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은 전체적으로 액자 형식을 띈다. 처음 설명할 ‘뫼비우스의 띠’ 편이 프롤로그라면 마지막 에필로그는 ‘에필로그’편이다. 두 편은 모두 수학선생의 이야기로 시작되고 앉은뱅이와 꼽추의 이야기가 삽입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읽은 뒤, 이 두 편만 따로 읽어보는 것도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에 미리 언급해 둔다. 이 작품에 주요 화자이자 등장인물을 우선 정리해 놓겠다. 앞 편에서 말했듯이 이 소설은 각 편마다 화자가 달라지지만 전체적인 사건 전개는 유기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가끔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필자가 그 부분을 정리해 놓는 것은 일종의 교통정리다. 나중에 지면이 허락한다면 시간순서대로도 한번 정리해 볼 요량이다. 특히 1인칭으로 서술되는 편의 경우 대화와 사건과 자기 회상, 생각이 별다..
시대의 고전이 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의 독서 감상문을 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작품이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가지는 위상의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그러하기에 이미 훌륭한 평론들이 너무나 많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이 소설에 대해 쓰지 않을 수도 없는 이유 또한 분명히 있다. 짝사랑 같은 열병이다. 이십 대에 만난 이 작품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이다. 난장이를 생각하며 가슴 한켠을 쓰려했던 기억 때문이다. 난쏘공은 70년대 출판된 이후 백만 부 발간이 넘은, 이 시대의 고전이 된 소설집의 제목이자, 이 소설집에 실린 12편의 난장이 연작 중, 한 단편의 제목이기도 하다. 소설들은 각 단편에 따라 1인칭 주인공의 시점과 3인칭 시점을 넘나들며 한정된 등장인물들이 유기적..
루쉰의 작품은 이번 고향이란 작품을 마지막으로 그만하려 한다. 그동안 아큐정전, 광인일기, 풍파를 잇따라 분석해 보았는데 짧은 소견으로 대가의 위엄에 누를 끼친 것은 아닌 지, 적잖이 우려된다. 해서 당분간 루쉰의 작품은 손 떼기로 한다. 사실 루쉰의 작품 몇 가지를 분석하면서 필자 스스로도 골치가 꽤 아팠다. 루쉰은 중국현대사의 격변기에 살았던 인물이다. 격변기라는 것은 사회 문화, 제도적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다. 장강의 아랫물에 사는 물고기가 심산 협곡의 격류를 제대로 알 리가 없다. 한 가지 다짐할 것이 있다면 훗날 중국근현대사를 공부할 기회가 있어, 앞서 썼던 글이나 오늘 쓰는 이 글에 첨삭할 것이 생긴다면 꼭 그렇게 하겠노라는 것이다. 사설이 꽤 길었다. 이제 오늘 살펴볼 고향이라는 작품을 본격..
아큐정전과 광인일기가 전형적인 인물을 등장시켜 중국사회의 문제를 극명하게 드러낸 무거운 작품이라면 풍파는 앞의 두 작품에 비해서는 일반적인 인물이 등장하면서 갈등 또한 나름 가볍게 마무름 되어 한결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풍파는 당시 중국인들의 어리석음을 가벼운 사건 하나로 짚으면서 여전히 폐습에 찌든 사람들의 군상을 고발한다. 풍파는 1920년 작품이다. 신해혁명이 일어나고 여덟 해가 지난 시점에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저 한적하고 목가적으로 보이는 강변마을이 이 소설의 유일한 무대다. 이 마을 사람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몸무게에 따라 이름을 짓는 풍습이 있었다. 그래서 노파는 구근이다. 태어날 때, 아홉 근이 나갔던 모양이다. 손자는 칠근, 증손녀는 육근, 이런 식이다. 구근은 계속 살아가는 ..

광인일기 줄거리, 감상 이 작품은 어떤 광인, 즉 정신이상자가 쓴 일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형식으로 쓴 독특한 서사구조의 소설이다. 광인일기는 짧은 단편소설이지만, 루쉰의 첫 소설이자 중국의 첫 번째 현대 백화문 소설로 그 의의가 대단한 작품이다. 월간 '신청년' 4권 5호에 발표되었다.(위키백과) 백화문은 쉽게 말해 구어체를 뜻한다. 고백컨대, 필자는 광인일기란 이 짧은 단편을 이해하기 위해 광인일기 전문보다 더 많은 활자들을 씹어서 소화해야 했다. 몇몇 신문기사, 논고, 블로그, 특히 위키백과가 광인일기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돌아와서, 광인일기는 30년 동안 어둠 속에 있던 광인이 밝은 달을 본 이야기로 시작한다. 밝은 달을 보고서 광인의 광기가 시작되는 것은 많은..

꽤 오래 묵혀두고 십수 년에 걸쳐 네 번을 정독한, 그리고 가끔은 확인을 위해 몇몇 페이지를 발췌해 보았던, 그러니까 나로서는 매우 드물게 자주 집어들었던 두터운 책이다. 아버지께서 어느 날 선물해주신 책인데, 이 책을 읽은 이후, 내 사고에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인문학계열의 학위를 받은 나는 사실 진화론 같은 자연과학 분야에 상당히 취약한 사람이다. 하지만 무신론자임을 선포한 지는 꽤 오래된 사람이기도 했다. 스스로 무신론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진화론자라 말해왔지만 정작 진화론의 요체는 제대로 몰랐다. 나의 진화론은 순전히 인본주의적 입장에서 유추된 어중간한 철학이었던 따름이다. 어쨌든 아버지의 뜬금없는 책 선물은 가끔씩 찾아오는 행운이었는데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땐 당황..