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설 / / 2024. 1. 11. 21:13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주제 마우루 지 바스콘셀로스 作] 줄거리와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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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브라질의 국민 작가라 불리는 주제 마우루 지 바스콘셀로스가 1968년에 발표한 자전적 소설이다. 소설이므로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부러 의식할 필요는 없다. 자전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지만, 허구로 보는 것이 타당하고 그 허구가 곧 현실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 정도까지 인정하면 되리라.
다섯 살 제제가 살아가는 현실은 처참하다. 가난한 실직자의 아들이자, 많은 형제들의 틈바구니에 낀 천덕꾸러기가 제제였다. 이 아이가 진정한 어른의 온기를 느끼기 전, 유일하게 기댄 것은 볼품 없이 작은 라임오렌지나무 한 그루였다. 학대와 방관만이 교차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이 작은 아이가 마음 붙일 곳은 따로 없었다. 그리고 운명처럼 만난 뽀르뚜가, 그는 인간의, 어른의 온정을 제제에게 건네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모든 성장기의 아이들이 겪듯이, 이 둘은 어느날 불연듯 아이의 곁을 떠난다. 이것은 제제의 생으로써는 일대사변이었다. 이로써 제제는 소위 '철'이 들었다. 더 엄밀히 말하자면 유아기 소년의 감성으로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이 소설은 슬프고 아프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 배어나오는, 막막한 현실마저도 가릴 수 없었던 어린 아이의 순수하고 반짝이는 영혼과 어른다운 어른, 뽀르뚜가의 온정이 은은히 스며나와 아름답다.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슬프도록 아름다운 이야기,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이제 이 작품의 작가와 줄거리에 대해 간략하게 기술해 보겠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작가 '주제 마우루 지 바스콘셀로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작가 바스콘셀로스

작가 주제 마우루 지 바스콘셀로스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1920년에 태어났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권투 선수, 바나나 농장 인부, 야간 업소 웨이터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한다. 이런 그의 젊은 시절의 고생은 그가 작가가 되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된다. 1942년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고 1962년에 펴낸 '호징냐, 나의 쪽배'로 입지를 다졌다. 그에게 가장 큰 성공을 가져다 준 본 작품은 1968년에 발표했다. 이 작품은 브라질 역사상 최고의 판매 부수를 기록했고 전세계 20여 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그는 1984년 64세의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줄거리

 

 
※주의 : 결론까지 포함된 줄거리 요약입니다. 

[1부. 때로는 크리스마스에도 악마 같은 아이가 태어난다.]

1. 철드는 아이
이야기는 제제가 형 또또까와 얼마 뒤 이사갈 집을 구경하러  가면서 시작된다. 제제는 호기심 많은 아이였고, 그만큼 많은 것을 빠르게 배우는 아이였다. 두 아이의 이 짧은 여정을 통해 이 가족의 구성과 현재 상태를, 아버지의 실직으로 인해 심각한 경제적 곤란에 처해 있음을, 그런 가정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큰누나와 엄마가 일터로 나가고 있음을 독자는 알게 된다. 제제는 스스로 글을 깨우칠 만큼 영리한 아이였다. 사고뭉치 제제를 제대로 돌볼 여력이 없었던 제제의 가족들은 이런 아이를 일찌감치 학교에 입학시킬 계획을 세운다. 
2. 어떤 라임오렌지나무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어느날, 제제는 가족들과 이사 갈 새 집을 둘러보러 간다 . 집의 문이 열리자 글로리아 누나와 또또까 형이 먼저 뛰어들어가 집안에 있던 좋은 나무를 자기들 거라고 선언해 버린다. 글로리아 누나는 의기소침해진 제제에게 뒤뜰 개울 곁에 있는 조그마한 라임오렌지 한 그루를 네 것으로 하라며 달랜다. 그 나무는 제제의 성에 차지 않았다. 화가 나서 나무 아래 주저앉았을 때, 그 라임오렌지나무가 말을 걸어온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밍기뉴와 처음 만나는 순간이었다. 
3. 가난에 찌든 손가락
시내에서 어린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장난감을 나눠준다는 소식을 들은 제제는 그곳에 동생 루이스와 가고자 하지만 자신을 데려다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결국, 두 아이는 선물을 나눠주는 곳에 너무 늦게 도착해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 우는 동생을 달래는 제제의 마음도 미어졌다. 자신은 나쁜 아이라 선물을 안 주더라도 왜 루이스에게까지 그러냐고 하늘을 원망했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 구두통을 들고 거리로 나선 제제

