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세몬은 가난한 구두장이였습니다. 양털 가죽을 사서 새로운 모피코트를 만들기 위해 길을 나섰다가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해 양털을 구하지 못합니다. 돌아오는 길, 교회 앞에서 벌거벗은 한 청년을 만납니다. 그는 무섬증이 일어 그냥 빨리 지나치다가 양심이 찔려 그를 데리고 집으로 옵니다.
그의 아내, 마트료나는 그런 남편에게 잔소리를 합니다. 하루 먹을 것도 부족한 판에 군입까지 달고 왔으니 이해가 가는 일이었죠. 그러나 남편의 하나님 이야기에 그만 한풀 꺾여 청년의 이야기를 듣고 동정하게 됩니다. 그런 그녀를 보며 그가 처음 웃습니다. 사정을 묻는 부부에게 청년은 그저 하나님의 벌을 받았을 뿐이라며 미하일이라는 이름만 밝힐 뿐, 자신이 왜 그런 처지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세몬은 미하일에게 구두장이 일을 가르칩니다. 미하일은 생각보다 빠르게 일을 배웠고 일을 잘해 부부에게 큰 수익을 올려주게 됩니다. 1년이 되는 겨울, 한 거구의 신사가 비싼 가죽을 가지고 와서 1년이 지나도 멀쩡한 구두를 지을 수 있냐고 묻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10루블을 수공비로 주되 그 안에 문제가 생기면 감옥에 처넣겠다고 협박합니다. 세몬은 망설이지만 미하일은 받으라고 합니다. 미하일은 치수를 재는 신사는 바라보지도 않은 채, 구석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을 뿐이었습니다.
신사가 가고 미하일은 구두가 아닌 슬리퍼를 만듭니다. 세몬은 크게 놀랍니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어찌 된 것이냐고 꾸중하는데 바깥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신사의 젊은 하인이 돌아와 방금 그 신사가 죽었다고, 구두는 필요 없으니 슬리퍼를 만들어달라고 합니다. 젊은 하인은 슬리퍼를 받아서 돌아갑니다.
6년째 되던 날 한 여인과 쌍둥이 여자아이 두 명이 손님으로 옵니다. 여자아이 중 한 아이는 다리를 절었습니다. 두 아이는 그 여인의 딸이 아니었습니다. 사연은 이랬습니다. 아이들 아빠가 나무를 하던 중 허리를 다쳐 죽고 쌍둥이를 해산하던 엄마마저 죽게 되어 이웃이었던 이 여인이 두 아이를 거둬서 기르게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하일이 앉은 구석에서 갑자기 번개 같은 섬광이 비치며서 온 방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여인이 두 아이를 데리고 돌아간 뒤 미하일은 세몬 부부에게 이별을 고합니다. 세몬은 그가 보통사람이 아님을 깨닫고 왜 세 번 웃었는가, 묻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벌을 받아 지상으로 내려온 천사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세 가지 진리를 깨달으면 잘못을 용서 받으리라는 조건으로 벌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의 잘못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불쌍한 여인의 영혼을 거두지 않았던 일이었습니다. 그 영혼은 두 쌍둥이 아이의 엄마였습니다. 아이를 기를 사람이 없다는 여인의 말을 듣고 그만 그대로 두고 하나님께 갔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지금 내려가 산모의 영혼을 데려오면 세 가지 말뜻을 알게 될 것이라 이릅니다. 그 세 가지는 인간의 내부에 무엇이 있는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세 가지를 알게 되는 날에 너는 하늘나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 말합니다.
미하일이 산모의 영혼을 거두어 가던 때 바람이 세차게 불어 산모만 하늘나라로 가고 자신은 날개를 잃고 지상으로 떨어집니다. 그리고 세몬을 만났던 것입니다. 세 번의 웃음은 첫째, 마트료나의 얼굴에서 발견한 사랑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인간은 한치 앞도 모른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미하일은 신사와 함께 온 죽음의 천사를 보았던 것입니다. 세 번째는 쌍둥이 아이들이 잘 기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사랑으로써 살아간다는 것이죠. 인류애였습니다.
이 작품은 기독교적인 세계관에 충실한 작품이며 구성도 그런 전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로 보입니다만, 과연 그것만일까요? 톨스토이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 글을 썼습니다. '진정한 작가이길 원하거든 민중보다 반발만 앞서가라. 한발은 민중 속에 딛고.'라는 톨스토이의 말은 자신의 작가정신을 축약한 말일 것입니다. 얼핏 톨스토이는 이 작품에서 모든 삶의 의미를 하나님에게 의탁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미하일이란 천사는 철저히 관찰하는 입장일 뿐입니다. 중심은 제목에서 보는 대로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고찰입니다. 그 무엇은 동정심, 사회적 연대 같은 인간애입니다.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라고 합니다. 거구의 신사는 1년 동안 멀쩡한 구두를 원했지만 정작 자신의 생명이 다한 줄은 몰랐습니다. 미하일이 주저하며 거두지 못했던 여인. 그녀의 두 쌍둥이는 이웃 여자의 지극한 보살핌으로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이런 전형성은 기실 너무 이상적인 짜맞추기로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냄새가 물큰 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그런 전형성 속에서 전형적인 인류애를 실천한 것도 다름이 아닌 인간이었던 것이죠.
신의 피조물로 인간을 바라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인간이 어떤 것으로 살아가느냐, 라는 결과론적인 해답일 것입니다. 진화의 입장에서도 서로 연대하고 사랑하는 기질을 가진 집단이 그렇지 못한 집단에 비해 생존력이 뛰어날 것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연대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 사는 세상임을 톨스토이는 강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문학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날개 - 이상 (0) | 2021.04.05 |
---|---|
태백산맥 등장 인물 정리와 가계도 (10) | 2021.04.05 |
태백산맥 4부 전쟁과 분단(10권) (1) | 2021.04.03 |
태백산맥 4부 전쟁과 분단(9권) (0) | 2021.04.01 |
태백산맥 4부 전쟁과 분단(8권) (0) | 2021.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