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설 / / 2020. 4. 9. 09:59

눈먼 자들의 도시 줄거리 - 주제 사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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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사마라구 '눈먼 자들의 도시' 표지

상상해 보자. 요즘과 아주 비슷하다. 전염병이 퍼진다. 이 전염병은 코로나19보다 더 강한 전염력을 지녔고 더 치명적이다. 이 병은 눈을 멀게 하기 때문이다. 눈먼 자들의 말에 따르면 앞이 하얗게만 보인다고 한다. 주제 사마라구의 환상적인 리얼리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다소 황당한 설정으로 시작한다. 어느 날 차를 몰고 가던 남자가 갑자기 눈이 먼다. 그를 집에 데려다주고 그의 차를 훔쳐 달아난 도둑도, 그의 아내도 다 눈이 멀어간다. 걷잡을 수 없이 이 질환은 퍼져나간다. 정부당국에서는 수백 명의 이 질환자들을 한 정신병원에 수용하기로 한다. 전염력이 너무 강해 군인들이 그들을 감시한다. 군인들이 보초를 서는 쪽으로 다가오기만 해도 발포로 이어졌다. 장님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공포였던 것이다. 그러나 단 한 명, 안과 의사의 아내 한 명 만은 눈이 멀지 않았다.(그 이유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그랬으면 그런 것이다.) 그녀는 눈먼 남편을 위해 일부러 눈이 먼 척하며 수용소에 따라왔다.

눈이 멀어가는 전염병이라는 다소 황당한 전제로 시작하지만 펼쳐지는 상황은 사실감의 극치를 이룬다. 주제 사마라구는 대화, 생각, 사람이름을 따로 쓰지 않는다. 철저히 의사의 아내, 처음 눈먼 자의 아내, 애꾸 노인 등으로 표현할 뿐이다. 게다가 대화를 인용하는 큰따옴표, 작은따옴표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활자 밀도가 굉장히 높다. 건성으로 읽다가는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생각인지, 작자의 말인지조차 잃어버리기 일쑤다.

눈먼 자들은 나름의 질서를 잡아가지만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욕구, 즉 식욕, 배변 욕, 성욕 등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정신병원의 복도는 눈먼 자들의 배변으로 더러워지고 일부 힘을 가진 자들은 보급품을 독점하고 수용자들의 재산과 여성의 성을 수탈한다. 그러나 병이 병원 바깥에서도 급속도로 번져나가자 도시는(혹은 국가는) 무정부상태에 빠지고 만다. 결국 보급품도, 전기도 다 끊긴 것이다. 보급품을 약탈해 여성들을 유린하던 병실에 어느 여자가 불을 지르면서 그들은 집단으로 탈출하게 된다.

바깥으로 나와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먹을 것은 없고 눈먼 자들은 아무 데나 용변을 보고 또 죽어 널브러져있다. 개들은 시체를 뜯고, 쥐들은 고양만큼 컸다. 눈이 멀지 않은 의사의 아내가 남편 등을 이끌고 집으로 찾아간다. 무리는 어쩌다 발견한 슈퍼의 지하 식료품 창고에서 음식을 가져와 근근이 삶을 이어간다. 그들은 각자의 사연으로 자신들의 집을 다녀오고 거리와 이 도시에 내린 참상을 눈이 멀지 않은 안과의사 아내의 눈을 통해 듣는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 눈먼 사내가 시력이 회복된다. 차츰 모두의 시력이 회복되는데, 안과의사의 아내는 실명이 될까 두려워하며 이야기는 끝난다.


이게 무슨 이야기일까? 이 작품을 읽은 독자는 한참을 생각하게 된다. 몇 가지 주동 인물들의 방백과 생각이 철학적 주제를 담고 있다고 해서 작품의 완성도,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필자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렸다.

어떤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인간에 대한 모의실험이란 점에서 두 작품은 닮았다. ‘변신은 한 인간이 갑자기 갑충으로 변하는 황당한 상황에서 주변의 관계, 인간에 대한 사회적 규정이 어떻게 변해가는 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눈먼 자들의 도시또한 모든 인간의 실명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발상에서 시작해 볼 수 있다. 작가의 치열한 상상력의 산물이겠지만 이런 실험에 동원되는 근거들은 나름의 이유들이 있다.

눈이 먼다는 것은 인간이 사물을 인지하는 데에 가장 많이 의존하는 기관을 잃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모든 생활양태를 바꾼다는 의미다. 가볍게 오르내릴 수 있었던 낮은 계단도 무서운 장애물로 대면하게 되고 돈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도시문명의 기능은 완전히 상실된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의 탄생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개별의 답답함, 인간적 고뇌를 떠나서.

처음 눈먼 자들을 모아놓은 정신병원에서의 인간군상은 그런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배제된 눈먼 자들. 그리고 그 속에서 질서를 잡으려 애쓰는 사람들. 그러나 그 상황을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데 사용하는 사람들의 군상. 끊임없이 풍겨 나오는 배설물의 냄새와 시체가 썩어가는 역한 냄새는 기실 사실적 기법을 넘어, 인간의 내재된 더러운 욕망, 혹은 인간성(혹은 사회성, 도덕성)을 상실한 사회에서 도덕적, 양심적 기민함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맡을 수 있는 더러운 냄새를 상징하는 것은 아니겠는가.

코로나19로 어려운 작금. 누군가는 이 사회의 유지와 인간존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지만 또 누군가는 이 어려움을 이용해 자기 개인의 더러운 욕망과 잇속을 챙기기 위해 날뛴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넘어 화두를 던지는 상황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본다는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기본이다.”

여기서의 본다는 것의 의미는 다만 생물학적인 시력이 아니다. 진실과 참된 가치를 본다는 것이다. 사랑과 연대, 생명존중. 이런 인본주의적 가치를 상실한 사람은 눈먼 자들이다. 이 책은 물신주의에 눈먼, 자본의 맹목에 눈이 먼 우리가 곰곰이 다시 한 번 되씹어볼 만한 가치들에 대해 되묻고 있다.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주제 드 소자 사마라구는 1922년에 포르투갈에서 태어난 소설가이자 언론인이다. 2010년 사망했다. 199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작가의 자세한 삶은 네이버, 구글이 더 자세하게 제공하고 있다. 한번 찾아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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