 그 지점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작은 점 하나가 까마득한 아래 바다로 떨어졌다.

모비 딕 - 견인줄을 만들어 직접 망루에 오른 에이해브. 갑자기 나타난 도둑갈매기가 그의 모자를 집어서 날아가버린다.

131장 피쿼드호, 딜라이트호를 만나다

이름과 달리 몰골이 비참기 짝이 없는 또 다른 배가 나타났다. 기쁨을 뜻하는 딜라이트호였다.(이 배도 레이철호와 마찬가지로 성경에서 유래한 이름의 배.) 낯선 배가 가까이 다가오자 가로 들보 위에 부서진 포경 보트가 보였다. 모비 딕에게 당한 것이었다. 그 배의 선장은 그런 일을 해낼 작살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답했다. 에이해브는 자신의 작살을 보여주며 모비 딕의 피로 세 번째 담금질을 할 것이라 외쳤다. 신의 축복을 빌며, 낯선 배의 선장은 선원 다섯을 잃었다고 했다. 그나마 시신은 한 구 뿐이었다. 그 시신을 바다로 보내려 하자 에이해브는 피쿼드호를 그 자리에서 벗어나게 하려 했다. 그러나 바다에 풍덩 하며 떨어지는 소리를 피해가지는 못했다. 딜라이트호에서 피쿼드호의 뒤에 달린 구명부표를 보게 된다. "오 낯선 배여, 그대는 슬픈 장례식에서 황급히 달아나려고 하지만 소용없다! 꽁무니를 빼다가 우리에게 그대의 관을 보여줄 뿐이지."

132장 교향곡

맑고 푸른 날. 새하얀 날개를 가진 작은 새들이 유유히 날고 있었다. 에이해브가 그런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신의 비통함을 몰라준다 원망한다. 수심을 보려고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매혹적인 공기에 감도는 사랑스러운 향기가 잠시나마 음울한 영혼의 상념을 쫓아버리는 듯했다. 오랫동안 잔인하고 가까이하기 어렵던 계모 같은 세상이 이제야 비로소 선장의 뻣뻣한 목을 다정하게 끌어안고, 아무리 고집 세고 잘못 많은 양아들일지라도 구원하고 축복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 푹 눌러쓴 모자 밑으로 에이해브가 흘린 눈물 한 방울이 바다에 떨어졌다. 스타벅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 스타벅!... 이런 날씨에 난생 처음 고래에게 작살을 꽂았지.... 열여덟 살이었어..... 40년 전이군..... 40년 동안 에이해브는 바다의 공포에 맞서 싸움을 벌였어! 스타벅. 지난 40년 동안 육지에서 보낸 시간은 3년이 안 되네..... 고독한 지휘관은 기니 해안의 노예와 다를 바 없네! 40년 동안 소금에 절인 마른 음식만 먹었어.... 쉰 살이 지나서 얻은 어린 아내는 바다 저편에 있네. 신혼 베개에는 머리를 한 번밖에 대지 못했어. 결혼식 다음 날 혼곶으로 항해를 떠났지. 아내보다는 '남편이 살아 있는 과부'라고 하는 편이 맞을 거야.... 이 늙은 에이해브는 광기에 휩싸여 천 번도 넘게 보트를 내리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사냥감을 쫓았네..... 사람이라기보다 악마에 가까웠지..... 이 늙은 에이해브는 왜 이렇게 싸워야 할까?.... 이보게 스타벅. 이처럼 피곤한 짐을 지고 있는 내게서 다리 한 짝을 떼어 가다니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잿빛 머리라니,.... 이 얼마나 통렬한 조롱인가! 내가 충분히 즐거움을 누렸단 말인가?.... 가까이! 스타벅, 가까이 와보게. 인간의 눈을 들여다보게 해주게.....초목이 우거진 땅! 따뜻하고 환한 난롯가! 이건 마법의 거울이로군. 자네 눈에서 내 아내와 아이가 보이네..... 내가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갈 때 자네는 여기 갑판에 머무르게. 내가 모비 딕을 추격할 때 자네는 본선을 지키라고. 자네에게는 위험한 책임을 맡기지 않겠어.... 자네 눈 속에 저 먼 곳의 고향집이 보이는데 그럴 수는 없지!" ", 선장님. 역시 위대하고 관대한 분이여! 왜 저 가증스러운 고래를 뒤쫓아야 합니까? 그리운 처자식이 있습니다. 죽음의 바다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갑시다! 낸터킷으로 갑시다!" 동의하던 에이해브가 시선을 돌렸다. "이것은 무엇인가? 형언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고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이 불가사의한 것은 무엇인가? 숨어서 사람을 기만하는 군주, 잔인무도한 제왕이 내게 명령하고 있다.... 이리도 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밀고 나가게 하는구나.... 내가 아니라 신이 심장을 뛰게 하고 머리로 생각하게 하고 나를 살게 하는 것이라면?" 스타벅은 절망에 빠져 자리를 떴다. 에이해브는 갑판을 가로질러 가 반대편 바다를 바라보다가 수면 위에 비친 두 개의 움직이지 않는 눈을 보고 깜짝 놀란다. 페달라의 눈이었다.