가난하고 서글픈 크리스마스 만찬을 보낸 밤, 제제는 운동화를 내놓았지만 다음날 아침, 운동화가 여전히 텅텅 비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제제는 '아빠가 가난뱅이라서 진짜 싫어!'라고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하필 그 말을 들은 아빠는 말없이 자리를 뜨고 제제는 아빠에게 미안해 스스로를 심하게 자책했다. 제제는 구두통을 들고 크리스마스로 들뜬 거리에 나섰다. 슬퍼할 아빠에게 뭐라도 해드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장사는 신통치 않았으나 약간의 온정과 동냥으로 돈을 마련한 제제는 상점으로 달려가 아빠에게 줄 담배를 산다. 담배를 태우는 아빠에게 제제는 울먹이며 사과했다. 아빠는 그런 제제를 꼭 보듬어주었다.
4. 작은 새, 학교 그리고 꽃
이사한 동네에서조차 짓궂은 장난을 치고 매를 맞은 제제는 다음날 친척 에드문두 아저씨를 찾아갔다. 제제는 자신의 마음속에 작은 새가 살고 있어 노래를 불러준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의심이 들어서다. 친척 아저씨는 그 새가 영리한 아이들이 잘 자라도록 도와주기 위해 하느님이 보내는 것이고 나이가 들어 철이 들면 다시 데려가 다른 아이의 마음에 보낸다고 말해주었다. 제제는 집으로 돌아와 밍기뉴가 보는 앞에서 그 작은 새를 예쁜 구름에 실어 날려보낸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 가슴속의 작은 새를 날려보내는 제제

제제는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담임은 가난한 제제에게 가끔 간식 사먹을 돈을 주곤 했다. 제제는 다른 반의 여학생들처럼 자기 담임선생의 꽃병에도 꽃을 꽂아드리고 싶었다. 제제는 남의 정원에서 꽃을 훔쳐서 꽃병에 꽂았다. 이를 안 담임선생이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제제에게 다짐받았다. 담임선생은 제제가 자신보다 더 가난한 아이를 동정하고 빵까지 나눠먹은 사실을 알고 눈물을 흘린다.
5. 네가 감옥에서 죽는 것을 보겠어
제제는 화요일이면 수업까 빼먹고 악보판매상 아리오발두 아저씨를 따라다녔다. 당시에는 악보판매상이 노래를 부르며 악보를 팔았다. 제제는 그의 노래 중 '파니'에서 '네가 감옥에서 죽는 것을 보겠어'라는 대목을 제일 좋아했다.  곧 제제는 화요일마다 그 아저씨와 함께 장사를 하게 된다. 그래서 수요일이면 글로리아 누나에게 자신이 배운 노래를 가르쳐주곤 했다. 

[2부. 아기예수는 슬픔 속에서 태어났다.]

 

 

1. 박쥐
제제는 마누엘 발라다리스라는 무섭게 생긴 포르투갈 사람의 멋진 차 뒤에 박쥐처럼 매달려서 달리는 모험을 계획했다. 하지만 그 계획을 실행한 순간, 붙들려서 제제는 톡톡히 혼이 나고 말았다. 창피했던 제제는 이 다음에 커서 아저씨를 죽이겠다고 씨우적거린다. 그와 주변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그렇게 창피를 당한 제제는 포르투갈 아저씨에게 엉덩이 딱 한 대를 맞고 풀려나 복수를 다짐한다.
그날은 되는 일이 없었다. 또또까 형 대신 싸움에 나서서 흠씬 두들겨맞았다. 그렇게 집에서까지 아버지에게 혼나고 만다. 제제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은 라임오렌지나무, 밍기뉴 뿐이다. 제제는 루이스를 데리고 밍기뉴에 올라타 사냥놀이를 신나게 한다.
2. 정복
그 일 이후, 포루투갈 아저씨는 제제에게 매번 아는 체했다. 제제로서는 불쾌한 일이었다. 세 번이나 얻어맞고 바깥으로 나가지 못한 날, 제제는 밍기뉴와 놀다가 또 다시 사고를 치고 만다. 이웃집 나무의 과일을 서리하려다가 더러운 개울물에 빠졌는데 하필 그 자리에 유리조각들이 있었던 것이다. 피를 철철 흘리는 제제를 글로리아 누나가 감춰주었지만 상처는 가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다음날 쩔뚝거리며 학교로 가던 제제를 포르투갈 아저씨가 불러세웠다. 그는 제제를 학교에 태우고 가다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제제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그에게 안겨서 발의 상처를 꿰맨 제제. 포르투갈 아저씨는 제제에게 파상풍 주사까지 맞혔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속 삽화. 다친 발을 꿰매는 제제.

