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래 [전태일 평전]

728x90
반응형

지난 주 국회 본회의에서 소위 '노란봉투법'이 통과되었다. 여당의 보이콧이 있기는 했지만 야당과 소수정당이 연합해 드디어 노동자의 기본권을 극악하게 탄압하던 손배가압류에 어느 정도는 족쇄를 채울 수 있게 되었다.

무분별한 손배가압류로 정당한 노동권이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는 전국민적 공감대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었다는 방증이 아닌가 한다. 늦었지만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노동자의 자율과 노동권에 대해서는 그토록 잔혹하게 짓밟고 무시하던 기득권들이 기업의 자율, 재산에 대해서만은 철저하게 옹호하고 나설 때 느꼈던 배신감과 박탈감. 노동청에 진성서를 넣어도 아무런 변화가 없던 모습에 좌절했던 전태일이 느꼈을 감정일까?

그런 기만의 참혹한 세월은 우리 현대사에 무수한 선홍빛 얼룩을 남겼다.

87년 이후 극악한 손배가압류는 자본과 정권이 쥔 가장 무서운 칼날이었다. 손배가압류로 인해 희생당한 노동자들.... 배달호, 김주익.... 그리고 쌍차 노동자와 가족들....

배달호 열사. 2003년 손배가압류의 부당함에 항거해 분신했다.

스물두 살의 청년 노동자 전태일이 "인간답게 살고싶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라며 제몸을 불살라 항거했던 날이 바로 53년 전 오늘, 11월 13일이다.

이즈음 통과된 노란봉투법.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왔다. 필자는 다시 전태일 평전을 꺼내 들었다.

2007년 판 전태일 평전. 돌베개 출판사.

우리나라에 서구식 자본주의가 이식된 것은 일제시대였다. 제국주의 군홧발이 짓이긴 반도는 그야말로 착취자들의 천국이었다. 그러나 마치 작용과 반작용이라는 물리법칙처럼, 탄압에는 저항이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자연발생적이고 고립된 투쟁들은 일제말기, 조직적인 저항운동으로 발전해 간다. 전평 등의 전국적인 노동조직이 탄생하고 이들은 반일운동과 결합해 급속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해방과 동시에 사회주의 구소련과 자본주의 맹주, 미국의 각축장이 되어버린 한반도. 필연적으로 이어지는 전쟁. 이 전쟁은 반대세력을 철저하게 거세하는 수단이 되었다.

전후, 대한민국은 소위 진보세력, 저항세력은 거의 씨가 말라버렸고, 감히 인간을 선언하는 노동자, 민주를 외치는 학생은 '빨갱이'가 되어 투옥되거나 죽어나가는 참혹한 이념편향의 반공사회가 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검렬했고, 정권은 이를 이용해 어떤 불만세력이든 용공분자라는 딱지를 붙이고 잔혹하게 탄압했다. 노동, 농민, 도시빈민들은 인간답게 살고자하는 기본적인 권리조차 입밖으로 내지 못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이런 시기 전태일은 태어났다. 가난했고 처참한 삶은 그에게 예비된 분명한 미래였다. 

가난하고 처참한 삶을 살았던 청년 노동자 전태일. 그는 자신의 몸을 불살라 끝내 이러한 불의의 시대, 암흑의 시대에 한줄기 빛이, 하나의 파열구가 된다. 명백한 운명을 바꾼 '혁명'.

혁명 그 자체가 전태일이다.

전태일. 1968년. 어디를 보고 있었을까?

거의 무학에 가까운 학력이었으나 그는 누구보다도 불의한 시대를 깊이 통찰하며 분개했고, 동료들의 처지를 아파했으며 치열하게 해답을 찾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그 어떤 학자보다 더 강렬한 메세지를 세상에 던진다.

그는 시대의 어둠을 뚫고 우리의 망막에 각인된 찬란한 불꽃이다.

그가 내린 "완벽에 가까운 결단"은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환경에서 해볕 한줌 보지 못하고 시들어가던 노동자들에게 한줄기 빛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가 꿈꾸었던 세상은 온전히 도래하지 못하였다. 앞서 언급했듯, 전태일 이후에도 수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이 징검다리를 놓듯 시대의 구비마다, 차별과 착취의 현장마다 하나, 하나 차례로 놓여야 했다. 

이제 이런 희생은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다. 근로기준법은 일용직 노동자, 물류 노동자 같은 특수한 직종에까지 확대적용해야 하며, 중대재해처벌법 또한 5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해야 한다.

차별이 없는 시대, 착취가 없는 시대. 청년 노동자 전태일이 꿈꾸었던 시대는 아직 요원하다. 그러나 우리는 전진하고 있다. 그가 있었으므로, 그가 우리 속에서 다시 부활하고 있으므로.


전태일 평전의 실제 저자, 故 조영래 변호사를 생각한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수배 중에 집필했다는 전태일 평전.

오랫동안 저자임을 밝히지도 밝히고 싶어하지도 않았다던 서울대 법대의 엘리뜨.

故 조영래 변호사.

볼펜으로 조악한 종이에 빽빽히 써내려 갔을 초고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미 떠나가버린 또래 청년 노동자의 처절한 몸부림, 절절한 호소 앞에서 열사가 그토록 원했던 '대학생 친구 하나'가 되어주지 못한 자신을 얼마나 책망했으랴.

필자의 글이 쉬워질 수가 없는 이유다. 

그들의 삶과 죽음을 넘어선 농밀한 우정, 사랑. 위대한 꿈.

필자의 농도 옅은 사랑과 꿈이 쉬 번져서 사라져버리는 이유.

글을 쓰는 내내 부끄러워 귀가 뜨거웠음을 고백하며 짧고 모자란 글, 마친다.

반응형
  • 네이버 블로그 공유
  • 네이버 밴드 공유
  • 페이스북 공유
  • 카카오스토리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