133장 추격-첫째 날

그날 밤, 에이해브는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고 가까운 곳에 고래가 있다고 확신했다. 곧 당직 선원들 모두가 살아 있는 향유고래가 멀리서 내뿜는 독특한 냄새를 맡는다. 항로를 약간 변경했다. 새벽녘 선장은 모비 딕의 물줄기를 발견한다. 금화는 자신의 것이라 외치면서 추격을 위한 명령을 분주하게 내리는 에이해브였다. 보트를 내리라고 서둘러 명령했다. 곧 스타벅의 보트를 제외하고 모든 보트가 내려졌다. 에이해브가 공격의 선봉에 나서고 페달라의 창백한 눈에 죽음의 빛이 어른거렸다. 아직 수상한 낌새를 차리지 못한 것 같은 사냥감에 바싹 다가가자 눈부시게 반짝이는 녀석의 혹 전체가 시야에 들어왔다. 모비 딕의 등에는 깃대가 솟아 있는 것처럼 얼마 전 박힌 듯한 긴 창이 자루가 부러진 채 꽂혀 있었다. 우아한 기운이 모비 딕을 감싸고 있는 느낌이었다. 모비 딕이 잠수에 들어갔다. "한 시간." 에이해브가 보트의 고물에 서서 말했다. 문득 바다 깊은 곳에서 흰 점 하나가 물 위로 솟구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점은 아주 빠른 속도로 올라오며 점점 커지더니 방향을 바꾸었다. 흰 점이 실은 길고 삐뚤삐뚤한 두 줄의 하얀 이빨이었음이 드러났다. 반짝이는 아가리가 보트 바로 밑에서 쩍 벌어졌다. 에이해브는 벗어나기 위해 보트의 방향을 바꾸었다. 에이해브는 뱃머리 쪽으로 가 퍼스가 만들어준 작살을 움켜쥐었다. 고래의 머리를 정면으로 마주보게 된 순간, 모비 딕은 교활하게도 몸을 옆으로 비스듬히 돌리더니 머리로 보트 밑을 들이박았다. 모비 딕은 비스듬히 드러누워 보트의 뱃머리를 아가리에 물었다. 푸른 색이 도는 진주처럼 하얀 아가리 내부가 에이해브의 머리에서 한 뼘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어른거렸다. 페달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팔짱을 낀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노잡이들은 고물 끝으로 도망치려다가 나뒹굴었다. 에이해브는 모비 딕의 긴 이빨을 맨손으로 붙잡고 비틀며 보트를 빼내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고래 턱이 미끄러지듯이 빠져나가는가 싶더니 위턱과 아래턱이 뒤로 물러나면서 거대한 가위처럼 보트를 깨물었다. 그러자 약한 뱃전이 안으로 휘고 산산이 부서지면서 배가 두 동강이 나버렸다. 거대한 모비 딕의 두 턱은 동강 난 보트 한가운데서 다시 굳게 닫혔다. 한 번 솟구쳤던 모비 딕은 이내 수평 자세를 잡고 난파한 배의 선원들 주위를 빠르게 빙빙 돌았다. 복수의 일념으로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기 위해 준비운동을 하는 것만 같았다. 한편 물에 빠진 에이해브는 모비 딕이 일으키는 물거품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는 떠 있을 수는 있었으나 한쪽 다리가 없는지라 헤엄을 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페달라는 여전히 동강난 보트의 고물에 매달린 채 무심하고 태연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다른 절반의 보트 조각에 매달린 선원들도 자기 몸 하나 가누기도 벅찬 상태였다. 모비 딕이 그를 향해 회전반경을 좁혀왔다. 본선이 가까이 오자, 에이해브는 피쿼드호를 향해 소리쳤다. 모비 딕을 향해 돌진하라고. 고래가 일으킨 소용돌이를 깨뜨리자, 고래와 희생자들 사이를 떼어놓을 수 있었다. 모비 딕이 다른 곳으로 헤엄쳐 가자 보트들이 물에 빠진 선원들을 구조하기 시작했다. 스터브의 보트에 구조된 에이해브는 기진하여 널브러졌다. 절망의 메아리 같은 울부짖음이 그의 몸속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왔다. 신비로울 정도로 빠르게 회복한 에이해브는 작살부터 찾았다. 스터브가 작살을 보여주었다. 실종된 선원도 없었다. 에이해브는 다시 고래를 추격하라 명령했다. 그러나 모비 딕은 유유히 달아나버린다. 결국 본선으로 돌아왔다. 이제 본선으로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의 보트는 뱃머리며 고물이며 죄다 부서진 채 뒤집혀 뒷갑판에 놓여 있었다. 에이해브가 그 보트 앞에 섰다. 그의 얼굴에 암울함이 스쳐 지나갔다. 스터브가 짐짓 유쾌함을 가장해 이것이 모비 딕의 입을 아프게 찔렀을 거라고 말했지만, 에이해브는 난파선 앞에서 그래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스타벅이 다가와 불길한 징조라고 하자, 신들이 인간에 말하고 싶으면 떳떳하게 직접 말했겠지, 라며 스타벅과 스터브를 동전의 양면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니 자네 둘은 인류 전체를 대표하는 셈이야. 하지만 에이해브는 지구에 살고 있는 수백만 명 중에 혼자다. 신도 인간도 그의 이웃이 아니야!..... 돛대 꼭대기, 녀석이 물을 뿜을 때마다 보고해." 위쪽에서 어두워서 물줄기를 볼 수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야간추격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한 에이해브는 금화 앞에서 다시 선언했다. "흰 고래가 죽을 때까지 이것을 여기에 그대로 두겠다. 그놈이 죽는 날, 그것을 제일 먼저 발견하고 소리친 선원에게 이 금화를 주겠다. 만약 소리치는 사람이 또 내가 된다면 이 금화의 열 배가 되는 액수를 너희 모두에게 나누어주겠다!" 에이해브는 승강구 안에 반만 내려가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새벽까지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모비 딕 - 피쿼드호와 포경 보트들.

