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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서적

진화-칼 짐머

트레바리 2019. 10. 22.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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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2001년 판 '진화'

꽤 오래 묵혀두고 십수 년에 걸쳐 네 번을 정독한, 그리고 가끔은 확인을 위해 몇몇 페이지를 발췌해 보았던, 그러니까 나로서는 매우 드물게 자주 집어들었던 두터운 책이다. 아버지께서 어느 날 선물해주신 책인데, 이 책을 읽은 이후, 내 사고에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인문학계열의 학위를 받은 나는 사실 진화론 같은 자연과학 분야에 상당히 취약한 사람이다. 하지만 무신론자임을 선포한 지는 꽤 오래된 사람이기도 했다. 스스로 무신론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진화론자라 말해왔지만 정작 진화론의 요체는 제대로 몰랐다. 나의 진화론은 순전히 인본주의적 입장에서 유추된 어중간한 철학이었던 따름이다.

 

어쨌든 아버지의 뜬금없는 책 선물은 가끔씩 찾아오는 행운이었는데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땐 당황스러웠다. 엄청난 두께에, 개인적으로 취약한 분야였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책도 하드케이스라 꽤 무거울 뿐만 아니라 글자도 작았으며 종이 재질 또한 컬러판이라 광택이 나서 눈도 꽤 피로하게 만들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거의 한달 가까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개념이 낯설고 명사들은 대부분 낯선 나라의 언어들이다. 처음 읽을 때는 라틴아메리카의 어느 나라에 배낭여행을 떠났다가 복잡하고 낯선 대도시에서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굳이 라틴아메리카라고 한 이유는 읽어보면 아실 것이다. 원시의 생명을, 역동하는 생명의 나무를 보면 그냥 남미대륙이 떠오른다. 누군가는 아프리카를 떠올릴 지도 모르겠다만.

 

그렇게 읽다가 몇 페이지를 돌아가고 주석을 뒤지고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가끔은 백과사전을 뒤져보며 그렇게 읽었다. 그렇게 처음 읽고 나니 술자리에 할 말이 많아졌다. 생명이 건너온 유구한 시간의 크기와 깊이는 감히 어떤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웅장함이 있었기 때문에 한 순간 경도되었던 것 같다. 술만 마시면 진화론을 이야기하고 빅토리아호수의 이야기나 레드퀸 개념 같은 것을 인용해 써먹었다.

 

그렇게 설명했던 것은 이제와 생각해보면 자기 이해의 심화과정이었다고 보인다. 아는 것은 설명하는 데서 완성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다행이랄까? 술자리와 술자리 이야기를 즐기는 편이라, 이런 설명의 기회(?)를 많이 가진 편이다. 듣는 이들의 마음은 어땠는지야 다음에 따로 알아볼 일이다만은……. 

몇 쇄인지 모르겠잠 요즘 '진화'를 검색하면 이 표지로 된 책이 나온다. 내용은 같다.

지구는 45억 년의 나이를 가진 행성이다. 항성,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 몇 가지 우연이 겹쳐 지구에는 태양계의 다른 행성들과 달리 유일하게 생명이 나타나고 ‘자연선택’이라는 냉혹한 과정을 거쳐 변화, 즉 진화를 거듭해왔다. 물론 지금 이 순간도 생명은 진화하고 있다. 

간단한 예로 바이러스를 보면 알 수 있다. 바이러스의 경우 세대가 짧기 때문에 돌연변이가 계속 생긴다. 기존의 바이러스들은 항생제 하나로 제압이 가능했지만 이젠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슈퍼바이러스가 존재한다. 변이, 즉 진화 때문이다.

 

탄소연대 측정,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한 연대 측정, 그리고 유전학적 기술의 발전은 어쩌면 하나의 가설에 불과했던- 그렇지 않아도 다윈은 스스로 종의 기원을 발표하면서 ‘살인을 고백하는 기분으로’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당시 기독교계의 엄청난 맹공에 시달렸고, 지금도 창조론자들은 진화론을 거부하고 교육과정에서 빼기 위해 로비하고 있다.- 진화론을 확실한 과학적 이론으로 만들어주었다. 기독교적 세계관이면 지구의 나이는 길어야 6천 년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서는 책의 본문을 확인하시라.

 

책은 수많은 도표와 그림, 화석사진, 풍경사진, 생물사진들을 전체 컬러로 보여준다. 그래서 나 같은 자연과학의 문외한도 진화론이란 거대한 서사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한다. 단언컨대 두 번, 세 번 읽을 수록 새롭게 보이는 것이 있고 이해의 폭도 더 넓어진다. 

 

읽을 수록 너무나 거대한 생명의 역사에 독자는 압도된다. 책을 읽고 있는 시간도 하찮게 느껴진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을 초월하게 된다. 수십만 분의 일초도 생명의 역사에서는 허투루 쓰이는 법이 없음으로. 멸종 또한 전체 생명의 입장에서 보자면 어떤 종에게는 기회다. 해서 진화의 한 과정일 뿐이다.

 

생명 진화의 거대한 서사를 알기 쉽게 쓴 입문서를 원한다? 그러면 이 책을 찾으시라. 어렵다고 해놓고 이 무슨 소린가, 싶을 테다. 나 같은 문외한도 이해한 책이다. 사실 쉽게 쓰려다보니 방대해진 측면도 있다. 그림도 많고 주석도 많다. 꼼꼼히 살펴보면 이해 못할 것은 별로 없다. 어차피 이해는 투자시간과 비례한다. 이 책은 시간을 낸 만큼 건져낼 내용이 충분히 담겨있다.

 

진화를 깊이 있게 알고 싶다? 또한 이 책을 권한다. 유전자의 작동원리와 DNA, 혹스유전자에 이르기까지 심도 있고 알기 쉽게 알려준다. 암석 나이, 지층의 연대를 측정하는 다양한 방법도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멸종과 공진화의 과정도 알려준다. 심지어는 진화론이 진화한 과정까지도 설명해 준다. 앞서 말했듯 시간을 넣는 만큼 내용을 내어주는 책이다.

 

‘진화’라는 이 책은 그 이름에 걸맞게 진화론의 교과서라 이를만 하다. 그래서 여러분도 현대 생명과학이론의 정점이자, 끝임없이 진화하는 진화론을 만나고자 한다면, 이 책을 읽을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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