아픈 치료를 잘 견뎌준 제제에게 포르투갈 아저씨는 맛있는 것을 사주고 집에까지 데려다준다. 제제에게 이 포르투갈 사람은 이제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3. 이런저런 이야기
제제는 포르투갈 아저씨를 동경해 그의 주위를 기웃거렸다. 제제는 포르투갈 아저씨에게 자신의 처지를 미주알고주알 다 이야기한다. 매맞은 이야기, 자기 속의 악마 이야기. 이 속에는 가족들로부터 당하는 정서적 학대도 포함된다. 이런 그와의 이야기를 계속하자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밍기뉴는 토라진다.
크리스마스의 이야기를 들은 포르투갈 아저씨는 두 번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주겠노라 약속했다. 그와는 자주 드라이브를 했다. 정말 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되자, 제제는 그에게 라임오렌지나무에 대해서도 말해 주었다. 제제는 그에게 뽀르뚜가라고 부르고 싶다 말한다. 뽀르뚜가는 포르투갈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아주 친한 사이에서만 쓰는 말이라고 한다. 선선히 허락한 그는 일전 제제가 도전했던 차 뒤편 스페어 타이어에 매달려 달리기도 하게 해주었다. 제제는 진정으로 뽀르뚜가가 좋았다.
4. 잊을 수 없는 두 차례의 매
제제는 자신이 생애 처음으로 애지중지 만들던 종이풍선을 망가뜨린 잔디라 누나에게 갈보년란 욕을 하다가 사정없이 두들겨 맞았다. 또또까까지 들어와 누나를 거들었다. 제제는 그렇게 이가 부러지도록 얻어맞는다. 그런 제제를 글로리아 누나가 돌봐주었다. 둘은 나지막이 흐느꼈다.
제제가 잔인한 매질로 엉망이 되자 가족들은 남우세스러울까, 아이를 학교에도 보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수염도 제대로 깎지 않고 너저분한 몰골로 멍하니 있는 실직자, 아빠가 안 되어 보였던 제제는 아빠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제제는 아리오발두 아저씨에게 배운 아름다운 탱고 음악을 떠올렸다. 
'나는 벌거벗은 여자가 좋아. 벌거벗은 여자를 원해....'
당연히 아비로서는 가만히 들어줄 수 없는 노래였다. 다섯 살 아이가 이런 노래를 부른다면, 어른이라면 모두 놀랄 것이다. 계속해보라는 아빠의 나무람을 표면 그대로 해석한 어린 제제. 아빠가 자신의 노래를 좋아하는 거라 착각해 계속 부르다가 기절하도록 맞는다. 이번에도 글로리아 누나가 나서서 겨우 아비를 뜯어말렸다. 가족들은 이 일이 바깥에 알려지는 게 두려워 의사도 부르지 않았다. 제제는 몹시 앓았다. 제제는 간병하는 엄마에게 자신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한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 심하게 매를 맞은 제제