134장 추격-둘째 날

남태평양 포경업에서 밤낮없이 특정한 고래 한 마리만 추격하는 것은 결코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낸터킷의 선장들 가운데 몇몇은 기술과 경험에서 나오는 직감, 불굴의 자신감 등으로 천재성을 발휘하곤 한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본 모습만 가지고도 고래가 어디로 얼마 만큼 움직일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다. 돛대에서 고래 물줄기를 발견한 외침이 들려왔다. 스터브가 흥분해서 주문 같은 말들을 외쳐댔다. 그만큼 선원들의 피가 끓어올랐던 것이다. 이들은 이제 모든 개성이 한 곳에 어우러진 한 덩어리였다. 그들 모두는 무한히 푸른 바다를 쳐다보며 자신들을 파괴할지도 모르는 치명적인 목표물을 열심히 찾고 있었다. 좀 전에 물줄기를 보았다고 착각했던 지점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본선에서 2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서 모비 딕이 불쑥 시야에 들어왔다. 모비 딕은 경이적인 도약을 통해 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 모비 딕! 마지막으로 태양을 향해 솟구쳐라!" 에이해브가 소리쳤다. 스타벅에게 본선을 지키며 보트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되 가까운 곳에 있으라 지시하고 보트를 내렸다. 모비 딕은 세 보트에 정면으로 돌진해 꼬리를 휘저으며 무시무시한 공격을 시작했다. 보트들은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공방을 주고받았다. 그러는 내내 에이해브의 섬뜩한 절규가 다른 모든 선원의 고함소리를 누르며 공중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모비 딕이 종횡무진하며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세 보트의 작살에 달린 밧줄이 복잡하게 뒤엉키고 말았다. 세 척의 보트가 고래의 몸 쪽으로 끌려가는 꼴이 되었다. 모비 딕이 숨을 고르는 사이 에이해브는 밧줄이 엉킨 것을 풀어보려고 했다. 그러나 모비 딕의 몸에서 뽑힌 작살과 창이 얽히고설킨 밧줄에 감기고 꼬여 빙빙 돌면서 더 살벌한 광경을 초래하고 말았다. 에이해브는 보트 칼을 움켜쥐고 근처 밧줄걸이 근처의 밧줄을 두 번 잘라 날아오는 작살과 창뭉치를 바다에 빠뜨렸다. 그 순간 모비 딕이 돌진했다. 그 바람에 밧줄에 더 휘감긴 스터브와 플래스크의 보트가 꼬리 쪽으로 끌려가면서 맞부딪혔고, 고래는 부글거리는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졌다. 유일하게 멀쩡한 에이해브의 보트가 이제 물에 빠진 선원들을 구조해야 하는 순간, 모비 딕이 화살처럼 바다 밑에서 수직으로 밀고 올라와 그의 보트를 공중으로 들어 올려버렸다. 모비 딕은 뒤엉킨 작살 밧줄을 매단 채 여행자처럼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바람이 불어가는 쪽으로 유유히 헤엄쳐 사라졌다. 