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큐정전-루쉰 루쉰(19881~1936)은 중국 현대사의 격동기에 삶을 살다 간 중국의 대표적 소설가다. 러일전쟁이 조선반도에서 한창이던 1900년대 초, 일본에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건너갔다가 중국의 근대화, 인민의 정신개조를 위해서는 문화운동, 곧 문학을 해야한다는 깨달음에, 의학공부를 포기하고 문학의 길을 걷게 된다. 루쉰이 살던 시대는 청조를 무너뜨린 신해혁명(1911)이 일어난 시기였고, 일본군국주의와 열강들의 팽창주의가 동아시아를 점점 전쟁의 구렁텅이로 빠뜨려 가던 극심한 혼돈의 시기였다. 이른바 새로운 국제적 질서가 세워지는 시기였다. 아시아의 봉건국가들도 이 시기, 근대화의 과정을 뼈 아프게 겪게 된다.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데는 숱한 선구자들의 자기 각성과 구상이 격류처럼 부딪치고 또는..

아내가 사서 읽고, 책장에 꽂아 둔 책이었다. 소개 받기로, 꽤 문제작이란 얘길 들었다. 처음 아내가 권하던 때, 읽으려다 관두었다.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거개의 기득권에게 불편한 일이다. 페미니즘이 분할한 개념에서 나는 부정할 수 없는 기득권이다. 해서 피했다고 하는 게 맞겠다. 그러나 때론 흐름을 바라보며 전환의 시간이 필요함을 느낄 때가 온다. 알고 실천하던 것들에 문득, 시혜의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지난 주말이 그랬다. 아내가 저녁 식사 약속이 있어 모처럼 나가고, 21개월, 막내를 혼자 돌보면서 그런 생각이 순간 든 것이다. ‘내가 요즘은 첫 째 때하곤 다르게 좀 잘 해주는 편이지…….’ 이런 생각을 하곤 잠시 후, 소스라치게 놀랐다. 민주노동당시절, 성평등 교육을 받았고 나름대로 많이 깨친..
시인이 가자, 오래도록 묵혀 두었던 시집이 떠올랐다. 첫 권은 대학 동문, 누군가에게 줘버렸고 두 번째 권은 생일선물로 사서 줬고 세 번째 권도 또 누군가 주고도 그 어떤 미련이 남아 한 권을 더 산 시집. 이것도 어쩌면 진주에 사느라 가끔 들른 진주문고의 살뜰함 덕분이 아닌가, 한다. 보통 한 시집이 수 년간 한 서점을 지키기란 쉽잖은 일이다. 지역출신 문인에 대한 애틋함이 느껴졌던, 그리고 동문선배에게 자랑스러움도 함께 느껴졌던 십여 년 전 어느날의 기억. 나는 이 시집을 다시 우연하게 만났고 다시 집어듦으로써 오늘의 해우를 필연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작년, 허수경 시인이 가셨다. 스무살 남짓 어린 시절에 쓴 첫 시집을 네 권이나 사고 읽는 동안, 스무살이었던 나 또한 사십줄을 넘었으나 아직도 허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