5. 엉뚱하고도 기분 좋은 부탁
이제 제제는 잘해주는 식구들이 의심스러웠고 밍기뉴의 말들이 시시해졌다. 제제의 가슴속에 슬픔이 자라났던 것이다. 모처럼 뽀르뚜가를 만난 제제는 그에게 부탁해 드라이브를 갔다. 매 맞은 이야기, 그래도 그런 가족들을 이해하는 제제의 모습에 뽀르뚜가는 눈물까지 흘렸다. 제제는 아빠를 마음속에서 죽여버릴 거라고 고백한다. 사랑하기를 그만둔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망가라치바에 뛰어들어 죽어 없어질 거라고도. (망가라치바는 제제가 사는 동네를 지나는 기차의 이름이다.) 뽀르뚜가는 아이를 달래면서 주말에 함께 낚시를 가자고 했다. 제제의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누그러졌다. 
강가에 낚시를 하러 간 제제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더러워진 제제에게 씻으라고 말한 뽀르뚜가의 눈은 놀라움과 분노로 가득 찼다. 숱한 흉터와 매맞은 자국이 그 작은 몸에 빽빽하게 새겨져 있었던 탓이다. 둘은 간식을 먹고 커다란 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누웠다. 제제는 뽀르뚜가에게 아들이 되고 싶다고 고백한다. 뽀르뚜가 또한 감격해 제제를 친아들로 대하겠다 약속한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 뽀르뚜가와 함께 낚시를 가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제제

6. 사랑의 조각들
제제는 밍기뉴에게 뽀르뚜가의 이야기, 많은 아이를 낳고 절대 때리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 등을 하고 있을 때 또또까 형이 다가왔다. 그는 돈을 빌려달라며 아빠가 취직이 된 이야기와 시청에서 길을 넓히면서 라임오렌지나무가 베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준다. 제제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빌린 돈으로 또또까 형은 영화 '타잔'을 보러간다고 했다. 제제는 이미 그 영화를 뽀르뚜가와 보았다.  
7. 망가라치바
방학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날, 제제는 학교 수업 중에 뽀르뚜가의 차가 망가라치바에 부딪쳤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제제는 바로 학교를 벗어나 사고가 난 곳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어른들이 만류해 갈 수 없었다. 거리를 헤매며 제제는 뽀르뚜가를 돌려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집으로 간 제제는 심하게 앓아 누웠다. 라임오렌지나무가 없어질 거라는 이야기 때문인 줄 안 또또까 형은 가책에 시달렸다. 마을 사람들이 줄지어 제제를 보러 문병을 왔다. 그 중에는 악보팔이 아리오발두 아저씨도 있었다. 조금씩 회복되어 가던 밤, 제제는 곁에서 간호하던 글로리아 누나에게 창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한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다시 눈물짓는 제제였다. 글로리아 누나는 다시는 널 때리지 못하게 하겠다 맹세했다.
어느날 밤, 창문에 인기척이 느껴져 보았더니 밍기뉴가 보였다. 그는 제제의 방으로 들어왔다. 루씨아누(박쥐)도 함께였다. 밍기뉴는 제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양껏 멋을 부린 차림이었다. 둘은 함께 산책을 나간다. 밍기뉴는 날아다니는 말로 변했다. 그곳에서 망가라치바를 마주친다. 제제는 살인자라고 욕했다. 집안의 불이 켜졌다. 식구들은 제제가 나쁜 꿈을 꾸었다고 생각했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 망가라치바. 뽀르뚜가의 차와 사고가 나 뽀르뚜가가 죽게 된다. 무심히 흘러가는 세월과도 같은 존재다.