본선이 뒷일을 수습했다. 치명상이나 중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노선장이 구조되어 갑판에 올랐을 때, 모든 선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가 스타벅의 어깨에 매달려 있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에이해브의 고래뼈 다리는 부러지고 없었다. "뼈가 부러져도 늙은 에이해브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아. 나는 살아 있는 뼈가 잃어버린 죽은 뼈보다 더 나의 본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네. 흰 고래든 인간이든 악마든 이 늙은 에이해브의 고유하고 범접할 수 없는 본질은 눈썹 하나 건드리지 못한다고 생각해. 어떤 측심줄의 납덩이가 저 바다 밑바닥에 닿을 수 있으며, 어떤 돛대가 저 하늘의 지붕을 건드릴 수 있겠나?" 이렇게 말한 에이해브는 바로 돛대를 향해 고래의 행방을 물었다. 고래는 바람이 불어가는 쪽으로 곧장 가고 있었다. 다시 추격이 시작되었다. 에이해브는 창을 지팡이 삼아 짚었다. 보트에 탈 선원들을 집합시키고 보니 파시교도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배를 뒤져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한 선원이 "그가 선장님의 엉킨 밧줄에 걸려 물속에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본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내 밧줄이라고? 작살도 사라졌나?..... 이 손으로 그 작살을 던지지 않았나! 그 작살은 고래의 몸 속에 박혀 있어.... 나는 끝없는 지구를 열 바퀴 도는 한이 있더라도, 아니 지구를 뚫고 들어가서라도 그놈을 반드시 죽이겠다!" 이제 스타벅이 강하게 그를 만류했다. ".... 그놈을 더 이상 추격하는 것은 불경이요 신성 모독입니다!" "스타벅, 나는 최근에 이상하게도 자네에게 마음이 끌리는군. 우리가 서로의 눈에서, 그걸 본 이후로 말이야.... 이 모든 드라마는 고정불변의 것으로 정해져 있어. 이 바다가 생겨나기 10억 년 전에 이미 자네와 내가 예행연습을 마친 거라고..... 모비 딕은 이틀 동안 떠올랐고 내일이 세 번째가 될 것이다. 그것이 모비 딕이 뿜는 마지막 물줄기다. 선원들, 용감하게 나서지 않겠는가?" "징조라는 것! 어제도 나는 저기서 박살난 내 보트를 두고 스타벅에게 똑같은 말을 했지..... 파시교도 그가 정녕 가버렸단 말인가? 그 친구가 먼저 가고 내가 죽기 전에 다시 한번 내 앞에 나타난다고 했는데.... 무슨 소리일까? .... 어려운 수수께끼야.... 하지만 반드시 풀고 말겠어!" 바다에 어둠이 내려앉을 때도 모비 딕은 여전히 바람이 불어가는 쪽으로 헤엄쳐가는 것이 보였다. 모든 것이 전날 밤과 같이 지나갔다. 다만 망치 소리와 숫돌 가는 소리는 새벽녘까지 들려왔다. 다음 날을 대비하여 꼼꼼하게 준비하는 것이었다. 목수는 에이해브의 부서진 보트에서 용골을 빼내 그에게 또 다른 의족을 만들어주었다. 에이해브는 석상처럼 서 있었다.

모비 딕 - 모비 딕의 공격으로 박살이 나는 포경 보트. 선원들이 튕겨져 나가고 있다.

135장 추격-셋째 날

맑고 화창한 셋째 날 아침이 밝았다. 아직 모비 딕은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느끼고 느끼고 느낄 뿐이야.... 신만이 생각할 수 있는 권리와 특권이 있어. 생각이란 냉정하고 침착해야 하는데, 우리의 가련한 심작은 너무 두근거리고 우리의 가련한 뇌는 너무 펄떡거려서 그게 안 된단 말이야.... 하지만 가끔은 내 뇌가 지나치게 냉정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도 아직 머리카락이 자라고 있어.... 어디서 열기를 받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이 나를 후려치는구나. 가증한 바람이로다. 여기에 이르기 전에 감옥의 복도와 감방, 병동을 지나오면서 그곳의 공기를 가져왔을 텐데 지금 이곳에 양털처럼 순결한 척 불어오다니. 꺼져라, 오염된 바람아." "인간을 더없이 화나게 하고 모욕하는 모든 것에는 몸뚱이가 없다.... 하지만 바람에는 매우 장엄하고 우아한 무언가가 있다. 적어도 이 따뜻한 무역풍은 한결같이 힘차고 활발하게..... 목표를 향해 분다." 여전히 모비 딕이 보이지 않았다. 에이해브는 피쿼드호가 모비 딕을 앞질렀다고 판단했다. "그래, 이제 녀석이 나를 추격하고 있어." 에이해브는 뱃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제 피쿼드호는 역풍을 받으며 나아가야 했다. 스타벅은 절망했지만, 선장의 지시를 묵묵히 따랐다. 모비 딕을 발견한 에이해브. 돛대에서 내려오며 에이해브는 새삼 바다와 돛대를 다시금 본다. 그것에 작별의 인사를 하다가 이내 정정한다. "오늘밤 고래의 머리와 꼬리가 저기 뱃전에 묶여서 누워 있을 때 다시 이야기하지꾸나." 그리고 바다로 내리고 있는 보트의 고물에 서서 잠시 멈추게 하고는 스타벅을 불렀다. "스타벅, 내 영혼의 배가 세 번째 항해에 나서네." ", 선장님. 선장님이 고집하셨지요." "스타벅, 어떤 배들은 항구를 떠나 영영 실종되기도 하지." ", 선장님. 아주 안타까운 일입니다." 에이해브는 스타벅에게 악수를 청했다. 스타벅이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가지말라고 다시 한번 간청했다. 에이해브는 단호히 그 손을 뿌리치고 보트를 내리게 했다. 상어떼가 나타나 노가 물에 잠길 때마다 노를 물어뜯으며 따라왔다. 상어떼는 유독 에이해브의 보트만 따라왔다. "강철로 만든 심장이야!..... 고래 한 마리를 사흘간 연속해서 집중 추격할 때, 첫째 날은 아침이고, 둘째 날은 정오이며, 셋째 날은 모든 사태가 종결되는 저녁이지. , 신이시여! 극도로 떨리는 가운데서도 또한 기대하게 만드는 이것은 무엇입니까?... 메리, 여보! 당신은 내 뒤에서 희미한 빛 속으로 사라지는구려..... 두 다리가 하루 종일 걸은 사람처럼 후들거린다. 스타벅, 힘내라...." 스타벅이 멀어지는 에이해브의 멀어지는 보트를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모비 딕이 잠수했다는 본선의 수신호를 받은 보트들은 그 근처를 배회했다. 갑자기 그들 주위로 파도가 부풀어올랐다. 밧줄과 작살, 창 등을 매단 거대한 물체가 바다 밑에서 불쑥 비스듬히 올라왔다. 보트들은 일제히 돌격에 나섰다. 하지만 전날에 몸에 박혀 부식하고 있는 작살 때문에 있는 대로 화가 난 모비 딕은 머리를 쳐들고 달려와 꼬리로 보트들 사이를 도리깨질 하듯 휘저었다. 모비 딕은 두 항해사의 보트에 있던 작살과 창을 바다로 쏟아지게 했고, 두 보트의 뱃머리를 들이받았다. 