어느날 아침, 글로리아 누나가 작고 흰 꽃 한 송이를 들고 들어온다. 밍기뉴가 피운 첫번째 꽃이었다. 글로리아 누나는 그 애도 곧 어른 나무가 될 건가 봐, 라며 감탄했다. 제제는 밍기뉴가 이 꽃으로 자신에게 작별을 고했다고 여겼다. 밍기뉴도 이제 자신의 꿈의 세계를 떠나 현실과 고통의 세계로 들어서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때 동생 루이스가 제제에게 놀아달라고 다가왔다. 어느 정도 회복된 제제는 동생과 놀아주었다. 동생의 상상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제제는 이제 현실세계를 보고 있었다. 동물원은 낡은 닭장일 뿐이었고 아마존 정글은 가시투성이 오렌지나무 잎사귀 몇 장일 뿐이었다. 이미 작별한 밍기뉴는 보고 싶지 않았던 제제가 피곤하다며 놀이를 빨리 끝내고 만다. 
8. 늙어가는 나무들
아빠는 제제를 무릎 위에 앉히고 취업된 사실을 알리며 크리스마스에 네 신발이 비어있는 일은 이제 없을 거라 다짐했다. 그러나 제제는 그런 아빠의 행동이 역겨웠다. 이미 자신의 아빠는 죽었다고 생각했다. 다시 눈물짓는 제제를 아빠는 다정히 달랜다. 아빠의 발을 보며 제제는 그 또한 칙칙한 뿌리를 가진 늙은 나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나무. 아빠는 라임오렌지나무도 빨리 잘리진 않을 것이고 이사를 한 후라 너는 모를 것이라 말하지만, 제제에게 그런 것은 이제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제제의 라임오렌지나무는 이미 일주일 전에 잘려 나갔던 것이다. 
9. 마지막 고백
(이 단락은 책을 그대로 옮깁니다.)
사랑하는 마누엘 발라다리스 씨(뽀르뚜가),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는 마흔여덟 살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그리움 속에서 어린 시절이 계속되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언제라도 당신이 나타나셔서 제게 그림 딱지와 구슬을 주실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나의 사랑하는 뽀르뚜가, 제게 사랑을 가르쳐주신 분은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지금은 제가 구슬과 그림딱지를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사랑 없는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제 안의 사랑에 만족하기도 하지만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절망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 시절, 우리들만의 그 시절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먼 옛날 한 바보 왕자가 제단 앞에 엎드려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물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사랑하는 뽀르뚜가, 저는 너무 일찍 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영원히 안녕히!
우바뚜에서
1967년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독서 후기

이십여 년 전에 처음 읽었고 이번에 블로깅을 하기 위해 다시 읽으면서 글쎄, 읽고 쓰기가 무척 싫은 게 아닌가. 왠지 '엄마 찾아 3만 리'류의 7080식 신파를 보는 느낌이었고, 그런 촌스러운 느낌을 꺼려하면서도 또 속절없이 빨려들어가고 마는 아재감성이 스스로 무안했던 모양이다. 
우리는 가난하고 험악한 시절을 지나왔다. 휘황한 아스팔트, 콘크리트 아래에는 우리들이 지나온 가난한 역사들이 오롯이 묻혀있다. 몇 개 되지 않는 숟갈, 대문간 공동 화장실, 더러운 공동 세면장, 꾀죄죄하던 아이들과 냄새나던 도시하천. 필자는 제제의 이야기를 보면서 내가 뛰어놀던 작은 도시의 풍경들을 떠올렸다. 가난했고 무지했던 우리들. 매 맞은 아이들이 참으로 많았다. 군사독재의 소위 '군바리문화'는 사회 곳곳에 스며 있었다. 그래서 학교 선생들도 무척이나 아이들을 많이 때렸다. 소위 '철'들라고.
철은 때다. 동음이의어긴 하지만 더러운 때와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 사람에게 철이 든다는 것은 결국 시류에 편승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것이 어떤 시류건 간에. 우리는 시쳇말로 그런 것을 때묻는다, 라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철이 들어 세상살이 통달한 듯 살아가도 결국에 작은 온정 하나, 따뜻한 기억 하나 없다면 삶은 어느 순간에 무너지고 만다. 역으로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철이 아니라 그 작은 온정들이다. 제제가 굳건히 살아간 것처럼.
추운 겨울, 나는 다시금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보았다. 어렸을 적 타고 놀았던 느티나무를 떠올리고 아버지가 가꾸던 화분들을 떠올렸다. 그 시절은 온실 속인 듯, 여전히 푸르르다. 겨울날의 메마른 가지마저 아름답게 느끼도록 해주는 그 푸르름. 앙상한 가지 속에 숨은 그 따뜻하고 눈부신 회복력이 오늘을 견디는 힘임을, 나는 다시 한 번 느낀다. 우리에게도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있다. 뽀르뚜가가 있었다. 살아가자, 굳건히. 그리고 사랑하자, 라는 기특한 생각을 잠시 해본다. 나도 누군가에게 뽀르뚜가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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