하지만 에이해브의 보트만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고래가 거대한 옆구리를 온전히 드러냈을 때 날카로운 비명이 터졌다. 모비 딕의 등에 파시교도가 밧줄에 칭칭 감긴 채 죽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몸이 반은 뜯겨 나가 있었고, 동공이 확대된 두 눈은 늙은 에이해브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에이해브는 던지려던 작살을 떨어뜨렸다. "속았구나, 속았어!..... 그래, 파시교도.... 이것이 자네가 말한 관이로군. 그렇다면 두 번째 관은 어디에 있나?" 그리고 에이해브는 두 항해사에게 본선 복귀를 명령했다. "제시간에 수리할 수 있다면 빨리 돌아오라. 그럴 수 없다면 죽는 것은 에이해브 하나로 충분하다. 노를 내려라. 내가 서 있는 보트에서 뛰어내리는 자가 있다면 그놈을 제일 먼저 이 작살로 찌르겠다." 모비 딕은 이제 본선 옆을 스치다시피 지나쳐 갔다. 스타벅은 여전히 모비 딕을 쫓는 것은 에이해브 당신이라며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탄식했다. 그러나 에이해브는 부지런히 수선하는 피쿼드호 위를 보다가 주돛대 꼭대기의 붉은 깃발이 사라진 것을 보고는 방금 그곳에 올라간 타슈테고에게 새 깃발을 달라고 지시했다. 모비 딕은 이제 속도를 늦추기 시작한 듯했다. 보트는 모비 딕과 거리를 좁혔다. 에이해브의 보트에는 여전히 상어떼가 뒤따랐다. 마침내 보트는 한쪽으로 기운 채 모비 딕의 옆구리와 나란히 달리게 되었다. 보트는 드디어 모비 딕의 물줄기에서 피어나는 자욱한 안개 속으로 들어섰다. 에이해브가 작살을 던졌다. 작살이 눈구멍을 파고들었다. 모비 딕이 발작적으로 날뛰며 보트의 뱃머리를 강타했다. 배가 뒤집어질 듯이 튕겼다. 에이해브는 뱃전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았지만 작살 던지는 것을 보지 못한 세 명의 노잡이는 튕겨 나갔다. 두 명은 금세 다시 보트에 올랐지만 한 명은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돌진하는 모비 딕. 작살과 연결된 밧줄이 끊어졌다. 갑자기 모비 딕은 본선을 향해 돌진한다. 보트가 달려가려 했지만 뱃머리의 두 널빤지가 부서지고 말았다. 선원들이 물을 퍼냈다. 한편 돛대 꼭대기에서 망치질을 하던 타슈테고는 그 모습을 보고 얼어붙어버렸다. 아래쪽 기움돛대 위에 서 있던 스타벅과 스터브도 거의 동시에 피쿼드호를 향해 돌진해 오는 괴물을 보았다. "이것이 내 간절한 기도의 결과란 말인가? 내가 평생 신앙을 지켜온 결과란 말인가? 오 에이해브, 에이해브, 좀 보시오. 당신이 한 짓을 보십시오.... 신이시여, 함께하소서!" 스타벅이 소리쳤고 스터브는 웃으며 달려오는 모비 딕을 자신도 웃으며 맞이하겠다고 소리친다. 선원들은 마법에 걸린 듯 모비 딕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모비 딕에게서는 한없는 적개심이 온몸에서 풍겨났다. 견고한 흰 이마가 피쿼드호의 뱃머리 오른편을 들이받자 선원들도 선체도 모두 비틀거렸다. 배에 뚫린 구멍으로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소리가 요란했다. "배구나! 배가 관이었어, 두 번째 관!" 에이해브가 보트에서 외쳤다. "두 번째 관의 목재는 반드시 미국에서 난 것이라고 했지!" 모비 딕이 에이해브의 보트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숨을 고르는 듯했다. "태양을 등지고 돌아서련다.... 신만이 괴롭힐 수 있는 선체여....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하는 배여! 너는 정녕 나를 두고 사라지겠다는 것인가? 가장 초라한 난파선의 선장마저 누리는 마지막 소중한 자부심도 내게는 허락되지 않는단 말인가?... 지금 이 순간 나는 인생 최고의 슬픔 속에 최고의 위대함이 있음을 느낀다..... 파도여, 나를 죽음의 흰 봉우리 위로 더 높이 밀어 올려다오! .... 나는 네놈에게 묶여서 갈가리 찢겨 나가더라도 여전히 너를 추격할 것이다. 이 빌어먹을 고래야! 그러니 나는 창을 던지지 않는다." 공격을 받은 모비 딕이 앞으로 튀어 올랐다. 작살 밧줄은 섬광 같은 속도로 홈을 따라 풀려 나가다가 그만 엉키고 말았다. 에이해브는 허리를 숙여 엉킨 밧줄을 풀었지만, 고리 진 밧줄이 날아가면서 그의 목을 휘감아 버렸다. 밧줄 끝에 달린 매듭 고리가 밧줄통에서 빠져나가면서 수면을 치더니 물속 깊은 곳으로 사라졌다. 보트의 선원들은 한동아 멍하니 서 있다가 물안개 사이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채 유령처럼 바닷속으로 사라져가는 피쿼드호를 보았다. 가장 높은 돛대 꼭대기 부분만 물 밖에 나와 있었다. 이교도 작살잡이들은 뭔가 홀린 것인지 여전히 망루를 지키고 있었다. 이제 모든 것이 바닷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마지막 파도가 주돛대 꼭대기에 매달려 있던 인디언의 머리를 덮치면서 이제 보이는 것은 똑바로 선 활대의 일부와 펄럭이는 몇 미터짜리 긴 깃발뿐이었다. 깃발은 넘실거리는 죽음의 파도에 닿을 듯 말 듯 장단을 맞추며 조용히 펄럭였다. 그 순간 붉은 팔과 뒤로 치켜든 망치가 물 위로 불쑥 솟아오르더니 가라앉는 활대에 깃발을 더 단단히 박으려는 동작을 취했다. 물수리 한 마리가 깃발을 쪼며 타슈테고를 방해하다가 퍼덕이던 넓은 날개가 우연히 망치와 나무 사이에 끼었다. 그 순간 물밑에 있는 야만인은 공기의 떨림을 느꼈고, 죽어가면서도 망치를 내리친 상태로 움직이지 않았다. 하늘의 새는 대천사 같은 비명을 지르며 오만한 부리를 위로 쳐들었지만, 꼼짝할 수 없게 된 몸뚱이는 에이해브의 깃발에 감겨 피쿼드호와 함께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배는 사탄처럼 천상의 생명 한 조각을 잡아당겨 투구처럼 쓰지 않고는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곧 넘실거리는 파도만 남았다.

에필로그

그것은 우연이었다. 파시교도가 실종된 후, 에이해브의 보트에서 공석이 된 뱃머리 노잡이의 자리가 이슈메일에게 돌아온 것도 우연이고, 셋째 날에 흔들리는 보트에서 내동댕이쳐진 세 명의 선원 중에 고물 쪽 밖으로 멀리 떨어진 자가 그인 것도 우연이었다. 그래서 이슈메일은 파국의 가장자리에서 그 광경을 훤히 지켜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슈메일도 피쿼드호가 침몰하면서 일으킨 소용돌이에 천천히 끌려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중심축에 이르렀을 때, 검은 물거품이 위로 솟아올랐다. 곧 관으로 만든 구명부표가 배에서 절묘하게 떨어져 나와 물위로 솟구치더니 다시 떨어져 이슈메일 옆으로 떠 왔다. 이슈메일은 관에 올라탄 채 하루 낮과 하루 밤 동안 표류했다. 둘째 날, 배 한 척이 점점 가까이 다가와 마침내 이슈메일을 바다에서 건져 올렸다. 그 배는 항로에서 벗어나 항해하고 있던 레이철호였다. 실종된 아들을 찾으러 다니다가 또다른 고아인 그를 발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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